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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67화 (1,468/1,567)

1467화 역사 한번 만들죠. (2)

사패련이 사천을 침공했다.

청성과 아미는 불길에 뒤덮여 멸문했고, 점창마저 무너졌다. 유일하게 그 마수를 피한 당가조차 사천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 믿기 어려운 소식은 순식간에 천하로 퍼져나갔다.

“사, 사천이?”

충격은 생각 이상이었다.

사패련이 처음 강남을 장악했을 때도 사람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때 세인들이 받은 충격은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무리 강남참변이라는 끔찍한 사태가 있었다고 해도, 강남에는 천하를 오시하는 유력한 문파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천은 다르다.

청성과 아미. 당가와 점창.

그 어느 하나 내세우기 부족한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은 강호의 유력 문파로 명성을 떨치지 않았던가?

그런 이들이 사파의 연합에 멸망했다는 건, 사패련의 힘이 세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심지어 뒤이어 들려온 소식은 그 충격을 공포감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사천을 짓밟은 사패련의 군세가 호북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언제 그들이 호북으로 밀려들지 모른다.

이전이었다면,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똑같은 소식을 들었다 해도 동요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천이 사패련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린 이상, 소식을 접하는 세인들의 심정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정파들은 뭘 하는 건가?"

"어떻게 사천이 사패련에게 짓밟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지? 우릴 지켜 준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나?"

“사패련 놈들이 호북으로 쳐들어오면? 우리도 사천처럼 되는 건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강자의 압제를 그저 감내해야 하는 평범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사패련의 북상은 삶 자체를 뒤흔드는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상황이 여기까지 와 버린 원인을 찾았고, 누군가는 사태가 이리될 때까지

방관한 이를 원망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소식이 세상을 휩쓸었다.

-사천이 사패련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은 모두 천우맹 때문이다. 구파일방은 이 상황을 막으려 애썼으나, 천우맹이 그들을 배반했다.

-구파일방은 천우맹에게 사천을 맡기고 북상하는 사패련의 본대를 막아 냈으나, 천우맹은 공격받는 점창을 무시한 채 천우맹에 속한 사천당가만을 탈출시켰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으며 사패련과의 전투를 회피했다.

-사패련의 마수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구파일방으로 집결해야 한다. 천우맹은 그 아래 속하지 않은 이들은 철저히 방관하며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숱한 소식들이 정신 차릴 틈조차 주지 않고 휘몰아쳤다.

이 모든 게 미리 준비라도 되어 있던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을 세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 내용에 충격받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천우맹. 강호를 아는 이들 사이에선 협의의 상징이자 정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던 곳이다.

그런 천우맹이 점창의 멸문을 좌시했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중원 전체에 광풍이 몰아닥쳤다.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광풍이 말이다.

호북성 양양.

세인들이 바삐 오가는 대로변에 웬 거지들이 나타났다.

"뭐, 뭐지?"

이만큼 큰 도시에 거지들이 오가는 게 뭐 그리 큰일이겠냐마는, 그럼에도 이들이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도무지 평범한 거지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붙여라.”

"예."

세인들의 시선 속에서, 거지들은 대로변의 담벼락에 커다란 종이를 모두가 볼 수 있게끔 쫙 펼쳐 붙였다.

"저게 뭐지?"

"글쎄? 개방 사람들 같은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러자 거지 중 하나가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소림 방장 법정 대사께서 전하는 말이니 모두 똑똑히 봐 두시오!"

말을 끝낸 거지가 다른 거지들에게 턱짓했다.

“가자.”

“예!”

용무를 마친 거지들은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고 멀어져 갔다. 힐끔대던 세인들이 우르르 담벼락에 붙은 방문(榜文) 주변으로 몰렸다. 순식간에 모인 사람들이 인파를 이루어 북적거리니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뒤에서 아무리 고개를 빼도 방문의 내용을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끄응. 거기 앞에! 무슨 내용인가? 말 좀 해주게!"

"호북에서 사패련과 싸울 이들은 무한(武汉)으로 모이라는군. 그리고 양민들은 굳이 피난 갈 것 없다고 하시네. 자기들이 사패련이 호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겠다는데?"

"말은 누가 못 해!"

방문의 내용을 전해 들은 이 하나가 콧방귀를 뀌었다.

"구파 놈들이 언제 우리를 지켜 주었다고! 애초에 그럴 놈들이었으면 사천이 저 꼴이 났겠는가?"

그 말에 동조하듯 여기저기서 분을 이기지 못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째 모두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도 없지 않은가? 저 천우맹도 발을 빼 버렸는데."

"망할!"

천우맹이라는 명칭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거칠게 쏟아졌다.

"그놈들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칼 든 놈들은 다 똑같다더니!"

“아, 아직 확실한 게 아니잖은가?"

"아니긴 뭘 아니야? 저기에 있는 말이 거짓이면 그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저 사패련 놈들이 이 호북을 노리고 있다는데 그 잘난 천우맹 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잖나!"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양민들이라 해서 죄 어리석은 건 아니다. 그들도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의도로 이런 결정을 내렸든 간에, 천우맹이 사천에서 당가만 빼내어 섬서로 달아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믿을 건 구파일방밖에 없어. 나는 애초에 천우맹 그놈들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네. 지들은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잖은가? 따지고 보면 구파가 뭐 대단하게 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둘이 별다를 게 없는 정돈데……”

“다를 게 없으니 문제지! 바로 그게 문제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우리가 지금껏 천우맹을 밀어준 이유가 무엇인가? 그놈들이 구파와는 다를 줄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결국 구파와 다를 게 없다면 우리가 왜 그놈들을 믿어야 하는가? 차라리 힘센 구파일방에 의탁하는 편이 낫지!"

은근하게 천우맹 편을 들던 이도 그 말에는 대꾸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구파일방은 이럴 때마다 사파 놈들과 싸워 이기지 않았는가? 목숨을 걸고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구파로 가야지!"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천우맹 편을 은근하게 들던 이의 목소리에서도 결국 힘이 빠졌다.

"그렇기는 한데…....”

"음? 이제 보니 자네, 복룡방 사람이 아닌가?"

“쯧쯧. 생각 잘하셔야지. 목숨은 두 개가 아닐세. 이럴 때일수록 힘센 쪽에 붙어야 목숨이라도 부지한다. 이 말이야! 그놈의 협의고 나발이고, 정파 놈들도 정작 급할 때는 헌신짝 취급을 하는데 자네들이라고 같은 취급을 안 당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건..….”

“우리 와호방은 무한으로 갈 걸세. 최소한 거기가 천우맹 놈들이 지키는 곳보다야 안전하겠지."

몰려든 이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더 세가 강한 쪽에 붙을 수밖에 없다. 천하 어디라도 이 방문을 본 이들이라면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럴까?"

“자네 방주께도 그리 말해 보게. 윗분들이야 입장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일단 사는 게 우선 아닌가?"

"...... 하긴 그 말도 맞지."

주눅이 든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이, 이보게! 이보게들!"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이며 다급하게 달려왔다.

"소식! 소식 들었는가? 다들 이번 소식 들었느냔 말일세!"

호들갑에 몇몇 이들이 성가시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소림 방장께서 전한 말이라면 다들 봤네. 여기 방문이 떡 붙어 있지 않은가?"

"그, 그것 말고!"

"음?"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뒤늦게 달려온 사내에게로 집중되었다.

반쯤은 호기심, 그리고 반쯤은 우려를 담은 시선이었다. 숨을 잠시 고른 사내가 토해 내듯 말했다.

“사, 사천! 천우맹이 사천 성도를 기습해서 거기에 있던 사패련 놈들을 박살을 내 버렸다는구만!"

"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웅성거리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물었다.

"천우맹은 당가만 구해 사천에서 내뺐다는데? 말이 안 맞지 않은가?"

“그다음! 그다음이라니까! 당가를 피신시키고 다시 돌아와서 성도를 공격했다지 않은가?"

“..….진짜인가?"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놀랍긴 하지만 선뜻 믿기는 어려웠다. 그 정도로 황당했다.

"어이, 당신. 그 말 어디서 들었는가? 뜬소문이 워낙 많아야지."

"거참!"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쳤다.

“여기에만 몰려 있지 말고 저기 풍림상단(風林賞單) 가서 물어보게! 지금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식이 파다하네!"

"허어?"

상인들의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잇속을 노리고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으므로. 하지만 상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소식은 대체로 빠르고 정확한 것도 사실.

"그럼 진짜 천우맹이 성도를 공격했다는 건가?"

"그렇다니까!"

“아니, 이미 달아나 놓고 그게 무슨 짓거린가?"

“사해상회를 구하려고 그랬다는군.”

“사해상회?”

“천우맹의 일을 보던 상단이라고 하네. 그들이 고립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사패련이 버글버글한 성도로 가서 그들을 구해 냈다지 않은가?”

“세상에…….”

물론 당시 성도는 사패련의 정예들이 거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세인들이 그만한 사정까지 알 도리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사천을 점령한 이들이 성도에 많은 병력을 남겼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니 상황을 모르는 세인들의 입장에선 천우맹이 당연히 사패련을 격파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냥 내뺀 게 아니었나?"

"이 멍청한! 천우맹이 어디 그럴 곳이던가? 당연히 싸웠겠지! 당연히!"

구파를 옹호하는 분위기에 눌려 침묵하던 몇몇이 그제야 당당히 입을 열었다.

“사패련을 공격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더 대단한 건 고작 상인 나부랭이를 구하자고 성도에 쳐들어갔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생각해 보게. 같은 일이 구파에서 있었으면 그 대단하신 분들이 상인들 좀 구하겠다고 성도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겠냐 이 말일세."

"그럴...... 리는 없겠지."

그 구파일방이 얼마나 자존심이 높은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이들이 한낱 상인들을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 일은 없을 것이다.

“천우맹답네. 참 천우맹다워."

몇몇 이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천우맹에 대한 적대감이 삽시간에 가라앉는 듯하자 얼굴을 붉힌 이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서? 성도를 탈환하기로 했다던가?"

"으응? 그런 건 아닌 모양이네. 싸우고 구출해서 빠져나온 모양이던데."

"그럼 뭐 대단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는 사천에서 도망친 건데?"

“그걸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쨌거나 사패련을 격파한 것 아닌가?"

“성도를 탈환한 게 아니면 똑같은 거지!"

사람들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 사람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는가?"

“방주께 가네."

복룡방의 방도라 불렸던 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구파로 가자고 마음을 굳힌 것인가?"

“아니, 천우맹으로 가자고 방주를 설득할 셈이네."

"뭐? 지금까지 한 말을 못 들었는가?"

“자알 들었지. 아주 잘 들었네. 그러니 천우맹으로 간다는 것 아닌가?"

“…… 어째서?”

사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살고 싶으니 그러네 살고 싶으니! 구파가 세가 더 세다고? 그래서 그 잘난 구파 놈들이 사패련과 싸워 이긴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한 번이라도 사패련 놈들 콧대를 꺾어 준 적이 있냐 이 말이네!"

"그건......"

"지금껏 사패련과 싸운 건 다 천우맹이었네. 게다가 우리 같은 중소 문파가 구파에 합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싸우다 위기에 처해도 그 양반들이 우릴 구하러 오겠는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천우맹은 상인들마저 구하겠다고 목숨을 거는 곳이니, 적어도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주 외면하지는 않겠지. 그러니 천우맹으로 갈 것이네. 뭐 결정이야 결국 방주께서 내리시겠지만."

말을 마친 사내가 획하니 가 버렸다.

남은 이들의 얼굴이 복잡미묘해졌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슬그머니 나왔다.

“끄응. 나도 가 봐야겠네.”

“우리 문주님도 결론을 잘 내리셔야 할 텐데."

“무사님들이야 어디로 갈 수라도 있지. 우리야......”

저마다의 고민이 다양하게 새어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한 가지만은 함께 직감했다.이제 더는 어정쩡한 위치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은 확연하게 세 가지의 색으로 나뉘어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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