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화. 상대가 당신이라면 양보해야지. (3)
“놈!”
“잘도 여기까지 기어들었구나!”
협곡을 따라 진을 치고 있던 이들이 단숨에 혜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협곡 외부에서 진을 치던 이들도 똑같이 살기를 뿜었지만, 눈앞의 놈들은 훨씬 더 정제되어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쇄애애액!
전방에 둘, 머리 위로 둘.
네 사람이 동시에 혜연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이들의 손에는 적어도 일 장은 되어 보이는 긴 장창이 들려 있었다.
창이란 천하의 어느 것보다도 효율적인 무기다.
숙련되지 못한 이들의 손에 쥐여 주었을 때, 이보다 더 쉽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는 없으니까.
물론 길이가 길다 보니 오히려 상승의 무학을 펼치긴 어렵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은 아니다.
몸을 피할 곳이 없고, 정면으로 달려들어야만 하는 좁은 길에서는 저 창의 위력이 몇 배는 더 커진다.
하물며 혜연은 병기가 가진 길이의 이점을 전혀 살릴 수 없는 권사다.
이 불리함마저 더해진다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의 장기와도 같은 권력이라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협곡 안에서는 권력을 발출할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여 협곡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뒤따르는 해남 제자들이 참사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그의 특기는 봉쇄되었고, 적과의 상성은 끔찍할 정도로 나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혜연의 마음엔 한 점 흔들림도 깃들지 않았다.
쿠웅!
진각을 밟은 혜연이 단숨에 쇄도했다.
“아미타불!”
짧게 불호를 왼 후, 전방에서 날아드는 장창들을 향해 양손을 부드럽게 휘저었다.
카가가가강!
진기를 한껏 머금어 강철도 갈라 낼 수 있을 만큼의 창기를 뿜던 창은, 혜연의 소매에 닿는 순간 여지없이 튕겨 나갔다.
심지어는 섬전처럼 뻗치던 창들이 제멋대로 휘며 혜연의 몸 사방으로 비껴갔다.
혜연의 몸은 그 창들이 옆으로 벌어지며 생겨난 틈을 따라 잔영을 남기며 이동했다.
금강부동보(金剛不動步)!
소림칠십이종 절예 중 하나다.
소림의 무학은 중원의 근본.
단순히 내력의 강대함과 장력의 위력만으로 어찌 중원 무학의 본산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었겠는가?
권장지각(拳掌指脚) 내외보신(內外步迅).
사람의 몸을 이용하여 펼치는 무학의 정수가 소림의 무학 안에 담겨 있다.
혜연이 흡사 환상처럼 이동하는 순간, 적들은 내민 창을 쾌속하게 회수했다.
단순히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창을 거의 뒤로 던지듯 당겨 창대가 아닌 창날 바로 아래를 움켜잡았다.
장창(長䅮)을 짧게 바투 잡으면 단창(短䅮)이 된다.
어렵지 않은 생각이지만, 창의 이점에 익숙해진 이들은 쉽사리 하지 못할 발상이었다.
이 같은 대처가 즉각 이뤄지는 것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전투에 익숙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혜연의 능력은 그들의 대처조차 훌쩍 뛰어넘었다.
창날 바로 밑을 움켜잡은 이가 단숨에 앞으로 내지르려 했다.
권사가 공격할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혜연은 반드시 이쯤에서 멈춰야 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 혜연이 더욱 깊게 그들을 향해 파고들었다.
주먹을 날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리까지 말이다.
‘뭣?’
어깨와 어깨가 맞닿을 만큼 단숨에 파고든 혜연이 땅에 발을 심듯이 콱 힘을 주었다.
발끝에서 이어진 힘이 회오리처럼 다리를 타고 올라 상체를 넘었고, 이내 어깨까지 가 닿았다.
혜연은 어깨로 눈앞에 있는 무사의 가슴을 단번에 들이받았다.
쿠우우우웅!
강력한 나선경(螺旋勁).
어마어마한 회전력을 실은 고법(靠法:어깨로 들이받는 기술)이 상대가 가슴에 두른 경기를 산산이 깨뜨렸다.
흡사 손에서 미끄러진 사기그릇처럼 말이다.
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허공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몸만 보아도, 혜연의 일격이 얼마나 대단한 회전력을 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큭!”
“이놈이!”
동료가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틈을 타 다른 무사들이 재빠르게 단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은 건, 기묘하게 구부러져 보이는 혜연의 손이었다.
카각!
또 하나의 칠십이종절예인 용조수(龍爪手)가 이름 그대로 용의 발톱처럼 날아드는 단창을 낚아챘다.
단숨에 세 개의 창을 잡아챈 혜연의 손이 일순 탄성을 가진 듯 펼쳐졌다.
그 손가락 끝에서 백색 지력(指力)이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왔다.
쇄애애애애액!
섬광처럼 뻗어 나간 지력은 무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아아아아악!”
몸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그들은 피를 쏟으며 나뒹굴었다.
소림의 지법 중 가장 유명한 탄지신통(彈指神通)이 명성 그대로의 위력을 선보인 것이다.
혜연의 손을 통해서.
“이, 이 망할 중놈이!”
뒤에 있던 이가 악을 쓰며 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이번엔 혜연의 발이 준비동작도 없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아니, 휘둘러졌다기보다는 ‘그었다’라고 표현해야 할 동작이었다.
그의 발끝과 맞닿은 창대가 예리한 명검에 베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바, 발로……?”
무사는 순간 내지른 창을 회수할 생각도 못 하고 경악했다.
혜연은 그 잘린 창대 앞에서 자세를 낮추었다.
“아미타불.”
혜연의 손바닥이 반듯하게 잘려 나간 창대의 끝을 짧게 쳤다.
마치 어린아이가 손을 뻗는 듯 가벼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투우우우우우우웅!
혜연의 손에 실린 천불종(千佛鐘)의 공력이 긴 창대를 마치 종처럼 울렸다.
“쿨럭!”
“우, 우웨엑!”
여세를 몰아 달려들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피를 토했다.
공명하는 듯한 울림을 느낀 순간, 내부가 절로 진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던 이들이 이만한 충격을 받았는데, 바로 앞에서 직격당한 이가 어떤 꼴일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치 당목(撞木)에 맞은 종처럼 잘게 경련하던 그는 칠공(七孔)에서 피를 뿜으며 허물어졌다.
“아미타불.”
앞으로 고꾸라지는 몸뚱이를, 혜연이 팔을 뻗어 살짝 받쳐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땅에 내려놓았다.
살짝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방을 바라보니, 빽빽하게 진형을 갖춘 사파의 무사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없다.
권법으로 시작해서 장법, 뒤이어 고법과 조법, 지법, 음공까지.
혜연의 양손에서 천하의 모든 무학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대련이든, 생사결이든 맞서 싸우기 위해선 상대의 공격을 예측해야 한다.
하지만 이자의 움직임은 감히 예측이 불가하다.
무기 없이 펼쳐 낼 수 있는 모든 무학이 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셈이니까.
중원 무학의 본산 소림.
비록 그 소림을 스스로 등지며 떠난 몸이지만, 무학만큼은 완벽하게 이어받은 이가 바로 혜연이다.
그의 주먹 끝에서 천년 소림 무학의 정화가 그 위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 깊은 무학의 정수 앞에, 맞서는 자들은 거대한 무력감을 느꼈다.
눈앞의 중은 너무도 깊어서 사람의 눈에 결코 바닥을 보이지 않는 호수 같았다.
꾸욱.
혜연이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과거였다면 이렇게 싸울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배우고 익힌다 해도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다.
불법 역시 마찬가지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불법을 공부하는 이들 중 경전이 전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누구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한다.
좁디좁은 선사(禪寺)안에만 앉아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부처가 원한 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그리하여 더 나아가 중생을 구원하는 것.
구원하려는 중생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깨달을 수 없다.
그 중생이 살아가는 세상의 밑바닥을 굴러 보아야만 한다.
소림을 떠나기 전, 그는 무학을 단순히 아는 것에 머물렀다.
이를 체화하게 해 준 것은 지독한 수련과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실전들이었다.
단순히 아는 것에 안주하던 그가 마침내 걷고자 한 길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지독히 궁구하는 마음과 감당하기 힘들었던 현실 덕분이다.
‘소림이여.’
혜연은 외치고 싶었다.
그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라고.
오만으로 가득 찬 황포를 벗어 던지고, 승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세상을, 강호를 구원한다는 미명하에 벌이는 그 모든 일에는 소림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오만이 차 있다고.
이를 어찌 알지 못하느냐고.
그들이 고아하게 불법을 논할 때도, 세상 한구석에서는 피가 흐른다.
또 누군가는 주린 배를 부여잡은 채 죽어 간다.
더 큰 뜻을 논하는 그들의 자비 어린 시선은 오직 태양이 비추는 곳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기에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반드시 여기다.
설령 소림이 틀리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소림이 비추지 못하는 세상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곳을 살펴야 할 이는 바로 그곳을 제 발로 나온 혜연일 테니까.
“물러서라는 말은 듣지 않겠지요. 아미타불.”
혜연은 반장 하며 눈을 감았다.
금세 다시 뜨인 두 눈엔 확고한 의지가 어렸다.
“하면 그저 용서하시오.”
쾅!
혜연이 앞으로 쇄도했다.
발작적으로 내질러지는 창을 밀치며 존재하지 않는 길을 비틀어 연 그는 그 길로 한발 더 나아갔다.
소림의 제자 중 누구도 걸은 적 없는 길.
소림의 제자이되, 소림의 제자임을 거부한 이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걸음마다 사무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혜연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딜, 이 새끼들아!”
파아아앗!
뒤에서 날아온 쾌검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던 창날을 단숨에 쳐 냈다.
굳이 눈을 들어 보지 않고 감각만으로 상황을 알아차린 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는 여전히 이들이 불편하다.
게다가 혜연이 걷는 길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오직 제 발로만 나아가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이들은 언제고 등 뒤를 지켜 줄 것이다.
등을 밀어 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함께 걸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란 그런 거니까.
“나대지 마시오, 조걸 도장!”
“예? 아, 아니……?”
혜연은 조걸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앞으로 훌쩍 나아갔다.
조걸이 뒤에서 무어라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그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불편하다니까.’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서로 불편할 게 없는 이들이 함께 나아가기란 쉬우니까.
불편함에도 서로 등을 기대는 것.
갖은 어려움 앞에서도 함께 있으려 하는 것.
그것이 곧 사람(人)이리라.
“아―미―타―불―! 오시오!”
혜연의 웅혼한 고함과 함께 주먹이 내질러졌다.
창날이 뺨을 스치며 피가 튀어 올랐지만, 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고통으로 열어야 할 길을, 그저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