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6화. 그 이름만은 새겨 주지. (6)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싸운 걸까?
쇄애애애애액!
불시에 섬뜩하게 날아든 도기가 땅을 내디디려던 발을 베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유이설이 땅에 곤두박질치며 굴렀다. 근육이 끊겼는지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감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유이설은 좌절도, 포기도 하지 않았다.
쾅!
땅을 강력하게 손으로 밀어 내며 그 반동으로 조금 더 훌쩍 나아갔다. 손목에 강한 충격이 오며 부러질 듯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한 발이라도 더!
“죽어라, 이년!”
독기를 두 눈에 가득 품은 만인방도들이 입을 찢어지도록 벌리고 괴성을 내지르며 그녀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유이설은 즉시 검을 전력으로 휘두르며 도를 맞받아쳤다.
카아아앙!
검과 도가 충돌하는 힘을 이용해 뒤로 구른 그녀는 재차 땅을 박찼다.
‘어디쯤 왔지?’
아니,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하는 순간, 아득히 남은 거리에 절망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어디까지 왔는지는 아무 상관 없다. 이곳이 어디든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쇄애애애액!
붉은 도기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모두 막아 낼 수 없단 판단이 선 순간, 유이설의 좌수가 본능적으로 청명의 머리를 감쌌다.
카아앙! 서걱!
그녀의 검과 도기가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도기에 살 베여 나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옆구리가 베이며 많은 피가 쏟아졌지만 유이설은 주춤하거나 휘청이는 일 없이 곧장 뒤로 몸을 뺐다.
더. 한 발이라도 더.
“저 지독한 년이!”
만인방도들도 질린다는 듯 그런 유이설을 바라보았다.
연이어 날아드는 도기에 충격을 적잖이 받은 터라 그녀의 얼굴은 진즉에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해 시야조차 확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착실하게, 악착같이 추적에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더⋯⋯.’
그녀가 흘린 피로 땅이 붉게 물들었다.
이제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저 달아나야 한다는 의지뿐이다.
쇄애애애액!
도기가 날아들자 유이설의 검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카아앙!
하지만 그녀의 검에는 이제 도기를 튕겨 낼 만큼의 힘이 실리지 못했다. 도기와 검이 충돌한 순간 그녀의 손목이 꺾였다. 방향이 틀린 도기는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허벅지가 쩍 벌어지며 허연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위중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가야⋯⋯.’
더는 땅을 힘껏 박찰 수도, 적의 공격을 기민하게 피해 낼 수도 없다. 오른쪽 다리가 더는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지익. 직. 지익.
하지만 유이설은 늘어진 다리를 끌면서도 만인방도들을 마주 보며 끊임없이 물러났다.
출혈이 심한 탓에 생각이 드문드문 끊겼다.
언제부터 싸우고 있었는지, 왜 싸우고 있었는지도 이제는 아득하여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등에 닿아 있는 미약한 체온, 그게 전부였다.
지켜야 한다.
항상 지키겠다고 말하면서도 보호받기만 했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그녀가 이 녀석을 지켜 내야 했다.
“걱⋯정 마⋯⋯.”
유이설은 억지로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손목이 끝내 탈골된 모양으로 자꾸 축 늘어지기만 했다.
“아직⋯⋯ 괜찮⋯⋯으니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청명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 지경이 되어서도⋯⋯.”
지독하다는 듯 질린 목소리로 말하는 게 먹먹한 그녀의 귀로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이해 못 할 것이다, 저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녀석이 있어서 그녀의 검에 매화가 피어났다.
이 녀석이 있어서 현종이 웃게 됐다.
이 녀석이 있어서 그녀가 살아갈 터전을 지켜 냈고, 아비의 삶과 죽음이 그저 헛되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목숨을 거는 데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할까?
“사고는⋯⋯.”
유이설의 입술이 겨우겨우 열렸다.
“사질을⋯⋯ 지켜⋯⋯.”
명백히 한계를 넘은 상황.
굳이 만인방도가 더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절로 숨이 끊길 만한 상황이다. 숨만 붙어 있을 뿐, 시체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만인방도들은 그런 그녀의 숨통을 간단히 끊기 위해 달려들지 못했다. 공포와는 다른, 무위와는 다른 무언가에 압도된 탓이다.
“⋯⋯사고는⋯⋯.”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만인방도들의 등 뒤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뭐 해, 이 병신들아! 당장 쳐 죽이지 못해!”
협곡 안쪽에서부터 달려 이제야 겨우 합류한 이들에겐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일갈에 움찔한 이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유이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저항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하지만 팔도 다리도 이미 늘어졌다.
“⋯⋯사질을⋯⋯.”
도가 유이설의 목을 향해 날아든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간신히 들어서 막아 보려 했지만 끝이 축 늘어진 검은 그 도의 궤적에도 닿지 못했다.
도가 유이설의 손목 위를 스치며 그 목에 임박했다.
“지키⋯⋯.”
카아아아아앙!
그 순간, 벼락 같은 굉음과 함께 유이설의 목에 닿았던 도가 붉은 핏물과 함께 튕겨 나갔다. 목 바로 옆에서 터진 충격에 무너지고 만 유이설과 청명을 누군가 받치며 부축했다.
시야가 부연 가운데, 유이설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누군가를 보았다.
‘⋯⋯조⋯걸?’
“이⋯⋯.”
조걸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 개만도 못한 사파 새끼들이 감히 누구를⋯⋯!”
한 손으로 유이설을 받쳐 든 채, 조걸은 전방으로 검을 찔렀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간 쾌검은 새로운 적의 출현에 주춤한 만인방도들의 몸에 단숨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조걸의 분은 그러고도 조금도 풀리질 않았다. 그의 검 끝에서 붉은 매화검기가 쏟아졌다.
거칠다 못해 다소 폭력적인 검기가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이들을 휩쓸고 갈기갈기 찢었다.
“사고!”
의식이 흐릿해 보이는 유이설을 향해 조걸이 외쳤다.
유이설이 희미하게 눈을 뜨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조걸의 얼굴이 보였다.
“사고, 괜찮으십니까!”
“⋯⋯사질을⋯⋯.”
“빌어먹을, 자기 생각부터 좀 하라고요!”
조걸이 속 터진다는 듯 외치자 유이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룽거렸다.
이내 축 늘어지는 그녀를 조걸이 꽉 붙들었다.
흘깃 보아도 몸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다. 청명이도 사고도 이 지경이 되도록 끝까지 싸웠다.
‘내 탓이다!’
그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더 빨리 쓰러뜨리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나약함에서 비롯되었단 생각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조걸은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어깨에 둘러업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건 끓어오르는 노기를 푸는 게 아니라, 이들을 구해 내는 것이다.
타아아앗!
그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쏜살같이 나아갔다.
“쫓아가라! 당장!”
예상치 못한 조걸의 등장에 잠깐 주저했던 만인방도들은 그가 등을 보이자마자 득달같이 따라붙었다.
“비켜라, 이 개자식들아!”
이미 한차례 지나가 버린 해남을 의욕 없이 추적하던 사파인들은 갑작스럽게 일갈하며 등 뒤에서 나타난 조걸의 존재를 눈치채고 새파랗게 질렸다.
조걸은 그들의 등을 자비 없이 꿰뚫었다.
콰득! 콰득!
몸에 주먹만 한 바람구멍이 뚫린 이들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뭐, 뭐야!”
“뒤다! 뒤에서 온다!”
사파인들이 발작적으로 병장기를 휘둘렀지만, 급작스레 휘두르느라 힘이 실리지 않은 공격이 조걸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저리 비켜!”
“놈을 잡아, 이 멍청한 새끼들아!”
뒤에서 조걸을 추적하던 만인방도들이 엉켜 있는 사파인들을 향해 거칠게 고함쳤다.
만인방도들이 오니 사파인들 역시 기겁하며 길을 열어 주려 했지만, 밀집해 있던 이들이 단번에 물러나는 게 쉬울 리 만무했다.
미처 비키지 못한 이들과 달려오던 기세를 주체하지 못한 만인방도들이 충돌했다. 사파인들은 속도가 한껏 붙은 수레에 들이받히기라도 한 듯 피를 뿌리고 나가떨어졌다.
“이, 이런!”
추적해 오던 만인방도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이 동원했던 병력이 이 순간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이런 일은 호가명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마음이 급해진 만인방도들은 아예 주먹을 휘둘러 사파인들을 갈겼다. 개중 정말로 성정이 포악한 이들은 아예 사파인들을 베어 버리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악!”
설마 같은 편이 도를 휘두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파인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엉켜 나뒹굴었다.
물론 이 혼란이 오래 이어질 리야 없겠으나, 조걸에게는 이마저도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쾅!
“아아아아악!”
조걸이 내리밟은 사파인의 어깨가 주저앉았다. 그 반동으로 몸을 띄운 그는 앞으로, 또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쇄애애애액!
아래에서 빠르게 쇄도해 온 창이 조걸의 왼팔을 노렸다.
그러나 조걸은 내버려 두었다. 발을 멈추는 순간 죽는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에 있는 본대에 합류하는 것.
퍼억!
“아아아아악!”
또 다른 사파인의 어깨를 밟고 뛰어오른 조걸이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하강했다.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에 불쑥 솟아오르는 쇠창이 보였다.
물러서거나, 몸을 비틀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조걸의 선택은 달랐다. 들고 있던 검을 순간적으로 검집에 쑤셔 넣은 그는 돌연 손을 쭉 뻗어 창대를 덥석 움켜잡았다.
“뭣?”
촤아아아악!
내력이 실려 있던 창의 예기는 조걸의 손바닥을 한순간에 찢었다. 그러나 그는 창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게 짓눌렀다. 단단한 쇠창이 일순간 활처럼 휘어졌다 펴졌다.
조걸은 그 힘을 이용해 포탄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서걱! 서걱!
사파인들이 엉겁결에 휘두른 도가 연신 몸을 스치며 베었다.
그러나 조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나아가야 할 방향만을 응시했다.
있다. 있어야 한다!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그는 더 참지 못하고 괴성을 내지르듯 외쳤다.
“혜연 스니이이이임!”
백천이 포함된 무리를 쫓는 사파인들을 떨치던 혜연이 번쩍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청명과 유이설을 둘러업은 조걸이 저 먼 허공을 가르며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신속하게 그곳으로 향했다.
“도자아아아아앙!”
혜연의 몸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제 몸 돌볼 생각 따윈 없는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사파인들의 한중간에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앙!
혜연의 어깨에 얻어맞은 이들이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그는 곧장 땅에 발을 박아 넣으며 사파인들을 날려 댔다. 내력을 너무 긁어다 쓴 탓인지 코와 입에선 피가 연신 쏟아졌다.
하지만 지칠 때가 아니다! 저들이 무사히 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줘야 하니까!
“아—미—타—불!”
혜연이 발악하듯 사파인들을 쳐 날렸다.
그러기를 얼마간, 마침내 적의 한중간에 그가 만들어 낸 선명한 길이 열렸다.
내력은 이미 한계까지 끌어다 썼다.
한계에 맞닥뜨린 순간, 혜연의 두 눈이 불자답지 않게 번뜩이며 빛났다.
“오오오오오!”
혜연의 주먹이 허공을 거세게 가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절정의 백보신권. 지금의 내력으로는 시전할 수 없는⋯⋯. 아니, 시전해서는 안 되는 소림권의 정점.
혼을 담아 쏟아 낸 그 권력이 빼곡하게 막아서던 사파인들을 폭죽처럼 사방으로 튕겨 내고 밀어 냈다.
털썩.
결국 혜연의 무릎이 꺾이며 땅에 닿았다. 칠 공에서 피를 뿜어낸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었다.
‘아, 아직⋯⋯!’
주화입마를 각오하며 혜연은 애써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저리 비켜요, 스님!”
“도, 도장?”
이윽고 혜연의 세상이 붉은 꽃잎으로 뒤덮였다.
“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혜연의 앞으로 치고 나온 당소소가 거칠고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매화검기가 쏟아질 때마다 사파인들의 비명과 피가 난무했다.
당소소는 곧장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외쳤다.
“사형!”
“그래!”
사파인들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그녀가 검을 쭉 뻗자 조걸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 검을 발로 내리밟았다.
검면과 발이 맞닿은 순간.
“으라차아아아!”
당소소가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어깨의 근육이 뚜둑 끊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전력을 다한 검격!
그 검격은 검에 무게를 실었던 세 사람을 확실하게 앞으로 날렸다.
“컥!”
조걸의 입에서 붉은 선지피가 울컥 쏟아졌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내력마저 억제한 채 검격에 실린 힘을 온몸으로 받아 낸 대가였다.
세상이 순간 새까맣게 물들 정도의 충격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시야가 깜깜하여 어둠뿐인 와중에도 그는 결코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스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기에 있을 것을 안다.
조걸은 제 어깨에 둘러업었던 두 사람을 앞으로 던졌다. 혜연이 받아 낼 거라 굳게 믿고.
잠시 검게 물들었던 세상이 다시 제 색을 찾았을 때, 조걸은 보았다.
허공으로 몸을 날린 혜연이 두 사람을 안전하게 받는 모습을 말이다.
“흐⋯⋯.”
그제야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땅이 그를 향해 솟구쳤다.
쿵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힌 조걸은 몇 번을 튀어 올랐다가 다시 처박혔다.
“아으⋯⋯.”
대자로 널브러진 조걸의 입에서 흐흐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해⋯냈⋯⋯.’
그가 떨어진 곳은 적진의 한중간.
드러누운 그를 향해 적들이 승냥이 떼처럼 다가왔다.
게다가 저항할 수도 없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질 않았으니까.
‘알 게 뭐야⋯⋯.’
저들을 구해 낸 대가가 죽음이라면 웃으면서 죽어 주면 그만이다.
조걸은 히죽 웃으며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파아아아아아아앗!
이내 그의 시야로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검기가 휘몰아쳤다.
위력보다도 울분이 강해 보이는 붉은 검기.
조걸의 눈이 순간 커졌다.
조걸을 노리고 달려들던 이들이 이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양단되어 흩뿌려졌다. 쓰러진 조걸의 얼굴 위로도 많은 양의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쏟아지는 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가 조걸의 멱살을 틀어쥐고 끌어 올렸다.
“잘도 해냈구나, 이 미친놈아!”
“⋯⋯사숙 여기 있어도 됩니까?”
“되겠냐!”
백천이 조걸을 확 끌어당겨 완전히 일으키며 외쳤다.
“소소!”
“예, 사숙!”
냉큼 달려온 당소소가 조걸을 둘러업었다. 하지만 백천은 그때까지도 멱살을 쥔 손을 풀지 않았다.
당소소가 의문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백천이 잠깐 침묵하다 조걸에게 말했다.
“항명에 대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진짜.”
“죽이고 싶은 건 나다, 이 망할 새끼야!”
“⋯⋯근데⋯⋯.”
“뭐!”
“왜 웁니까. 쪽팔리게⋯⋯.”
“가!”
백천이 당소소의 등을 떠밀었다. 달려가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드디어 모두가 갔다. 그의 등 뒤로.이제는 그가 막아 낼 때다.
이제야 그가 지켜 낼 순간이었다.
그가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검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주변에 선 이들을 대번에 휩쓸었다.
“이 뒤로는 한 놈도 못 간다.”
피로 물든 백천의 검 끝이 태양 빛을 받아 빛났다.
“나를 죽이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