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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73화 (1,374/1,567)

1373화. 그렇게 만들어 줘야지. (3)

촤아아악!

두꺼운 목재로 선수를 덧댄 쾌속선들이 거친 장강의 물살을 빠르게 가르며 나아갔다.

선수에 우뚝 올라선 흑교(黑鮫)채의 채주 장강교어(長江鮫魚) 척일(戚一)은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들끓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한심하구나.”

건너편 뭍에는 선박 수십 척이 줄지어 대어져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 사람의 기척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고 사패련이 도하해 올 수도 있으니 선박을 끌어모아 놨지만, 그뿐이었다. 경계는 이미 해이해졌고, 배는 텅텅 비어 있을 게 분명하다.

“절대 우리가 선공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 거로군. 멍청한 놈들 같으니.”

생각해 보면 무조건 무시하고 탓할 일도 아니다. 만일 그들이 여전히 흑룡왕의 지시를 받았다면 실제로 도하하지 못했을 테니까.

흑룡왕은 장강에서 벌어들이는 돈에 목을 매는 사람이고, 그런 만큼 장강 전체에 전운이 감도는 걸 극단적으로 경계했다. 늘 적당한 긴장감만을 유지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겉보기와 달리 신중한 편인 흑룡왕이 소림과 공동, 팽가가 진을 치고 있는 부두를 공격한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지시를 내리는 이는 흑룡왕이 아니라 패군이니까.

패군은 장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의 눈이 보고 있는 건 장강 너머에 펼쳐진 저 거대한 강북 땅이다. 그 땅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소림도 그저 짓밟고 지나가야 할 것들일 뿐이다.

“채주님, 거의 접근했습니다. 속력은 어떻게 할까요?”

“전속!”

“저, 전속이요?”

“그대로 들이받아라. 놈들이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 알겠습니다!”

수하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장강교어가 입꼬리를 뒤틀 듯 웃었다.

“방심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촤아아아악!

뭍에 거의 도달한 쾌속선들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목표는 정박된 배들.

뒤늦게 적을 발견한 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런 빛으로 질렸다.

“오, 옵니다!”

“저, 저 미친놈들이⋯⋯!”

“물러서라! 부딪힌다아아아아아!”

쿠우우우웅!

우드드드득!

거대한 선박과 선박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수면이 거세게 요동치고, 부서진 선체 파편이 하늘로 솟구치고 비산했다.

“아아아아아악!”

미처 배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이들이 갑판 위를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우웅!

속도를 줄이지 않은 수로채의 전투선들은 정박된 배들을 연이어 들이받았다.

배의 규모가 비슷하다지만, 애초에 수전을 염두에 두고 건조된 수로채의 배와 어떻게든 크기만 맞춰 긁어모은 배들은 그 튼튼함의 격이 달랐다. 더 단단한 쪽이 가속까지 붙여 들이받았으니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투웅!

장강교어는 들고 있던 언월도로 바닥을 한차례 내리찍고는 수면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사자후를 내질렀다.

“공격하라!”

“예!”

기세를 잡은 수로채의 수적들이 갑판 위로 달리더니 단번에 반파된 선박 위로 올라탔다.

“겁먹지 마라! 그래 봐야 수적 놈들이다!”

“남은 배라도 지켜야 한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공동의 제자들과 배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일제히 병장기를 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절반만 맞았다.

물론 그들은 모두 명문의 제자이고, 발이 땅에 닿는 곳에서 싸운다면 한낱 수적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발 붙이고 선 곳은 제대로 된 뭍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공동 제자들이 검을 치켜들며 달려들려는 순간, 배가 또다시 크게 뒤흔들리며 기우뚱 기울어졌다.

“윽, 뭐냐!”

“배, 배가⋯⋯!”

공동의 제자들이 당황해 주춤했다. 그에 반해 수적들은 이미 그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비스듬히 기울어 버린 갑판 위를 평지처럼 질주했다.

“죽어라아아아아!”

제대로 된 포진을 갖추지 못한 이들 사이사이로 수적들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곧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힘든 난전이 벌어졌다. 대체로 배 위에서 적과 싸우는 수적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전투 형태인, 난전이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배와 배가 충돌하는 순간, 이미 물로 뛰어들었던 수적들이 정박된 배 밑창을 부수는 소리였다.

내력이 충분한 자는 병기로 구멍을 뚫었고, 내력이 부족한 이들은 준비해 온 폭약을 물 위로 드러난 배의 하부에 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음이 터질 때마다 배들이 하나둘 기울었다.

해안가는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만일 정면으로 맞섰다면 이리 순식간에 당할 만한 전력이 절대 아니건만,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기습에 얻어맞은 이들은 우왕좌왕하여 앞뒤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악!”

“사제!”

사각에서 날아든 삼지창에 옆구리가 뚫린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그 처절한 음성이 채 끊기기도 전에 뒤에서 날아든 도가 젖혀진 목에 박혔다.

“이, 이 비겁한 수적 놈들!”

이 광경을 본 공동의 일대제자 서흠(徐欽)이 악을 쓰며 검을 휘둘렀다. 매서운 검은 삽시간에 수적의 심장을 꿰뚫었지만, 적들이 밀려드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수적들이 기울어진 선박 위로 올라타 왔다.

“조금만 버텨라! 원군이 온다!”

그의 말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고전하는 그들의 등 뒤에서 거대한 기합이 들려왔다.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황색 승포 차림의 무리가 먼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소림이다!”

“소림이 지원을 왔다! 조금만 더 버텨라!”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원 무림에서 소림의 위상은 강대했다. 소림이 달려오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공동 제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서흠 역시 밀려드는 흥분을 억누르며 애써 침착하게 외쳤다.

“수비에 치중해라! 소림이 도착하면 단번에 몰아붙인다!”

“예!”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소림뿐만이 아니다. 그의 사형제들 역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테니, 그들만 도착한다면 이런 수적 놈들 따위는 한 놈도 남기지 않고 회를 쳐 버릴 수 있다.

‘더러운 수작질의 대가를 톡톡히 보여 주마.’

하지만 그때, 수적에 대한 적의가 넘실거리던 서흠의 두 눈에 의문이 스쳤다.

‘뭐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격전지인 배 위가 아니었다. 그 너머, 배의 난간 쪽이었다.

뒤늦게 갑판 위로 올라서는 수적들이 무언가 검고 커다란 것을 들고 있었다.

‘항아리?’

양손으로 겨우 안아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항아리였다.

무엇인지 고민해 보기도 전에 수적들이 항아리의 뚜껑을 열더니 기울이며 내용물을 갑판에 쏟아부었다.

서흠이 움찔했다.

‘독?’

하지만 그 순간, 액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익숙한 냄새였다. 서흠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아, 안⋯⋯!”

그는 보았다. 항아리에 든 걸 모두 쏟아 낸 수적들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꺼낸 무언가를 찢어발기는 모습을.

“화, 화섭자! 피해라! 기름이다아아아아아아!”

수적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불꽃이 갑판 위로 떨어졌다.

화르르르르륵!

불길은 기름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너른 갑판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부, 불!”

“아아아악! 등에! 등에 불이!”

단번에 치솟은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한 공동의 제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주변의 다른 배들도 상황이 매한가지였다. 무서운 화마가 배들을 집어삼켰다.

“이, 이 미친놈들이⋯⋯.”

심지어 배뿐만이 아니었다. 물 위로 흘러내린 기름에도 불이 붙으니 흡사 장강 전체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광경 앞에 서흠은 그만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화르르르륵!

불은 모든 것 앞에서 공평했다. 정파의 배는 물론이고, 수로채가 몰고 온 전투선들마저 삽시간에 화마에 삼켜졌다.

“아⋯⋯. 아아⋯⋯.”

대처?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인가?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불뿐인데.

“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때 제자들을 이끌고 강변에 도달한 법계가 가공할 사자후를 토해 냈다.

“이 악적 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하지만 법계를 본 장강교어는 그저 비릿하게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중놈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군.”

그도 그럴 게, 장강교어는 그 분노에 화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굳이 어울려 싸워 줄 필요 없지. 모두 후퇴해라.”

“후퇴! 후퇴하라!”

장강교어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전투를 벌이고 있던 수적들이 불타오르는 장강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풍덩!

“어, 어딜 도망치느냐!”

악에 받친 공동의 제자들이 제 몸에 불이 옮겨붙는 것도 제쳐 두고 달아나는 수적들의 등에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공격에 당한 이는 소수였다. 대부분의 수적은 이미 장강 깊숙한 곳까지 뛰어든 뒤였다. 무섭게 밀려들던 게 언제냐는 듯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로채의 수적들은 하나같이 수공을 익힌다.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잠수해서 빠져나가는 것 정도야 그들에게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멍청한 놈들.”

장강교어 역시 법계를 향해 신랄한 비웃음을 날리고 불타는 장강에 뛰어들었다.

쿠웅!

강변을 박차고 갑판 위로 뛰어오른 법계의 눈썹이 분노로 푸들푸들 떨렸다.이제 남겨진 것이라고는 화염에 뒤덮인 선박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시체들뿐이었다. 때려눕히리라 했던 적 같은 건 이미 흔적조차 없다.

“이, 이런⋯⋯.”

그렇다고 수공을 익히지 않은 제자들을 이끌고 적을 쫓아 물에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 법계는 망연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법정의 지시로 사력을 다해 긁어모았던 서른 척에 가까운 선박들이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콰드드득!

만신창이가 된 채 불에 타다 선체가 아예 동강 난 배들이 하나둘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예 저리 가라앉으면 불이야 자연히 꺼질 테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뭐, 뭣들 하고 있느냐! 꺼라. 불을 꺼라!”

멍하니 있던 법계가 불현듯 발작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소리쳤다.

“당장 불을 꺼라! 한 척! 한 척이라도 살려야 한다! 당장 불을⋯⋯.”

“장로님.”

그때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격노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소림의 제자 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

법계는 다시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배가 불타며 솟아오른 검은 연기가 하늘로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다. 이곳에 있지 않더라도 모두가 그들의 상황을 똑똑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아, 아미타불⋯⋯.”

입에서 불호가 새어 나왔다. 먹먹한 목소리였다.

‘이 사태를⋯⋯ 이 사태를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신체 일부가 타 버린 부상자들이 질러 대는 비명과 죽은 이들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이들의 통곡, 거기에 어떻게든 불을 꺼 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고함까지.

실로 아비규환이었다. 법계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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