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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99화 (1,400/1,567)

1399화.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4)

“마, 막⋯⋯.”

파아아앗!

극한의 쾌검이 비명을 내지르려는 이의 입에 쑤셔박혔다. 단번에 한 사람의 숨을 끊어 놓은 검은 독 오른 뱀처럼 다음 적의 심장에 박혔다.

그야말로 빛살. 알아도 막을 수 없고, 보고도 대응할 수 없다.

“조걸이다!”

“이, 일검분광(一劍分光)!”

“매화오검이다!”

선두에 선 이를 알아본 적들이 고함쳤다. 그 고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검이 여지없이 또 하나를 고혼으로 만들었다.

“무, 물러나라! 거리를 벌려!”

만인방도들 역시 전투에 있어선 결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쾌검에 대항하는 법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검을 피한 이들을 맞이한 건, 허공을 격하며 날아드는 황금빛 권력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맹렬하기 그지없는 권력이 물러나는 이들의 가운데서 폭발했다. 그 여파에 곤죽이 되어 버린 이들의 시신은 흡사 아이가 걷어찬 공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한 사람이 강하했다.

사아아아아악!

무엇이 먼저였을까?

비단폭을 명검으로 베어 내는 듯한 소리? 아니면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붉은빛 검광? 그게 아니면 허공으로 솟구치는, 누군가의 잘려 나간 머리?

선후를 구분하기야 어려워도, 그 광경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야 너무도 명료했다. 비조처럼 강하한 유이설이 곧장 다시 땅을 박차며 앞으로 쇄도했다.

비행하는 제비처럼 자세를 낮춘 그녀는 반원형의 검기를 줄기줄기 뿜었다.

“으아아아악!”

검기에 몸을 베인 이들은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 댔다.

그들을 정말 공포로 밀어 넣은 것은 잘려서 튕겨 오르는 제 팔도, 내장을 쏟아내는 제 배도 아니었다.

차가운 쇠를 굳혀 조각한 듯한 얼굴과 차가운 얼음이 들끓는 듯한 지독한 살기. 눈앞의 검수에게선 표현하기 힘든 부조화가 느껴졌다. 이게 그녀를 상대하는 이들로 하여금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서걱!

또 하나의 적을 벤 유이설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뒤따르는 이들을 넘어, 후방에 있는 백천에게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백천이 안고 있는 청명에게로.

그의 상태를 재차 확인한 그녀는 원독에 찬 눈빛으로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파아아아앗!

살기가 뭉쳐 든 듯한 지독한 검기가 작렬했다.

본디 그녀의 검은 효율의 극한을 추구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검은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위력만을 일구었다. 한순간이라도 더 빨리 길을 내기 위해서.

유이설의 검기가 채 사그라들기 전에 남궁도위의 검기가 작렬하고, 그 위를 당패의 비도가 수놓는다.

모든 것을 내던지는 공격 앞에, 철옹성 같던 만인방의 포위망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켜라, 이 개자식들아!”

콰아아아아앙!

때마침 혜연이 날린 권력이 그들이 열어 내는 길 앞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뚜, 뚫립니다! 막지 못합니다! 군사!”

호가명은 펼쳐지는 광경을 굳은 얼굴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콰아아아앙!

권력이 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막아서던 이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물 샐 틈 없는 포위망이 강제로 비틀리고, 단단한 철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저들은 지금 저렇게 지독히 지친 상태로도 포위를 강제로 비틀며 뜯어 내고 있는 것이다. 호가명은 생각했다.

‘⋯⋯지긋지긋하군.’

대체 이 꼴을 몇 번이나 겪어야 하는 걸까?

그가 장일소를 따라 만인방에 투신한 이후로 그를 이토록 무력하게 한 이들은 없었다.

물론 그라고 항상 성공하고 항상 상대를 이겨 왔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지금까지 그가 겪어 왔던 일들과 궤가 달랐다. 지금까지는⋯⋯. 그래, 지금까지는 그 이유가 명확했다.

매화검귀.

호가명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가 존재하는 한 호가명의 모든 계략은 무의미해지고, 전술은 전술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그렇기에 그 하나만을 철저히 궁지로 몰아넣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병법의 상리에서 벗어난다고 힐난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략은 분명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고, 저 악마 같은 이를 사선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니 이제는 끝이 났어야 한다. 매화검귀가 의식을 잃는 순간 이 지독한 싸움은 마침내 종식을 고했어야 한다.

한데⋯⋯ 왜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가능한 변수는 모조리 제거했을 텐데?

오판이 있었는가? 아니, 그에게 오판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상대를 얕잡아 보는 실수 따위는 단 한 번도 저지른 적 없었다.

심지어 호가명은 적들이 포위를 뚫고 진입할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건 오직 하나.

포위를 뚫는 것만으로 모든 힘을 소진하고 이곳에서 지리멸렬해야 할 이들이 그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힘으로 이 포위를 부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마치⋯⋯.

으드득.

호가명이 이를 갈아붙였다.

‘말도 안 돼.’

저들은 매화검귀가 될 수 없다. 천하에 그런 이가 몇이나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군사!”

자신을 재차 간절히 부르는 부관의 목소리에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호가명이 떨리는 손끝을 꽉 말아 쥐었다.

“⋯⋯침착해라.”

“하지만 지금⋯⋯!”

“침착하라 했을 텐데?”

부관들의 소요(騷擾)가 잦아들었다. 호가명은 차가운 눈으로 상황을 냉정히 분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직이 말했다.

“앞을 열어 줘라.”

“예? 그게 무슨⋯⋯!”

부관들의 시선이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호가명에게로 집중되었다. 앞을 열어 주라는 건 포위를 풀라는 의미다.

기세를 보았을 때, 한번 놓아 준 뒤 다시 이들을 이렇게 포위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놓아주는 건, 지금껏 만인방도들이 치른 희생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구, 군사! 침착하셔야 합니다!”

“내가 흥분한 걸로 보이는가?”

부관들은 떨리는 눈으로 호가명을 주시했다. 그 시선의 한중간에서 호가명은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놈들의 앞을 막는 건 오히려 기세를 올려 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노려야 할 건 오히려⋯⋯.”

호가명의 눈빛이 한곳에 꽂혔다.

“뒤다.”

그의 칼날 같은 시선이 백천이 안고 있는 청명을 정확히 응시했다.

인정한다. 저들은 이 순간 그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그게 대체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부정하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만능이 된 것은 아니다. 저들의 간절함이 오히려 약점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으니까.

“다른 놈들은 무시하고 철저하게 매화검귀 하나만 노린다.”

부관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당장!”

“예!”

부관들이 일사불란하게 사방으로 명을 내렸다. 분주한 가운데, 호가명의 어둑한 시선은 의식 잃은 청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게 네가 보고 있던 미래였나, 매화검귀?’

그러니 제 죽음까지 불사할 수 있는 건가? 언젠가는 저들이 자신이 했던 것들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독한 과신이다.

세상에 장일소는 둘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청명이 둘일 수도 없다. 그런 이들은 누군가 키워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만이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비웃음은 나오질 않았다.

부정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매화검귀가 그리던 미래의 편린을 이 순간 호가명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호가명은 아랫입술을 짓깨물었다.

‘어차피 여기서 끝이다.’

그런 미래 따위는 오지 않는다. 아니, 그런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사실마저도 오늘 사라질 것이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느껴진다.

파아아앗!

적을 베어 내는 감각이 손끝이 아닌 검 끝에서 느껴졌다. 다소 이상한 말이지만, 그 말이 아니면 지금의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쇄애애애액!

섬전처럼 쇄도한 검이 적의 피부를 꿰뚫고, 그 살과 혈관을 갈라 내며 이윽고 뼈까지 끊어 내는 감각이 검 끝에서 생생히 느껴졌다.

검과 손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느낌.

검의 끝과 손의 끝을 애써 구분해 내야 할 것만 같은, 대단한 일체감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붕괴된다. 세상을 구분 짓던 경계가 흐려진다. 그 안에 존재하는 건 오직 검과 자신뿐이었다. 아니, 검조차 사라지고 자신만이 존재한다.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일체감이 그보다 더 초월적으로 찾아왔다. 이 속으로 뛰어든다면, 분명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걸은 자신을 찾아온 경지⋯⋯. 아니, 이미 자신이 발을 들였음이 분명한 그 경지를 강제로 밀어 냈다.

‘이상해! 이상하다⋯⋯!’

적이 더는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충족감이 오히려 조걸의 감각에 경고를 보내왔다.

머릿속 갈등은 점차 혼몽하게 깊어졌다.

조금만 더 가도 되지 않을까?

이 감각을 조금만 더 느낄 수 있다면, 그는 분명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가능성을 스스로 밀어 내야 하는가?

‘나는?’

나는 검수다. 나는 강해지고 싶다. 나는 더욱⋯⋯.

“청명아아아아!”

콰앙!

그 순간 조걸을 둘러싸고 있던 흐릿한 세상이 거울처럼 깨져 나간다. 획 돌아보니 현재 상황이 명확하게 보였다.

앞에 있어야 할 적들이 등 뒤에 몰려 있었다.

‘뭐? 왜지?’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너무 빨리 치고 나간 걸까?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적들이 좀 더 격하게 그의 앞을 막아섰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그 순간 조걸의 눈에 한 광경이 보였다.

두 눈에 독기를 품은 만인방도 하나가 제게 날아드는 검을 말끔히 무시한 채 백천에게 몸을 날리는 모습을.

몸 곳곳에 검이 틀어박히고 있음에도 그의 도는 오로지 의식을 잃은 청명에게로만 향했다.

카아아아앙!

조걸이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백천의 검이 도를 쳐 냈다.

“흐아아아아아!”

하지만 그건 그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적들이 청명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집요한 공격이 쏟아졌다.

“이, 이 새끼들이⋯⋯!”

조걸이 즉시 뒤쪽을 향해 땅을 박찼다.

그와 함께 맹렬히 포위를 뚫던 이들도 어느새 청명을 안은 백천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안 돼!’

조걸의 두 눈에 다급함이 스쳤다.

청명은 지금 의식이 없다. 그건 날아드는 공격에도 몸을 비트는 최소한의 저항조차 할 수 없단 뜻이다. 눈먼 칼에도 숨이 끊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 굳이 급소를 가격할 필요도 없다. 지금 청명의 몸은 단순한 충격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우우웅!

들려오는 소리에 조걸의 시선이 순간 격하게 뒤로 돌아갔다. 기운을 모으는 이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들어 올린 손에 모여 있는 공력이 척 보아도 어마어마했다. 조걸은 백천과 청명의 앞을 막아서며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압!”

서걱!

전력을 다해 뻗은 검으로 기운 머금은 손을 잘라 냈다. 아슬아슬했다.

처절하게 터져 나오는 비명을 들으며 조걸은 턱 근육이 불거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그의 혼을 실은 고함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청명이는 못 건드린다! 이 개자식들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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