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2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2)
밤은 무척이나 어둡고 무거웠다.
처음엔 쉴 자리를 만들어 놓고도 만인방이 언제 다시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도 한계가 있어, 결국 대부분은 육신을 좀먹고 드는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성도에서 이곳까지 필사의 도주를 감행한 이들도, 남경에서 이곳까지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온 이들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당소보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풀벌레 소리와 곯아떨어진 이들이 내쉬는 숨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괜한 불안함에 슬쩍 두리번거리니 초병을 서는 이들의 등이 보였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다독이듯 되뇌었다.
이제 괜찮다.
설령 저 만인방이 다시 공격해 온다 해도, 여기에는 당가의 무인들과 저 화산이 함께 있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짙게 내려앉은 불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막막하기만 한 물음이었다.
그녀는 평생을 당가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당가에서 태어난 여식들은 대부분 그녀와 같은 처지다.
당가를 떠나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기 전까지 그녀가 밟을 수 있는 땅은 오직 당가타, 더 나가 봐야 기껏 성도 정도.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돌아갈 당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호기로운 말을 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당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만 하면 절로 가슴이 내려앉고 갑갑했다.
‘장로님.’
문득 어서 가라고 외치던 당외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응? 누구⋯⋯.’
일어난 이는 소리도 없이 천천히 걸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빠져나갔다.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며 경계를 서던 이들은 반사적으로 그를 막아섰다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모닥불 빛이 희미하게 닿으며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당소보의 뇌리에 별호가 떠올랐다.
‘화산검협.’
초병들을 일별한 그는 이내 들판에 내려앉은 어둠에 휩싸여 멀어졌다. 당소보는 그런 화산검협의 등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른 들판에 풀벌레 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갈대밭에 앉은 당군악은 문득 제 옆에 자라난 갈대를 움켜잡았다.
뚜둑.
간단히 부러진 갈대를 잡아 든 그가 가볍게 손목을 움직이며 휙 날렸다.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갈대는 앞쪽에 있던 바위를 뚫고 푹 박혔다.
그러자 어디선가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당군악이 돌아보자 청명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멋진 일 수네요.”
갈대를 헤치며 다가온 청명은 당군악의 옆을 향해 턱짓했다.
“앉아도 되나요?”
당군악은 복잡하고 묘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뭐, 정 혼자 계시고 싶다면 돌아가고요.”
“⋯⋯아니네.”
고개를 내저은 당군악이 제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청명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만 보았다.
청명도 당군악도 딱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응시할 뿐. 어쩌면 같은 곳에 앉아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
꽤 긴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야 당군악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왜 말을 않는가?”
“딱히 할 말이 있어서 온 건 아니라서요. 그냥 왔어요, 그냥.”
당군악이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언젠가 그 오지랖 때문에 죽을 걸세.”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이 말인가?”
“전 옛날엔 제발 남에게 관심 좀 가지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저한테 자꾸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고 하네요.”
“⋯⋯.”
“나는 딱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런 걸까요?”
“글쎄⋯⋯. 모르겠군. 아마 둘 중 하나겠지.”
청명이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 바닥을 짚고 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그를.
“자네가 변했거나, 아니면 세상이 변했거나.”
“⋯⋯어느 쪽인 것 같으세요?”
“자네가 변했겠지. 아니, 자네가 변한 게 맞네. 내가 처음 본 자네와 지금의 자네는 다른 사람이거든.”
청명이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던데.”
“이미 반쯤은 죽었으니 괜찮네. 살아 있는 게 용하지.”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쏟아부을 수 있는 걸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그럼에도 청명이 살아날 확률은 반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설사 살아난다 해도 이전 같은 무위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청명은 그의 옆에서 태연히 농을 던지고 있다. 당군악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은 괜찮은가?”
“죽을 것 같은데요?”
“⋯⋯솔직해서 좋군.”
“제 수많은 장점 중 하나죠!”
“유일한 장점이 아니라?”
“거, 친우 사이에 평이 박하시네.”
당군악이 쿡쿡 웃었다.
맞다. 수많은 장점 중 하나다. 청명과 함께 있으면 그도 모르게 유쾌해진다. 어쩌면 그것도 청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일지 모른다.
당군악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질 듯 무수한 별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산검협. 자네는 저 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음⋯⋯.”
청명은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빙긋 웃었다.
“아무 생각 안 드는데요.”
평소라면 면박을 줄 만한 대답이지만, 당군악은 조금 씁쓸한 표정만 지었다. 그러더니 느리게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저 별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네. 저 하늘에 가득 찬 별처럼 암기를 떨칠 수 있다면, 나는 천하제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당가가 천하제일이 될 거라고.”
“⋯⋯태어나길 가주로 태어나셨네.”
아니, 근데 비슷한 말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당가 놈들은 다 이런가?
“그런데 지금 내게 저 별이 무엇으로 보이는 줄 아는가?”
“⋯⋯글쎄요?”
“눈으로 보이네.”
“눈?”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선조들의 눈 말일세.”
순간 청명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당군악의 말에서 이루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둔중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군악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하늘을 수놓은 별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 세상에 내리깔린 어둠이었다.
“당가는 쇠락하겠지.”
“⋯⋯.”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을 걸세. 잃은 것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가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할까?”
청명은 쉽사리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지금 당군악이 느끼고 있는 암담함은 그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저 당가타가 불타고, 사천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끝이 아니다.
암기를 잃었고, 독을 잃었다.
이건 결코 단기간에 수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본래 당가가 이르렀던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가가 독과 암기를 잃었으니, 이는 화산이 검을 잃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검이 없는 화산을 검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과연 청명이라면 검을 쓰지 못하게 된 화산 역시 화산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당군악의 질문에는 누구도 대신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성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었네. 신수 어르신께서 당가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내쫓았다 하시는군.”
‘조평⋯⋯.’
청명은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주름 자글자글한 당조평의 얼굴과 어린아이였던 당조평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청명에게 당조평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그분답지 않지. 하지만 또 동시에 그분답네.”
“⋯⋯그렇네요.”
“어르신 덕분에 당가가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네. 천 번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일이지. 그런데 말이네, 화산검협.”
당군악이 문득 고개를 돌려 청명을 응시했다. 당군악의 눈가에 붉은 기가 어려 있었다.
“그런⋯⋯ 그런 어르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나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악하기 때문인가?”
“⋯⋯가주님.”
당군악의 눈이 조금 더 붉게 물든다.
청명은 조금 더 참담해졌다. 본 적이 없다. 당군악의 이런 모습은.
설사 제 목이 잘려 나가는 순간이 온다 해도 당군악은 당당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당당함과 거리가 멀었다. 사천당가의 가주인 독왕 당군악이 아닌, 무게와 부담에 짓눌린 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청명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상하지는 않다. 세상에 강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이를 악물고 강한 척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과거의 청명이 그랬던 것처럼.
“알고 있네. 사람은 무엇보다 귀하지. 감히 독이나 암기 따위를 사람에 비할 수는 없어. 어르신은 틀리지 않았네. 그곳에 있던 것이 나라고 해도 결국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걸세.”
당군악의 목소리게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에 잠겨 있는 것처럼.
“하지만⋯⋯ 모르겠군. 옳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네.”
청명은 당군악이 할 말이 무언지 알 것 같았다.
“⋯⋯차라리 가문을 지켜 내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당가의 근본을 지켜 내었다면⋯⋯.”
분명 그랬다면 조금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수는 줄어들었을지언정, 당가는 여전히 당가일 테니까. 당가가 수대에 걸쳐 이룩해 온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당가는 사천의 패자인 사천당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우습지 않은가?”
당군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주님.”
“나는 내가 혐오스럽네.”
당군악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까짓⋯⋯. 그깟 아무것도 아닌 차가운 철 덩어리를 사람의 목숨과 비교하며 저울질하고 있는 내가. 저 중 몇쯤은 그것들을 지켜 내는 대가로 죽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내가.”
손이 떨리는 만큼, 목소리도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흡사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쥐어짜며 비트는 것처럼.
“그랬다면 고통은 더 극심했을지언정, 훗날에는 조금 더 나은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자꾸만 생각하는 내가!”
당군악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새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 내가 너무도⋯⋯ 너무도 혐오스럽네.”
청명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역시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굳게 믿어 왔던 미래가 무너지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리는 것.
‘너희도 그랬겠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선대가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 버린 화산의 어린 검수들도, 그럼에도 어떻게든 지켜 내려 했던 화산이 불타오르는 광경을 피눈물 쏟으며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도, 지금의 당군악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감히 누가 쉬이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을 대체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보게, 화산검협.”
“⋯⋯예.”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당군악이 청명을 바라보았다. 물기 젖은 두 눈을 마주한 청명은 이내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별이 가득한 하늘은 언젠가 그가 보았던 하늘과 겹쳐졌다.
그 하늘은 어쩌면 화산이 불타던 날 섬서를 내려다보던 하늘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청명은 말해야 했다.
누군가가 전하려던 말. 그가 전해야 했던 말. 차마 전하지 못하고 가 버린 이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