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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46화 (1,447/1,567)

1446화.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1)

“⋯⋯난리 났네, 저거.”

당소소는 난장판이 된 당가를 암담한 얼굴로 보았다.

“대체 왜 저러는 거냐, 소소야?”

“그⋯⋯ 끙.”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뗐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가는 겉으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복잡한 곳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 사는 가솔들은 굉장히 엄격한 법도와 제약에 억눌려 살거든요.”

“그거야 다른 문파도⋯⋯.”

“당가는 정도가 달라요. 화산에 오기 전 제 꿈이 당가에서 탈출해 자유롭게 사는 거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그렇네.”

“그래. 청명이한테 시집가려고 했잖아, 너?”

“뒈지고 싶어요? 그 이야기는 지금 왜 꺼내요?”

“⋯⋯죄송합니다.”

그 말만으로도 대충 납득이 갔다. 애초에 당소소는 불합리한 것이 있다면 싸워서라도 바꾸려 드는 이다. 그런 사람이 얌전히 눌려 살아야 했을 만큼 당가의 가법이 엄격했던 것이다.

“그렇게 억눌러 왔던 게, 수백 년을 눌러 놨던 게 터졌으니⋯⋯.”

당군악을 보는 당소소의 눈에 걱정이 스쳤다. 아무리 당군악이라 해도 이 상황을 원만히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아버지⋯⋯.’

한편 당군악은 질린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애초에 그게 왜 우리 잘못입니까?”

지금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악을 쓰는 이는 당연홍이란 사람으로, 공방의 업무를 맡은 장인 중에서도 진중하기로 정평이 난 이였다.

그러다 보니 말수가 많지 않은 당군악도 매우 신뢰하던 이였는데⋯⋯.

“만들어 달라는 대로 다 만들어 줘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돌아와서 불평이나 늘어놓는 당신들 때문 아닙니까?”

당연홍의 질책을 들은 당자호가 눈을 새파랗게 치떴다.

“지금 우리 실력이 부족하여 공방에서 만들어 준 암기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는 말씀이오?”

“그리 말씀하시면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허?”

당자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당연홍을 노려보았다.

“이제 보니 공방 분들이 아주 대단하신 분들이었구려. 당가의 영화는 공방에서 다 만들어 주었는데, 멍청한 우리가 실력이 부족하여 차려 준 밥상도 제대로 퍼먹지 못하고 있었군 그래?”

“형님, 조금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게 생겼느냐? 지금 저 말이 우릴 무시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

그러자 가만 듣던 한 사람이 코웃음을 터뜨렸다.

“공방의 말이 조금 과하긴 하나, 만들어 준 걸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는 게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요. 매번 더 독성이 강한 것을 준비해 달라고 해 놓고는, 기껏 만들어 준 독을 대충 던져 대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독이 얼마나 섬세한 물건인데!”

“뭐요?”

“족히 한 달은 쓸 수 있을 독을 내어 주어도, 전투 한 번에 모조리 탕진하고 돌아와서는 다급할 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 댈 수밖에 없다는 말이나 늘어놓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좌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말 다 하셨소?”

당자호의 눈이 분노로 벌겋게 충혈되었다.

“우린 뭐 할 말이 없는 줄 아시오? 우리는 그 조악한 것들을 가지고 나가 목숨 걸고 돈이라도 벌어 왔지, 댁들은 대체 뭘 하셨소? 그 금보다 비싼 독물과 희귀한 광물들을 가져가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다 날려 먹지 않았소! 그 돈만 지켰어도 당가가 두 배는 더 융성했을 거요!”

“입조심하시오! 날려 먹다니! 연구가 뭔지는 알고 하시는 소립니까!”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 아니오! 이번 일만 해도 마찬가지요! 우리가 없었으면 당신들이 그 잘난 독이며 암기들을 만들 수나 있었을 것 같소?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작자들이!”

“형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잠깐 소강된 듯했던 싸움에 다시 불이 붙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서로 이를 드러내는 이들을 보며 당군악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 눌렀다.

‘이 정도였나?’

불화가 있을 줄이야 알았다. 각자 맡은 역할이 극히 다른 만큼, 서로에게 악감정이 쌓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설마 이리도 격렬할 줄은 당군악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리던 이들이다. 하지만 하나둘 입을 열며 물꼬가 터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가주의 존재를 아예 잊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에게 격렬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간 무인의 위세에 눌려 있던 장인들이 노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당가의 사내들이 서로 옳다고 악다구니를 써 대는 광경을, 당가의 여인들이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 한껏 곪아 있었구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당군악은 그가 장악한 당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원로원이라는, 썩어들어 가는 늪에서 벗어나 사천만이 아닌 전 중원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당가에 대한 확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던 당가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어쩌면 당가의 가주인 그조차 당가의 껍데기만을 보고 있었음을 말이다.

‘이 꼴로 잘도 버텨 왔구나.’

당가는 이미 수백 년 동안 같은 체계를 지켜 왔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당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겉으로 드러나는 대신 속으로 곪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당씨 성을 쓰는 이들이 속으로는 서로를 저리 경원하도록 말이다.

만일 만인방이 당가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당군악은 어쩌면 평생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흔들리는 토대 위에 더 높이 쌓아 올린 당가라는 성(城)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생을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주춧돌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그 성곽이 언제고 비참하게 무너지리라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당군악은 문득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묘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청명을 말이다.

잃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있다더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당군악이었다.

“잔말할 것 없소이다! 섬서에 가는 대로 남은 돈을 끌어모아 독물부터 다시 채워야 합니다. 독이 없는 당가가 무슨 당가란 말입니까?”

“그 독은 만들어만 놓으면 알아서 날아가 사람을 쓰러뜨린답니까? 암기는 독이 없어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독만으로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공방부터 세워야 합니다!”

“독이고 공방이고,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모른단 말입니까?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뭐요? 다시 말해 보시오!”

다시 한번 고성이 오가려는 찰나, 힘이 실린 당군악의 목소리가 강하게 그들의 귀로 파고들었다.

“그만!”

노성을 들은 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런 상황이고, 아무리 흥분했다고 해도, 사천당가 가주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대화를 하자고 모인 자리다. 서로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예, 가주님.”

“죄송합니다. 흥분하여 그만⋯⋯.”

치미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물러서는 이들을 보며, 당군악은 나직이 탄식했다.

“모두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 많을 것으로 안다.”

“가주님⋯⋯.”

총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런 때에⋯⋯. 다들 자중해야 할 때인 것을.”

“아니.”

당군악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때이기에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

물론 시기에 걸맞지 않은 자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군악은 이 자리가 더없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다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겨 서로의 감정을 가리고 숨길 수 있게 되면, 이런 진솔한 대화를 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테니까.

“그러니 숨기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다오. 무엇이 문제인지를. 그리고⋯⋯.”

당군악이 모두를 고루 응시했다.

“당가가 앞으로도 사천당가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꿔 나가야 하는지도.”

당가 가솔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당군악이 딱히 저자세를 보인 것도 아니고,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호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가주인 당군악이 지금 온 진심을 담아 말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때 당군악의 시선이 한쪽에 자리한 당가의 여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너희도 마찬가지다.”

당가의 여인들은 입을 여는 대신 서로를 돌아보았다.

“쉽지 않을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일 뿐, 그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너희의 몫이다.”

당가 여인들의 눈에 불안이 스쳤다.

수없이 목소리를 내어 왔다. 때로는 작은 불만으로, 또 때로는 격렬한 항거로.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결국 언제 어느 때고 묵살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반복해야 할까? 수백 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을 바꾸겠다고?

아니, 그럴 이유가 없다. 지금이야 잠시 말을 듣는 시늉을 할지 모르지만, 당가는 결국 다시 당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다시 그 운명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당가 여인들의 시선이 묘하게 서늘하다는 것을 발견한 당군악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뗐다.

“솔직하게 말해, 당가의 영화를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실로 맥 빠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가솔들은 실망한 기색 없이 당군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 내 삶을 희생하고, 너희의 삶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우리의 다음 대쯤에는 다시금 당가의 이름이 천하에 울릴지도 모른다.”

당군악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는 그를 내려다보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 밝은 하늘을.

“하지만⋯⋯ 그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

“당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당가의 가솔들을, 그리고 그 후인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삶을 희생하여 지켜 낸 명성과 부강함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가주님.”

“내가 지금 논하고자 하는 건, 어찌해야 당가가 다시 당가로서 일어설 수 있을지가 아니다.”

당군악이 단호한 눈으로 모두를 응시했다.

“어찌해야 당가가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는가다. 어찌해야 선인들이 처음 원했던 당가가 되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지다.”

조금 느리게 힘주어 말한 당군악이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누구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평소의 당군악답지 않게 조금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엔 확연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말을 해다오. 부탁한다.”

당군악의 진심 어린 눈빛이 다시 한번 여인들에게로 향했다.

짧은 정적 후, 당소보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당혹 섞인 시선들이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소보야?”

당소보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고작 두어 걸음이었다. 기껏해야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가 다시 앉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걸음의 의미하는 바는 절대 작지 않다. 당가의 여인들이 당소보를 한번 바라보고 이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다가왔다.

당소보가 머뭇대며 입을 뗐다.

“그럼⋯⋯.”

“말해 보거라.”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희도 혹시 무학을 배울 수 있나요? 유력가에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화산으로 가 화산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젊은 당가의 여식들이 눈을 크게 치떴다. 특히 이들은 반쯤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모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게 너희가 원하는 것이냐?”

“아뇨⋯⋯. 아닙니다, 가주님. 가문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압니다. 어릴 적부터 배웠어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이 굶주리며 밭을 맬 때, 호의호식한 우리에게 어떤 의무가 주어지는지.”

“⋯⋯.”

“그래도⋯⋯ 그저 한번 여쭙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그게 너희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해 주마.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구나.”

조심스러운 기대로 빛나던 당소보의 얼굴에 실망이 내려앉았다.

이다음 말이 당군악의 진의일 것이다.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될⋯⋯.

“굳이 화산의 무학을 익히기보다, 당가의 무학을 익히는 게 어떻겠느냐.”

“⋯⋯예?”

“원한다면 성혼을 하지 않고 당가에 남는 것도 허락하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다.”

이는 사천당가가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가법을 정면으로 뒤집겠다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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