1469화. 역사 한번 만들어 보죠. (4)
황종의의 넋은 완전히 나가 버렸다. 이런 광경을 보고 제정신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쿠우우웅!
작은 산처럼 쌓인 나무 위로 수십 그루의 나무 기둥이 새로 켜켜이 쌓였다.
“이러다 무너지겠는데?”
“너무 높답니다! 옆에다 새로 쌓으십시오!"
“에이, 벌써 올렸는데."
몇몇 이들이 원숭이처럼 나무의 산을 폴짝폴짝 뛰며 올랐다. 그러더니 양팔에 한 아름이 넘는 나무 기둥을 하나씩 끼고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쓰읍. 이건 너무 굽었는데?"
"뭐? 어떤 인간이 이런 거 가져왔냐! 이쪽에는 곧은 나무만 가져오라고 했는데!”
“에이, 이거도 못 쓰겠는데?"
“일하는 꼬라지 하고는!"
“빨리 다시 나눠! 총사 오시면 또 누구 하나 허리 부러진다!"
모인 이들은 옥신각신하며 저들끼리 다시 나무를 분류하기 시작한다. 장정 수십은 달려들어야 할 크기의 나무가 좌로 우로 획획 날아다녔다. 이 믿기 힘든 광경을 지켜보던 황종의가 힘없이 시선을 돌렸다.
“혀, 형님. 이젠 진짜 한계입니다. 더는 힘이......"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내력 불어넣어! 이거 다 못 끝내면 밥도 못 얻어먹는다고!”
“아니…… 이러려고 익힌 내력이 아닌데……”
"누군 그럼 이럴 줄 알고 수련했나? 빨리 안 해?”
"끄으응."
커다란 나무를 움켜잡은 이들이 일제히 나무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열양의 기운이 서린 내력은 사람보다 배는 두꺼운 나무를 순식간에 바짝 말렸다.
쩌적!
"아악! 빌어먹을, 갈라졌다!"
“어떤 새끼가 조절 안 하냐? 섬세하게 해야 한다고 했잖아! 내력 막 밀어 넣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이, 이건 그래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진짜 조금 갈라진 건데."
“개소리하지 말고 새로 가져와! 궁주님이 아시면 나무가 아니라 우리가 토막 난다.”
“아이고..….”
금세 다시 가지고 온 나무에 야수궁도들이 달라붙었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최소 한 달은 말려야 쓸 수 있을 나무들이 숨 몇 번 내쉴 시간 만에 훌륭한 목재로 재탄생했다.
"......됐다. 옆으로.”
“끄으…… 진짜 죽겠네. 여기 있수다!"
잘 마른 목재가 옆쪽에 준비된 커다란 작업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검수들의 칼날이 나무 위로 작렬했다.
서걱! 서걱!
나무를 옮기는 야수궁도들이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좋겠다. 칼 쓰는 양반들이 제일 편해 보여."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검이나 익힐걸."
목재에 칼질해 대는 남궁의 검수들은 제 전공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샀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들이라고 편한 것은 아니었다.
카각!
"아니, 이놈들아! 똑바로 자르라고! 간격 맞춰서! 이거 두껍잖아!"
남궁명의 고함에 검수들이 움찔하며 검을 멈추었다. 남궁명은 대로하며 손에 든 목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멀쩡한 나무 하나를 버렸잖느냐! 폐자재가 쌓이면 그거 다 우리 돈으로 물어야 한다는 말 못 들었느냐? 이러다 남궁세가가 파산할 판이다. 남궁세가가! 빌어먹을! 남궁세가가 칼질 제대로 못 해서 파산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 장로님. 저희도 진짜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란 말이다. 이 무능한 놈들아!"
검수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배운 검술이 그런 건데 뭘 어쩌라고……'
'빨리하면 정교하게 하라고 하고, 정교하게 하면 빨리하라고 하고.'
애초에 남궁의 검술은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호쾌한 검이다. 검이 조금 엇나가도 힘과 속도로 뭉개 버리면 된다고 배워 왔던 이들이 머리카락 한 올 단위로 검을 전개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죽겠다.'
'진짜 토하고 싶다.'
수련이라면 사흘 밤낮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허공에다 칼질하는 것과 아름드리나무를 쉬지 않고 잘라 대는 게 같을 수는 없다. 넘치는 내력과 폭발적인 검기를 자랑하는 남궁세가 검수들의 얼굴이 바싹 마른 목재처럼 거칠어져 갔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곳은 그들에게 쉴 틈 따윈 주지 않았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들 앞으로 수레 한 대가 먼지바람을 휘날리며 당도했다.
“아니, 자재가 모자라다니까요! 작업 속도가 왜 이리 더딥니까?”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변명도 한두 번이지. 이러다 총사님이 오신다니까? 기껏해야 검이나 휘두르는 일인데 뭐가 이리 안 됩니까!"
“기껏해야 검이라니! 그럼 직접 해 보시든가!"
남궁 검수들이 발끈하자 수레를 끌고 온 당가인들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럼 댁들이 집 지으시게?"
"......"
“우린 불만 없는데, 바꾸실까요?"
“…… 빨리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말할 시간에 자르십시오! 말할 시간에!"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힘없이 검을 휘둘렀다.
잘린 목재들이 수레에 차곡차곡 쌓였다. 더는 실을 수 없을 만큼 목재가 쌓이자마자 수레가 지체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빨리 가자, 빨리! 가주님 진노하신다!"
황종의의 시선은 화음을 연신 종횡하는 수레를 멍하니 따라갔다. 이제 화음에는 전에 없이 특이한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목재 왔습니다!”
“뭐가 이렇게 느려! 하여튼 굼떠서는!"
당가의 무인들은 대꾸하지 않고 목재를 재빠르게 들어 날랐다.
“끄응."
기본적으로 당가는 무인들이 장인들에 비해 신분이 높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입장이 완전히 역전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디에 둡니까?”
"...... 저쪽에 두십시오."
“이 큰 목재들은?"
“…… 그 뒤에다 두면 됩니다."
평소 고압적으로 굴던 당가의 무인들을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사람이면 당연히 신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목수들은 조금도 신이 난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되레 절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으......"
착착 올라가고 있는 전각을 핏발선 눈으로 지켜보던 장인들 중 하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으아! 더 이상 못 참아! 이건 장인에 대한 모욕이야!"
"마, 말려!"
"안돼! 멈춰!"
"이거 놔!"
그는 광기 어린 눈으로 어느 한 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총사님!"
"엥?"
여기저기를 감시하던 청명이 제 앞에 달려온 이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뭐예요?"
“저는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뭘요?"
청명의 시큰둥한 눈과 핏발선 장인의 눈이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긴장이 팽팽해진 순간, 장인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청명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총사님!"
“아, 뭐야. 왜 이래요! 바지 내려가요!"
“제 제발! 저 처마 끝만 처리하게 해 주십시오, 기, 기와라도 어떻게든 구워 보겠습니다! 제, 제발! 밤을 새워서라도 할 테니까 제발!"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장인의 눈빛은 또 어떤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지 불공대천의 원수도 잠시나마 마음이 약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인이 매달리고 있는 이는 청명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나?”
“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저 지랄 같은 전각들을 보고만 있어도 위장이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냥 제가 잠 안자고 일할 테니 장식이라도 새기게 해 주십시오. 제발!"
"장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떼어놔!"
"저 인간 잡아!"
뒤늦게 달려온 다른 장인들이 청명의 바지를 잡고 늘어지는 이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총사님! 총사니이이임!"
"그만하라지 않는가."
“마음은 아네.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 하지만 애원도 통할 사람한테 해야지.”
울부짖는 이를 끌어내는 장인들의 눈가도 금세 촉촉해졌다.
제대로 칠도 되지 않은 채, 모두 같은 모양으로 네모반듯하게 지어 올려진 건물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다.
"놔! 놔라! 보나 마나 저걸 본 사람들이 저 전각을 누가 지었는지를 물을 텐데! 나는 죽어서도 눈을 못 감는다. 저런 걸 세상에 남길 수는 없어!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해!"
"포기하라니까……”
장인들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단 하나의 명품을 만들기 위해 수백 개의 완성품들을 다시 불에 녹이기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런 이들이 동네 목수도 만들지 않을 건물들을 대량으로 짓고 있으니 절망할 만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들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바빠 죽겠는데 장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거 새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지으라고!"
...... 이곳은 장인의 무덤이었다.
사는 사람도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제집이 어디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동일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전각(이걸 전각이라 부를 수 있다면)이 평탄화된 대지를 차곡차곡 채워 나가고 있다.
당가 특유의 장인 정신도, 사천 특유의 건축 양식도 화음에 늘 은은하게 맴돌던 도가의 향도 없다. 그 어느 하나 담겨 있지 않다. 대신에 속도 하나만은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이 이런 데 살면 정신병이 오지 않을까요?"
“사람은 생각보다 강해.”
“자, 자기 집도 못 찾을 것 같은데.”
“문패는 엿 바꿔 먹나? 다 찾을 수 있어.”
살아 있는 철벽을 마주한 장인들은 그야말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입 놀릴 시간에 일하라고, 일! 오늘 내로 백 채는 더 올려야 해! 빨리 움직여!"
"크흑......"
절망에 빠진 장인들이 터덜터덜 끌려가듯 걷는 모습까지 지켜본 황종의는 새삼스럽게 새로운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산은 모든 것의 재료였다.
산을 까서 나오는 토사로는 웅덩이를 메우고, 거기에서 나온 나무로는 전각을 지을 목재를 만든다. 질 좋은 목재가 아니다 보니 내구성에는 한계가 있지만, 잘만 지으면 십년 정도는 버티는 데 문제가 없다.
바위? 돌? 산을 까며 나온 바위들은 화산 검수들의 손에 깔끔하게 절단되어 도로에 깔릴 석재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흙과 나무, 그리고 바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옮기라고! 빨리!"
“오늘 이 도로 다 못 깔면 밥 안 준다 그랬다고!”
“사람이 치사하게 먹을 걸로 협박하나."
돌덩이들을 지고 나르는 이들을 본 황종의의 입에서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인력”
한 사람당 적어도 장정 서른의 역할을 하는 인력들이 대규모로 혹사당하고 있다.
무인이란 만능일꾼.
부수고, 옮기고, 자르고, 치우고, 던지기까지. 못 하는 일이 없다. 그런 이들을 학대하듯 부린 끝에 수천 명의 인력이 한 달은 달라붙어서 처리해야 할 일을 하루 밤낮에 끝내 버리는 기경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걸 기적이 아니면 뭐라 하겠는가?
황종의는 깨달았다. 그가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저 인간에게 사람만 쥐여 주면 사막도 푸르른 숲으로 뒤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사람인가?'
사람의 머리로 이런 광경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저 사람은 신이 내린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 신이 내린 사람에게로 당군악이 다가갔다.
“절반 이상은 한 것 같군.”
“칠 할 이상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할 일이 예정보다 늘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뭐, 그래도 이제 한 사나흘만 빡세게 굴리면 대강은 끝날 것 같네요.”
“자잘한 일은 접어두고라도 말이지."
그것만으로도 경이적인 속도다. 당군악이 예상한 것보다 두 배…… 아니, 그 이상
빨랐다.
희생할 것은 과감하게 희생하고 효율을 중시한 결과다. 아마 이런 판단은 청명이 아니라면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네, 그렇죠. 예상보다는 확실히 빠르…… 아!"
그 순간 청명이 비명을 지르더니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씨! 실수다! 이쪽으로 수로를 냈어야 하는 건데!"
"음? 우물을 파기로 하지 않았는가?”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서 우물로는 안 될 거예요. 에이, 진짜.”
그 말에 당군악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장을 계산하지 않았군. 그럼 어쩔 셈인가? 우물을 좀 더 늘리겠는가?”
"응? 무슨 말씀이세요? 수로를 파야 한다니까요?”
“전각을 지어 버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허물면 되죠."
"......"
“사람 불러서 저기 지은 거 일렬로 다 철거하라고 하세요. 자재는 아까우니까 곱게 철거해서 옆에다 다시 짓죠, 뭐."
“그러지. 좋은 방법이로군."
둘의 대화를 들은 황종의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사람 새낀가……’
염왕도 돌아앉을 지옥도가 화음 땅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