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394화 (1,395/1,567)

1394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4)

어둡고 축축하다. 무언가가 말라붙은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 지독한 냄새조차 그저 무디게만 느껴졌다.

청명에겐 익숙하다.

죽은 자에게서 나는 냄새. 그 냄새가 주변에 가득하다. 이미 삶과 죽음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다는 듯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언젠가부터 이 냄새는 그의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씻어 대도 사라지지 않는 혈향처럼.

“아직 살아 있습니까?”

들려오는 물음에 청명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이를 보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인간 목숨 줄 질기기도 하지.”

그 말을 들은 청명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동굴 벽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놈들은?”

“아직 우리가 어디 있는지는 파악 못 한 것 같은데⋯⋯. 보나 마나 포위망을 만들고 있겠죠. 한두 번 겪습니까?”

“그렇겠지.”

쯧 하고 혀를 찬 당보가 청명의 상태를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봅시다. 덧난 것 같은데.”

“그냥 둬. 안 죽어.”

“뒈지는 놈들이 꼭 그렇게 말하고 뒈지더라. 팔 좀 치워 봐요.”

청명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당보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팔을 과격하게 치워 버렸다. 청명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윽, 망할⋯⋯.”

“거, 아프기는 하신 모양이네.”

옷자락을 걷어낸 당보가 순간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겨드랑이께부터 아랫배까지 길게 베인 상처. 이미 한번 처치했던 상처인데 덧나는 바람에 썩은 피와 고름이 쏟아지고 있었다.

“형님의 주둥이는 혹시 ‘치료’라는 말을 내뱉을 줄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대가리가 너무 깨끗해서 그런 개념이 아예 안 들어가 있는 겁니까? 천자문은 뗐소?”

“아가리 다물어. 엿 같으니까.”

“미친 인간 같으니라고.”

당보가 구시렁대면서 능숙하게 청명의 상처를 꿰맨 실들을 끊어 냈다. 엉겨 붙은 상처를 절개하고 있음에도 청명은 그저 묵묵했다.

잠시 침묵하던 청명이 물었다.

“술 남았냐?”

“소독할 것도 모자라.”

“줘 봐.”

“아니, 미친 양반아. 몇 번을 말합니까. 소독할 게 모자라다니까?”

“알았으니. 줘 봐.”

“하⋯⋯.”

당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청명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단 독주를 풀어 청명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처먹고 콱 죽어.”

턱.

얼굴 앞에서 술병을 잡아챈 청명이 능숙하게 한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단번에 술을 입 안으로 부어 넣은 그는 눈을 감고 동굴 벽에 머리를 툭 기댔다. 당보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술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씌었나.”

“거꾸로지. 귀신 되기 전에 마셔 두는 거지. 죽으면 못 마실 테니까.”

“하⋯⋯.”

당보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청명의 상처를 살폈다. 고름을 짜내고, 죽은 살을 잘라 낸다. 웬만한 인간이라면 까무러치고도 남을 처치지만, 청명 같은 무인이라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한 천이 없다고, 망할 인간아! 술로 소독해야 하는데.”

하지만 청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연신 술을 들이켰다. 당보는 눈을 흘기며 욕지거리를 삼켰다. 이 인간이랑 말을 하려 한 그가 잘못이지.

마지막 남은 금창약을 청명의 상처에 덮듯 바른 당보가 청명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줘 봐요.”

“마실 것도⋯⋯.”

“나도 마실 거니까 내놓으라고!”

청명이 피식 웃고는 그제야 들고 있는 술병을 당보에게 건넸다. 당보가 신경질적으로 그 술병을 낚아채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좀 아껴 마셔.”

“환자가 처먹을 바에 내가 먹는 게 낫지.”

청명이 쿡쿡대며 웃었다. 그 말도 그리 틀리지는 않으니까.

술병을 내려놓은 당보의 시선이 동굴 바깥으로 향했다. 지금 저 밖에는 마교도들이 개미처럼 우글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도 발각될 것이다.

“보슈, 도사 형님.”

“왜?”

“살아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글쎄?”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 망할 주교 새끼 그냥 보내 주자니까. 그 새끼 목 하나 따겠다고 여기까지 들어오는 게 맞습니까, 예? 이렇게 뒈지면 자연사지, 이게! 자연사!”

“대신 죽일 놈은 죽였잖아.”

“우리가 죽게 생겼다니까?”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소리 없이 머리카락을 한차례 쥐어뜯은 당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댔다. 청명에 대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이라는 것쯤은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죽게 생겼다라⋯⋯.’

청명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이 엿 같은 땅에서 죽어 나자빠진 놈이 어디 한둘도 아니고. 하나같이 파리 끓는 시체가 되어서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청명의 시체 하나 추가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살아 있는 동안엔 할 일이 있으면 할 뿐이다. 그 대가가 죽음이라 해서 할 일을 못 할 수는 없다.

“한 번씩 도사 형님을 보고 있으면 말이오.”

“⋯⋯응?”

“머리가 어디 하나 잘못된 인간 같다니까.”

“⋯⋯.”

“아니, 그래요. 뭐 절대강자라 불리는 인간 중에 제정신인 놈이 한 놈이라도 있겠냐마는.”

“너도 그렇고.”

순간 말문이 잠깐 막혔던 당보가 웃었다.

“그 말도 맞지. 내가 제정신이면 댁 같은 인간 옆에 붙어 있지는 않겠지.”

“알면 됐어.”

청명이 당보의 손에 들린 술병을 뺏어 들이켰다. 그리고 술병의 마개를 꾹 눌러 닫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술병을 당보에게 내밀었다.

“안 깨지게 잘 달아 놔.”

“예?”

“돌아가면 마저 마셔야 하니까.”

“⋯⋯지금 나가려고?”

“포위가 더 단단해지면 뚫기 힘들어진다. 출발하자.”

당보는 아연한 표정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물론 청명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시간을 끌수록 포위는 더 두터워지고, 위험해진다. 살아 돌아갈 확률이 더욱 줄어든단 의미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의 상태를 봐 가며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지금 청명의 상태로 저 포위를 뚫을 수 있을까?

당보가 입 안 살을 꽉 깨물며 말했다.

“아니, 형님⋯⋯. 더 기다리면 지원이 올지도 모르잖습니까. 청문진인께서⋯⋯.”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보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그도 안다. 지금 본대는 두 사람을 지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애초에 청명이 무리하게 주교의 목을 노린 것도 급습당한 본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사태를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상황에 지원대를 파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우는소리 다 했으면 일어나.”

“누가 우는소리를 했다고⋯⋯.”

당보는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눈은 재빠르게 청명의 몸을 다시 훑고 있었다.

“싸울 수 있겠습니까?”

“너보다야 세겠지.”

“⋯⋯내 장담하건대, 도사 형님은 지옥에 떨어질 거요.”

“새삼스럽네.”

청명이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동굴을 나섰다.

손에 쥔 검이 무겁다. 발을 뗄 때마다 휘청이는 몸뚱이는 그의 통제를 한참 전부터 벗어나 있었다.

코를 찌르는 죽음의 냄새가 한껏 짙어져 있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산 어딘가가 그의 초라한 묫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낙오하지 마.”

“누구한테 하는 소립니까, 그거?”

청명이 피식 웃었다. 그래야지.

쾅!

땅을 박차 숲으로 돌입하자 그의 눈에 곧 시커먼 의복을 입은 마교도들이 보였다. 그들은 즉시 두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달려들어 왔다.

무심하게 휘둘러진 청명의 검이 마교도들의 목을 단번에 쳐 날렸다.

뜨거운 피가 그의 얼굴로 끼얹어졌다. 조금 전까지 살아서 숨 쉬던 것의 온기는 곧 흩어질 것이고, 이내 차게 식어 갈 것이다. 이 순간에도 빠르게 열기를 잃어 가는 이 피처럼.

“옵니다!”

당보가 발출한 비도가 섬전처럼 허공을 갈랐다.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 낸 청명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한 모금 더 마시고 나올 걸 그랬나?’

진득한 피 냄새가 입 안에 남아 있던 주향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돌아가면 취할 때까지 마셔 봐야겠군.’

돌아가지 못한다면?

글쎄. 아마도 마시지 못한 술이 아쉬워지겠지. 그것뿐이다.

파아아앗!

쇄도해 오는 검을 쳐 낸다. 하지만 상처 때문인지 반응이 살짝 늦어 검이 옆구리를 스치는 걸 막아 내지 못했다.

이제는 신물 나는 고통을 의식 밖으로 밀어 내며 청명은 검을 휘둘렀다. 또 하나의 목숨이 무정하게 끊긴다.

‘죽고 싶은 사람 같은 건 없지.’

하지만 삶이 그리 간절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살아 숨 쉬는 게 지긋지긋한 이라면 말이다.

“당보.”

“이 상황에 말이 나옵니까?”

당보가 바삐 움직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청명은 검 끝으로 마교도의 심장을 꿰뚫으며 담담히 말했다.

“넌 전쟁이 끝나면 당가로 돌아갈 거냐?”

“그럼 화산에라도 갑니까? 내가 갈 데가 거기밖에 더 있습니까?”

청명이 쿡쿡대며 웃었다. 듣고 보니 멍청한 질문이었다.

파아아앗!

그때 회수한 비도를 재차 날린 당보가 말했다.

“저랑 유람이라도 다니시렵니까?”

“유람이라⋯⋯.”

“할 짓 없으면 그런 거라도 해야지요.”

“⋯⋯나쁘지 않군.”

귓가에 울린 당보의 말을 곱씹으며 청명이 중얼거렸다.

텅 비어 버린 화산보다야. 살아남은 자신을 자책하며 썩어 들어갈 청문을 지켜보는 것보다야.

“그럼 지랄 말고 검이나 똑바로 잡으십시오. 일단 살아야 유람이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그래. 돌아가면 일단 술부터 마시자.”

“다 알았으니 앞이나 똑바로 보시라고!”

청명은 웃었다.

유람, 나쁘지 않다. 저놈을 따라 당가로 가 빈객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화산으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보단 괜찮을지 모르지.

텅 비어 버린 껍데기로 사는 삶이라 해도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청명이 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모금 정도는 더 마셔도 괜찮았을 것 같단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교도들이 시커멓게 밀려들고 있었다. 청명의 입꼬리가 살기를 띠고 비틀렸다.

“아무리 그래 봐야⋯⋯.”

이를 드러낸 청명이 광포한 살기를 내뿜었다.

“천마 새끼 목 딸 때까지는 못 죽어 주지.”

땅을 힘껏 박찬 청명, 검존이 앞으로 나아갔다.

❀ ❀ ❀

손끝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나무둥치에 기대 놓은 머리가 자꾸만 옆으로 흘러내렸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다. 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두 눈은 금방이라도 빛이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여기가 어디더라?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왔다. 참을 수 없는 갈증이었다. 전신을 감싼 무기력감 속에서 그 갈증만이 온전했다.

쩌적.

입이 살짝 벌어지기 무섭게 바짝 마른 입술이 갈라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저 멀리 여명이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얼핏 보는 것인데도,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챙겨 올 걸 그랬나.”

벌어진 입술 새로 금세 끊길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쪽이다!”

평화도 잠시,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우득.

청명이 반사적으로 암향매화검을 움켜잡았다.

“쉴 틈을⋯⋯ 안 주네. 망할 새끼들.”

낄낄대며 웃어 댄 청명은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그때 어떻게 살아 돌아갔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쾅.

청명이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런 그의 뒤로 만인방도들이 원독에 찬 눈을 번뜩이며 따라붙었다.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