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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86화 (1,387/1,567)

1386화. 사람 우습게 보는군. (1)

“오오오오오!”

선두에 선 만인방도가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청명을 향해 도를 내리쳤다.

카아아아앙!

혼을 담은 일도는 무심하게 솟구친 가늘디가는 검과 맞부딪히자마자 그 힘을 잃어버렸다. 마치 철벽에 도를 내리친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일었다.

하지만 그에 전율할 틈 따윈 없었다. 도면을 타고 비스듬히 흐른 검이 그의 목에 틀어박혔다.

푸욱!

“끄르륵…….”

두 눈에 경악을 담은 만인방도가 반사적으로 제 목에 박힌 검을 움켜잡으려 했지만, 그 손이 채 닿기도 전에 검이 비틀렸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숨통이 무참히 끊겼다.

“흐아아아아아악!”

피를 보고 더욱 흥분한 만인방도들이 기세를 더하며 청명에게로 쇄도했다.

파아아아앗!

그리고 그런 만인방도들을 맞이한 건 빛살과도 같은 쾌검이었다. 마치 조걸이 보여 주던 것처럼 수십 개로 분열한 검의 잔영들이 달려드는 만인방도들에게로 쏘아졌다. 하지만 조걸의 검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더 신속하게!

콰득! 콰득! 콰득!

달려들던 이들의 몸에 금세 바람구멍이 숭숭 뚫렸다.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이들의 육신이 마치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청명의 주변에 너른 공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공간은 금세 달려드는 이들로 다시 채워졌다. 마치 검은 물을 퍼낸 곳으로 다시금 물이 밀려드는 듯한 광경이었다.

“도자아아앙!”

뒤쪽에서 그런 청명을 본 남궁도위가 크게 외쳤다. 만인방도들은 이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청명에게 밀려들고 있었다. 바닥에 난 구멍을 향해 와류가 밀려들듯이 일천에 가까운 이들이 오직 청명 하나를 노리고 쏟아지는 광경.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무서운 광경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옥죄는 듯했다.

“아, 안……!”

덥석!

반사적으로 앞으로 내달리려던 남궁도위의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챘다. 돌아보니 혜연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경거망동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지금 도장께서……”

“임무를 잊지 마십시오, 남궁 시주!”

남궁도위가 움찔했다. 혜연의 말이 맞다. 지금 그의 임무는 청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추격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명 역시 같은 생각으로 지금 저런 일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청명을 도우려 하는 건 멍청한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자리에서 벽을 세우고 적을 막아 내다가 멀어진 본대에 재빠르게 합류하는 것이다.

“카하아아아아!”

그리고 냉정하게 둘러보면 현실적으로도 청명을 돕는 건 불가능했다. 청명을 둘러싸고도 남아도는 병력들이 남궁도위와 혜연 두 사람에게도 매섭게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압!”

남궁도위가 단번에 검을 떨쳐 검기를 뿜어냈다. 강력한 내력을 실은 백색 검기가 급하게 쏟아지며 달려들던 만인방도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핏덩어리로 화하며 잠깐 생겨났던 공간은 이내 다른 만인방도들로 채워졌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수가 그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혜연이 단호하게 외쳤다.

“물러나십시다!”

“스, 스님! 지금…….”

남궁도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어깨를 움켜잡은 혜연의 손아귀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들의 몸이 어느새 뒤로 십여 장 가까이 이동해 있었다.

절정에 달한 금강부동신법. 하지만 적들은 신기에 가까운 그 신법에 놀라지도 않고 차가운 살기를 폭발적으로 쏟아내며 쫓아오기 바빴다.

우우우우우웅!

혜연이 양손을 사방으로 휘저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그의 손끝을 따라 손바닥 형상들이 연이어 허공에 생겨났다. 흡사 천수관음 같은 그 손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틈 없이 막아 냈다.

‘천불수!’

소림이 천하에 자랑하는 장법이다. 만인방도들은 앞에 펼쳐진 장력의 벽에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아니, 접근을 하기도 전에 손그림자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온 거력이 그들을 뒤로 밀어 내고 있었다.

“이익……!”

그 순간 밀려나던 만인방도들이 눈을 부릅떴다. 환상처럼 나타났던 손그림자들이 눈부신 불광과 함께 사라진 순간, 강한 백색 검기가 그들을 덮쳐온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혜연이 벌려 낸 거리로 남궁도위의 검기가 쇄도했다. 수십 년은 손을 맞춰 본 듯 완벽하게 이어지는 연환! 하지만 막상 그 연환을 성공시킨 이들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어차피 벌린 거리만큼 다른 만인방도들이 밀려오니까. 일천이 넘는 만인방도들이 청명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또 회전한다. 청명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악의와 집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검고 붉은 와류의 한중간에서 화려한 매화가 피어났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나무처럼.

“도장! 대체……!”

경악한 남궁도위가 소리쳤다.

화려하다. 더없이 강하다. 경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의 검기다. 사람이 검으로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저 검기가 제물로 삼은 것은 어마어마한 내력일 터.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청명이 이런 상황에서 전개할 만한 검이 아니었다.

“시주!”

혜연 역시 당황하여 피어난 매화를 바라보았다.

청명은 평소 극한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효율적인 검을 전개한다. 절대 쓸데없이 내력을 낭비하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청명이 펼치고 있는 검은 지나치게 화려하다. 사치스럽게 보일 정도다.

이건 마치…… 이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저 검 끝에 잡아 두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쯤이면 청명이 몸을 빼낼 거라고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소! 시주, 대체 무슨 생각이오!”

혜연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어느덧 함께해 온 시간이 많이도 쌓였다. 혜연은 그만큼 청명을 더없이 신뢰했다. 남궁도위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하지만 지금 청명의 대처는 그 대단한 신뢰까지 흔들리게 할 정도로 기이했다.

그때 남궁도위가 비명처럼 외쳤다.

“스님! 저기!”

화려하게 피어난 매화를 가르듯, 허공에 한 줄기 검은 선이 솟아올랐다. 그 선의 정체는 극성으로 신법을 전개하고 있는 청명이었다. 이를 알아챈 두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안도가 피어났다.

옥쇄(玉碎) 따위는 없다. 그들이 아는 청명은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이가 아니었다.

그저 생각보다 조금 늦었을 뿐, 기어코 저 안에서 몸을 빼내고 있는 것이다. 혜연이 외쳤다.

“우리도 물러납시다!”

“조금 더 버티면 함께 합류할 수 있습니다!”

남궁도위의 말에 혜연이 입을 다물었다. 일리가 있었다. 청명을 도와 그와 함께 몸을 빼낸다면…….

하지만 그 순간 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허공에 그어진 검은 선이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본대를 쫓아가는 거라면 당연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와야 한다. 적들의 추적에 혼란을 더할 생각이라고 해도 북쪽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검은 선은 명백히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무슨!”

상황을 더 파악하거나 쫓아가 보기도 전에 만인방도들이 혜연의 시야를 온통 뒤덮어 버렸다.

“오, 오오오오!”

혜연이 다급하게 권력을 뿜었다. 워낙 경황이 없는 중에 날린 권력이라 평소 그가 내던 위력의 반도 담지 못했고, 그 권으로 만인방도들을 일거에 제압하기란 불가능했다.

“죽어라아아아아!”

혜연의 권에 격중당한 이의 하체가 모조리 으스러졌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도가 휘둘러졌다.

카각! 카칵!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혜연의 몸에 적의 도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외공만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소림의 공부(功夫)가 혜연을 지켜 주었지만, 도에 맞은 피부가 갈리며 피가 뿜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큭!”

혜연은 무너지지 않고 진각을 밟으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창졸지간에 전개한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이 급류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쳐 날리듯 밀어 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다시 적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뒤, 뒤로!”

삽시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조금만 실수를 저지른다면 아차 하는 사이에 둘러싸여 전신이 난자당한 채 죽게 될 것이다.

“크윽!”

혜연과 남궁도위의 몸이 급류 위에 띄운 조각배처럼, 뒤로 또 뒤로 밀려났다. 제 의지가 아니라 적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건 마치 검은 물과도 같은 만인방도들의 급격한 움직임이었다.

“시주!”

혜연의 입에서 우렁우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밀어 내고 있는 병력의 뒤편이 모조리 방향을 틀어 한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 흐름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명백했다.

청명.

그가 적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화산과 해남이 달아나고 있는 곳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빌어먹을! 이 망할 인간이!”

혜연의 입에서 드물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상황을 다시 되돌려 보려 했지만 이미 불가능했다. 지금 밀려들고 있는 이들에게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한계였다.

쿠웅!

악을 쓰듯 지른 권이 눈앞의 장벽을 순간 튕겨 내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확보한 시야로 혜연은 똑똑히 보았다. 붉은 무복을 입은 만인방의 정예들을 줄줄이 단 청명이 동쪽, 그들이 가야 할 곳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말이다.

“시주우우우우우우우우!”

처절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 멀리 청명에게는 결코 닿지 않을 목소리였다.

상황을 주시하는 호가명의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군사, 적들이 방향을 나눴습니다! 어찌합니까?”

“우리도 병력을 둘로 나눈다.”

“예? 저희의 목적은…….”

“본대의 안전이 확보되는 순간, 매화검귀 놈은 어떻게든 우리를 떨쳐 내고 따돌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본대가 아직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잡아 두려 하겠지. 그게 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

“정해진 수순이다. 시키는 대로 해라.”

“예!”

호가명이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진작에 이리했어야 했는데.’

저 화산과 청명을 한 덩어리로 인식했던 게 패착이었다. 이리 간단하게 그들을 나눠 버릴 수 있는 거였는데.

‘이러니 내가 련주께 이토록 충성을 바치는 거겠지.’

장일소는 그 멀리서도 이리 쉽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내는 사람이니까.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탈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선택지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더 나은 방향만 좇게 된다.”

그간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건만…….

호가명은 궁금했다.

과연 둘 중 하나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다면, 저 매화검귀가 선택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목숨일지, 그게 아니면 저 몇 되지도 않는 사형제의 목숨일지 말이다.

“어느 쪽이든 너는 이것으로 무너진다, 매화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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