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459화 (1,460/1,567)

1459화. 고작은 아닐 거예요. (4)

“오, 온다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앙!

고풍스러운 전각 지붕이 하늘로 솟구쳤다. 믿고 싶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꿈이나 환상이 아닌 분명한 현실이었다.

“하아아아압!”

터져 나온 기합과 함께, 전각 지붕을 채우고 있던 기와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흡사 하늘 높은 곳에서 터진 폭죽 같았다.

쇄애애애액!

불똥처럼 사방에 퍼진 기와들은 맹렬한 속도로 날아 넋 잃은 이들을 덮쳤다.

“크아아아아악!”

“아악! 내 팔! 아아악!”

이 난리도 아닌 광경에 몰려든 사파인들은 금세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마,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무의미한 외침이다. 그걸 모를 사람이 여기 어디 있겠는가?

원래 그들이 맡은 임무는 사패련이 자릴 비운 사이 성도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에 사는 이들이 감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 그리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는 임무다.

그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저 이리 같은 사패련 마두들이 그들을 어찌할지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하지만⋯⋯.

“마, 말 같지도 않은!”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전혀 다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 차이를 뼈에 사무치게 실감했다.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사파인들의 바로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쿠웅!

“⋯⋯어⋯⋯.”

평범한 이의 두 배⋯⋯. 아니, 족히 세 배는 될 법한 덩치다. ‘거인’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을 이가 눈가를 실룩이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의 인간을 바로 앞에서 조우한 이들은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이 사파의 잡졸 놈들이.”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말이 우렁우렁 퍼져 나갔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두고 어찌 중얼거린단 표현을 쓸 수 있냐고? 그 이유야 간단하다.

“모조리 박살을 내 주겠다!”

그 뒤에 터져 나온 진짜 ‘외침’은 우렁우렁하다는 말로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야수궁주 맹소의 팔이 전방의 사파인들을 후려치며 휩쓸었다. 흡사 전각 기둥 같은 팔이 움직이니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앙!

건장한 성인 남성이자 수십 년간 무학을 익혀 온 무인들이 마치 폭주하는 마차에 부딪힌 나무토막처럼 맥없이 튕겨 나갔다.

“히, 히이이이이익!”

동료들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는 광경에, 사파인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맹수처럼 달려드는 맹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콰앙! 콰아앙!

화약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연이어 터졌다. 동시에 곤죽이 된 사파인들이 성도의 하늘로 솟았다.

“이, 이 괴물! 죽어라아아아아!”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짐승처럼 앞으로 돌격하는 맹소의 등을 노리고 한 검수가 달려들었다. 쾌속한 검격이 너른 등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검수는 한 가지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덩치는 태산처럼 거대할지언정 맹소는 결코 느리고 우둔하지 않다는 것을.

휘이이익!

맹소의 몸이 그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연하게 회전했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크기의 발이 기가 막힌 선을 허공에 긋고 달려들던 이의 턱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절정의 퇴법(腿法)이었다. 얻어맞은 이의 몸이 검은 선을 그리며 드높은 담장을 뚫고 사라졌다.

“미, 미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잠깐 얼어 버린 이들의 눈앞으로 더 무서운 광경이 펼쳐졌다. 맹소의 머리 위로 한 사내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다, 당⋯⋯!”

“독왕이다! 엎드려어어어어어!”

쇄애애애애애액!

당군악의 양손에서 발출된 비도가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그의 비도는 더없이 잔혹했지만, 반면 더없이 자비롭기도 했다. 숨이 끊긴 이가 본 것이라고는 그저 번쩍이는 섬광뿐이었을 테니까.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죽음인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깔끔한 죽음을 적에게 선사한 당군악이 굳은 얼굴로 땅을 박찼다.

이들은 아니다. 이들은 사천당가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죽인 흉수가 아니고, 잘 쳐줘도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천당가의 땅인 성도를 흙발로 침입하여 짓이기는 무뢰한인 건 마찬가지.

치솟는 노기를 꾹 내리누른 당군악은 그 분노를 온전히 비도에 실었다.

파아아아앗!

다시 한번 쏘아진 비도가 또 한 사람의 정수리에 박혔다.

“히, 히이이익!”

“마, 막으란 말이다! 뒤에 물러날 곳이 없다고!”

막으라고? 누구를? 대체 누구를 막으란 말인가?

저 괴물 같은 야수궁주를? 아니면 분노에 차 비도를 날리는 당군악을? 그게 아니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어디선가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백색 광휘가 터져 나왔다.

“나, 남궁! 남궁세가다!”

“뭐, 뭐야? 남궁황인가?”

“남궁황은 죽었잖아,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럼 저건 뭔데? 남궁황의 검이잖아!”

“그⋯⋯.”

언제고 어디고 상관없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남궁황의 검기를 눈으로 본 자는 결코 그 광경을 잊을 수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성도 한중간에 피어난 백색 검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바, 반대쪽!”

“뭐?”

“저기, 빌어먹을! 저기!”

“매, 매화다! 화산 놈들이 왔다아아아아아!”

호응이라도 하듯, 백색 검기가 쏟아지는 곳 측면에서 이젠 천하에서 가장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검기가 휘날렸다.

붉디붉은 매화 꽃잎을 닮은 검기.

화산의 매화검기였다.

“대, 대체 왜⋯⋯? 대체⋯⋯.”

소수? 고작 십여 명? 인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곳에 천 명이 있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만 명이라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천하를 오시하는 문파들의 수장이 직접 와 몰아붙이고 있는데, 제대로 된 별호조차 가지지 못한 그들이 대체 무슨 수로 막아 낸단 말인가?

“사, 사패련은! 만인방은 어디 있냐? 왜 우리가 저놈들을 상대해야 하는 거냐고!”

“으아아! 피해!”

악을 쓰며 몸을 빼기 바쁜 그들의 머리 위로, 백색 검기가 운석처럼 내리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충격이 일으킨 풍압에 옷자락이 미친 듯 펄럭였다. 실로 압도적인 전과(戰果)다. 하지만 처마 위에서 태평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의 얼굴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 몰아붙이라고, 더! 이 새끼야, 밥도 안 먹었어? 검기 고작 그거밖에 안 나와?”

“최, 최선을 다하고 있⋯⋯.”

“최선? 최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느이 아부지 검기는 그거보다 두 배는 컸어!”

“아니, 그건 당연한 거잖습니까!”

“당연해? 뭐가 당연해? 그 양반도 가주였고, 이제 너도 가주인데 넌 왜 그것밖에 못해? 같은 가주면 검기도 같아야지!”

남궁도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대충 논리 같은 지점이라도 있어야 반박이라도 해 볼 것 아닌가?

“너는 오늘 걸어서 성도 못 빠져나간다. 상황 끝나고 힘 남아 있으면 남궁 새끼들 전부 사천 경계에다 처박아 버릴 거야! 남궁 새끼들 전부 화살받이 되는 꼴 보기 싫으면 처신 똑바로 하라고!”

“으아아아아아아!”

남궁도위가 젖 먹던 힘을 다해 검기를 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렇지!”

청명이 이제야 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눈이 다시 희번덕대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하란 말이야, 화려하게! 여기뿐만 아니라, 온 천하가 알아야 해! 성도를 우리가 박살 내 버렸다는 걸!”

“처, 청명아. 우리가 성도를 박살 냈다고 소문이 나면 안 된다. 우린 성도를 구하는 거야!”

“어? 그렇네?”

청명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산적 새끼는 또 어디 갔어? 이 새끼가 놀아?”

“가, 갑니다! 가고 있다니까요, 제기랄!”

임소병이 욕지거리를 하며 필사적으로 부채를 휘둘렀다.

“이 새끼가, 너 그거밖에 안 돼?”

“아니! 익힌 무공이 다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이건 너무 가혹했다. 맹소야 그 몸만으로도 강렬한 위협이 되고, 당군악이야 독왕이니 당연히 존재감이 남다르다. 그리고 남궁세가와 화산은 본디 그 무학의 형태가 화려하지 않은가?

하지만 임소병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저들만큼 강렬함을 연출할 수가 없었다. 거북이가 아무리 몸을 뒤틀어 봐야 공작새의 화려함을 흉내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 저 쓸모없는 새끼! 진짜 도움이 안 되네!”

“왜 저보고만 그럽니까!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건 설 궁주도 마찬가진데!”

“와⋯⋯.”

“이야⋯⋯. 이젠 애까지 끌고 오네.”

“추합니다, 녹림왕.”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임소병이 입술을 으득으득 깨물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이내 청명이 아닌 다른 곳으로 쏘아졌다.

“어떤 새끼가 저 인간 총사 만들자고 했습니까? 대체 어떤 새끼가!”

“⋯⋯당 가주님이 시작하긴 했는데.”

“어떤 새끼냐고?”

“당 가주님이라니까요?”

“어떤 새낀지 알면 내가 가만 안 둔다!”

⋯⋯필사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임소병을 보며 조걸이 눈가에 찬 물기를 소매로 훔쳤다. 그래,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너는 뭐 해, 이 새끼야!”

“⋯⋯나 네 사형이다, 청명아.”

“그래서?”

“예, 예! 갑니다. 망할 총사 새끼야!”

조걸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은 사파인들의 코앞까지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검이 수십 줄기의 빛살로 화해 쏘아진다.

“아, 아아아아악!”

“쾌, 쾌검! 일검분광(一劍分光)이다!”

“일검분광 조걸이다! 다, 달아나라아아아!”

“⋯⋯어?”

앞에 선 이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기세를 이어 가려던 조걸이 흠칫하며 멈췄다.

“뭐라는 거야? 일검분광?”

“⋯⋯네 별호인 모양인데?”

“예? 별호요? 제가요?”

조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달아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언제 그런 게 생겼지?”

사람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할 때, 정작 본인은 바빠서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남에서부터 이곳까지 끊임없이 싸워 온 이들의 명성은 정파보다 오히려 사파 내에서 더 커져 있었다.

“뭐 하냐! 가자!”

“어⋯⋯. 사형!”

“왜?”

“사형은 별호 있습니까?”

“⋯⋯.”

윤종의 검이 신경질적으로 휘둘러졌다.

콰아아아앙!

성도 곳곳에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불과 열이 조금 넘을 뿐인데, 그 십여 명이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 광경을 펼치고 있어서다.

“다, 달아나라아아아!”

“야, 이 미친놈들아! 달아나면 안 된다! 사패련이 우릴 죽일 거야!”

“빌어먹을, 지금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아, 안 된다니⋯⋯. 아아아아아악!”

천우맹이 날린 은밀한 비수⋯⋯. 아니, 거대하고 화려한 금검(金劍)이 끝을 모르고 치솟던 사패련의 기세에 얼음물을 끼얹고 있다.

“낄낄낄.”

난장판이 된 성도를 보며 청명은 두 눈을 의기양양하게 빛냈다.

“지금까지 당해 주기만 하니까 이 새끼가 사람 만만하게 보는 모양인데.”

애초에 누굴 탈출시키니, 어딜 지키니⋯⋯. 청명은 평생 그딴 걸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잘난 대가리 어디 필사적으로 굴려 봐라. 이제부터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으하하하하핫!”

두 눈을 희번덕댄 청명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다 때려 부숴라! 싹 불 질러 버려!”

“아, 아니, 청명아! 여기 성도라고, 이 미친놈아!”

“가자아아아아아아!”

“누가 저 새끼 좀 말려라, 제발!”

허공을 힘차게 박찬 청명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성도 한중간에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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