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4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4)
당군악은 한참 동안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행복이라⋯⋯.’
청명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처음 사천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족들을 끌어모은 당가의 시조가 정말 후손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길 바랐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낯설고도 외진 땅에서 살아갈 가족들이, 그리고 나아가 후손들이 그저 평안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울타리를 치고 자신을 스스로 지킬 방법을 가르친 것도 그래서였을 터.
“⋯⋯결국 자네의 말은⋯⋯.”
당군악이 청명 쪽을 바라보자 청명은 헛기침하며 자연스럽게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독은 물론 중요하죠. 암기도 중요해요. 그리고 당가가 가진 명성도 중요하죠.”
“⋯⋯그렇지.”
“하지만 그건 그저 당가에 소속된 이들이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그것들을 더 많이 얻어 낼수록 당가 사람들이 더 안전해질 테니까요.”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참 이상하거든요.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에 집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리죠. 마치⋯⋯.”
“지금의 나처럼 말인가?”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가주님께만 하는 말은 아니에요. 어느 순간 사천당가가 그리되어 있었으니까요. 이미 예전부터.”
저 별들이 당군악을 내려다보는 당가인들의 눈이라면, 저 눈 중에는 당보의 눈도 있을 것이다.
‘답답해했었지.’
당보는 일찍부터 그 사실을 깨달았다. 독의 한계를 보았음에도 독에 집착하는 이들을 이상하게 여겼고, 그 틀을 깨려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가법(家法)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무장한,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봐야 가주도 아닌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당보가 가문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천하를 떠돌며 지내게 된 것도, 결국 청명에게까지 찾아와 비무를 걸어 명성을 높이려 했던 것도,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려는 그 나름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모순덩어리 같은 놈.’
놈은 당가에 질색했지만, 또한 평생 당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하기야, 풀지 못할 모순을 안고 살아간 게 어디 당보뿐이겠는가?
“당가에서 독을 만드는 이들은 평생 당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그렇네.”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그들이 당가를 나섰다가 적대적인 곳에 납치되기라도 하면 당가에 관한 숱한 비밀이 풀려 버릴 테니까.
“공방 역시 마찬가지죠. 당가의 비전을 익힌 이들은 평생 당가에 속박되어 살죠.”
“⋯⋯.”
“여식들이야 뭐 말해 봐야 입만 아프고.”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다. 당가를 지탱하는 이들이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사천당가의 이름이 세워졌음을.
“그렇다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무학을 익히는 당가의 무인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죠. 가주님만 봐도 알잖아요?”
“⋯⋯나를 보면 뭘 안다는 건가?”
“맨날 미간은 막 이래 가지고.”
청명이 손가락으로 제 미간에 주름을 깊게 잡았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흉내에, 당군악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가주니까.”
“그건 누가 정한 건데요?”
“음?”
“당가의 가주가 모든 짐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당가를 강호에서 제일가는 무림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대체 누가 정한 거죠? 그건 애초에 가주님의 꿈이었나요?”
당군악이 입을 다물었다. 평소의 그라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리 믿었을 뿐이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그는 당연히 그가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가주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소소를 대하는 것만 봐도 알죠. 가주님은 그저 소소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잖아요. 상대가 다른 가솔들이라 해서 다르진 않을 거예요.”
당군악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다. 그사이 청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슬픈 일이죠.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 체제가 어느 순간부터 모두를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또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너무 당연히 버텨 내야 하는 게 된 거고.”
당군악이 살짝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화산검협. 하지만 당가를 만드신 선조들의 의도를 자네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알 수 있어요.”
“⋯⋯알 수 있다고?”
“네. 너무 쉽게 알 수 있죠. 특히 당가라면 더더욱.”
청명의 말에 당군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너무 과한 확언이 아닌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미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인데.”
“그래도 똑같아요.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순간 당군악은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부모⋯⋯라 했는가?”
“네. 선조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 사람들도 결국은 자신이 죽은 뒤의 자식들을 걱정했을 한낱 부모일 뿐이잖아요.”
청명이 작게 낄낄 웃었다.
“그 양반들이 정말 수백 년 뒤의 가주님까지 걱정하며 가문의 법도를 만들었을까요?”
“⋯⋯그건 아니겠지.”
“네. 그럼 쉽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런 법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그 사람들이 정말 바랐던 게 뭔지.”
청명의 웃음이 살짝 잦아들었다. 그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가만히 말했다.
“저는 부모의 정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마음이나 사형제를 보는 마음은 알아요.”
청명의 시선이 하늘에서 천천히 옆으로 옮겨졌다. 우거진 갈대 너머,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화산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강해지면 좋겠어요.”
“⋯⋯.”
“하지만 또 너무 과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그럼 힘들거든요. 그냥 자기 스스로 만족할 정도면 족한데, 참 저것들도 욕심이 과해 놔서.”
“⋯⋯그렇게 만든 게 자네 아닌가?”
“맞아요.”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적당할 정도만 하면 좋겠는데, 그 적당함이 어딘지를 저도 모르겠거든요. 이제 됐다 싶으면 또 불현듯 생각이 나는 거죠. 혹시 좀 더 센 놈들이 이 녀석들을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지? 그때 내가 없으면 어떡하지?”
“⋯⋯알겠군.”
“네? 뭘요?”
“그건 자네가 겁쟁이라 생기는 일이야.”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구시렁거렸다.
“피차 별다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부정하지 못하겠군.”
당군악이 쿡쿡 웃었다. 딱히 뭔가 해결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부모라⋯⋯.”
자식들이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가?
당가의 가주가 아닌, 인간 당군악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때 청명이 새삼 말했다.
“정말 어렵기는 해요. 평생을 함께하는 부모와 자식도 서로의 뜻을 온전히 알기는 힘들잖아요. 사람은 결국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
“다만 짐작할 수는 있어요.”
“내 마음이 그럴 테니.”
“네. 맞아요.”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당가의 선조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고민할 필요 없다. 그 스스로가 당가의 선조가 되면 된다.
“터전을 바꾸고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하는 지금, 내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당군악이 눈을 감았다.
이제야 어렴풋이 선조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이 그러한 입장이니까.
“잃은 건 어쩔 수 없어요. 후회하고 원망한다고 돌아오지 않죠. 자책이요?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세요.”
“⋯⋯.”
“다만.”
청명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한다.
“잃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잃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는 거겠죠.”
당군악이 가만히 손을 그러쥐었다.
“저는 확신해요. 그게 어떤 형태든⋯⋯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 본 이들은 더 강해질 이들이라고요.”
당군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지금 청명이 하는 말을 고작 며칠 전, 일이 이리되기 전에 들었다면 당군악은 아마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단단히 굳어진 것들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에 평생을 바쳤을 것이다. 설사 그게 그가 아끼는 모두를 힘겹게 하는 일이라 해도.
당군악은 청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화산검협. 그래서 그런 이들을 모은 건가?”
“⋯⋯네?”
“천우맹 말일세.”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천우맹에 속한 건 대부분 무언가를 크게 잃은 이들이고, 잃었던 이들이다. 당가마저 이리되고 보니 새삼스레 그 사실이 확연해졌다.
“⋯⋯아뇨. 일부러 모은 건 아니에요. 그냥 모으고 보니 그런 놈들만 와 있었던 거지.”
“⋯⋯.”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 어느새 하나, 어느새 또 하나. 정신 차려 보니 많이도 와 있더라고요.”
“그랬지⋯⋯.”
“그냥 그 양반들도 누군가 필요했겠죠, 뭐. 거기에 마침 우리가 있었을 뿐이고, 아파 보지 않은 이들은 누군가를 찾을 필요도 없으니까. 마침 그런 이들만 서로 만난 거고.”
청명이 낄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원래 좀 모자란 놈들이 저들끼리 잘 뭉치거든요.”
그와 당보가 그랬듯이 말이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은 서로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냥⋯⋯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뿐이죠.”
청명의 입가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저 무언가를 잃은 이들의 심정을 너무도 절절하게 아니까 눈이 갔을 뿐이다.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러니 저는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후회하고, 손해만 봤다고 한탄하고, 그게 대체 나와 무슨 관련이 있어서 피 흘리고 싸워야 했나 싶으면서도⋯⋯.”
청명이 눈을 살짝 감았다. 이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빛은 그저 맑기만 했다.
“그래도 저는 또 갈 거예요. 멍청한 짓을 한다고 욕을 쏟으면서 말이죠.”
당군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멍청하다고 하는 게 아닐세.”
“쯧.”
하지만 청명은 그의 뒷말을 듣지도 않고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군악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음?”
“갈래요.”
“⋯⋯갑자기?”
“가주님도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할 테니까요.”
청명이 히죽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다 말고 당군악에게 한 걸음 불쑥 다가왔다.
“응?”
턱!
그는 손을 뻗어 당군악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살짝 내리누르듯 그의 어깨에 힘을 실었다.
“⋯⋯뭔?”
“그럼.”
의도를 짐작하기 힘든 행동을 한 청명은 그대로 돌아서서 멀어져 갔다. 미련 없이 걸어가는 그의 등을 빤히 바라보던 당군악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화산검협.”
“네?”
청명이 고개만 돌려 당군악을 돌아보았다.
“⋯⋯고맙네.”
그러자 말없이 당군악을 바라보던 청명이 손가락으로 저 위를 가리켰다.
“감사는 위쪽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청명의 모습이 완전히 멀어지고, 당군악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게 물든 하늘에는 여전히 숱한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 빛들이 그를 감시하고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리 차갑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소매 안의 비도를 매만졌다. 문득 그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결국⋯⋯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는 한마디도 해 주지 않았군.”
고개를 내젓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알고 있다. 그건 남이 정해 줄 수 없는 것. 오직 그가 정해야 하는 길. 오직 그 자신만의 싸움이다.
다만⋯⋯ 그 혼자만의 싸움에 작은 것이 함께한다.
청명이 어깨를 누르며 남기고 간 작은 온기. 어딘가에서 전해진 듯한 그 온기가 당군악의 어깨에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