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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02화 (1,403/1,567)

1402화. 더없이 훌륭했다. (2)

“지켜라! 목숨을 걸고 지켜!”

거친 목소리가 전장을 뒤덮었다.

모두가 급류처럼 일거에 휘몰아치며, 포위당한 오검과 그 일행을 둘러쌌다. 화산의 제자들도, 당가의 가솔들도, 뒤이어 달려온 남궁세가의 검수들마저 적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밀어 냈다.

“물러서라, 사파의 개들아!”

천우맹이 몸을 던져 만들어 낸 공간, 그 공간을 향해 남은 화산의 제자들이 박차고 들어섰다.

“사형!”

“빌어먹을, 사숙!”

엉망진창이 된 사형제들의 모습을 본 화산 제자들의 눈에 지독한 증오가 들끓었다.

그 화를 못 이겨 곧장 몸을 돌려 적들을 향해 달려가려던 그들을 웅혼하게 터져 나온 운암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자리를 지켜라!”

“자, 장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을 노리는 게 아니다! 네 사형제들을 지켜라. 저들 중 누구도 이곳을 침범하지 못하게 해라!”

“예!”

화산의 제자들이 두 눈에 살기를 머금고 청명과 그 일행을 노리던 만인방도들을 밀어 냈다. 그들이 쏟아낸 검기에 당황한 만인방도들은 손 쓸 길을 모르고 뒤로 연거푸 밀려났다.

화산을 비롯한 천우맹도들이 적들은 결코 침범하지 못할 단단한 벽을 만들어 냈다.

“윤종아!”

한편 벼락처럼 달려왔던 현상은 윤종의 앞에서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연실색한 현상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윤종의 맥을 짚으려는 순간, 윤종이 퍼뜩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을 힘겹게 가리켰다.

“장로님⋯⋯. 저보다 청명이, 청명이를⋯⋯.”

“야, 이놈아! 지금 누가 누굴⋯⋯!”

“장로님, 어서 청명이를⋯⋯.”

현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 백천이 제 품에 안고 있던 청명이를 내밀었다.

“장로님⋯⋯.”

“⋯⋯.”

“제 기운이⋯⋯ 청명이 놈을⋯⋯.”

말이 이어지지 않고 뜨문뜨문했지만, 현상은 곧장 그 말뜻을 알아챘다.

하지만 차마 청명을 받아 들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에 손을 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상처를 입지 않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 대체 어찌 손을 댄단 말인가?

“비켜라.”

“자, 장문인. 청명이가⋯⋯.”

“정신 차려라!”

그때 현종이 현상을 밀어 내고 청명을 받아 들었다. 그의 옷자락이 청명이 흘린 피로 순식간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현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청명을 안고 그의 복부에 웅혼한 내력을 밀어 넣었다.

“괘, 괜찮습니까? 녀석은 괜찮은 겁니까?”

현상이 다급하게 묻자, 현종은 대답 대신 얼굴을 굳히며 외쳤다.

“여력이 있는 자들은 부상자들을 돌봐라! 어서!”

“⋯⋯예?”

“뭣들 하고 있느냐! 부상을 당한 이가 청명이 하나더냐?”

“예? 아, 예! 태상장문인!”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물론 가장 상태가 심각한 건 청명이지만, 다른 이들도 모두 심각하다는 말로도 다 못 할 부상을 입었다.

여력이 되는 이들이 달려와 진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현상 역시 윤종을 붙들고 그 등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자, 장문인.”

“말하지 말거라, 걸아!”

운암이 조걸의 등에 댄 손으로 진기를 불어넣었다.

“저, 저보다는 다른 이들을⋯⋯.”

“말하지 말거라!”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사숙부터⋯⋯.”

“그 입 다물라니까!”

운암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런 와중에도 다른 이들을 챙길 정신이 있다는 말인가?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어찌 이리도 제 몸을 돌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가장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이가 있었다.

“소소야! 이러면 안 된다!”

“놔요!”

“소소야! 네 부상도 심각하다!”

“안 죽으니까 놓으라고요!”

당소소는 자신을 치료하려는 이들을 한사코 뿌리치며 현종이 안고 있는 청명에게 달라붙었다. 현종이 말릴 새도 없이 청명의 손목을 움켜잡고 맥문을 살핀 당소소가 격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버님은? 당가주님은 어디에 계세요?”

“적들의 접근을 막고 계신다. 곧 오실 거다.”

“빨리! 한시라도 빨리요! 태상장문인! 사형이 죽는다고요!”

현종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외쳤다.

“운검! 당가주님을 모셔 와라! 당장!”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한 줄기 녹빛 섬광이 그들의 앞에 홀연히 안착했다.

“아버님!”

“이리로.”

당군악이 청명의 몸을 빼앗듯이 안아 들었다. 굳은 얼굴로 상태를 살핀 당군악의 얼굴이 순간 희게 질렸다. 태산이 무너져도 변치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냉정한 표정이 무너지니 그 어떤 고함이나 절규보다 더 섬뜩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입술을 짓깨문 당군악은 섬전 같은 손길로 청명을 바르게 뉘었다. 품 안에서 작은 함을 꺼내 열어젖히고 십여 개의 커다란 금침을 뽑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접근시키지 마십시오, 절대!”

굳이 현종이 무언가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말이 들린 순간 화산 제자들의 기세가 일변했다. 서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이들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청명을 지키려 드는 바람에 오히려 그들을 말려야 했다.

“소소! 패! 도와라!”

“예!”

“당가주님. 소소도⋯⋯.”

“관여하지 말고 물러나!”

당가주를 말리려던 백상은 그 살기까지 어린 일갈에 순간 희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당패!”

“예, 가주님!”

당패가 제게 진기를 밀어 넣는 이를 밀며 몸을 날렸다. 그가 청명의 반대쪽에 들러붙는 순간, 당군악이 뽑아낸 침에 공력을 밀어 넣었다.

우우우우웅!

손에 들린 금침이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당군악의 장포 자락이 공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화산의 제자들마저 순간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그 기파를 이기지 못한 당소소가 뒤로 밀려나려는 순간, 현종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 안으로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당군악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금침은 살아 있는 잉어처럼 펄떡이다가 이내 잠잠해져 갔다. 미세하게 이어진 진동이 마침내 완전히 멈춘 순간, 당군악이 벼락처럼 금침을 청명의 목에 찔러 넣었다.

청명의 몸이 그 자리에서 파드득 튕겨 올랐다. 그 몸을 꽉 내리누르며 당군악이 외쳤다.

“독비(犢鼻), 중완(中脘), 수구(水溝)!”

“예!”

당패와 당소소가 당군악이 지시한 혈자리를 때렸다.

“수구혈 삼 푼 더!”

“아, 아버님. 사형의 몸이⋯⋯.”

“시키는 대로 해라!”

“예!”

당소소는 이를 악물고 당군악이 지시한 혈을 강타했다. 그 순간 청명의 입에서 검게 죽은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우웅!

또 하나의 대침이 청명의 가슴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긴 대침이 모조리 몸 안으로 박히며 자취를 감추었다.

“백회(百会), 거궐(巨闕), 충양(衝陽)!”

“예!”

당가주 당군악은 절대의 영역에 발을 들인 무인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얼굴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가 이 시침술에 얼마나 많은 심력과 공력을 소모하고 있는지를 실감케 하는 광경이었다.

우우우우우웅!

당군악이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침에 공력을 불어넣었다. 갑작스럽게 소모되는 내력의 여파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두 개의 침 중 마지막 침이 청명의 정수리 한중간을 파고들었다.

“사, 사람 머리에 저래도 되는 겁니까?”

결국 참지 못한 누군가가 외치자 당소소가 크게 답했다.

“침이 아니에요!”

“⋯⋯으, 으응?”

더는 말할 여력도 없었던 그녀는 대답을 포기하고 청명의 손목을 잡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지금 당군악이 사용한 금침은 실제로는 침이 아니다. 당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것들을 모아 정제해 낸 영약이다. 하나하나가 돈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당가에서는 환혼대라금침(還魂大羅金針)이라 부르는 것. 이는 오직 당가의 가주만이 지니는 것이 허락되는 당가의 가보였다.

다시 말해, 지금 당군악은 당가인이 아닌 이에게 당가가 대대로 보유해 왔던 가보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자라.”

당군악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빙궁! 빙궁의 장로를 이리로! 야수궁주님도! 당장!”

“운암! 현상!”

“예! 장문인!”

“길을 열어라! 빙궁과 야수궁을 당장 이리로! 어서!”

현상과 운암이 결의에 찬 얼굴로 달려 나갔다. 현종은 청명의 단전에 손을 대고 진기를 도인하는 당군악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당가주님, 청명이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살 수 있는 겁니까?”

당군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종은 그 침묵을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가주는 지금 대답할 여력마저 모조리 끌어모아 청명을 돌보고 있다. 그건 반드시 살려 내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를 내보이는 것은 당군악뿐만이 아니었다.

“비켜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콰아아아아앙!

야수궁주 맹소가 십여 명의 만인방도들을 일격에 쳐 날리고 그들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화산검협은 어디에 있소!”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그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로 빙궁 사람들도 달려 들어왔다.

“궁주님!”

“한 총관, 제가 아닙니다! 저기를!”

설소백이 고개를 내저으며 외쳤다. 맹소와 한이명은 상황을 파악한 즉시 전력으로 당군악에게로 다가갔다.

“당가주님!”

“총관!”

당군악이 고개를 획 돌려 한이명을 바라보았다.

“빙궁에서 가장 음한지기에 능통한 이가 필요합니다!”

“예? 그, 그건⋯⋯.”

한이명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어렸다. 빙궁에서 가장 강력한 음한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는 당연히 빙궁주다. 빙궁에서 가장 강력한 빙공은 오직 빙궁주만이 익힐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설소백은 아직 그 모든 빙공에 능통하지 못했다.

“제, 제가 아니면 궁주십니다만.”

“그럼 둘 모두 오시오!”

“예?”

당군악이 고개를 획 돌려 야수궁주를 바라본다.

“궁주! 열양기공을 사용하실 수 있으시지요?”

“그, 그건 남해태양궁의 특기인데, 나는⋯⋯.”

“하실 수 있습니까?”

맹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해야만 하는 일이오? 화산검협을 살리려면?”

“반드시!”

맹소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야지! 내가 타 죽는 한이 있어도 뽑아내겠소!”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말했다.

“화산검협의 양쪽에서 음한기공과 열양기공을 밀어 넣어 주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서.”

“다, 당가주? 그게 무슨?”

순간 맹소와 한이명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두 가지 기운은 서로 상극이다. 그런 두 기운이 몸 안에서 충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그들은 각 기운을 다룰 줄 알기에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무도 잘 알았다. 눈앞의 세 사람이 머뭇거리자 당군악이 벌컥 소리쳤다.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당군악은 굳은 얼굴로 확신을 담아 말했다.

“버틸 겁니다.”

“⋯⋯.”

“화산검협이라면, 다른 이면 몰라도 화산검협이라면 반드시 버텨 낼 겁니다!”

맹소와 설소백, 그리고 한이명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청명에게로 향했다.

까딱하면 그들의 손으로 청명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단을 내리기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설소백이 청명의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구, 궁주!”

“하겠습니다!”

설소백이 이를 악물었다.

“도장이시라면 버텨 낼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청명 도장이시니까요!”

설소백의 두 눈에 확고한 믿음이 어렸다. 그 눈을 본 맹소와 한이명도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명의 손을 움켜잡았다.

“누구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당부의 말을 하려던 당군악이 입을 다물었다.

이미 그가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는 주위를 둘러싼 화산 제자들의 등뿐이었다. 그 등에 어려 있는 결의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군악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필코 살려 낸다.’

그가 잡고 있는 건 천우맹의 모든 것. 그들이 쫓아야 할 것을 알려 주는 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들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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