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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26화 (1,427/1,567)

1426화. 그럼 이 비도는 실패작인가? (1)

무심한 망치는 계속해서 모루 위의 철을 두드렸다. 마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카앙!

작은 망치가 떨어질 때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철이 사방으로 불똥을 뿜어냈다.

그렇게 오래도록 망치를 내리치던 당조평이 집게로 들어 올린 철을 깊은 눈으로 응시하더니 이내 고온의 불길을 뿜어내는 화로 안으로 쑤셔 박듯 밀어 넣었다.

불길에 휩싸인 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불그림자로 일렁거렸다.

이런 당조평을 말없이 지켜보던 장일소의 새빨간 입술이 그제야 열렸다.

“노인장.”

서늘한 한기를 실은 목소리가 노인을 휩쌌다.

“다른 당가 녀석들은 어디로 갔지?”

누구라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독사가 제 몸을 휘감는데 태연할 이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당조평은 그 장일소의 말에도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예 귀먹은 사람처럼 그저 시선을 화로에 고정해 두었을 뿐이다.

장일소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채 하기도 전에 당조평은 다시 무심한 손길로 달아오른 철을 끄집어내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망치가 달아오른 철을 때릴 때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박력이 흘러나왔다.

“흐음.”

이쯤 되니 장일소도 흥미롭다는 듯 그런 당조평을 주시하며 웃었다.

“이렇게 무시를 받아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순간 주위를 지키고 선 홍염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장일소를 지척에서 호위해 온 그들은 저 느릿한 말투에 녹아 있는 뒤틀린 분노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홍염 중 하나가 급히 나섰다.

“이 늙은이가⋯⋯.”

“비켜.”

하지만 장일소는 차갑게 일갈하며 막아섰다. 나서려던 홍염들은 분분히 도로 물러섰다.

저벅.

장일소가 당조평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선 장일소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작디작은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감정도 서리지 않은 투명한 눈빛이었다.

어차피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늙은이가 무엇을 하든 그와는 관계없다. 손을 휘둘러 손쉽게 죽여 버리고, 달아난 이들을 뒤쫓으면 그만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장일소가 이곳에 멈춘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 그저 그것이었다.

“무얼 만들고 있지?”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일소는 피식 웃었다. 곱게 휜 두 눈에 명백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고개도 돌리지 않은 당조평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도.”

“흐음?”

“비도를 만들고 있다.”

대답이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장일소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비도라⋯⋯. 이런 상황에서?

카앙!

당조평이 다시 망치를 내려쳤다. 빤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일소의 두 눈에 한없이 요악한 빛이 휘돌았다.

“평생을 바친 것이⋯⋯ 무너졌지.”

조소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심혼을 바쳐 일구어 온 모든 것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그러니 생의 마지막에도 하던 일을 반복한다.”

장일소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게 장인이라는 이들의 삶이라면⋯⋯ 그저 가련하고 또 가련하다고 해야겠지?”

카앙!

당조평의 망치 소리가 조금 격해졌다. 장일소가 조금 더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철을 화로에 밀어 넣는 소리가 울렸다.

“어떻지?”

“⋯⋯.”

“대단한 명검이 나올 것 같은가?”

그건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영혼에 박히는 칼이었다.

“그 끔찍한 끝을 보상받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검이 나오고 있나? 비참하게 이어 온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위안할 수 있을 만큼?”

“⋯⋯.”

“현실은 지독한 거란다. 평생을 노력한 장인이 최후의 순간에 혼을 담아 빚어내는 명검 같은 건 이야기에나 나오는 헛소리야. 현실에서는 그저 제대로 녹지도 않은 철을 두드리며 쓸모없는 쓰레기나 만들어 낼 뿐이지.”

순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장일소를 흘끗 본 당조평은 화로에서 비도를 다시 끄집어내고 모루에 올렸다.

장일소는 물었다.

“어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그럼에도 쓸모없는 짓거리에 매달리는 기분이 말이야.”

뱃속이 뒤틀린다. 모든 것을 잃은 자는 마지막 순간에 되레 대범한 척하곤 한다. 사실 자신은 애초에 그런 것을 바란 적 없다는 듯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해탈이라도 한 듯 구는 머저리들을 수없이 봐 왔다. 장일소는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미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울고불고 매달리는 이들이 낫다. 그들은 솔직하니까. 차라리 바닥을 기며 살려 달라 외치고 몸부림치는 이들이 순수하다. 무의미한 것에 거짓된 의미를 부여하고, 원하지 않았던 걸 사실은 원했다고 주절대는 패배자들에 비하면 말이다.

“대답해 보렴. 그 비도가 네 삶의 마지막 물건으로 가치가 있나? 그런 하찮은 삶이라면⋯⋯.”

영혼을 잡아 비트는 듯한 목소리.

“굳이 부여잡고 있을 필요도 없지 않니? 응?”

너른 소매 아래로 장일소의 손이 꿈틀했다. 그저 말로만 위협할 생각은 없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당조평은 장일소가 언제든 그의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 목숨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그저 달아오른 철을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카앙!

당조평의 망치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붉은 불똥은 흡사 노인의 혼이 흩날리는 것처럼 연신 튀어 올랐다.

모루 위의 철이 점점 더 비도의 형상을 갖춰 가고, 당조평은 집게로 다시 집은 철을 세심하게 살피다 화로에 쑤셔 박았다.

당조평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장일소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그 무심한 눈길과 일렁이는 장일소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장일소는 순간 울컥 치미는 역겨움을 참지 못했다. 끝내 손을 휘두르려는데, 당조평이 입을 열었다.

“수많은 철 중 가장 순도 높은 철을 모은다.”

“⋯⋯.”

“가혹할 만큼 뜨거운 화로에서 녹여 내고.”

카앙!

다시 한번 당조평의 망치가 비도를 후려쳤다.

“수백, 수천 번을 내리치고, 또 내려친다.”

카앙!

“가장 완벽한 형태와 강도를 지닐 때까지. 수도 없이 뒤틀리고, 부러지고, 꺾이고⋯⋯.”

카아앙!

강하게 망치를 내리친 당조평은 비도를 옆에 놓인 물 양동이에 넣었다.

치이이이이이익!

“더러운 구정물에 처박히고.”

달아오른 비도를 품은 물에서 새하얀 증기가 거칠게 솟구쳤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갈리고 또 갈려 제 살을 떼어 내고서야, 그제야⋯⋯ 명검이 되지.”

순간 장일소의 눈빛이 묘하게 차분해졌다.

당조평의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그 울림은 장일소조차도 쉽사리 내치지 못할 무게를 자아냈다.

“나는 평생에 걸쳐 그런 일들을 해 왔다. 더 강한, 더 날카로운, 더 대단한 검을 만들고, 뛰어난 무기를 만들고,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러뜨리고, 다시 녹여 가면서.”

당조평은 비도를 양동이에서 꺼내 모루 위에 올렸다.

거무튀튀한 빛깔, 울퉁불퉁한 표면. 아직 연마를 거치지 않았다고는 해도, 도저히 명검이라 부를 수는 없는 꼴이었다.

낡아 빠진 작은 화로와, 늙어서 앙상해진 팔로 만들어 낸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당가의 장인이 그 생의 마지막에 만들어 낸 검이다. 하지만 정작 모양새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극히 초라했다.

당조평은 그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비도를 세심하게도 살피고 있었다. 마치 생에 다시 없을 천하의 명검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다.

꽈악.

당조평은 아직 채 다 식지 않은 비도를 제 손으로 움켜잡았다.

치이이이익!

익은 살이 뜯기며 흘러나온 피가 비도를 적셨다. 하지만 노인은 그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무심히 비도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이 비도는 실패작인가?”

당조평이 망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직 수없이 더 두들겨야 할 것 같은 비도를 내버려 둔 채로. 볼품없는 하급 비도를 둔 채로.

하지만 망치를 내려놓는 그의 손길에는 딱히 아쉬움이랄 게 없어 보였다.

손안에서 비도를 천천히 돌리며 담담한 눈으로 비도의 구석구석을 살핀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에 쥔 비도를 다름 아닌 장일소에게 내밀었다.

정적이 흘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노인의 행동에 장일소가 입을 열려는데, 무심한 당조평의 목소리가 먼저 내던져졌다.

“받게나.”

순간 장일소의 얼굴에 ‘당혹’이라는 명백한 감정이 피어났다. 내밀어진 비도와 당조평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눈가를 미세하게 일그러뜨렸다.

“⋯⋯무슨 짓거리지?”

아무리 생이 꺼져 가는 노인이라 해도 당씨 성을 쓰는 한, 지금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모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노인은 지금 장일소에게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만들어 낸 비도를 내밀고 있다. 설마 이걸 내밀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도 아닐 텐데.

장일소의 의문에 답을 하듯 당조평은 말했다.

“철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지. 손에 든 이가 주인이야. 그저 자네가 지금 여기 있을 뿐이네.”

장일소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울퉁불퉁한 비도를 내려다보았다.

“⋯⋯이 비도가 다름 아닌 당가의 목에 꽂힐 수도 있을 텐데?”

그 말에도 당조평은 내민 비도를 거두지 않았다.

그저 장일소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장일소의 얼굴에도 표정이랄 게 없었다. 그렇게 침묵하던 장일소가 느리게 손을 뻗어 내밀어진 비도를 움켜잡았다.

꾸욱.

아직 식지 않은 열기가 전해졌다. 비도 표면에 말라붙은 당조평의 피가 손에 검붉게 묻어났다.

울퉁불퉁하게 뒤틀린, 엉망진창인 비도를 빤히 바라보던 장일소는 비도를 꽉 움켜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당조평의 목을 단번에 쳐 날려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늙은이가⋯⋯.”

장일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조평의 고개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새, 노인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초라하다.

마지막 순간에나 내려놓은 망치도, 늙어 비틀어진 몸도, 앞에 놓인 낡은 화로마저도 모두 그저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당조평의 입가에 어린 미소만큼은 천하의 장일소도 초라하다 비웃을 수 없었다.

화로의 불이 꺼지듯 당조평의 몸이 점차 식어 갔다. 말없이 숨을 거둔 당가의 장인을 바라보던 장일소는 장포를 펄럭이며 돌아섰다.

“시간만 낭비했군.”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이곳에는 놈들이 없다. 뒤쫓아라.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예, 련주님!”

주변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만인방도들과 홍견이 분분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마 곧 달아난 이들의 종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닥.

미련 없이 걸어가려던 장일소는 순간 귓가를 스치는 소리에 발을 멈췄다. 화로가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장일소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쳤다.

“⋯⋯흥.”

파앗!

장일소의 손이 휘둘러졌다. 장력이 쏟아지자 이내 공방 전체가 단숨에 무너지며 당조평의 시신을 뒤덮었다.

쿠우우웅!

무너진 공방을 차갑게 노려보던 장일소는 움켜쥔 비도를 제 품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빚을 지는 건 질색이라서 말이야.”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을 남긴 그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공방은 그렇게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의미를 잃어버린, 그렇기에 모두가 떠나 버린 그 공방의 잔해 위로 낡고 작은 망치 하나가 삐죽이 솟아 있었다. 마치 이제야 안식을 얻은 누군가의 묘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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