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3화. 더없이 훌륭했다. (3)
맹렬하게 날아든 백색의 검기가 만인방도들의 한복판으로 쏟아졌다.
콰앙! 콰아아앙! 콰아앙!
귀청을 찢어 버릴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날아든 검기들이 연이어 폭발을 일으킨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폭발에 휩쓸린 이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쿠, 쿨럭!”
물론 모두가 그 폭발에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폭발의 여파에도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쓰러진 채 신음하던 그들을 맞이한 것은 푸른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쏟아져 내리는 독침의 비였다.
“으, 으아아아악!”
쏴아아아아아!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머리카락보다 가는 침이 치명적인 절독을 머금고 연약한 피부를 파고든다.
투두둑!
가는 침이 피부를 뚫어 내는 소리. 그 소리를 자신의 귀가 아닌 몸으로 들은 이들은 순식간에 말로 다 하지 못할 공포에 휩싸였다.
“아, 안 돼!”
기겁한 이들이 침이 박힌 곳에서 어떻게든 침을 뽑아내려 했지만, 이미 상처가 난 부위는 시커멓게 물들어 버린 뒤였다.
사천당가라는 네 글자를 공포의 상징으로 만든 당가의 독이 그들의 몸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미약한 이질감에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변한 감각이 이내 참을 수 없는 쓰라림으로 화해 퍼져 나간다.
“끄⋯⋯ 끄르르륵⋯⋯.”
만인방도들이 그 자리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들의 칠공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입에선 검게 물든 피거품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피, 피해라! 당가다! 저 빌어먹을 놈들이 독을 쓴다!”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며 만인방도들의 눈에 공포가 차오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런 지독한 독을 쓰는 이들이 어떻게 정파라 불릴 수 있다는 말인가? 사파조차도 저런 악독한 독은 쓰지 않는데, 아니, 쓸 수가 없는데.
“당황하지 마라! 그래 봐야 침에 불과하다! 막아 내면 된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침 하나하나에 실리는 힘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당가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히이야아아압!”
찢어지는 듯한 괴성, 사람의 고함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노호성을 토해 낸 일련의 무리들이 만인방도들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콰아아아앙!
그 어깨에 격중된 이들이 피를 뿌리며 땅을 뒹굴었다.
선두에 선 이들이 강력한 힘으로 막아서는 이들을 후려치고, 그들의 어깨를 타 넘은 이들이 표범처럼 달려들어 짐승 발톱의 형태를 한 기형병기를 휘둘러 댄다.
“야, 야수궁!”
“이 더러운 이민족 놈들이!”
그 몸을 둘러싼 짐승 가죽만으로도 그 정체성을 확고히 보여 주고 있는 남만야수궁의 궁도들이 성난 멧돼지처럼 만인방도들에게 돌격했다.
“으하하하하하핫! 이 사파 놈들! 그동안 잘도 우리를 무시했겠다!”
“짓밟아라! 철저하게!”
야수궁이 격렬하게 뛰쳐나간 자리는 서늘한 살기를 내뿜는 빙궁의 검수들이 지켰다.
“진형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오는 이들을 철저히 막아 내라. 중요한 것은 궁주님의 안전과 화산검협의 생환이다. 경거망동하는 이는 내 검에 죽는다!”
“예!”
타오르는 불처럼 날뛰는 야수궁도와 북해의 얼음처럼 차가운 빙궁의 검수들. 절대 섞일 수 없는 상반된 기질을 가진 두 문파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 힘을 합친다.
“구, 군사!”
“밀립니다! 군사! 포위가 무너집니다!”
호가명이 말없이 주먹을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만인방이 대단한 문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강남을 지배하고 있는 사패련의 네 문파 중에서도 수장 격에 가까운 문파가 바로 만인방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만인방은 사패련에 소속된 일개 문파에 불과하다. 그 하나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천하에서 손꼽는 문파들의 연합과 홀로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호가명이 이끌고 있는 이들은 만인방 내에서 ‘주력’이라 부를 만한 이들조차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군사! 명령을!”
호가명이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앞에 있었다. 바로 코앞에 매화검귀의 목이 있었다. 호흡 한 번 내쉴 시간의 여유만 있었어도 그 목을 잘라 낼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이 순간에⋯⋯.”
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다는 말인가? 저 거지 놈들의 눈은 진작에 다 제거를 했을 텐데.
이건 호가명의 계산에는 없었던 일이다. 아니, 어쩌면 저 련주의 계산에조차 없었던 일일 것이다.
호가명으로서는 하늘이 그들을 버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냉정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호가명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군사! 어떤 명이라도 내려야 합니다!”
부관들의 다급함이 닿았기 때문일까? 호가명의 입에서 어쩔 수 없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병력을⋯⋯.”
호가명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다. 결코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말. 하지만 지금 그가 내릴 명령은 하나밖에 없었다.
“병력을 물려라.”
“구, 군사!”
“이행해라!”
“⋯⋯예.”
부관들에게서 힘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 대답을 들은 호가명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이나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야 눈을 뜬 호가명이 증오에 찬 눈빛으로 천우맹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이제는 방도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만인방으로 저들과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을 끌수록 피해만 늘어날 뿐이다. 사기라도 남아 있다면 모를까, 눈앞에서 매화검귀를 놓친 순간부터 만인방의 사기는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을 모두 희생시켜서라도 매화검귀를 죽일 수 있다면 도박을 해 보겠지만⋯⋯.
‘화산.’
저 증오스러운 화산 놈들은 매화검귀를 둘러싼 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매화검귀의 목은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그 눈빛을 본 호가명의 입에서 어찌할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도리가 없다. 더는.
“병력을 물리라지 않느냐!”
“예! 군사!”
호가명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우우우웅!
당군악의 턱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연이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력을 모조리 소진해 버린 듯한 얼굴.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여전히 가공할 집중력을 유지한 채 청명에게로 향해 있었다.
청명의 몸이 순식간에 새하얀 서리로 뒤덮였다가, 이내 붉게 달아오르기를 반복한다.
지독한 음기와 지독한 양기. 청명의 몸 안에서 날뛰는 두 기운을 전력을 다해 제어하던 당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주님! 더, 더는!”
그 비명에 어린 절박함을 고스란히 느꼈을 텐데도, 당군악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가주님! 기혈이 모조리 터질 겁니다! 더는 안 됩니다!”
당패의 목소리가 더할 수 없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당군악은 굳은 얼굴로 청명의 상세를 살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버티지 못한다. 아무리 청명이라고 해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물론 청명은 감히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무인이지만, 대단한 건 그의 검이고 그의 정신이지 그의 육체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청명을 살피던 당군악이 그 순간 벼락같이 품 안으로 손을 넣어 새하얀 자개 병을 꺼내 마개를 열어젖혔다.
‘독?’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향만으로도 절독 중의 절독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가, 가주님! 아악! 무슨 짓입니까!”
당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당군악이 열어젖힌 독 병을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은 것이다.
당군악의 피부가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당군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손을 뻗어 청명의 가슴 한중간에 제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우우우우웅!
그의 장포가 미칠 듯이 부풀어 오르더니, 손끝에서 보랏빛의 기운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 기운들이 곧 청명의 가슴 안으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패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다.
‘화, 환자에게 독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거린가?
“가주님! 도장이 죽습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당군악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하나 그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비명을 내지르는 당패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말 한마디 없이 안색을 굳히고 있는 현종이었다.
“괜찮다.”
“이게 괜찮을 리가!”
“기운이 충돌한다고 죽지는 않아. 죽음이란 육체가 더는 몸 안의 기운을 잡아 둘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당패가 떨리는 눈으로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당군악의 두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 몸 안에 기운을 잡아 둘 수만 있다면 죽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 순간, 청명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달아오르고 얼어붙기를 반복하던 몸에 뚜렷한 경계가 생겨난다. 위쪽은 은은한 보랏빛으로, 좌측 아래는 붉은 열기로, 우측 아래는 흰 음기로 뒤덮인다.
“아⋯⋯.”
“독기와 양기, 음기가 서로를 견제해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면, 그 균형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살 수 있다.”
당패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그 뒤는 어떻게 하고요? 균형이 무너지면요?”
“⋯⋯.”
당군악은 침묵했지만, 당패는 그 침묵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이런 극단적인 치료는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 이건 치료라기보다 강제적인 연명에 지나지 않는다. 까딱했다가는 살 사람조차 죽게 만들 극단적인 방법을 치료라 부를 수 있겠는가?
“손을 떼십시오!”
당군악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자, 미칠 듯이 청명의 안으로 기운을 불어넣던 맹소와 설소백, 한이명이 탈진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독 기운을 마저 밀어 넣은 당군악도 청명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난다.
우우우웅.
청명의 안에서 남은 기운들이 날뛰어 댄다. 그러나 당군악의 눈에는 보였다. 그 기운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균형이지만, 세심히 살핀다면⋯⋯.
“빌어먹을!”
당군악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주입한 독 기운과 빙궁의 음기가 맹소가 불어 넣은 양기를 밀어 대고 있었다.
그의 독기와 빙궁의 음기에 비해 맹소의 양기는 정순함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당군악이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영약! 양기를 담은 영약을 가지신 분 있소이까!”
그 말에 모두가 격한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자소단이 있소!”
“자소단으로는 안 됩니다! 자소단은 양강계열의 영약이 아니잖습니까!”
“그, 그럼⋯⋯.”
“아, 안 돼.”
당군악의 얼굴에 절망이 어린다. 이대로라면 균형이 무너져 청명의 몸이 그대로 터져 버릴 것이다.
“난 아직 양기를 짜낼 수 있소!”
맹소가 악을 써 댔지만, 당군악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양기의 양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더 정순한 양강지력이 필요하다.
당군악의 얼굴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당가주!”
맹소와 현종의 입에서 절박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때였다.
휘익!
당군악이 손을 들어 저를 향해 날아드는 무언가를 받아들었다. 받자마자 손에서 느껴지는 양기에 당군악의 눈이 크게 떠진다.
“해남의 조양단(潮陽團)이오. 양기라면 해남도 어디에 뒤지지 않소. 그거라면 화산검협을 살릴 수 있을 거요.”
“금 장문인?”
어느새 합류한 해남 장문인 금양백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장문인! 어째서 장문인께서 드시지 않고!”
뒤이어 달려온 해남의 장로들이 숨넘어가는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당군악의 눈에 금양백의 가슴을 가른 긴 상처가 들어온다. 가슴을 지나 단전까지 닿은 긴 상처였다.
“장문인⋯⋯.”
금양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린다.
“내 상처는 영약으로 어찌할 만한 게 아니오.”
“⋯⋯.”
“뭐 하고 계시오! 당가주! 은인께서 위급하시지 않소!”
그 준엄한 질책에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들린 단환을 곧장 청명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 흐르는 단환의 기운을 몸 안으로 인도한 당군악이 전력을 다해 진기를 도인한다.
우우우우우웅!
청명의 몸이 뜨거운 열기로 휩싸였다.
‘좋아!’
이 정도 양기면 된다! 이 정도면 무너진 균형을 되잡을 수 있다.
그리고 이내.
우우우웅.
“됐다!”
청명의 몸 안 기운들이 끝내 균형을 이뤄 낸다. 서로를 경계하며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기운들이 그 자리에서 똬리를 틀었다.
“가주님! 청명이는?”
당군악이 청명을 번쩍 안아 들고는 소리쳤다.
“일단 숨은 붙여 놨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강북으로 가야 합니다.”
당군악에게 안긴 청명을 본 현종이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화산의 제자들은 들어라!”
“예! 태상 장문인!”
“길을 연다. 앞을 막는 것은 그 무엇도 용서치 않고 베어라! 화산의 검이 얼마나 비정할 수 있는지 똑똑히 알려 주어라!”
“명을 받듭니다!”
살기 가득한 화산의 검이 다시 떨쳐 진다.
화산의 검수들이 전력으로 달려나가는 순간, 현종이 손을 뻗어 백천을 부축한다.
“기대거라.”
“태, 태상 장문인. 제 발로 갈 수⋯⋯.”
“백천아.”
“⋯⋯.”
당황한 백천의 귓가에 부드러운 현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생 많았다. 이제 돌아가자꾸나.”
백천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현종의 얼굴이 보였다. 울컥한 듯 입술을 깨문 백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문인.”
부상자들을 둘러업은 이들이 화산의 검으로 열어 낸 길을 향해 달렸다.
진득한 피로 뒤덮였지만, 더는 절망적이지 않은 그 길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