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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33화 (1,434/1,567)

1433화. 나를 먼저 죽여야 할 거요. (3)

“오, 온다!”

당가 장로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각오를 가슴에 품고 나선 자리. 하지만 짐승처럼 달려드는 만인방의 악귀들을 본 순간 그들의 가슴에 ‘두려움’이라는 세 글자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사파 놈들!”

평범한 이들이라면 그 두려움에 잠식되었을 터이지만, 이들은 다름 아닌 사천당가의 장로들. 평생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 보지 못했다 해서 그 육체에 새긴 노력과 가슴에 새긴 자부심이 사라질 리 없었다.

“정신 단단히 차려라! 우리가 뚫리면 식솔들이 당한다!”

당벽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막는다!’

그의 얼굴에 지독한 결의가 어렸다.

장소가 좋지 않다. 개활지는 당가가 가진 힘을 발휘하기에 최악의 장소. 하나 그렇다 해도 적을 막아 내는 것이라면 천하에 비길 곳이 없는 문파가 당가 아니던가?

“뿌려라!”

적들이 지척까지 달려든 순간 당벽의 입에서 찢어지는 고함이 터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장로들의 소매에서 시커먼 독연이 구름처럼 뿜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개활지에 피어오른 독연들이 두 집단의 사이에 거대한 벽을 만들어 냈다.

보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괴이한 기운을 내뿜는 독 구름. 그 독 구름을 만들어 낸 당벽의 시선이 재빨리 위쪽으로 솟구친다.

‘암기!’

그의 손에 우모침이 잡힌다. 앞을 뚫을 수 없다면 당연히 이 독연을 뛰어넘으려 할 것이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무방비로 위로 솟구친 놈들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는 것!

평생 함께 수련해 온 장로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전신에 공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린 채 양손에 날카로운 암기를 움켜잡고 독연 위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때.

파아아아앗!

불길하기 짝이 없는 색으로 물든 독 구름의 중앙이 일순 휘감기듯 일렁인다. 그리고 그 변화를 채 머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붉은 옷을 두른 일련의 무리가 독 구름을 뚫어 내며 그들의 앞으로 순식간에 쇄도했다.

‘뭐?’

심장이 목으로 튀어나올 것만큼 놀란 당벽이 다급하게 암기를 발출한다. 하지만 그 암기가 채 손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만인방도들이 날린 도기가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선두에 있는 장로의 몸통에 날아든 도기가 여지없이 틀어박힌다.

“아악!”

외마디의 비명. 그 비명이 미처 울려 퍼지기도 전에 반으로 잘린 몸뚱이가 날아가며 사방에 붉은 피를 뿌려 댔다.

“크헉!”

연이어 휘둘러지는 도에 몇 명의 장로가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진다.

“무, 물러나라!”

“놈들에게 거리를 주지 마라! 물러서!”

악에 받친 장로들의 고함 속에서 당벽의 눈이 격하게 요동쳤다.

‘마, 망설임도 없이!’

독연을 맨몸으로 뚫어 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독이란 필연적으로 그러한 것, 천하의 맹독이라 해도 중독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당벽을 경악시킨 것은 저들이 맨몸으로 독 구름을 뚫어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사람이라면 눈앞에서 피어나는 독 구름을 본 순간 멈칫하는 것이 당연할 터.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앞에 피어난 것이 당가의 맹독임을 알면서도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 안으로 뛰쳐 들었다.

‘이, 이게 만인방?’

“크하하핫!”

선두에서 달려드는 만인방도의 얼굴에 순식간에 검은 기운이 퍼져 나간다. 하지만 얼굴을 검게 물들인 이들의 도는 중독된 이답지 않게 맹렬하게 휘둘러졌다.

“이, 이놈!”

당가의 장로들도 당연히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전력으로 발출한 우모침이 폭우처럼 날아들어 만인방도의 몸을 꿰뚫었고, 순식간에 수백 개의 독침을 몸으로 받아 낸 만인방도는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렸다.

그러나.

파아아아앗!

그럼에도 휘둘러진 도가 그 앞에 선 장로의 가슴에 단숨에 내리꽂혔다.

“커허억⋯⋯.”

몸을 세로로 찢어 내는 것 같은 고통에 전율하는 장로의 어깨에 만인방도가 제 머리를 들이민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웃음을 지은 만인방도가 장로의 가슴에 박아 넣은 도를 전력으로 비틀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몸 안의 장기가 갈려 나가는 고통. 그 고통을 버티지 못한 장로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당무우우우!”

눈앞에서 형제가 죽어 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장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이미 악귀들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아앗!”

장로들의 손에서 섬전 같은 비도가 쏘아져 나갔다. 근거리에서 발출된 비도가 일순간에 적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만인방도들은 그 가슴에 비도를 박아 넣고도 악착같이 도를 휘둘러 그들을 베어 왔다.

서걱! 서석!

휘둘러진 도가 장로들의 팔을 잘라 내고, 목을 베어 넘겼다.

독을 뿌릴 틈조차 없다. 당장 눈앞에서 광인 같은 놈들이 눈을 까뒤집고 칼을 휘둘러 대는데 느긋하게 중독을 시킬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암기가 해결책이 되어 주지도 못했다. 그들이 날린 암기는 분명 적들에게 격중되고 있지만, 그게 전부. 몸에 암기를 꽂아 넣은 채로 도를 휘두르는 놈들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머리! 머리를 노려라! 단숨에 절명 시켜야 한다!”

당벽이 악을 쓰며 고함쳤다.

그렇지만 적들 역시 바보는 아니다. 몸뚱이에 꽂히는 암기는 무시하면서도 머리와 심장으로 날아드는 암기는 철저하게 막아 낸다.

그리고 그 순간 당벽은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거리를 벌렸어야 한다. 어설프게 제자리에 서서 막으려 해서는 안 되었다. 단병도 아닌 암기를 쓰는 당가는, 그리고 독을 뿌려 적을 제압하는 당가는 필연적으로 저지력이 부족하다.

적의 도가 닿을 만한 거리를 허용해 버린 순간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때, 두엇의 적이 당벽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이를 악문 당벽의 두 눈에 독기가 치솟아 올랐다.

“이 개 같은 놈들이!”

소매에서 벼락같이 무언가를 뽑아낸 당벽이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뽑아 든 것을 겨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사방을 휩쓸었다.

“뭣?”

당가의 독연도, 날아드는 암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날뛰어 대던 만인방의 정예들조차 놀라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갈기갈기 찢겨 더는 사람의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세 구의 시체뿐이었다.

“사천당가를 우습게 보지 마라!”

당벽이 있는 힘껏 소리 높여 외쳤다.

“당황하지 말고 뇌격포를 사용해라!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가공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처절한 비명과 폭음이 이어지고, 삭막했던 대지가 금세 피와 죽음으로 끓어 올랐다.

“흐음?”

장일소의 두 눈이 살짝 가라앉는다. 그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화포인가?”

“아마 금용암기(禁用暗器) 같습니다.”

“금용암기라⋯⋯.”

금용이라는 두 글자가 붙은 이유가 달리 있을 리 없다. 말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당가가 금용암기를 지정하는 이유는 그 위력이 너무도 뛰어나 사용하는 순간 강호의 공적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민감한 이유가 있었다.

“사파도 아니고 화약이라니. 당가도 급했던 모양이지?”

장일소가 쿡쿡대며 웃는다.

아무리 대포가 아니라 작은 화포라고는 하지만, 화약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는 다를 게 없다. 화약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관의 개입을 부르는 바. 그렇기에 사파들조차 관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강 위가 아니면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화약이다.

그런데 저 당가의 장로 놈이 그 화약이 들어간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피해가 클 것입니다.”

적호의 우려는 절대 과한 걱정이 아니었다. 이유야 따로 있다 해도 당가의 금용암기가 절륜한 위력을 가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저 금용암기들은 단순한 화포가 아니다. 화약의 힘과 내력의 힘을 동시에 이용하여 당가 특제의 암기들을 고속으로 분사하는 장치다.

그런 것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든다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는 뻔한 일 아니던가?

“글쎄.”

하지만 장일소는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저 화포 말이다.”

“예. 련주님.”

“꽤 커 보이지 않니?”

그 말에 적호가 눈을 가늘게 뜬다. 확실히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크기다.

“화약을 쓰니 여러 번 쏘아 댈 수는 없을 거고⋯⋯.”

장일소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저 너른 소매 안에 저런 게 몇 개나 들어 있을까? 한 번 쓰고 나면 무용지물인 암기가 말이다.”

적호는 즉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섬멸해라!”

“예!”

적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단숨에 앞으로 튀어 나간다.

저들이 사용한 금용암기가 꼭 저들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뇌격포가 뿜어낸 풍압이 저들이 만들어 놓은 독 구름을 사방으로 흩어놓았다. 다시 독을 뿌릴 틈을 얻지 못하는 이상, 저들은 이제 이 너른 대지 위에 무방비로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만 해도 놈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장일소는 그리 느긋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홍견.”

철통처럼 장일소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홍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장일소를 바라본다.

대답조차 없다. 대답이란 그 명이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표시. 모든 신경을 장일소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런 표시가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장일소가 제 입술을 혀로 천천히 핥는다.

“지루하구나. 늙은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영 힘이 빠져서 말이다.”

홍견들의 두 눈에 광망이 일었다.

“모두 정리하렴. 나는 바쁜 사람이란다.”

그 말에 홍견들이 고개를 돌려 사천당가의 장로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앗!

고갯짓 하나, 짧은 대답 하나 없이 홍견들이 쇄도한다.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들이 눈이 뒤덮인 대지에서 먹이를 발견한 듯, 그들이 내뿜는 흉성이 삭막한 사천의 대지 위에 휘몰아쳤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적호 역시 장일소의 의도를 알았다는 듯 장일소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인다.

“너무 날뛰지는 말렴. 저 아이들도 즐겨야지.”

“예. 련주님.”

적호가 다시 한번 읍을 하고는 도를 뽑아 든다.

도 전체가 검게 칠해진 묵도(墨刀). 자신의 애병을 손에 잡은 적호가 그 두 눈에서 살기를 흘리며 돌진했다.

“이런, 이런.”

장일소가 고개를 내저었다.

“다들 너무 흥분했다니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지금껏 만인방은 수도 없는 전쟁을 통해 성장해 왔다. 한데 사패련이 안정화된 이후로는 제대로 피 맛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다른 이들에게는 짧은 휴식에 불과한 시간이겠지만, 이들에게는 기나긴 억눌림의 기간이었을 것이다.

“너무 처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선물은 좋은 것이나, 너무 과한 선물은 받는 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별수 없잖니.”

어깨를 으쓱한 장일소가 느릿하게 발을 뗐다.

“그건 너희가 늦게 도착한 탓이란다. 독왕, 그리고⋯⋯ 화산검협.”

쿡쿡 웃어 댄 장일소가 피에 젖은 대지를 산보하듯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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