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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93화 (1,394/1,567)

1393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3)

“속도를 줄이지 마라! 뒤처지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호가명의 부관인 종곽(宗廓)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 댔지만, 좀처럼 속도가 오르지 않았다.

종곽이 살짝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본다.

명령이 먹히지 않는 것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들 역시 젖 먹던 힘을 짜내 달리고 있다. 하지만 더는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광동에서부터 이곳까지 그들은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하고 쉬지 않고 달렸다.

천리마나 한혈마쯤 된다고 해도 지쳐 나가떨어질 강행군을 사람의 몸으로 버텨 냈으니 어찌 지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해남 놈들이 추적하는 그들에게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겠지만, 뒤쫓는 그들의 입장도 다급한 것은 마찬가지다.

수가 더 많다?

추적하는 측에서는 그게 꼭 장점이 되는 건 아니다. 저들은 다름 아닌 구파일방의 문도들, 그들의 평균적인 무위는 만인방의 일반 문도와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서로가 완전한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은 저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놈들이 부상자들을 대동하고, 연이은 전투로 지쳤기에 어찌어찌 따라붙을 수라도 있는 것이다.

종곽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약한 소리 할 것 없다. 지쳤으면 저들이 더 지쳤겠지!’

게다가 종곽의 임무는 저들을 뒤쫓아가 참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군사께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실 수 있도록 저들을 압박하는 것뿐이다.

그것조차 하기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놈들이 장강에 도달하기 전에 뒤를 잡아야 한다!”

종곽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지금에 와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건 반쯤은 원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건지도 모를 원한 말이다.

종곽이 살짝 주먹을 쥐었다 편다.

‘적이지만⋯⋯.’

설마 저들이 그 포위를 뚫어 내고 이곳까지 도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봐 온 무능한 구파일방 놈들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걸 해냈다. 아직 저 장강을 돌파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곳까지 전력을 반이나 보존한 채 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 그것도 이제 끝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적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 낸 자, 매화검귀의 운명은 이제 종언을 고할 테니까.

설령 저들이 모두 살아 강북으로 탈출하게 된다고 해도, 매화검귀의 목을 칠 수 있다면 이 싸움은 그들의 승리일 수밖에 없다.

‘설마 내가 구파일방의 한 문파보다 한 사람의 목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될 줄이야.’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이제 만인방 내 누구도 그 사실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매화검귀 청명이 스스로 증명해 버렸으니까.

‘일단은 내가 맡은 임무를⋯⋯.’

바로 그때였다.

“부군사! 앞쪽에 누군가 있습니다!”

“흠?”

종곽의 눈이 살짝 찌푸려진다.

적의 후미를 잡은 건가? 그가 예상하던 것보다는 꽤 빠른데?

하지만 연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그런 종곽의 상념을 여지없이 부숴 놓았다.

“접근! 일련의 무리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접근?”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종곽의 동공이 크게 확장된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니⋯⋯.”

“옵니다!”

그 순간, 전방의 숲에서 십여 명의 인원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튀어나온다.

“오오오오오오!”

백색의 검기가 하늘 높이 충천한다.

당혹을 표할 틈도 없이, 미처 피하라는 지시를 내릴 틈도 없이 솟구쳐 오른 검기가 그들의 전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선두가 곤죽이 되어 튕겨 나간다.

그리고 종곽의 눈에는 보였다. 적을 추격하기 위해 짜 놓은 그들의 포진이 선두가 무너짐과 동시에 출렁이듯 일그러지는 것이.

“아, 안⋯⋯.”

“가자!”

“아-미-타-불!”

우우우우우우우웅!

채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백색의 검기가 잦아든 곳에 웅혼한 황금빛의 서광이 피어오른다. 그 상서로운 서광이 백색의 검기가 비집고 열어 낸 틈을 단숨에 잡아 벌렸다.

“미, 밀려난다!”

“아아아악!”

거대한 산이 통째로 밀려오는 듯한 무거움. 그 힘에 저항할 수 없었던 만인방도들이 속절없이 좌우로 밀려났다. 그러자 좌우로 넓게 포진한 만인방도들 사이로 선명한 일직선의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길로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이들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화, 화산이다!”

“화산 놈들이다! 피해라!”

화산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검은색의 무복을 입은 검수들이 열린 길을 향해 뛰쳐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광경은 이제 만인방도들도 너무나 당연히 예상할 수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붉디붉은 매화가 연이어 피어오른다. 저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꽃이 실제로는 얼마나 지독하고 위험한 것인지 아는 이들이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사방으로 몸을 굴렸다.

“꾸물대지 말고 달려 이 새끼들아!”

“아오, 진짜!”

그 부수고, 비틀어 열어 낸 길을 따라 십여 명의 무리들이 질주를 시작했다.

“부군사! 명을!”

“노, 놈들이 중단을 돌파합니다!”

종곽의 시선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맨다.

“마, 막⋯⋯. 아, 아니! 놈들이 왜?”

저놈들이 갑자기 왜 그들을 공격한다는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 버린 것도 아닐진대?

“부군사!”

“알았으니 그 입 다물어라!”

종곽이 버럭 고함을 지르고는 앞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본대는?’

적이 갑자기 기습을 해 왔다면, 중앙을 향해 본대의 공격이 이어질 확률이 높을 터! 어설프게 방향을 전환했다가 등을 찔리면 피해는 말도 못 하게 커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감을 쏟아 내도 따라붙는 적의 기파 따위는 그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놈들뿐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저놈들이 갑자기 미쳐 버린 게 아니라면, 고작 열에 불과한 인원으로 그들에게 맞서 올 리가 없지 않은가?

“뚫립니다! 부군사!”

그 순간, 종곽의 눈에 달려든 일련의 무리가 그들의 포위망을 송곳처럼 꿰뚫고 뒤쪽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짝할 새, 그가 만들어놓은 포진이 어린아이 손바닥 뒤집듯 돌파당한 것이다.

“이, 이런⋯⋯.”

종곽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들을 뚫어 낸 이들이 순식간에 멀어져 간다.

“뒤, 뒤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종곽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돌파당했다 해서 만인방이 뚫린 것은 아니다. 이 뒤로는 더 많은 이들이 뒤쫓아 오고 있으니까. 저리로 가 봐야 쫓아오는 이들의 물결에 휩쓸려 죽을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깔끔하게 무시하고 해남의 본대를 뒤쫓으면 될 일이다. 그가 받은 임무 역시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 종곽을 망설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저 몇 되지 않는 이들의 정체였다.

‘천우맹.’

저들이 해남을 대동하지 않은 천우맹이라면, 여기까지 와서 굳이 해남과 갈라지는 것을 선택한 천우맹이라면 저 무모한 역행의 목적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매화검귀를 구하겠다는 건가? 고작 열 명 남짓으로?”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짓.

“⋯⋯군사께 비첩을 날려 상황을 전해라.”

“예!”

그새 침착함을 되찾은 종곽이 비웃음 어린 눈으로 천우맹도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 용기라 부르지 않지.”

진득한 조소를 흘린 종곽이 차가운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으아아아아아아!”

사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휘둘러진 검이 적의 가슴을 길게 베어 낸다.

쩌저적!

하지만 괴이하게도 그 상처에서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뿜어져야 할 피가 모조리 차게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몸 안을 파고든 한기에 심장이 멎어 버린 이가 그 자리에 허물어진다.

쾅!

“비켜라! 이 자식들아!”

“궁주!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윤종이 고함을 쳐 설소백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설소백은 그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더욱 가열차게 검을 휘둘러 댔다.

그 검 끝에 음한기공을 있는 대로 실어 내며 말이다.

쩌저저적!

그의 검이 스쳐 가는 곳마다 허공에 투명한 얼음의 결정이 피어난다.

“저 꼬맹이 진짜 말 더럽게 안 들어 처먹네!”

“이 새끼야! 빙궁주시다!”

“아, 누가 모릅니까?”

조걸이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청명을 구하러 가는 상황이 벌어지자 가장 날뛰어 댄 사람은 조걸도, 유이설도, 심지어 백천도 아니라 설소백이었다.

해남을 오가는 여정 내내 딱히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던 설소백이 광증이라도 도진 듯 검을 휘둘러 대고 있는 것이다.

“아으! 춥다!”

“지금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아니! 진짜 춥다니까요? 저 꼬맹이 대체 그사이에 뭘 먹은 겁니까?”

“⋯⋯궁주시니까.”

“평민 출신 더러워서 살겠나!”

“뭐래? 부자 새끼가?”

정말 악에 받친 듯한 윤종의 목소리에 조걸이 찔끔한다.

그 와중에도 설소백은 그런 말 따윈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적들에게 연이어 살벌한 검격을 날려 댔다.

‘도장!’

설소백의 눈이 불을 뿜는다.

다른 이들에게는 갑자기 날뛰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그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해남을 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해남이 힘겨움을 토로하지만, 빙궁이 처했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처지라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어 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청명이 하는 일이기에 지지한다. 청명이 결정한 일이기에 노력한다. 그러나 그 의미와 뜻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직 어린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가 구하러 가는 이는 다름 아닌 청명. 빙궁의 은인이자 그의 은인이다.

절대 그를 이런 곳에서 죽게 둘 수는 없다. 아직 그는 청명에게 아무것도 갚지 못했다.

그 순간, 설소백의 앞으로 만인방도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닥쳐든다.

“감히!”

두 눈에서 푸른 광망을 토한 설소백의 좌수가 뒤쪽으로 당겨졌다가 단숨에 앞으로 뻗어진다. 그의 우수에서 눈처럼 새하얀 장력이 마치 작은 눈사태처럼 뿜어졌다.

“비, 빙백신장?”

“세상에!”

그 광경에 화산의 제자들이 기겁하여 고함친다.

북해에서 목격했던 빙궁의 절기가 지금 설소백의 손에서 재현된 것이다.

달려들던 만인방도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굳어 버린 이들을 걷어차 날려 버린 설소백이 일말의 지체함 없이 바닥을 박찼다.

“서두르십시오!”

“예, 옙!”

“알겠습니다! 궁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 설소백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청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다. 바로 지금.

‘도장! 지금 갑니다!’

청명이 구해 낸 소년.

그 소년이 이제 한 사람의 검수가 되어 청명를 구하러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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