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5화. 우리가 본대인데요? (5)
먼 남쪽을 응시하는 황종의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내려앉아 있었다.
‘괜찮으실는지.’
한동안 화산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너무도 답답하고 또 속이 쓰렸다.
개방의 화음 분타를 통해 화산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그들 역시 난색을 보일 뿐이었다. 개방 본단에서 오는 소식이 끊긴 지가 벌써 며칠 되었다고 했다.
“무도하기 짝이 없는 이들 같으니라고.”
황종의는 노기 서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개방이 그런 큰일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건 분명 개방이 대놓고 화음을 백안시하는 것이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황종의가 고개를 내저었다. 골이 지끈거렸다.
상념에 잠긴 그의 눈치를 살피던 상단원이 물어 왔다.
“상단주님.”
“음?”
“그⋯⋯ 추가로 보내려던 물자는 어찌합니까? 벌써 이틀이나 대기 중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게나.”
“계속 저리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황종의는 은하상단 화음 지부 앞에 놓인 수레들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 한숨처럼 말했다.
“하루만 더 기다려 보지. 그 뒤에는 다시 창고에 넣든지, 아니면 장강으로 보내든지 결단을 내리면 되지 않겠는가.”
“예.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화음에 영 활기가 돌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지 않은가.
화음은 분명 이전보다 큰 마을이 되었다. 사람이 늘어났고, 은하상단 지부가 설치되면서 오고 가는 상행도 늘었다.
말이 지부지, 실질적으로 은하상단이 다루는 물류의 팔 할이 이 화음 지부를 거치며 오가는 판이니 얼마나 많은 돈과 물자가 돌겠는가?
그럼에도 황종의의 눈에는 요즘의 화음이 영 삭막하게 느껴졌다.
화산 사람들. 수도 얼마 되지 않고, 화음에 얼굴을 들이미는 일은 드문 이들. 그런 이들이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화음이라는 마을 전체가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황종의는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세상일이라는 건 단순히 돈과 인력만으로 가늠할 수 없음을 말이다.
“저 혹시 말입니다, 상단주님.”
“음?”
“그⋯⋯ 천우맹 분들이 혹여 사천으로 가셔서 변을 당하신 건⋯⋯.”
순간 황종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디 방정맞은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가!”
격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사색이 된 상단원이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너무 걱정되어 그만⋯⋯.”
“아무리 걱정이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것이거늘!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입에 올린다면 가만두지 않겠네!”
“예! 예, 상단주님! 명심하겠습니다.”
황종의가 입술을 살짝 짓깨물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초조해서 말을 꺼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무사하겠지. 아니, 무사해야만 한다.’
그게⋯⋯.
“상단주니이이이이임!”
그때, 활짝 열린 상단 정문으로 누군가가 부리나케 뛰어 들어왔다. 실로 경망한 모습에 황종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항시 침착하라 하지 않았는가. 상인이란 본디⋯⋯.”
“화산 분들!”
“응?”
“마, 마을 어귀에 화산 분들이 오셨습니다! 지금! 지금이요!”
“저리 비켜!”
“어억!”
황종의가 앞에 선 상단원을 밀쳐 버리고 허둥지둥 상단 밖으로 뛰어나갔다. 바닥에 나뒹굴었던 이는 잠시 멍하게 그런 황종의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가, 같이 가시지요! 상단주님! 상단주님!”
그도 황종의의 뒤를 따라 달렸다. 주변의 다른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던 일을 일단 던져두고 마을 입구를 향해 달렸다.
“어디인가!”
“저기! 저기입니다! 저기 보이지 않으십니까?”
“아!”
황종의가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확실히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아직 생김새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 하지만 검은 무복과 허리에 찬 검만 보아도 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도, 돌아오셨구나!”
황종의의 눈가에 어룽어룽 물기가 번졌다.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걱정했던가? 아니, 저들이 떠난 이후로는 한시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이곳, 화음으로 저들이 돌아온 것이다.
“수, 수는? 다들 무사하신 게지?”
“그런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사람이 백은 되어⋯⋯. 아니, 이백은 되어⋯⋯. 사, 삼백? 어⋯⋯?”
“어?”
“⋯⋯어?”
떠났던 사람들에 비해 돌아오는 이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어어? 왜 더 오지? 왜 계속⋯⋯.”
“⋯⋯처, 천은 될 것 같은데요?”
“더 오는데?”
“저, 저게 다 누굽니까, 상단주님?”
감격도 일단 잠시 미뤄 둔 황종의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리고 이내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예?”
“일복이 터진 것 같지 않으냐?”
기쁨으로 가득 차 있던 은하상단 단원들의 얼굴에서 일제히 핏기가 가시는 순간이었다.
“상단주님! 숙소가 모자랍니다!”
“에잇! 모자랄 거라고 진즉에 말하지 않았느냐! 전에 준비해 둔 천막은 어쨌느냐?”
“그, 그게 아마 본단에 있을 텐데⋯⋯.”
“그럼 뭘 하고 있느냐! 당장 가서 가져오지 않고!”
“인력이 모자랍니다! 지금 저분들을 안내하고 당장 필요한 걸 구비하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가 없을 지경인데, 사람을 본단에 보낼 여력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상인이 할 말이더냐? 당장 움직이지 못해?”
“그, 그러지 마시고⋯⋯ 일단 남는 인원들은 화산파로 올려보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화산파에도 남는 전각이 많이 있는 걸로 아는데⋯⋯.”
황종의가 두 눈에서 불을 뿜었다.
“뭐?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나!”
“왜, 왜 그러십니까, 상단주님?”
“화산 꼭대기에 있는 화산파에 사람을 수용해 놓으면 매일 물자를 지고 화산에 올라야 할 텐데, 그걸 누가 하느냐? 네가 할 테냐?”
“⋯⋯대체 화산파 선조분들은 왜 저런 산 꼭대기에 건물을 올려 가지고⋯⋯.”
“그러니 잔말 말고 빨리 사람을 보내 천막을 가져오너라. 임시방편이라도 해야 한다! 어서!”
“⋯⋯예.”
그 순간 또 다른 상단원 하나가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왔다.
“상단주님! 크, 큰일 입니다! 미곡이 모자랍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곡식이 모자라다니! 그럴 리가 있나?”
“이, 일전에 수매한 것들은 모조리 장강으로 보내 두어서⋯⋯.”
“이런 멍청한!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구해야 할 거 아니냐? 서안으로 사람을 보내 각 상단이 보유하고 있는 미곡을 싹 끌어오거라! 당장!”
“아이고, 상단주님. 뻔히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우리가 급히 곡식을 구한다는 소문이 돌면 그놈들이 곡식 값을 배는 더 올릴 것입니다.”
“배가 아니라 열 배라도 필요한 건 구해야지!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끄으응. 알겠습니다.”
보고한 이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황종의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곡식이나 거처야 어찌어찌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들을 화음에 수용하는 순간부터, 필요한 물품이 끝도 없이 생겨날 것이다.
“저, 상단주님⋯⋯. 저분들이 여기에 계속 계시는 것입니까?”
총관의 물음에 황종의가 미간을 찌푸렸다.
“급한 불이야 끌 수 있다지만⋯⋯ 저분들이 여기에 자리를 잡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화음 사람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백 수준인데, 지금 이곳으로 오신 분들만 해도 이천은 넘어갑니다. 이건 숫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 아닙니까?”
“당가가 통째로 넘어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막말로 저분들 살 곳을 다 마련하고 나면 화음이 세 배는 더 커질 것입니다. 그 일을 다 누가 합니까?”
“⋯⋯우리가 하겠지?”
“일하기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아네.”
황종의가 머리를 긁적였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계산해 본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을 어귀에 서서 도착한 이들의 상황을 살뜰히 살피는 현종이 보였다.
“자, 장문인. 아니, 태상장문인!”
“아아, 상단주님.”
현종이 황종의의 손을 반갑게 꼭 잡았다. 그리고 근심과 미안함이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폐를 끼쳐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폐, 폐랄 게 있겠습니까?”
현종의 말에 황종의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저희가 고생하는 거야 그리 문제 될 게 없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만한 인원을 화음에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으음? 그렇소이까?”
“예, 태상장문인. 애초에 이곳은 작은 마을에 불과한 곳이 아닙니까. 저만한 인원이 자리하게 되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건 노력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현종이 고민에 잠긴 채 침음성을 흘렸다. 이런 일이야 그보다는 황종의가 잘 알지 않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한다고 보시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들을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이들을 서안에 수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서안?”
“예. 사실 서안은 지척이 아닙니까. 거리상으로는 큰 차이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서안에는 남는 전각도 많고, 화산에 우호적인 문파들도 많아 그들의 장원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안은 대도시니까 이 작은 곳에 비하면 물품이 넘쳐납니다. 물품을 구하기 위해 생고생할 필요가 없지요.”
현종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 사람들을 빼고 나면 인구가 천도 안 되는 화음에 이만한 이들을 들이는 것과, 인구가 십만은 되는 서안에 이만한 인원을 들이는 건 천양지차일 터.
“음, 확실히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현종의 말에, 황종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들이 서안으로만 자리를 옮겨 줘도 그들이 할 일이 반으로⋯⋯. 아니, 몇 배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현종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 살다 보니 그 합리라는 게 참 허망한 말이더군요.”
“⋯⋯예?”
“바른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들어먹어야 합리 아니겠습니까?”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 마침 오는군요.”
“⋯⋯예?”
“저기입니다.”
황종의는 현종이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전보다 미미하게 땅이 평평해진 듯한 마을 입구 쪽이었다.
‘응?’
잠시 보고 있자니 먼 곳에서부터 먼지구름을 폴폴 일으키는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저거?”
황종의를 비롯해 그쪽을 본 이들은 하나둘 제 감상을 늘어놓았다.
“많이 보던 광경 같은데⋯⋯.”
“에이, 조금 다르지. 원래 먼지구름이 저리 작지 않지.”
“그리고 이번에는 여러 대 같은데?”
황종의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이윽고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화음을 향해 질주하는 여러 대의 수레와, 높이 쌓인 재물 위로 올라탄 한 남자의 모습이.
“아니이이이이이!”
그 사내가 질러 대는 악에 받친 목소리가 귀를 마구잡이로 찔러 왔다.
“뭐 하느라 아직 이것밖에 못 했어!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턱.
현종이 침묵하는 황종의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두드렸다.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상단주님. 그럼⋯⋯.”
황종의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선친이 사무치게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