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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13화 (1,314/1,567)

1313화. 나는 알 것 같은데? (3)

사람이 비처럼 내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이 지금 조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좁다랗게 보이는 하늘을 모두 가려 버리며 강하하는 흑의인들의 모습에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분명 없었는데!”

그와 윤종이 정탐했을 때는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다.

드문드문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결코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윤종 역시 당혹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경우는 하나, 저들이 산 위가 아닌 뒤편에 대규모로 매복하고 있었을 때다.

하지만 윤종은 그런 경우를 고려하지 못했다.

아니, 굳이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적은 다수고 완벽하게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왜 굳이 저런 함정까지 판단 말인가?

그저 힘으로 찍어 눌러 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저들은 그 함정을 굳이 팠다.

그제야 윤종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이해했다.

‘저들 역시 필사적인 거야.’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화산은 대체로 화산보다 강한 이들을 상대해 왔다.

그렇기에 적의 허를 찌르는 쪽은 언제나 화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뒤바뀌었다.

저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이들처럼 화산을 경시하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고, 방심을 유도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철저히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그들이 진짜 화산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해남파에 천우맹의 몇몇이 더해진 이들에 불과하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변화를, 그 필사적인 각오를 알지 못했기에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을 놓친 것이다.

“제기랄!”

조걸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조걸은 성격이 급한 거지, 아둔한 게 아니다.

윤종이 깨달은 사실을 그라고 모를 리 없다.

“이익!”

결국 조걸이 자세를 굽히고 위로 뛰어오를 태세를 취하자 윤종이 엄하게 소리쳤다.

“조걸!”

조걸이 이를 악물고 윤종을 돌아보았다.

“사형, 이건……!”

“지나간 일이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해남의 제자들을 지켜!”

“하지만 적들이 너무 많잖습니까!”

“해 준다!”

조걸의 거센 저항을 단숨에 찍어 눌러 버린 윤종이 고개를 들었다.

솟구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청명, 그리고 유이설.

두 사람이 쏟아져 내리는 적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라면 반드시 어떻게든 해 줄 거다! 반드시!”

협곡을 타고 흐르는 강풍이 청명의 전신을 때려 댔다.

무복이 미친 듯이 펄럭인다.

하지만 청명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절벽 면을 밟는 한 발, 한 발이 강력했다.

한편 절벽을 타고 하강하던 이들은 청명을 발견하자마자 악을 썼다.

“떨어뜨려!”

“으하아아아아아압!”

근접전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길이는 줄이고 두께를 두껍게 제작한 월도(月刀)가 일제히 휘둘러졌다.

굵직한 도기가 숱하게 청명을 향해 어지러이 날아들었다.

콰가가각! 콰아앙! 콰각!

날아든 도기가 절벽 면으로 족족 박혔다.

사람 손이 닿은 적 없는 절벽 면에는 거대한 악귀가 발톱으로 그은 듯한 커다란 자국이 새겨졌다.

하지만 정작 그 도기가 짓이겼어야 할 청명은 이미 반대쪽 절벽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말도 안 될 만큼 신속한 이동이었다.

평범한 적이라면 당황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하지만 흑의인들은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재차 도를 휘둘렀다.

쇄애애애애애액!

수십의 흑의인이 동시에 발출해 낸 도기가 다시금 맹렬하게 청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고작 한 사람을 저지하기 위해 날린 도기라기엔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과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정작 공격을 쏟아부은 이들은 자신들이 과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화산검협 청명.

그 높은 이름을 상대로 ‘과하다’는 건 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사패련 내에서는!

그 대단한 각오를 싣고 날아드는 도기 앞에서, 청명의 두 눈이 일순 새파란 한기를 내뿜었다.

전후좌우.

청명이 이동할 만한 곳을 완벽하게 뒤덮어 오고 있다.

어디로 물러나더라도 피할 곳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협곡 속에서는 그 하늘조차도 좁디좁을 뿐이다.

파아아아앗!

그 절체절명의 순간, 청명이 선택한 건 도기가 날아드는 정면이었다.

“도자아아앙!!”

아래에서 그 광경을 본 남궁도위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자살행위.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

저 무수한 도기를 절벽에 붙어서 피해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말이 안 된다.

그런데 허공이라니!

대체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저 도기들을 어찌 막아 낸단 말인가!

하지만 뒤이어 청명의 검이 펼쳐지자, 남궁도위의 입이 순간 틀어막힌 듯 잠잠해졌다.

파아아아앗!

암향매화검이 날아드는 도기를 향해 휘둘러졌다.

쿵!

하나하나가 거대한 도기와 얇디얇은 청명의 검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청명의 몸이 뒤로…….

아니, 아래로 튕겨 나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 순간 검이 스르륵 회전하더니 되레 청명의 몸이 위로 더 솟구쳐 올랐다.

말도 안 되지만, 정면에서 날아든 도기가 마치 청명의 등을 밀어 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남궁도위가 눈을 부릅떴다.

“저, 저거!”

눈으로 보고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는 할 수 있는데 믿을 수가 없다.

극성의 이화접목(移花接木).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기공의 최상승 경지다.

그저 상대의 힘을 흘려버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힘을 뜻대로 이용하는 묘리.

유(柔)의 검학과 함께 무당을 소림에 버금가는 위치까지 끌어올려 준 이화접목의 수가 지금 청명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무당의 도인들조차도 경악할 수준으로 말이다.

‘어떻게?’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전율이 남궁도위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화접목은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묘리가 아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건 무학을 익히는 이라면 기초를 떼고 나면 가장 먼저 배우는 수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화접목을 초상승의 경지라 부르는 이유는, 그 간단한 이치를 실전에서 발휘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명은 그 묘리를 검으로 완벽하게 발현해 냈다.

상대의 힘을 온전히 제 몸 뒤로 비껴 흘리며 그 반동을 고스란히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으로 전환한다.

알아도 이해가 안 되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매화도를 경험하고, 천우맹에서 수련을 겪고, 이 강남에서 지독한 실전까지 겪은 남궁도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 검을 실전에서 사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 발 디딜 곳조차 없는 허공에서 오직 상대의 힘만을 이용하여 몸을 띄워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말이다.

파아앗! 파아아앗!

청명은 도기를 검으로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도기에서 또 다른 도기로, 검을 떨칠 때마다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도기의 숲을 빠져나올 즈음에는 그 형상이 거의 검은 섬전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미, 미친!”

위에서 그 광경을 본 이들의 눈에는 경악과 공포가 휘몰아쳤다.

저 몰아치는 도기 속에 사람이 빠져나올 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할 리 없는 길이 지금 분명히 열렸다.

마치 도기가 스스로 방향을 틀어 청명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내 마지막 도기를 내려친 청명의 몸이 위를 향해 광속으로 솟아올랐다.

“큭!”

앞으로 날아오는 청명을 본 이가 반사적으로 도를 들어 제 몸을 가렸다.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세로 휘둘러졌다.

아래에서 위로, 거칠 것 없이 강력한 움직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앗!

암향매화검이 내력을 밀어 넣은 흑의인의 도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고막을 터뜨려 버릴 것만 같은 폭음과 함께, 일격에 두 쪽이 난 흑의인의 몸뚱이는 가공할 속도로 튕겨 나가 절벽에 처박혔다.

단숨에 흑의인을 반으로 갈라 버린 청명은 강하하는 이들의 사이로 곧장 파고들며 허리를 뒤틀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앙!

한껏 뒤틀렸던 허리가 일시에 바로 돌아오며 손에 잡힌 검이 중천에 뜬 태양처럼 원을 그려 냈다.

그 원의 반경 안에 든 모든 것이 단숨에 베여 나갔다.

목이 베인 이는 그나마 비명 지를 겨를도 없이 즉사했지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이는 발 디딜 곳조차 없는 허공에서 상처를 부여잡고 절규해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청명은 숨돌릴 틈조차 없이 검을 뻗어 비명을 내지르는 이의 가슴을 꿰뚫는다.

겨우 반 뼘.

심장에 닿지 않을 만큼 검을 찔러 넣은 청명은 이내 검을 강하게 내리그으며 그 반동으로 재차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흑의인들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질린 기색이 스쳤다.

아래에 있는 이들을 덮치는 건 수없이 해 온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허공에서 누군가와 손을 섞어 볼 일이 있었겠는가?

지독하게 반복해 온 단련도, 목숨까지 걸어 가며 해 온 수련도 이 순간만큼은 그저 무용지물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허공에서 청명이 검을 움직였다.

세 흑의인의 경동맥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렸다.

젖혀지는 흑의인의 상체를 밟으며 청명은 다시 뛰어올랐다.

“끄, 끄륵…….”

목을 움켜잡은 흑의인의 눈에 독기가 끓었다.

어차피 그에게 남은 길은 죽음뿐이다.

이렇게 된 거, 청명을 반드시 저승길 동반자로 삼겠단 생각으로 도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순간, 도를 잡은 그의 손목에 날카로운 고통이 파고들었다.

서걱!

도를 잡은 손이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흑의인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검은 무언가가 그런 그를 스치고 위로 솟구쳤다.

‘화, 화산의……?’

의식이 점차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 강렬한 모습은 눈에 새겨지는 듯했다.

싸늘한 눈빛을 지닌 한 여검수가 그의 가슴을 밟으며 이미 위로 솟구친 청명의 뒤를 쫓고 있었다.

마치 호위하는 듯이.

청명은 점점 위로 향했다.

한순간도 떨어지는 일 없이 위로만.

그리하여 순식간에 청명은 협곡보다 더 높게, 흑의인들이 몸을 날린 위치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

협곡을 빠져나오자 좁게만 보이던 하늘이 드넓게 펼쳐졌다.

창공으로 높게 뛰어오른 청명은 순간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허공을 박찼다.

그리고 아래로 가속했다.

화아아아아아악!

내뻗은 청명의 검 끝에서 무수한 매화가 피어오른다.

마치 절벽 사이로 자란 매화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는 것처럼, 좁은 협곡의 하늘에서 붉은 매화가 하염없이 피고, 또 피어났다.

평소 청명이 보여 주던 것보다 더욱 핏빛을 띤 붉은 검기가 일제히 흐드러졌다.

극성으로 전개된 (二十四手梅花劍法)의 절초, 매화혈우(梅花血雨)초식이 강하하는 흑의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또 다른 피를 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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