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4화. 여기가 사천당가인가? (4)
“대, 대공자님! 사, 사패련이⋯⋯. 지금 사패련이 성문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삼총관의 말에 조웅(趙雄)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하필 아버님이 상행으로 부재하실 때!’
타들어 가는 목을 진정시키려는 듯 마른침을 삼킨 조웅은 고개를 획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모두 지시대로 하셨소?”
“예. 다들 전각 안으로 들여보내 자중하고 있으라 지시했습니다.”
“숨소리도 내지 말라고 해야 하오!”
“예!”
조웅의 이마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패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은 조금 전에야 사해상회에 전해졌다. 달아나기에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그러니 조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숨을 죽인 채 장일소의 마수가 사해상회에 미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괘,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것이오.”
조웅이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 패군은 천하의 두려움을 사는 자이기는 하나, 무학을 익히지 않은 양민들에게는 크게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했소. 쥐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으면 굳이 우리를 핍박하지는 않을 거요.”
그가 이리 생각하는 연유는 꼭 패군에 대한 평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성도에는 사천당가가 있으니까. 그들을 노리고 오는 패군이 굳이 사해상회 같은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리 없지 않은가?
“하, 하지만⋯⋯ 그, 그 패군과 우리가 꼭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때 삼총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조웅이 그에게 시선을 주자 삼총관은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사패련은 화산을 원수처럼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데 이 공자님께서 화산 분이 아니십니까?”
“⋯⋯.”
“그런데도 저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원수의 가족인데, 게다가 저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파 놈들 아닙니까?”
조웅의 손이 살짝 떨렸다.
동생인 조걸은 그저 그런 화산의 제자가 아니다. 화산에서도 가장 큰 명성을 날리고 있는 화산오검 중 하나다.
만일 소문대로 정말 화산에 대한 사패련의 원한이 그리 깊다면, 화산오검 조걸의 본가인 사해상회에 무슨 짓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하지 않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식솔들이나 단속하시오! 어서!”
“예⋯⋯. 예. 대공자님.”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는 총관을 보며 조웅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그의 우려가 그리 틀리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괜히 동요하면 모두에게 불안감만 안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일개 상인이다. 저 사패련이 마음먹고 사해상회를 노린다면 달아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십 리도 채 가지 못하고 모조리 주살당할 게 뻔한 것을.
그러니 이젠 그저 장일소가 이곳이 조걸의 본가임을 모르고 지나가 주기를 천지신명께 빌 수밖에.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 온다!”
바깥쪽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움찔한 조웅은 저도 모르게 아직 열려 있는 정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고개를 내밀자 저 멀리 너른 길 한중간으로 걸어오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패군 장일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런 요란한 차림으로 다니는 이가 천하의 둘일 리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그 뒤를 따르는, 불길할 만큼 검붉은 홍의로 전신을 감싼 이들. 그들 사이에 붉은 장포를 휘날리는, 장신의 사내. 그 새하얀 얼굴이 섬뜩하게 눈에 박혔다.
잠시 넋을 놓았던 조웅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지시를 내렸다.
“문을 걸어 잠가라! 어서!”
“예! 예! 대공자님!”
끼이이익!
커다란 사해상단의 문이 재빨리 닫혔다.
쿵!
커다란 빗장이 내려지며 문이 단단히 잠겼다. 굳게 닫힌 문을 두 눈으로 확인한 조웅은 저도 모르게 양손을 모아 잡았다.
‘제발⋯⋯.’
“흐음.”
장일소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성도의 관도를 휘적휘적 걸었다. 사천성 최대의 도시로 천하에 유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런. 환대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한 박대잖니? 사천 사람들 인심이 이리 야박할 줄은 몰랐는데.”
피식 웃어 버린 장일소가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사천당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이 성도를 관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경로를 택한 이유는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알게 해야겠지. 지금 이곳에 누가 와 있는지. 지금부터 이곳을 지배할 이가 누구인지 말이다.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걸음을 내딛던 장일소에게 속삭이는 듯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장일소의 걸음이 천천히 멈췄다. 동시에 그를 따르던 이들도 일제히 멈춰 섰다.
“⋯⋯그래?”
그 자리에 멈춰 선 장일소의 고개가 아주 느릿하게 옆으로 돌아갔다. 시선이 멈춘 곳은, 사해상회(四海商會)라는 현판이 걸린 커다란 전각이었다.
장일소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피어났다.
콰앙!
“으, 으허엇!”
단단히 빗장 걸렸던 문이 화포에라도 격중당한 듯 단숨에 산산조각 났다. 사방으로 문의 파편이 비산했고, 땅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한차례 뒤흔들렸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조웅은 그러지 못했다. 겁을 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채 겁을 먹기도 전에 한 광경을 봐 버렸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대문 너머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용이 수놓인 화려한 장포를 입고 과장되어 보일 만큼 휘황찬란한 패물로 온몸을 꾸민 남자. 섬뜩할 만큼 흰 얼굴과 피처럼 붉은 입술이 눈에 꽂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웅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 사내의 두 눈이었다.
조웅은 사해상회의 대공자라는 신분 덕에 천하 곳곳을 종횡하며 살아왔다. 덕분에 세상의 온갖 희귀한 것들을 두 눈으로 보아 왔다.
하지만 그가 아는 어떤 것에 빗대어도 저 눈빛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뱀? 우습지도 않은 소리다. 가장 지독한 독사라 해도 저 눈빛을 본다면 오히려 겁을 집어먹고 말 것이다. 눈빛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미물이라 해도 말이다.
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 두 눈이 지금 조웅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장일소가 옅은 비음을 흘렸다. 그 작은 소리와 함께 일순간 멎었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웅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감각이었다.
조웅에게서 시선을 떼고 좌에서 우로, 숨막히도록 느리게 상회를 둘러본 장일소가 말했다.
“여기가⋯⋯ 화산오검, 조걸의 집이라고 하던데.”
이윽고 멈춘 장일소의 눈이 다시금 조웅에게로 가 닿았다.
“맞니?”
조웅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대답이 그의 목을 죌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령 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피할 만한 대답이 준비되었다 해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코앞에서 뱀을 마주해 버린 쥐처럼 전신이 얼어붙었다. 뒷덜미가 선뜩하고 모골이 송연했다.
바짝 굳은 조웅을 보며 장일소가 입꼬리를 올렸다.
“맞는 모양이구나.”
장일소는 탐색하듯 조웅을 살피더니 물었다.
“그럼 네가⋯⋯ 그 아이의 형제겠고?”
조웅의 목울대가 떨리듯 움직였다. 긴장으로 바짝 말라붙은 목은 마른침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조금 닮은 것도 같고. 흐음.”
장일소가 천천히 조웅을 향해 다가왔다.
저벅. 저벅.
여유가 넘치는 걸음걸이였다.
조웅은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공포라는 말도 무색하다. 설령 사신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조웅은 이렇게까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건 사실이나, 사람이라면 언젠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니까.
하지만 이 사내가 전해주는 느낌은 그런 것과 달랐다. 절로 숨이 막히고, 절로 몸이 조여 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고, 무엇을 감내하게 될지도 미지수다. 모든 게 그저 혼돈으로 이끌려 휩쓸리는 듯했다.
‘걸이는⋯⋯ 이런 이와 싸우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괴물과?
그때 조웅의 바로 앞에 도착한 장일소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굵은 몸으로 휘감은 먹이를 바라보는 뱀처럼.
“내가 누군지 아니?”
“⋯⋯.”
“대답해 보렴.”
조웅의 몸이 절로 덜덜 떨려 왔다.
“어서.”
“자, 장일소⋯⋯.”
“⋯⋯.”
“패, 패군⋯⋯. 패군 장일⋯소⋯⋯.”
“아는구나.”
장일소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또 알겠구나. 네 형제와 내가 꽤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걸 말이야.”
조웅의 뇌리에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부정해야 한다. 천륜이라 해도 이 관계를 부정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걸이는 이미 가문을 떠났다. 그와 우리의 인연은 이미 끊어졌다. 그는 동생이되 동생이 아니다. 그러니 패군이 우리에게 그 분노를 푸는 건 부당하고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은 결국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차마 동생을 부정할 수 없었던 조웅은 덜덜 떨어 대면서도 입을 꾹 닫은 채 침묵을 고수했다.
“호오?”
그런 그를 본 장일소가 속내를 대충 짐작하겠다는 듯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제란 좋은 것이지. 가족은 그래야 하고말고. 운명을 같이할 각오 정도는 있어야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니?”
바짝 다가선 장일소가 손을 들어 조웅의 목덜미를 가볍게 거머쥐었다. 손톱이 조웅의 목을 따끔하게 찔러 왔다.
커다란 손아귀가 그저 가볍게 조여지는 것만으로 조웅의 목은 썩은 짚단처럼 맥없이 떨어져 나가고 말 것이다. 그걸 신호로 이 상회에 있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끔찍한 운명의 갈림길에 직면한 조웅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질렸다.
장일소가 얼굴을 기울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조웅의 귓가에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러니⋯⋯.”
흡사 악마처럼 요사스럽고 단 목소리였다.
“안부 정도는 전해주렴.”
조웅의 눈이 절로 커졌다.
“내가 다녀갔다고 말이야. 알겠니?”
고개를 뒤로 뺀 장일소가 두 눈을 부릅뜬 채 굳은 조웅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대답은?”
조웅은 차마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장일소는 다시 한 발짝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착한 아이로구나.”
어안이 벙벙한 조웅을 보며 쿡쿡 웃은 그는 이내 한 치의 미련도 없다는 듯 획 몸을 돌렸다.
“열심히 일하려무나.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말이다. 하하하핫.”
친한 친우에게라도 인사하는 것처럼 머리 위로 손을 휘저은 장일소는 대문 밖으로 나가 제 무리를 이끌고 멀어져 갔다.
뭐에라도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보던 조웅은 마침내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에서 흘러내린 땀이 의복을 순식간에 축축하게 적셨다.
“대, 대공자님!”
뒤늦게 달려온 삼총관이 얼른 부축했지만, 조웅은 떨리는 손으로 밀어 내며 도움을 마다했다.
“⋯⋯괜찮소.”
조웅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대문 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장일소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