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9화. 염치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4)
붉은 흙이 높게 쌓였다. 마지막 흙 한 줌을 봉분에 덮은 형 노인이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아비를 남겨 두고 자식이 먼저 가는 경우가 어디 있더냐……. 이 매정한 것.”
형 노인도 안다. 그게 형욱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식이 눈앞에서 처참한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숨이 끊겼다.
살날이 아까워서 외면했던 것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 같은 게 한창인 자식보다 중하기야 했겠나.
만일 노인이 울화를 못 이겨 악도들에게 달려들었다면, 변을 당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을 테다. 마을 사람들과 며느리, 어린 손자들마저 형욱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니 힘이 없는 이는 결국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양민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게…… 그러게, 내가…….”
노인은 말을 더 잇지도 못하고 망연히 흐느꼈다. 주저앉은 그에게 다가온 마을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촌장님……. 형욱이는 남자답게 갔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은 조금의 위안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노인의 울화를 더 끄집어내 버린 듯했다.
그는 발작하듯이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뭔 의미가 있어, 그게! 죽으면 다 끝인 것을! 의리니, 은혜니, 그런 허황한 걸 떠받들어 대니 이런 꼴을 당한 게 아니냐고!”
노인은 제 허벅지를 연신 세게 내리쳤다. 노인의 눈은 시뻘겠고, 입에선 원망의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선하게 살라고? 그게 옳다는 걸 누가 몰라? 선하게 살아서 당하는 게 이 꼴인 걸 다 아니까 외면하는 거지! 우리 같은 놈들은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는 줄 알아! 이 나쁜 놈! 천하의 몹쓸 놈!”
남편을 잃은 아내와 남겨진 자식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협객이니 나발이니! 지나가다 슬쩍 보고 도와주겠답시고 설쳐 대는 놈이 어디 한둘이었어? 그래서? 그래서 뭐가 달라졌어! 우리가 이 꼴을 당할 때 그들이 어디에 있었냐고!”
모두가 침묵했다.
“이러니 외면했어야 하는 건데……. 주제넘게 설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내 그토록 말했거늘…….”
노인은 허물어지듯 무너져 오열했다. 모두 그 광경을 보며 복잡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화산 사람들 덕분에 그들이 목숨이 끊길 위기에서 벗어났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은혜에 보답하려 했던 이는 오히려 처음에 숨이 끊기는 것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고 저 흙 속에 묻혀 있다.
무엇이 옳은 일이었을까?
“……그래도 그분들 덕에 저희가 목숨이나마 붙이고 있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그분들이 안 도와줬어도 요행히 일이 잘 풀렸을 수도 있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신 분들께…….”
“좋은 마음? 그래서 우리가 이 꼴을 당했는가? 촌장님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네. 우리가 그 악적 놈들에게 둘러싸여 벌벌 떨 동안 그들은 대체 뭐 했는가? 저 살겠다고 달아나지 않았느냐 이 말이야!”
봉분을 둘러싸고 제각각 언성을 높였다.
망자를 앞에 두고 보일 모습은 아니나, 그들 역시 어제 겪은 일 때문에 감정이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도와주지나 말 것이지!”
“조금이라도 돕는 게 어딘가? 그것조차 안 해 주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 덕분에 이 꼴 아니냐고? 괜한 기대만 하다가 이게 뭔 일인가! 형욱이가 그놈들 어디로 갔는지만 몰랐어도 저리 험하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자 넋을 놓고 있던 형 노인이 순간 핏발 선 눈으로 사람들을 획 돌아보았다.
“……그게…… 그게 누구 탓이던가?”
“……촌장님?”
“다들 입만 다물었으면 별일 없이 지나갔을 걸세, 다들 입만 다물었으면! 그런데 그 와중에 형욱이 놈을 냅다 팔아넘긴 이가 누군가?”
노인의 일그러진 얼굴은 이제 참혹할 지경이었다.
그는 똑똑히 봤고, 똑똑히 들었다. 한 식구라 믿었던 마을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것을.
이들만 입을 다물었으면 형욱은 죽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이리 고통 끝에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한 아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었던 이들이 뻔뻔하게 그런 일 따윈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모습에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어찌! 내 아들놈이 자네들에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자네들을 얼마나 생각했는데! 아비가 칼을 맞는 한이 있어도 자네들을 살리겠다고 애걸하던 이가 내 아들놈 아닌가! 그런데 어찌……! 어찌!”
노인이 목을 찢는 듯한 소리로 고함을 쳤다.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 보게! 엉?”
몇몇 이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자신은 그런 적 없다는 듯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노인이 이를 갈았다.
“이 천벌 받을 사람들…….”
“그게 왜 우리 잘못입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뭐라?”
형 노인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얼굴에 불만이 가득 어린 이 하나가 퉁명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게 왜 우리 잘못이냐는 말입니다.”
“……이, 이 양심도 없는……!”
“예! 저는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는 놈입니다. 그런데 촌장님이 그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형 노인이 충격이라도 받은 듯 눈을 부릅떴다.
“내가?”
“아닙니까?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은혜고 뭐고 생각하지 말고, 당장 어떻게 목숨 건사할지만 고민해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은혜니, 협의니, 정이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는 놈들이나 생각하는 거라고, 바로 이틀 전에 모두에게 말씀하셨잖습니까.”
노인은 불시에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사내를 보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가 했던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하고 했던 말이 아니다. 노인은 눈을 홉뜨며 말했다.
“혀, 형욱이가 어디 외부 사람인가? 힘이 있는 사람이야? 우리 같은 이들끼리는 서로 도와야…….”
“일단은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사내가 악다구니를 쓰듯 소리쳤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니 주위에서도 노인의 눈치를 보며 만류했다.
“이보게! 촌장님한테 뭐 하는 건가!”
“그만하지 못해?”
“아니! 내가 뭔 틀린 말이라도 했어?”
하지만 사내는 참지 않았다.
“목숨을 구해 준 협객도 외면하고 우리 살 방도를 궁리하는 마당에, 형욱이 놈이 대체 뭘 그리 대단한 걸 해 줬다고 내가 목숨까지 걸어 가며 지켜 줘야 하느냐고! 내가 살고 봐야지! 내가!”
“…….”
“당신들도 다 같은 마음 아니었어? 그때 형욱이 놈이 그 협객들 간 곳을 안다고 고해바친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었냐고.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거 아니야!”
“야, 이 사람아! 뭐가 어찌 됐든 방금 막 형욱이를 흙에 묻었네! 이게 어디 그 앞에서 할…….”
“빌어먹을, 이제 와 착한 척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이 형욱이 놈 팔아넘기는 소리를 못 들었을 것 같습니까?”
“내, 내가 언제…….”
사내의 목에는 시퍼런 핏대가 서 있었다.
“거기서 입 다물었으면 우리 다 죽었을 거잖아! 그럼, 저놈 하나 살리겠다고 우리가 다 죽어야 했단 말이야?”
사내가 형 노인을 형형하게 노려보았다.
“뭐가 다릅니까! 촌장님이 하자는 대로 했잖습니까! 도의고 나발이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말해 보십쇼!”
마지막 힘까지 짜내며 악을 쓰던 사내는 끝내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으로 땅에 엎드렸다.
“뭘 어쩌라는 겁니까, 뭘!”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짐승 같은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노인의 몸에선 힘이 죽 빠져나갔다.
누굴 탓하겠는가? 저 말에 하나 틀린 구석이 없거늘. 그리 살아야 한다고 저들에게 누차 강조했던 건 형 노인이었다.
그 말이 생때같던 아들을 죽였고, 마을을 이 꼴로 만들었다.
‘그래. 살아야지.’
살아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
은혜를 베푼 은인을 팔아넘기고, 수십 년을 함께 살던 이를 악적들의 칼날 아래에 밀어 넣는 한이 있더라도 나 하나 목숨 붙이면 그게 사는 것 아닌가.
그게 옳은 일이 아니던가?
“허허…….”
순간 노인의 입에서 실성한 듯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허허허…….”
그러나 그게 웃음이 아님을 모두가 알았다. 저 소리는 갈 길을 잃은 자의 한탄이자 울음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차마 그런 노인을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한참을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을 신음을 흘리던 노인의 입에서 조금 단단해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떠날 준비들 하게.”
“예?”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당황하여 노인을 보았다.
“촌장님, 그게 무슨…….”
“마을을 나가라는 이야기가 아닐세.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자네들더러 가라 마라 하겠는가?”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저 여기서는 더 살 수 없게 되었으니 떠나자고 한 걸세.”
“여, 여기서 더 살 수 없다니요?”
“저들이 우리를 그냥 두겠는가?”
“……그, 그럼요? 그냥 가지 않았습니까?”
순진한 말이었다. 노인은 피식 웃으며 힘없이 말했다.
“세상일이 그리 수월하게 풀린다면 이 고생도 안 하겠지. 형욱이가 땅속에 들어갔어도, 결국 우리가 저들에게 반항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마을에 화가 닥칠 것이네.”
차마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이미 이 마을은 사패련의 이목에 들었다.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긴다 해도,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그 즉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진 박해가 쏟아질 것이다.
“떠나야지……. 죽을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는 없으니.”
“자, 잠시만요, 촌장님. 우리는 여기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난들 알겠는가?”
“……지, 집이고 밭이고 모두 여기에 있는데…….”
팔자 좋은 소리에 노인은 웃어 버렸다.
“그럼 자네는 남게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현실적인 말을 하면서도 노인의 눈은 공허하기만 했다.
“살아야지……. 그렇게 모질게 연명한 목숨인데, 어떻게든 살아야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화전을 일구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야지…….”
앞에 놓인 삶이 참담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두의 얼굴이 점점 침울해졌다.
노인은 흙 덮인 봉분을 멍하니 보았다. 가슴속이 텅 비어 버렸다.
무얼 위해 살았던가? 결국 마지막에 봐야 할 건 이 꼴이거늘……. 대체 무얼 위해 그리 악착같이 살아남았던가?
내가 남을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뭐 그렇게 혼자 똑똑한 척 굴었던가?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것을.
“바로 준비하게나.”
“예? 바, 바로요?”
“체면 때문에 돌아간 놈들이 뒤로 사람을 보내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가?”
“…….”
“나라면 마을을 쓸어 버린 후에 자신들과 관계없이 마을이 참변을 당했다고 위에 고해 버릴 걸세. 살아야지, 이 사람들아. 그 모진 목숨 어떻게든 이어야지. 그러니 준비들 하게나…….”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것일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당해야 한단 말인가?
“꾸물거리지 말고 움직이게. 그놈들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떠나세.”
“저…… 초, 촌장님?”
“뭣들 하고 섰…….”
“그, 그게 아니라, 저, 저기! 저기에!”
한 사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노인은 힘없는 몸을 움직여 그곳을 돌아보았다.
“허허…….”
마을 어귀, 한 무리의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차가운 인상과 허리에 찬 커다란 칼까지. 노인은 그만 황망하게 웃었다.
“늦은 모양이군…….”
어쩌면 이게 이 마을에 어울리는 최후일지도 모른다. 형 노인은 그리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