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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26화 (1,327/1,567)

1326화. 벗어난 건 아무것도 없다. (1)

“으아아아아압!”

당패가 있는 힘을 다해 비도들을 뿌려 냈다.

전투 중에 날리는 비도는 반드시 회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패의 머릿속에 비도를 회수할 방안 따위는 눈꼽 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적을 막아 내겠다는 일념뿐.

“먹어라!”

퍼엉! 퍼엉! 퍼엉!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혈검단원들이 달려들고 있는 협곡에 검은 독분이 마구 피어났다.

날아드는 비도를 전력으로 쳐 낸 혈검단원들이 이를 악물고 독분으로 돌진한다.

독에 중독되는 한이 있더라도 적이 물러날 틈을 주지 않겠다는 각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독분을 뚫어 낸 그들을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유이설의 검이었다.

사라락!

유려하게, 하지만 더없이 단호하게 휘둘러진 유이설의 검이 달려드는 이들의 목을 향해 반원을 그리며 날아든다.

평소였다 해도 막아 낼 수 있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유려한 검.

그러한 검을 다급하게 독분에서 뛰쳐나오며 조우한 이들이 맞이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푸우우우웃!

깨끗하게 베인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유이설의 검은 적의 급소만을 효율적으로 베어 내는 검. 그렇기에 그녀의 검에 당한 이들은 큰 상처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 지금 유이설의 검이 만들어 낸 상흔은 평소 그녀의 검이 남기던 상흔에 비해 확연히 크고 깊었다.

“으아아아아!”

당패가 그런 유이설의 옆으로 치고 나오며 소매 안에 든 암기들을 있는 대로 뿌려 댔다.

당가를 상징하는 우모침(牛毛針)과 귀왕령(鬼王令), 단혼사(斷魂沙)같은 지독한 암기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흩뿌려진다.

하지만 그 마구잡이로 뿌려 댄 암기들은 확실히 효과를 발휘했다.

독분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던 이들이 미친 듯이 날아드는 침과 액체, 모래를 다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끄아아아아악!”

몸을 뚫고 들어오는 침과 피부를 녹이기 시작하는 모래와 액체.

그 암기들이 주는 끔찍한 고통에 천하의 혈검단원들의 입에서마저 비명이 터져 나온다.

“갑시다!”

독분 안에서 비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당패가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아직이야!”

청명이 검을 들어 뛰쳐나오는 이들을 격살하려는 순간, 무언가 청명의 손을 덥석 움켜잡는다.

강제로 청명의 손목을 낚아챈 유이설이 청명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력으로 그를 끌어당기며 달려 나갔다.

얼마나 강하게 당겼는지 손목과 어깨에서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고!”

“따라와!”

청명이 무언가 말하려 하는 찰나, 그 입을 틀어막듯 유이설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순간 청명이 멍해져 유이설을 돌아본다. 적에게서 눈을 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만큼이나 당황스러웠으니까.

고함?

유이설이?

청명이 무언가 다시 입을 떼 보려 했지만, 유이설은 너무도 단호했다. 절대 청명이 다시 싸우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

청명의 시선에 그제야 협곡 앞쪽의 모습이 들어왔다.

보인다.

지긋지긋했던 협곡의 끝이.

백천을 비롯한 화산의 검수들이 그 끝을 뚫어 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압!”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백색의 검기가 작렬한다. 그새 조금이나마 힘을 끌어모은 남궁도위가 앞선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적들도 필사적으로 그 앞을 가로막고는 있었지만 중과부적.

단련될 대로 단련된 화산의 검수들을 막아 내기에 이 협곡은 너무도 좁고 가팔랐다.

“제길! 다시 온다!”

그때, 당패가 비명을 내지른다. 청명이 반사적으로 다시 뒤로 달리려는데, 유이설이 검을 든 손으로 청명의 뒷목 옷자락을 움켜잡고 다시 강렬하게 그를 끌어당긴다.

“달려!”

“뒤에 오⋯⋯.”

“알았으니 달리라고!”

청명이 움찔하여 유이설을 돌아봤다. 유이설이 노기를 있는 대로 드러내며 청명을 노려본다.

맹세컨대 청명은 유이설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봤다.

아니,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으아아아아아!”

당패가 발작적으로 암기를 날린다.

그의 소매 안에 수납된 암기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암기를 아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한순간이라도 저들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당 소가주!”

“예!”

“잡고 달려요!”

그 순간 유이설이 청명을 당패에게 집어 던지고는 후미를 향해 이동했다.

“이 개 같은!”

독과 암기로 범벅이 된 혈검단원들이 두 눈으로 살기를 줄줄이 내뿜으며 유이설을 향해 세검을 내리쳤다.

세검이란 휘두르는 것보다 찔러 댈 때 제 위력이 나오는 병기.

그걸 알고 있음에도 순간적으로 검을 휘둘러 댈 만큼, 저들 역시 흥분했다는 의미다.

카가강!

최단 거리로 뻗어진 유이설의 검이 날아드는 혈검단원의 검을 요격하듯 쳐 낸다.

하지만 검과 검이 맞붙었다 떨어지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검이 유이설의 전신을 꿰뚫을 듯 찔러 들어왔다.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압박감, 그 압박감의 한중간에서 유이설의 검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휘둘러진다.

카아아아앙!

허공에 완연한 원을 그려낸 검기가 날아드는 검을 동시에 쳐 냈다.

동시에 유이설의 눈썹이 살짝 꿈틀한다.

화산이 쓰는 얇은 검보다 배는 얇고 더 가는 세검을 쳐 냈음에도 손목에 둔중한 통증이 어린다.

찔리기는커녕 닿지도 않은 몸에서 면도날로 그어 댄 듯한 따끔함이 느껴진다.

목숨을 걸고 쏟아 내는 전력과 전력이 부딪힌다는 것.

그 전장의 압박이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유이설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쇄애애애액!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휘둘러진 유이설의 검이 적의 검을 밀쳐 내고는 더없이 쾌속하게 적들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챙! 콰득!

둘은 막아 냈지만, 하나는 막지 못했다.

검이 살을 가르고 들어가 뼈에 틀어박히는 감각. 그 끔찍한 감각을 채 느낄 새도 없이 검을 뽑아낸 유이설이 바닥을 박차며 단번에 뒤로 물러난다.

“큭!”

“이년이!”

혈검단원들의 눈에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들이 재차 덮쳐들려는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먼지처럼 미세한 모래들이 흩뿌려진다.

혈검단원들이 기겁을 하며 검을 휘둘러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모래들을 쳐 냈다.

그러나 아무리 검을 휘두른다 한들 떨어지는 모래를 모두 막아 낼 수는 없는 법.

난무하는 검들을 빗겨 떨어진 모래들이 그들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끄르륵⋯⋯.”

치밀어 오르는 독 기운을 이기지 못한 한 혈검단원의 입에서 검게 물든 피거품이 끓어오른다.

뒤따라 달려온 이가 주춤하는 혈검단원을 밀쳐 절벽에 처박아 버리고는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유이설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아아아!”

머리 위에서 강렬하게 떨어지는 검. 그 검에 실린 진기가 얼마나 강력할지는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일격에 모든 것을 건듯한 참격. 유이설이 입술을 깨물며 그 참격을 맞받으려는 순간.

파아아아앗!

유이설의 목 바로 옆을 스치며 뿜어진 검기가 달려들던 혈검단원의 목을 단숨에 꿰뚫는다.

달려들던 이가 그 여력에 휩쓸려 포탄에 맞은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뻥 뚫린 그의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협곡에 혈우를 내렸다.

파아아앗! 파아아아앗!

동료의 죽음에도 기세를 죽이지 않고 달려들던 혈검단원들의 목을 연이어 날아든 검기가 꿰뚫어 낸다.

그 광경을 본 유이설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검을 떨쳤다.

‘내 몫이야!’

그녀의 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가르고 달려드는 혈검단원의 목에 틀어박히는 순간이었다.

푸우우욱!

검이 살을 찢어내는 소리. 그 소리가 뭔가 겹쳐 들린다는 자각이 드는 동시에 그녀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아래로 내려간다.

그녀가 베어 낸 혈검단원의 가슴을 뚫고 피로 물든 검이 불쑥 튀어나와 유이설의 명치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이설의 두 눈이 순간 부릅떠진다.

뒤에서 지켜본다면 뻔하디뻔한 일수.

하나 전력을 다해 적을 향해 검을 날리고 있는 이에게는 이보다 더 흉악한 수가 없다.

이미 반응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직감한 유이설이 자신의 배를 꿰뚫으려는 검을 그저 바라볼 때, 그녀의 눈에 날아드는 또 하나의 검기가 포착된다.

카아아아아앙!

섬전처럼 날아든 붉은 검기가 유이설을 공격하던 검을 단번에 쳐 낸다.

튕겨 나간 검이 혈검단원의 육체를 일검에 두 동강을 냈고, 그 터져 나오는 핏물 사이로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괴량이 발작하듯 달려든다.

“이 개 같은 놈이!”

지긋지긋하다.

그 말이 아니고서야 지금의 괴량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장일소가 아니고서야 수하로 거둘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만인방의 단주들.

그 단주 중 하나인 괴량이 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과장되기는커녕 오히려 폄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악착같이 따라붙고 있었다.

“비켜라!”

하지만 괴량에게 앞을 막아선 유이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유이설의 뒤에 있는 청명. 부상을 입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맹수였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이 순간이 가장 결정적인 때다. 지금 저놈을 놓친다면 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그 과정 끝에 놈을 반드시 잡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지금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

하지만 유이설은 그런 괴량을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쇄애애애액!

쾌속하고 날카롭지만, 더없이 부드럽다는 역설.

그 역설을 현실에 구현해 낸 유이설의 검이 부드럽게 휘둘러지며 괴량의 몸을 횡으로 갈라 왔다.

카강!

괴량이 호흡조차 없이 날아드는 검을 단번에 튕겨 낸다.

그리고는 귀찮은 것을 털어 내듯 유이설의 몸통을 그어 버리려는데, 튕겨 나간 검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허공에서 빙글 원을 그리며 재차 괴량의 목을 베어 왔다.

“읏!”

괴량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져 나온다.

캉! 카앙! 캉!

괴량과 유이설의 검이 허공에서 몇 번이고 충돌한다.

“이⋯⋯!”

괴량의 두 눈에 살의가 들끓었다.

이 검은 끈질기게 그에게 들러붙는다. 쳐 내고 또 쳐 내도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재차 날아든다.

청명의 것과 닮아 있는 검. 하지만 명백하게 결이 다른 그 검이 괴량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고 있었다.

“이 망할!”

파아아아아아앗!

괴량이 노기를 터뜨리려는 순간, 유이설의 어깨 뒤편에서 내리치는 벼락같은 검기가 폭발적으로 날아들었다.

괴량이 격하게 몸을 옆으로 뒤틀었지만, 날아든 검기는 여지없이 괴량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괴량의 입으로 핏물이 울컥 솟구친다.

내장이 상한 건 아니지만, 몸이 꿰뚫리며 파고든 내력이 그의 내부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괴량이 핏발 선 눈으로 유이설의 뒤쪽을 바라본다.

유이설의 바로 뒤에 선 청명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

사냥을 당한다고? 그가?

“이⋯⋯.”

괴량이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악을 쓰려는 그때.

화아아아아아악!

그의 눈에 거대한 매화의 강이 보인다.

그의 앞?

아니, 저 멀리!

협곡의 끝에서 급류처럼 피어오른 매화 꽃잎들이 저항하던 이들을 일시에 휩쓸어 냈다.

그리고 이내 흐르고 흐른 검기는 마치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좁은 계곡을 넘어 드넓은 대지로 퍼져 나갔다.

그 말은 즉⋯⋯.

“열었다!”

백천.

마지막 저항을 무너뜨린 그의 눈에 드넓은 대지의 모습이 들어온다. 길고 길었던 협곡이 마침내 그 끝을 드러낸 것이다.

그 광경에 주먹을 움켜쥔 백천이 힘껏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달려라! 협곡을 빠져나간다!”

“가자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앗!”

조걸의 외침에 그 윤종마저 호응하며 고함을 터뜨린다.

일순 사기 백배한 해남의 문도들도 다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 대며 열려 있는 길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