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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64화 (1,465/1,567)

1464화. 우리가 본대인데요? (4)

“냉정하게 본다면 크게 이득을 봤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 합니다.”

“흐흐흐흐.”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저들의 전력에 제대로 피해를 입힌 건 아니잖습니까?”

“으히히힛!”

“그러니 지금부터 중요한 건, 한시라도 빠르게⋯⋯.”

“으헤헤헤헤헤헤!”

“아, 좀!”

임소병이 드물게 진심으로 역정을 냈다.

“지금 재물 따위가 중요합니까?”

“뭐?”

“뭐라고?”

갑작스레 날아든 반발에 임소병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를 정말로 크게 움찔하게 한 것은 재물 더미 위에서 눈을 희번덕대고 있는 청명이 아니었다. 그 재물이 쌓인 수레를 열심히 끌고 있던 당군악이 핏발 선 눈으로 노려봐서였다.

“아니, 댁은 또 왜⋯⋯.”

“그깟 재물?”

“그깟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당군악의 손이 움찔움찔했다. 청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냅두세요. 사파 놈이 뭘 알겠어요.”

“하긴 그렇지. 이해하겠네.”

“⋯⋯더러운 정파 놈들.”

낙인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그리고 재물 따위는 아니지. 사실 우리가 군자금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

“아니, 이 수레 몇 개로 그게 해결이 됩니까?”

“저, 저⋯⋯. 저렇게 한탕만 노리니 평생을 산적 새끼로 사는 거지. 하여튼 사파 놈들은⋯⋯.”

“끄으⋯⋯.”

임소병이 악에 받친 얼굴로 제 목덜미를 쥐어뜯었다. 그러자 맹소가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구, 궁주님.”

임소병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힘내시게.”

“역시⋯⋯ 궁주님도 변방 출신이시라 박대받는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군요.”

“음? 나는 변방 사람이지만 사파는 아닌데? 사파 놈들과는 원래 상종 안 하는 게 맞지.”

“⋯⋯.”

“그냥 비리비리한 게 영 안됐구나 싶어서 말일세.”

⋯⋯썩을 야만인 놈들. 헛기침하며 애써 진정한 임소병이 고개를 돌려 청명에게 외쳤다.

“알았으니 일단 내려오십시오!”

“에이, 진짜.”

청명이 구시렁거리며 수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도 아쉽다는 듯 수레에 실린 재물을 곁눈질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니, 돈도 많으신 분이 뭐 그거 가지고.”

“돈이 많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화산이 돈이 많지, 내가 돈이 많아?”

“음? 아니, 매화도 거래에서 댁이 뒤로 챙긴⋯⋯.”

그 순간 무시무시한 살기가 임소병을 향해 쏟아졌다. 청명이 방긋방긋 웃으며 물었다.

“응? 돈?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임소병의 얼굴을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아닙니다. 제, 제가 뭔가를 착각한 모양입니다.”

“하하핫. 그렇지? 내가 이래 봬도 사실 청빈한 도사거든. 재물 같은 걸 숨겨 놓을 리가 있어? 하하하핫!”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이 더없이 흐뭇하게 웃었다.

‘챙겼네.’

‘엄청 챙겼구만.’

‘도대체 얼마나 빼먹은 거야, 저 미친놈이.’

‘장문인한테 일러야지.’

임소병의 어깨를 팡팡 두드린 청명이 어색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뭘 하려고?”

“거꾸로지요. 이제 뭘 하실 겁니까?”

“응?”

“댁이 총사 아닙니까. 지시를 내려 주셔야죠. 옛날처럼 거기서 손놓고 낄낄댈 입장이 아니란 말입니다.”

“쯧, 귀찮게⋯⋯.”

청명이 모두를 훑어보고 입을 뗐다.

“일단은⋯⋯.”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그만 바라보았다.

“섬서로 가야지.”

“후우.”

“하아⋯⋯.”

그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지시를 내리는 놈이 당연하지 않은 인간이다 보니, 또 다른 엉뚱한 말을 할까 내심 걱정했던 것이다.

“왜요? 내가 당장 장일소 목이라도 따러 가자고 할까 봐?”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아니, 내가 그렇게 정신 나간 놈으로 보여요?”

“예.”

“그렇네.”

“응.”

“거, 씨⋯⋯.”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은 태연했다.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

“확 진짜 해 버릴까 보다.”

청명이 중얼거리자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괜한 말을 덧붙였다가 화를 돋우면 안 된다. 청명이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장일소 모가지를 따고 싶은 마음이야 한가득이지만, 아직은 그럴 상황이 아니죠.”

“좋은 판단이네.”

당군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필요한 건 이득이 아니라 안정이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그냥 갈 건 아니고.”

“또, 또 뭘 하려고⋯⋯.”

“아뇨. 뭐 도착해서 할 일을 미리미리 좀 하자는 거죠.”

청명이 씨익 웃었다.

“우선은 그⋯⋯. 흐음, 가주님.”

“말하게나.”

“개방 놈들을 좀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개방은 이미 상황을 볼 만큼 보고 가지 않았는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개방의 거지들을 몇 번이고 마주쳤다. 사패련이 사천을 점령했다고 해도 당장 거지들을 모두 몰아낼 수는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

“자네가 괜히 그 딱딱한 재물 위에 올라앉아 과장되게 경박한 모습을 보인 것도 그래서이지 않았나? 개방에 보여 주고 과시하려고?”

“그⋯⋯렇죠. 아, 암요. 그런 거죠! 하하. 잘 아시네요.”

어색한 정적이 짧게 내려앉았다. 당군악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하자 청명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 아무튼 각설하고! 그걸로는 부족해요. 이번만은 저놈들이 절대 우리 업적을 떠벌리지 않을 거거든요.”

“어째서인가?”

“방장이 악을 쓰며 막을 테니까요.”

“으음⋯⋯.”

불과 열흘만 전이었어도, 당군악은 ‘그래도 방장이 그렇게까지 하겠는가?’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군악은 그 말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젠 천우맹과 구파일방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방장이 막아도 입을 열어 줄 사람이 필요하죠. 그 장로 거지님과 연락이 되면 좋은데 그건 쉽지 않을 테니, 일단 만만한 인간에게 전달해야죠. 그럼 알아서 할 거예요.”

“홍 분타주 말인가?”

“능력은 없는데 능력이 있는 이상한 양반이잖아요. 이럴 때 신나서 날뛰어 줄, 딱 걸맞은 사람이죠.”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확실히 지금 개방에서 천우맹의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홍대광뿐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는가? 자네의 말대로라면 개방은 우리가 한 일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할 것 같은데, 홍 분타주 역시 결국엔 개방 소속 아닌가. 그가 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 명령을 누가 내리는데요?”

“그야 당연⋯⋯.”

당군악이 입을 닫았다. 개방의 명은 당연히 개방주가 내린다. 그런데⋯⋯.

‘내가 개방 방주의 소식을 들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지금 개방주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따지고 보면 매화도 사태 때 개방의 장로가 개방의 방식에 반기를 들었던 것 역시 이런 상황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아저씨가 영 그렇게 생기진 않았지만, 어쨌건 방주 후보거든요. 그런 양반을 권위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은 개방주밖에 없는데, 지금 개방주가 골골대잖아요.”

“그렇군. 그러니 개방주의 공백을 틈타 개방의 일부를 움직이겠다는 거로군.”

“아닌데요?”

“⋯⋯엥? 아니라고?”

당군악이 당황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청명이 씨익 웃었다.

“에이. 겨우 그 정도로 끝낼 거면 시작도 안 했죠.”

웃음 속에 감춰진 눈빛이 더없이 냉정했다.

“이런 시대면 그쪽도 줄 잘 서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슬슬 결정하게 할 거예요.”

당군악의 머릿속에 순간 수많은 생각이 왁자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모든 걸 흐트러뜨렸다. 이제 결정은 청명이 하는 것. 그는 그저 따르면 된다.

“알겠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면 되겠지.”

“네. 그리고⋯⋯.”

청명이 이번엔 조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해상회도 밥값을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말입니까?”

“뭐, 사실 따지고 보면 상인이나 거지나 비슷하잖아요.”

“네? 사, 상인과 거지가 비, 비슷이요?”

조웅이 ‘아니, 뭐 이런 미친 인간이 다 있지?’라는 눈으로 청명을 보았다.

“야, 청명아. 그건 좀 선 넘었지. 상인이랑 거지가 제일 다른 양반들 아니냐.”

“다르긴 뭘 달라. 비슷하지. 돈 많이 도는 도시에 제일 많고, 사람 많은 데면 어디든 나타나고, 잘나가는 것들은 각 도시마다 분점 내고, 사람한테 입 털어서 벌어먹잖아. 똑같지.”

“⋯⋯어? 듣고 보니?”

“뭐가 듣고 보니입니까! 숫제 개소리지! 가진 돈이 다르잖습니까! 가진 돈이!”

조걸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악을 썼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쯧쯧. 사람을 돈으로 구분하려 하다니, 저런 게 도인이라고. 말세로다.”

“끄, 끄으⋯⋯.”

조걸이 거의 거품 물고 넘어갈 지경이 되자 윤종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진정해라. 틀린 말은 아닌 듯하구나.”

⋯⋯어쩌면 이 인간이 제일 나쁜 인간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상계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잖아요. 사해상회는 차 무역을 하며 판로를 중원 유력 상단에 다 대 놓았을 거고.”

“그렇긴 합니다만⋯⋯.”

“거기에 모조리 전달하시면 됩니다. 사해상회가 천우맹의 도움으로 사천에서 빠져나왔다고요. 거기에 더해서 제가 하는 말을 몇 개 전달하시면 돼요.”

청명이 씨익 웃었다.

“방장이 거지들 입은 다물게 할 수 있겠지만, 상인들더러 입 다물라는 말은 못 하거든요. 그래도 중인데, 체면이 있지.”

“아⋯⋯.”

문주들이 놀란 눈으로 청명을 보았다.

확실히 구파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상계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 통제한다고 해도 돈의 흐름 정도가 고작이고, 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은하상단도 말을 전할 수 있겠지만, 파급력의 수준이 다를 게 분명하다. 천하의 모든 상인이 사천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텐데, 그중 유일하게 성도에서 탈출한 사해상회가 서찰을 보낸다?

‘이건 굳이 퍼뜨려 달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서찰이 도착하면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성도의 상황을 천하가 알게 될 것이다.

“자네, 설마 일부러⋯⋯?”

“에헤이! 겸사겸사죠! 겸사겸사! 그래도 제가 도산데!”

“⋯⋯그렇⋯⋯지.”

아니. 그래야지.

“그런데⋯⋯ 이걸 다 전해서 뭘 하려는 것인가?”

“갈라야죠.”

청명이 씨익 웃었다.

“쟤들은 지금 가르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우린 그걸 막아야 하는 입장이고.”

“왜요?”

“응?”

“그걸 왜 막아요?”

“아, 아니⋯⋯.”

“쯧쯧. 이러니 돈을 못 버는 거지. 원래 뭔가 갈라질 때는 굳이 막으려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더 크게 먹는 게 중요한 거지.”

“으응?”

“안 그래도 연합이니 뭐니, 속이 터졌는데 이 기회에 싹 정리해 버리면 되죠.”

청명이 서쪽을 보며 히죽 웃었다.

“원래 제가 판 까는 건 잘 못 하는데, 깔린 판에서 날뛰는 건 전문이거든요.”

예전에 청명이 날뛸 판은 청문이 깔아 주었다. 이번에 그 판을 깐 이가 청문이 아니라 장일소라 해도 다를 건 딱히 없다.

“야! 산적!”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소병이 어느새 수레에 올라타 지필묵을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대체 저 인간은 어찌 알고 미리 지필묵을 준비한 것일까? 이래서 책사라는 것들은 상종하기 무섭다.

“자, 그럼 대충 정리됐고.”

청명의 눈이 반짝였다.

“일단 섬서까지 전력으로 간다! 천우맹의 운명이 달린 일이야! 오늘 밤에는 도착해야 해!”

“어⋯⋯. 그럼 재물들이 조금 깨질 것 같은데. 상관없겠지?”

“내일 아침까지 도착 못 하면 다 뒈질 줄 알아!”

천우맹의 운명과 몇 수레의 재물. 그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모두가 확실히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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