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화. 여기가 사천당가인가? (1)
당가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뇌격포(雷擊砲)는 어디 있느냐!”
“뇌, 뇌격포는 금용암기가 아닙니까? 가주의 명이 없이는 불출할 수 없습니다!”
“당가가 불바다가 되고 나서도 그딴 소리를 지껄일 셈이냐? 당장 열어라!”
“아, 알겠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금용암기고(禁用暗器庫)의 문이 열렸다. 최고의 암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당가의 장인들.
그런 장인들조차 위력이 너무 끔찍하기에 사람을 향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던 암기들이 수십 년 만에 밝은 빛이 쏟아지는 세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독고(天毒庫)도 열어라!”
“자, 장로님. 천독고는⋯⋯.”
“네놈이 내 손에 죽고 싶은 것이냐?”
가주의 허락이 없이는 그 문을 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당가에서 가장 중요한 독고의 문도 활짝 열렸다.
그 두 눈에 새파란 결의를 담은 이들이 지체함 없이 독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당가의 정화가 담긴 독병들을 그 소매에 쑤셔 박았다.
그 모습을 본 당벽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곳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사패련과 맞서 싸우는 건 헛된 발악에 지나지 않을 일이다. 일반적인 문파라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가다.’
그들은 당가이기에 싸울 수 있었다. 설령 무학을 모르는 아녀자의 손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천하무쌍의 고수를 죽일 수 있는 무기. 그런 무기들을 만들기 위해 매진해 온 당가이기에.
“장로들은 진(陣)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라!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당벽의 말을 들은 장로들이 가문 곳곳으로 달려 나간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당가 전체에 설치된 절진(絶陣)이 제대로 발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나서라! 아니, 싸울 수 없는 이들도 모두 나서라! 이건 당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당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목숨으로 당가를 지켜 내야 한다!”
당벽의 피맺힌 외침에 당이라는 성을 쓰는 이들은 모조리 달려 나왔다.
평생을 어두컴컴한 암실(暗室)에서 독물들을 관리하며 살던 이들도, 독을 연구하며 얻은 후유증으로 걸음걸이조차 올바르지 않은 이들도. 그리고 당이라는 성을 쓰되 진정 당가인으로는 인정받지 못해 온 당가의 여인들조차 그 소매를 독에 적시고, 그 손에 차가운 암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건 평생 손에서 망치를 놓지 않은 장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젊은 장인 중 하나의 물음에 나이 지긋한 이들이 씹어뱉듯 말했다.
“사패련 놈들이 쳐들어온다는군.”
“사, 사패련이 말입니까? 이런 때에?”
가주도 없다. 싸울 수 있는 이들도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사패련이 쳐들어온단 말인가?
“이미 청성과 아미가 당했다는구나. 다음은 우리 차례라지.”
“우리⋯⋯.”
젊은 장인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 그럼 달아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성과 아미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감당하겠습니까?”
“어디로 달아나게?”
“⋯⋯예?”
나이든 이 중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달아나면 살 수야 있겠지. 하지만 이곳이 사라진다. 우리가 평생을 바쳐 온 당가의 공방이.”
젊은 장인이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공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무너진 이 공방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건⋯⋯.”
이 공방에는 다른 공방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당가만의 기술이 모조리 녹아 있다. 그걸 바닥에서부터 다시 세운다?
“⋯⋯어렵겠죠.”
“그렇지.”
그들은 장인이기에 알 수 있다. 당가가 이룩해 온 수백 년의 기술이 모조리 집약되어 있는 이 공방을 다시 세운다는게 얼마나 지난할지.
어떤 것은 어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이미 기술은 실전되었지만, 물건은 남아 있기에 아직 사용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어찌 만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어도 이제는 재료를 구할 수조차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 공방을 무슨 수로 다시 세운다는 말인가?
이 공방이 무너진다는 것은 당가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당가의 공방에 평생을 바쳐 온 선조들의 모든 것이 그들의 대에 잿더미로 변한다는 것을 말한다.
용인할 수 있는가? 허락할 수 있는가?
“달아나도 된다.”
“예?”
“너처럼 젊은 놈들이야 살아야지. 하지만 우리는 살 만큼 살았어. 이 공방이 무너지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어.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나이든 이가 손을 뻗어 공방에 장식되어 있던 검을 움켜잡았다.
챙!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에서 서슬 퍼런 광채가 쏟아졌다. 한눈에 봐도 보통 명검이 아니다. 그 검을 빤히 바라보던 장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싸워야지. 헛되다 해도 싸워야지. 그게 당씨 성을 가진 이의 의무니까.”
“⋯⋯.”
“선조들도 그렇게 싸워서 당가를 지켜 왔을 거다. 이제는 우리 차례일 뿐.”
얼핏 담백하게까지 들리는 그 말에 젊은 장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으음?”
“저도 당가의 장인입니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도 어르신들보다야 한 살이라도 젊은 제가 더 잘 휘두르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망치도 작은 것밖에는 못 쓰는 분들이.”
“허허. 고얀 놈 하고는.”
젊은 장인이 손을 뻗어 조금 전에 완성한 비침(飛針) 더미를 움켜쥐었다.
“싸워야지요. 이 공방을 지켜 내는 일이라면 싸워야지요. 여기가 당가고, 이 공방이 당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가인이 어딜 갑니까. 당가인은 당가에 있어야 합니다.”
나이든 장인들이 따뜻한 눈으로 결심을 굳히는 젊은 장인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게 당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가시죠. 저쪽입니까?”
“먼저 가게나. 곧 뒤따라갈 터이니.”
“예!”
젊은 장인들이 우르르 공방 밖으로 달려나가자, 그들을 지켜보던 장인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걸음이 공방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카앙!
카앙!
일정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망치 소리.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미약하게 들리는 망치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공방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한 장인이 작은 화로 앞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수(神手) 어르신.”
카앙!
넌지시 건넨 말이 내려치는 망치 소리에 묻힌다.
“신수 어르신.”
다시 한번 불러 보았지만, 그래도 그 망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장인이 가만히 망치를 내려치는 노인을 바라보다 재차 입을 열었다.
“조부님.”
그제야 내리치는 망치 소리가 살짝 약해졌다.
“저희는 공방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조부님께서는 몸을 피하시는 게⋯⋯.”
카앙!
다시 커지는 망치 소리에 장인의 입이 닫혔다. 달아오른 금속 더미를 내리치는 작은 망치. 그 망치가 만들어 내는 붉은 불똥.
그런 노인을 말없이 지켜보던 장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눈은 제대로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흐릿한 그 눈은 과연 이 사람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를 의심케 한다.
그런 이가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겠는가? 아마 정신이 멀쩡했다 한들 노인은 공방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평생을 바쳐 온 모든 것이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
이 노인이야말로 당가의 혼이다. 그렇다면 온당히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뜻대로 하십시오. 조부님.”
깊이 고개를 숙인 장인이 몸을 돌렸다.
장인이 떠나고 홀로 남은 노인이 집게로 들어 올린 철을 이리저리 돌려 보고는 화로 안으로 쑤셔 박았다. 불똥이 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노인, 당조평의 흐릿한 눈이 타오르는 화로를 멍하니 응시했다.
- 조평아.
“⋯⋯.”
- 저 망할 새끼들은 결국 제가 만들어 낸 이름에 묻혀 죽을 거다. 뭐가 우선이고 뭐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머저리 놈들. 제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을 제 자신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놈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언젠가 네가 진짜 당가의 장인이 된다면 이런 것부터 바꿔야 한다. 알겠느냐?
‘할아버님.’
언젠가 암존께서 그에게 했던 말이다. 그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이다.
당조평이 집게를 잡아 달궈진 철을 화로에서 뽑아냈다.
‘내가 그러겠노라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것은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이 따뜻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당조평은 어찌했던가?
과연 할아버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지켜 냈던가? 아니면 그 스스로 할아버님이 욕하던 그런 이가 되어 살았던가?
카앙.
작은 망치가 붉게 달아오르는 철을 내리친다.
녹이고, 달구고, 식히고, 내리치고.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잡다한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가장 순수하고 온당한 것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그리 남긴 것들은 사람의 힘으로 더욱 강하게 만들어 낸다.
그것이 당가의 장인. 그가 평생토록 해 온 것.
카앙!
작은 망치가 달궈진 철을 내리친다.
카앙!
쉬지 않고 철을 내리치던 망치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진다. 힘없이 망치를 내린 당조평이 흐릿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당가의 공방.
그의 손길이 어리지 않은 곳이 없는 그의 모든 것.
그 공방을 말없이 지켜보던 당조평이 다시 망치를 들었다.
카앙!
규칙적인 망치 소리. 그럼에도 이상하게 금세 끊어질 것처럼 느껴지는 망치 소리가 작게, 또 작게 울려 퍼졌다.
“모든 당가인들이 원주님의 명에 따라 항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당벽이 슬쩍 당외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원주님. 원주님께서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복권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주가 반대한다 한들, 가문의 모두가 원주님을 지지할 테니까요.”
당외는 무학을 잃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과거의 위치를 되찾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상황이 달랐다. 만약 당외가 남은 이들을 지휘하여 사패련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그가 무학을 잃었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원로원의 재창설도 꿈은 아니었⋯⋯.
“원주.”
“⋯⋯예?”
느닷없이 날아드는 당외의 목소리에 당벽이 그를 바라본다.
“원주라 부르지 말게. 나는 원주가 아니네.”
“⋯⋯예. 대장로님.”
“운 좋게 저들을 막아 낼 수 있다면, 나는 다시 당가의 골방에 틀어박힐 걸세.”
당벽이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로님! 대장로님께서 당가를 구하시는 것인데.”
“자네는 내가 지금 그깟 권력 때문에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외의 얼굴에 서슬 퍼런 기색이 어렸다.
“권력?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당가일세. 그 권력조차 당가에서 나오는 것이야. 내가 가주를 못마땅히 여긴 것도 그가 당가를 이끌 그릇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일 뿐, 내 사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네.”
“대장로님⋯⋯.”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다른 모두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당가를 지켜 내는 것. 내가 하려는 것은 그저 그것뿐일세. 그 뒤는 나 같은 늙은이의 몫이 아니야. 이제는 못 미더워도 그저 인정할 수밖에.”
당외가 눈을 살짝 감았다.
여전히 그는 당군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말보다는 차라리 원수처럼 여긴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당군악의 관계 같은 건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사천당가라는 이름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지켜 내야지. 어떻게든 지켜 내야지. 나는 당가인이니까. 그게 당씨 성으로 평생을 살아 온 이의 의무이고 신념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그 순간이었다.
“장로님! 가주께서 보내온 전갈입니다!”
“뭐라?”
당벽이 고개를 획 하니 돌렸다.
“초, 총관께 온 것입니다만 이걸⋯⋯.”
“이리 가지고 오너라! 당장!”
“예! 여기!”
안으로 뛰쳐 들어온 이가 품 안에서 녹빛의 서찰을 꺼내 내민다.
“이리 다오.”
당외가 손을 뻗는 당벽을 만류하고는 제 스스로 서찰을 움켜잡는다. 피봉을 뜯어 안에 든 종이를 꺼내 읽은 당외의 고개가 느릿하게 내저어졌다.
“뭐라 적혀 있는지 제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당벽의 말에 당외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서찰을 보여 주었다.
“가문을 버리고 달아나라 하시는군.”
“⋯⋯예?”
당벽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당외를 바라본다.
“가주께서는 여전히 여리시군. 이러니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지.”
당외가 손에 든 서찰을 뻗어 등잔 위로 가져갔다. 불이 붙은 서찰이 천천히 그을리며 타올랐다.
“그 와중에 사해상단에도 소식을 전하라니⋯⋯. 가주께서는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고개를 내저은 당외가 타오르는 서찰을 슬며시 놓았다. 가주의 명을 담은 종이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진다.
“곧 적들이 올 터이니 어서 준비를 마치게. 오늘은 긴 날이 될 것이니.”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당벽이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가자 당외가 쿨럭이며 침상에 걸터앉는다.
‘⋯⋯당가.’
당가만은 무너지게 두지 않는다.
그는 실패자로 남는 한이 있어도 당가의 실패자로 남을 것이다. 그게 이 사천당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당외의 마지막 각오였다.
‘선조들이시여. 지켜보소서.’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당가인이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