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5화.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거야. (5)
“후욱! 후욱! 후욱! 후욱!”
땀이 비가 오듯 흐른다. 이미 의복은 소나기라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었고, 땅을 박찰 때마다 머리카락을 적신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폐가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눈앞이 아득하고 갈 길은 까마득하지만 발을 멈출 순 없다. 그가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순간 폐기되는 건 그 하나만이 아닐 테니까.
호가명은 제대로 된 협박 같은 걸 한 적도 없다.
사파 놈들이 으레 그렇듯이 칼을 들이밀며 쑤셔 박은 것도 아니고, 살점을 발라 죽이겠다고 겁박하며 으르렁거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무섭다.
저자에게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는 마을 하나를 지우는 것 따위는 발밑의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는 것을 아니까.
그만큼 강하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조금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을 사람이란 게 무서웠다.
그러니 달려야 한다. 해남에 두고 온 이들의 목숨이 다름 아닌 저 호가명의 손에 달려 있다.
“후욱! 후욱! 후욱! 컥!”
안간힘을 쓰며 달려가던 유공의 몸이 순간 앞으로 튀어 나가듯 엎어지며 나뒹굴었다. 위쪽에 있을 표식을 찾다 보니 땅에 박힌 돌부리를 놓친 것이다.
무인이 저질렀다기에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실수였지만, 지금의 유공은 그만큼이나 지쳐 있었다.
“쿨럭.”
기침 소리에도 힘이 없다. 손발에서 힘이 빠진 지는 오래다. 하지만 어떻게든 꾸역꾸역 땅을 짚었다. 저들이 그의 사정 따위를 헤아려 줄 리는 만무했다.
“으⋯⋯.”
유공은 부들부들 떨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하지만 두 눈에 보이는 건 여전히 땅에 마구잡이로 자라난 잡초뿐, 시선은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벅.
눈앞에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움찔하며 고개를 드니 독심나찰 호가명이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말의 온기도 없는 그 눈빛에 유공은 거칠게 몰아쉬던 숨까지 순간 멈추고 말았다. 잠시 후 호가명의 입이 열렸다.
“쉬어 간다.”
“예!”
부관들이 그 명에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 명을 끝으로, 호가명은 더 이상 다른 말을 덧붙이는 일 없이 유공에게서 멀어져 갔다. 홀린 듯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공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여기.”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유공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나무 둥치에 죽은 듯 기대어 늘어져 있었던 그의 옆으로 이슬 맺힌 물병이 불쑥 들이밀어져 있었다.
“드십시오.”
유공은 말없이 그 물병을 바라보다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옮겼다. 고홍이었다. 표정이 어째 조금 묘했다.
“뭐 하십니까, 받지 않고.”
유공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물병을 받았다.
차갑다. 가까운 물가로 가 새로 물을 떠 온 모양이었다. 딱히 그를 위해서만은 아니겠지만.
물병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유공은 결국 천천히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고홍이 조금 떨어진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두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할 것 같습니까?”
유공은 입에서 물병을 떼어 내고는 고개를 젖혔다.
별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밤하늘이 보였다.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해남에서 지겹도록 봤던 밤하늘은 아마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밤하늘을 보며 딱히 이렇다 할 감흥조차 느끼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살아서 보는 저 밤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이 얼마나 멋진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모르겠다.”
유공이 뒤늦은 대답을 던지자 고홍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어쨌건 이렇게 쉬는 만큼 다시 멀어지겠죠.”
“아마도.”
사실 모를 일이다. 저들 역시 영원히 달리기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같은 사람인 이상 저들도 쉬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결국은 같은 시간 내에 누가 더 많은 거리를 주파했는가가 전부다. 원래 추격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유공은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고홍 역시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일 테니까.
“사형.”
“⋯⋯그렇게 부르지 마라.”
고홍이 피식 웃었다.
“왜? 죄책감이라도 드십니까?”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데, 죄책감까지 논할 것도 없지. 이제 너와 나는 사형제가 아니지 않으냐.”
“그렇지요⋯⋯. 사형제도 아닐뿐더러 해남의 제자도 아니지요.”
유공은 나무둥치에 머리를 기대며 힘없이 눈을 감았다.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눈을 감는 게 아니라,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을 들어 올릴 힘이 없으니 눈이라도 감을 수밖에.
“그런데, 사형⋯⋯. 그게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뭔 소리냐?”
“보셨습니까? 그 협곡에.”
유공은 눈을 조금 더 질끈 감았다. 이래서 귀를 막고 싶었던 거다. 고홍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명호 사형이 있더군요. 자운 사제도 봤습니다. 강명 장로님도⋯⋯.”
“⋯⋯.”
그라고 왜 보지 못했겠는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이들이 처참히 죽어 널브러진 광경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썩어 가는 그들의 시신을 뛰어넘어 그저 필사적으로 쫓아왔을 뿐이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죽은 놈들은 죽은 놈일 뿐이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살아 있더라고요.”
“뭐?”
고홍의 눈이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제가 거길 통과할 때⋯⋯ 적어도 자운 사제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희를 알아보았는지 눈이 움직이더군요. 허리가 반쯤 잘려 죽어 가는 와중에도⋯⋯.”
유공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자운은 고홍이 특히 귀여워하던 사제다. 고홍이 유공을 졸졸 따라다녔듯이, 자운은 고홍을 특히나 따랐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들리지도 않았고, 알아볼 수도 없었지만⋯⋯ 분명히 뭔가를요.”
“⋯⋯.”
“사형. 자운 사제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저리 꺼져라. 쉬고 싶으니까.”
날이 선 목소리가 고홍의 말허리를 잘랐다. 하지만 고홍은 움찔하기는커녕 되레 비웃음을 흘렸다.
“비켜 주면 쉴 수는 있습니까?”
유공이 순간 고홍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막상 쉬지 못하는 건 사형이 아닙니까.”
“이⋯⋯.”
유공의 두 눈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래서 뭐?”
이를 악문 그가 목을 빳빳하게 쳐들었다.
“그럼 나도 거기에서 같이 시체라도 되어야 했다는 거냐? 거기서 같이 개죽음을 당하고 내 살로 짐승 배나 채워 줘야 올바른 죽음이었다는 거냐? 그 사람 하나 없는 협곡에서 구더기가 끓고, 파리떼가 달라붙는 꼴이 되어야 올바른 일이었단 거냐?”
“사형!”
“개 같은 소리 그만해! 너도 보지 않았느냐? 온갖 잘난 명분을 내세우며 지키겠다고 나선 놈들이 대체 뭘 지켰느냐? 거기서 그렇게 개죽음을 당하면서 대체 뭘? 뭘 지켜 냈느냔 말이다!”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겠냐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내가 아는 건 하나뿐이다. 뒈진 놈이 아무리 지껄여 봐야 들리지도 않고, 알아들을 수도 없다는 것! 그놈은 죽고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것!”
“⋯⋯.”
“죄책감? 버러지 같은 소리. 나는 살아남는다. 나는 절대 그런 개죽음은 당하지 않을 거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다, 어떻게든! 그래서 멀쩡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갈 거다!”
유공의 두 눈에서 독기가 일렁거렸다. 금방이라도 고홍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게⋯⋯ 그게 뭐가 그리 잘못되었냐. 그게 그리도 큰 잘못이냐?”
고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잘게 어깨를 떨 뿐이었다.
유공이 신경질적으로 물을 들이켰다. 술도 아닌 맹물에 불과하건만 속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도 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그는 틀리고 저들은 옳다. 그가 배워 온 대로, 아는 대로라면 그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옳음을 추구했던 이들은 저곳에서 짐승 밥이 되었다. 그리고 틀린 길을 택했던 그는 어쨌거나 아직 목숨을 보전하고 있다.
만일 해남이 강남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끝내 전멸해 버린다면 가장 비열했던 유공만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옳은 길을 가라고?’
연신 헛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위해? 대체 무엇을 위해서 옮음을 견지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알량한 협심을 채우고 자기만족을 하기 위해서?
다 부질없고 개 같은 소리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쉬어라.”
결국 고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공의 말을 들어주는 것인지, 더는 그의 곁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하지만 가 봐야 어딜 가겠는가?
이곳에 그들이 편히 쉴 곳 따위는 없다. 해남을 떠나오는 순간부터 그들은 등을 바닥에 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고홍이 초점 잃은 눈으로 유공을 내려다보았다.
원망하는 건 참으로 손쉽다. 이 모든 게 유공 때문이라고 그를 원망하고 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단 사실을 통감하며 연신 숨통을 옥죄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에 비한다면 실로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고홍은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양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니다. 원망을 유공에게로 돌린다 해서 그의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제 그저 궁금했다.
“뭐가 달랐을까요?”
그 작은 물음에 유공이 고개를 들었다.
“같은 곳에서 나서,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에 있고, 저들은 저곳에 있을까요? 대체 저들과 우리가 무엇이 달랐을까요?”
유공의 입술이 달싹였다.
뻔하지만, 대답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숱한 답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어느 것도 완전한 정답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유공은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을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자조 섞인 웃음이 얼굴에 희미하게 어렸다.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거야.”
“⋯⋯.”
“그게 전부지, 뭐.”
고홍이 말없이 유공을 응시했다.
유공은 어쩐지 그 눈빛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까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볼 수가 없었다.
탓하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 저 무심한 눈빛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그래서 결국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래 봐야 무엇도 피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랬다.
저벅. 저벅.
고홍이 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들리고도 한동안 다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 눈빛은 어쩐지 계속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을 것만 같아서.
한참 후에야 유공은 힘없이 고개를 젖혔다. 별이 쏟아질 듯 많기도 했다. 지옥 같은 세상을 그저 내려다보기만 하는 하늘이 야속했다.
‘무엇이 달랐냐고?’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양손으로 두 눈을 덮어 버렸다.
하늘은 그저 그를 바라볼 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그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뿐이다.
“내가⋯⋯ 어떻게⋯⋯.”
자조 어린 그 목소리는 차마 멀리 퍼지지도 못하고 그 입가에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