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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92화 (1,393/1,567)

1392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2)



숨이 턱 막혔다.



'구하러 간다고?'



화산검협을?



아니,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이 없는 선택이다. 이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문대리"



곽한소가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지금 후방은 저희를 뒤쫒는 만인방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지금 청명 도장을 구하러 간다는 것은, 그들을 돌파하겠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백천이 말없이 곽환소를 마주 본다.



"화산이 강한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곽환소가 말끝을 흐렸다. 하나 그 뒤에 어떤 말이 붙을지는 모두가 예상 할 수 있었다.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만인방의 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왔다.



언제고 저들이 그들의 등 뒤로 뛰쳐 들어 칼을 박아 넣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껏 달아나던 이들의 품 안으로 되레 뛰어들겠다고? 겨우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미친 짓이야.'



이게 정말 협의나 용기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일까?



정말 용기 있는 이라면 제 목숨을 걸고라도 불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울고 있는 아이를 구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가기까지는 용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쪽 팔을 잃은 이가, 또 다른 아이를 구하기 휘해 다시 불길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도 그걸 용기라 할 수 있을까?



처음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해진 곳으로 뛰어드는데도?



그런 건 용기가 아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어디 하나가 고장나 있는 인간들뿐이다.



그러나 지금, 그 미친 짓거리를 논하고 있는 화산의 제자 중 어느 하나의 얼굴에도 망설임이나 두려움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말하고 있는 이들의 얼굴. 그 모습이 곽환소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해남 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자, 장문대리."



"하지만 말했듯이, 이 정도면 화산이 여러분께 지켜야 할 도의는 다 지킨 것 같습니다."



곽환소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정도란 말이 너무도 무색하다. 화산이 들들이게 해 준 것은 과하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다.



설사 이들이 강북행의 중간에 그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한들 곽환소는 이들을 원망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산에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염치없음을 넘어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장문대리......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대답은 알고 있었다.



저런 눈빛을 지닌 이에게서 나올 대답은 뻔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가 들은 대답은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글쎄, 모르겠습니다. 사실 화산 장문대리로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니까요."



"예?"



"남은 것은 화산의 장문대리인 제가 아니라, 화산의 일대제자인 백천뿐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따릅입니다."



"아, 아니, 그럼 다른 분들은......"



"저들이 알아서 하겠죠. 강요할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



곽환소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백천의 분위기가 전과는 뭔가 달라졌다.



그 준순한 얼굴에 묘한 기색이 느껴진다.



"따라올 놈은 따라올 테고, 남은 놈은 남겠죠. 그것까지 제가 신경 쓸 바는 아니잖습니까?"



"아, 아니......"



그 순간 조걸이 짜증 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습니까? 시간도 없는데."



곽환소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조걸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윤종이 그 말을 받아 조걸을 나무랐다.



"장문대리로서 하실 일이 있으시잖으냐?"



"그럼 기다립니까?"



"아니, 그러니 그냥 두고 가자꾸나."



"와.... 내가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이설이 저벅저벅 걸어 윤종의 옆에 선다.



"건방져."



"끄응, 사고, 그 말이 아니라........"



" 난 안 돼, 인솔은 나."



"...........예."



당소소도 굳은 얼굴로 그런 유이설의 곁에 섰고, 침묵하던 헤연도 자연스레 조걸의 옆에 와 선다.



그들이 지금 청명에게 가는 것은 결코 백천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뭐 이런........'



그 황당한 광경에 곽환소가 할 말을 잃은 와중, 백천이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거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한다고 들을 놈들도 아닙니다. 여기까지 묵묵히 와 준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죠."



"사숙만 아니면."



"장문대리만 아니었으면."



"동룡이만 아니면."



"방금 어느 새끼야?"



백천이 악을 쓰면 뒤를 돌아보자 모두가 딴청을 피웠다.



곽환소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들은 이제 지옥과도 같은 전장으로 가야 한다.



살아 돌아올 확률보다는 죽을 확률이 몇 배는 더 높은 곳으로. 한데 이들에게는 부담감도 긴강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부담과 긴장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가?'



그렇기에 그리 가열차게 싸우며 속도를 높인 것인가? 그들을 최대한 안전한 곳까지 이끌고 나서 그 길을 되돌아갈 생각으로?



"할 말 끝났으면 출발하시죠."



곽환소가 말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도위. 그 역시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처럼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



당가의 소가주인 당패와 함께.



남은 이는.......



"확실하게 말해 두는데."



녹림왕 임소병이 그들을 보며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청명 도장의 뜻과는 어긋납니다."



그 말에 모두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청명 동장은 당신들이 이 미친 짓거리를 하길 원하지 않을 겁니다. 



지옥을 뚫고 다시 마주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들어야 할 건 욕뿐일 거고, 



사이좋게 손잡고 죽는 결말을 맞이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



"그래도 가실 겁니까?"



그 말에 백천이 귀를 후비적댔다.



평소와 완전히 다른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로, 그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어쩌라고요."



"......예?"



녹림왕이 눈을 끔벅였다. 이 대답만은 정말 추호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요?"



"............"



"녹림왕이 잘 이해 못 하진 모양인데. 이 기회에 알아 두십시오."



"뭘 말입니까?"



"내가 사숙입니다, 내가!"



"......예?"



"근데 내가 왜 그 새끼 말을 들어야 합니까. 그 위아래도 없는 새끼 말을!



내가 그 새끼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새끼가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맞아."



"맞지! 내가 사형이야!"



"동감해요. 저는 사제지만."



임소병의 입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당신들도 같은 생각입니까?"



그 시선을 받은 남궁도위와 당패가 어깨를 으쓱했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생각한다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쪽이 옳겠지요."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친구라는 건 그런 걸 다지지 않는 관계 아닙니까?"



남궁도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기에 천우맹입니다. 이해득실을 논할 거라면 제가 이 자리에 있겟습니까? 매화도에서 죽었어야죠.



그럼에도 청명 도장은 남궁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된 겁니다. 그러니 이젠 제가 그를 위해서 목숨을 걸 때겠죠."



"..........."



"당 소가주도 마찬가지입니까?"



"청명 도장을 버리고 돌아가면 어차피 아버지 손에 죽습니다."



".........."



"이쪽이 조금 더 덜 고통스럽게 죽는 길일 겁니다."



그 말에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한 당군악이라니, 꿈에 나올까 무섭다.



"정신 나간 인간들."



"그래서 녹림왕은 어쩌실 겁니까?"



"쯧쯧, 한심한 소리를 하기는."



임소병이 품 안에서 부채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몇몇이 수군댄다.



'대체 부채를 몇 개나 가지고 다니는 거야?'



'용도가 다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부채를 활짝 펼쳐 낸 임소병이 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말했다.



"어차피 그 인간이 죽어 버리면 녹림이 찬밥 신세 될 건 뻔한 일인데, 이 기회에 적당히 빚 하나 정도 지워 두는게 남는 장사죠."



"........녹림이 왜 가난한지 알겠다."



"계산을 못하네. 계산을."



"시끄럽습니다!"



역정을 내는 임소병의 반응에 피식 웃은 백천이 곽환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천이 포권하자 곽환소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문대리. 정 그러시다면........"



"아니요."



백천이 그가 할 말을 짐작한다는 듯 그의 말을 끊어 낸다.



"그건 안 됩니다. 지금에 와 해남을 다시 이끌고 돌아간다는 것은 지금껏 우리가 해 온 모든 일을 우매핸 짓으로 만드는 겁니다."



"......."



"수가 많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가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으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가치 없는 일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남은 이대로 장강으로 향해서 놈들의 시선을 끌어 주는 쪽이 더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거 보십시오."



곽환소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이들의 말이 맞다. 맞지만..........



"그렇다면 저라도....."



백천이 살짝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도 안 됩니다. 곽 소협은 해남을 이끌어야 합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곽환소가 있는 해남과 없는 해남의 차이는 절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곽환소의 마음은 알아도 그를 대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곽환소가 주먹을 움켜주자, 백천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북에서 다시 뵐 때는 이자까지 쳐서 얻어먹을 테니까."



그 모습에 곽환소가 결국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이놈들은 바보다. 구제가 불가능한 바보다.



알 수가 없었다. 청명이라는 인간 주변에 유난히 바보만 모여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자가 주변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 곽환소는 자신 역시 바보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백천이 해남에게서 몸을 돌린다. 단 한 점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그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함께할 동료가 아니라, 그들이 뚫어야 할 길이 었다. 



아니, 그 끝에 있을 누군가였다.



"준비는?"



"뭘 새삼스레."



"그래."



백천이 피식 웃는다. 말 그대러 새삼스럽다.



스르르릉.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낸 백천이 손에 들린 매화검을 강하게 움켜잡는다.



"낙오되는 놈은 두고 간다."



"사숙이나 지치지 마십시오."



"망할 새끼들."



이를 으득 갈아붙인 백천이 두 말없이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런 그의 곁으로 빛살로 화한 동료들이 따라붙는다.



"가자! 그 망할 새끼에게!"



"예!"



천우맹의 맹도들이 전력을 다해 앞으로 질주해 나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곽환소는 이를 악물었다.



그도 저곳에 함꼐하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없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이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사형,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곽환소가 고개를 돌렸다.



"자양?"



이자양이 시큰둥한 얼굴로 툭 내뱉듯 말했다.



"해남도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은인을 두고 저들만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안 들어야지요."



"........"



"죽어도 사형보다는 제가 죽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럼."



"자, 자양!"



이자양은 곽환소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앞서간 이들을 쫒아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던 곽환소는 이내 어색하게 허공만을 움켜 쥐었던 주먹을 느릿하게 내렸다.



"........제길."



허탈한 목소리가 깊은 탄식과 함께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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