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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11화 (1,312/1,567)

1311화. 나는 알 것 같은데? (1)

- 독으로는 절대고수를 잡을 수 없다.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다.

- 사천당가에서는 단 한 번도 천하제일고수가 배출된 적이 없다. 독이 가지는 명백한 한계 때문이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닐지 모른다.

- 당가가 변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인자 이상이 될 수 없다.

그 말 역시 쓰라리지만 정확한 지적이다.

사천당가의 독은 당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들어 주지 못했고, 당가인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사천당가는 천하의 패자가 아닌, 사천의 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에 당패가 하고 싶은 대답은 하나였다.

‘그래서 뭐가 문제지?’

당가의 약점을 지적하는 이들 중 당가와 적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 단점투성이인 당가와 감히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하는 세력이 있는가?

없다. 단언컨대 없다.

단점투성이 문파.

그럼에도 천하의 어떤 문파보다 경외시되고, 그 어떤 문파보다 두려움의 대상이다.

단점이 있다 한들 당가는 당가요, 최고가 되지 못한다 한들 당가는 여전히 당가다.

화아아아아아.

당패의 소매 안에서 검은 독연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단련된 무인의 안력으로도 꿰뚫어 보는 게 불가능할 만큼 짙은 독연이 당패가 발출한 장력에 실려 혈의인들을 덮쳤다.

“이, 이런!”

혈의인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질렸다.

저 시커먼 독연을 뒤집어쓴 이가 어떻게 되는지 이미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피해야 한다. 절대 휩쓸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방법이 없다.

이곳은 협곡이니까. 좌도 우도 깎아지른 절벽으로 막힌 좁다란 협곡.

등 뒤는 아군으로 막혀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전방과 위밖에 없다.

그런데 당패가 뿌린 독연은 이미 머리 위까지 검게 물들인 뒤다.

“물러나라!”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명을 받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로 몸을 날렸다.

추격하는 이들이 물러나는 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저 독연을 보고도 돌진하는 건 입에 칼을 물고 엎어지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별도리가 없지 않은가?

일단 물러나는 걸 택한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들이 쉽게 물러나는 걸 당패가 허락할 리 없었다.

쇄애애애애액!

폭발한 화산에서 쏟아지는 화산재처럼 맹렬히 그들을 덮치던 독연을 뚫고,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헉!”

침착하게 물러나려던 이들의 입에서 당혹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걱! 서걱! 서걱!

“큭!”

“윽!”

영문도 모르고 상처를 입은 이들이 신음을 흘렸다.

고통에는 더없이 익숙하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하니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말고 물러나! 별것…… 아니…….”

큰 목소리로 명을 내리던 이의 말이 중간에서 끊겼다.

상처를 입은 이들의 몸이 휘청였다.

순간 눈앞의 세상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 독?’

이건 심각한 중독 증상이다.

하지만 언제? 이들은 독연에 닿은 적이 없다.

지독한 현기증에 휘청이던 이가 문득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다 손톱으로 긁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상처였는데, 그 주변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 이 정도 상처로…….’

이들은 하오문의 추격조다.

맡은 임무의 특성상 당연히 독과 친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원들 모두가 독에 대한 내성은 웬만큼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어떤 독이기에 이렇게나 순식간에 하오문의 추격자들을 중독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팔을 스치고 지나간 암기에 묻은 독의 양이라고 해 봐야 고작 한 방울도 되지 않을 텐데!

“끄, 끄으…….”

혈의인의 전신에 보랏빛 굵은 핏줄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피부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극심한 현기증과 격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몸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 혈의인의 눈에 스멀스멀 다가오는 검은 독연이 보였다.

검은 독연이 느릿하게 번져 오는 모습은 죽음이 다가오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핏발이 잔뜩 선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아, 안……!’

화아아아아악!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독연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뿌득.

또다시 여럿의 혈의인들이 독연에 삼켜지자, 곽철(郭撤)이 이를 갈아붙였다.

순식간에 열에 가까운 수하를 잃었다.

손도 발도 써 보지 못하고 말이다.

‘고작 저런 놈에게!’

곽철의 두 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협곡에 진입하는 순간 확인했던 당패의 무위는 딱히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 정도의 무인이라면 수하를 네다섯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곤죽을 만들고도 남는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놈을 곤죽으로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수하들이 반쯤 녹은 시신으로 나뒹굴고 있다.

‘대체 무슨 독이지?’

당가의 독이 천하제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천당가가 괜히 만독의 조종(租宗)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당가의 독은 천하 모든 문파의 경계 대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가의 독이 이 정도 위력을 지녔단 말은 듣도 보도 못 했다.

“대주!”

곽철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순간에도 독연은 번져 오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저 독연이 모두 빠질 때까지 협곡 뒤로 물러났다가 재진입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저 당가 놈의 독이 저게 전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저 너른 소매 안에 얼마나 많은 독이 남아 있을지 그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놈들이 협곡을 돌파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채 구경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랬다가는 곽철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돌파한다.”

“대, 대주?”

“독연은 장력으로 밀어 내라. 몸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 접근만 할 수 있다면 별것 아닌 놈이다. 죽여라.”

명은 떨어졌다.

항명이란 선택지는 없다. 오직 따를 뿐.

당혹감이 어렸던 게 언제냐는 듯, 혈의인들의 눈에선 이내 새파란 살기가 흘려내렸다.

“가라!”

파아아아앗!

혈의인들은 앞으로 또 앞으로 돌진했다.

세검을 검집에 찔러 넣고 양손에 공력을 있는 대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은 독연 속에서 녹빛을 띤 비수가 불쑥 튀어나왔다.

콰득! 콰득! 콰득!

선두에서 달리던 이들의 머리에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비수가 뿌리까지 박혀 들었다.

만일 이 비도가 훤히 보이는 채로 마주 선 당패의 손에서 발출되었다면 충분히 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비도는 무척 위험하지만, 또한 단순한 무기니까.

하지만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독연과, 전력을 다해 돌진해야 하는 그들의 상황은 평범한 비도를 전혀 다른 무기로 바꿔 버렸다.

털썩! 털썩!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동료를 타 넘은 이들이 이를 악물고 장력을 발출했다.

“하아아아아압!”

얼마나 다급했는지, 은밀함을 장기로 삼아야 하는 추격조의 입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연이어 터져 나온 장력이 밀려오는 독연을 훅 밀어 냈다.

장력으로 밀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들의 두 눈에 순간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진입해!”

장력을 뿜은 이들이 잠시 멈춘 틈에 뒤쪽에 있던 이들이 앞으로 교대하듯 나아가며 재차 장력을 쏟았다.

처음 겪는 일이라 손발을 맞춰 보지 않은 일일 것임에도 마치 수십 번은 훈련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독을 품은 연기라 해도 몸에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독연을 밀어 낸 이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갔다.

확실히 그 대처는 틀리지 않았다.

당패가 보유한 독이 그것뿐이었다면 말이다.

“단숨에 밀고 들어…….”

파아아아앗!

독연의 색이 일순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물드는 듯했다.

선두에 있던 이들이 검을 뽑아 든 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이 시킨 일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이 그들을 구했다.

카가가가각!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내민 세검에 무언가가 얽혀들었다.

‘그물?’

독연을 뚫고 그들을 덮치려던 붉은 그물이 세검에 칭칭 휘감겼다.

만일 이 그물을 손으로 막으려 했다면, 지금쯤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뻔했다.

‘사, 살았…….’

저 붉은빛을 띠는 그물에는 악랄한 당가의 독이 듬뿍 묻어 있을 것이다.

아마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한 줌 핏덩어리로 녹여 버렸겠지.

세검으로 그물을 막아 낸 이들의 입에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위쪽에서 무언가 서늘한 감각을 느낀 이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무언가…….

‘음?’

아무것도 없다.

그의 눈에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흐린 하늘뿐이었다.

의아함과 불길함을 억누른 이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멈칫했다.

‘잠깐?’

흐린 하늘? 오늘 하늘이 원래 흐렸던가?

그가 눈을 부릅떴다.

“아…….”

흐린 게 아니다.

무언가로 뒤덮인 하늘이다.

마치 저 서장(西藏)의 모래사막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처럼, 무언가가 시야를 가린 듯한…….

뇌가 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피해! 머리 위다!”

검을 회수하고 몸을 뒤로 날리려 했지만, 단단히 얽혀든 그물은 쉽사리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빠르게 검을 놓아 버리고 몸을 날렸지만, 한순간 멈칫했던 것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 지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것들이 혈의인들의 몸을 연신 때렸다.

‘모래?’

아프지도 않다. 상처조차 없다.

그저 아주 작은 모래알들이 몸을 덮쳤을 뿐이다.

하지만 혈의인들은 이게 어떤 상황인지 빠르게 알아챘다.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따끔.

바늘로 피부를 가볍게 찌른 듯한 느낌이 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혈의인들의 눈이 절망과 공포로 짙게 물들었다.

들어 본 적이 있다.

당가의 모래.

그 미세한 모래는 피부와 모공으로 파고들어 사람을 중독시킨다.

해약조차 존재하지 않는 극독 모래.

그 모래는 사람의 목숨은 물론 영혼조차 끊어 놓는다고 한다.

“다, 단혼사(斷魂沙)!”

수백 개의 예리한 면도칼이 전신을 난자하는 것 같은 고통이 덮쳐 왔다.

이에 휩쓸린 이들은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허물어져 몸부림쳤다.

몸이 연신 덜덜 떨렸다.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기절하는 것조차 허락되질 않는다.

끔찍한 신음을 토해 내고 경련하며, 차라리 누군가가 목숨을 끊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쇄애애애애액!

콰득! 콰득! 콰득!

그 순간 독연을 뚫고 날아든 여러 자루의 비도가 혈의인들의 정수리에 연이어 틀어박혔다.

털썩. 털썩.

고통에 겨워 발악하던 혈의인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어쩌면 그들은 목숨이 끊기는 그 순간 당패에게 고마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독연이 잦아들었다.

모습을 드러낸 당패가 손가락을 당겨 비도를 회수했다.

탁.

열 개의 비도를 손에 든 당패가 차마 접근하지 못하는 혈의인들을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문제 하나 내 드리지.”

“…….”

“내 독이 다 떨어지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너희가 모두 죽는 게 먼저일까?”

혈의인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당패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알 것 같은데?”

비도가 다시금 허공을 빛살처럼 갈랐다.

아주 오래전, 비도가 가장 빛났던 바로 그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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