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8화. 상대가 당신이라면 양보해야지. (2)
남궁도위가 확실하게 열어젖힌 길을 다시 메우기 위해, 사패련의 무사들이 창을 움켜쥐고 빠르게 혜연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촤악.
혜연은 본능적으로 앞에 늘어진 가사 자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소림의 가사를 입을 때부터 무학을 펼칠 때면 습관적으로 하던 행위다.
이제는 소림의 황포가 아닌 검은 가사를 입고 있음에도 그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소림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 있다는 증명이리라.
쿠웅.
짧게 진각을 밟은 혜연이 주먹을 허공으로 세 번 연속 내질렀다.
더없이 짧고 강력한 권격이 만들어 낸 권풍이 앞으로 뛰어들던 이들을 단번에 쳐 날렸다.
“으아! 진짜 내가 소림 갔어야 했는데!”
“좀 닥쳐!”
혜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솔직히 말해 그는 여전히 저 사람들이 조금 불편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저들이 살아가는 속도와 혜연이 살아가는 속도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적 하나가 두 눈을 광기로 번뜩이며 혜연의 정면을 향해 도를 내리쳤다.
혜연의 위력을 보았으니 겁을 먹고 달아날 법도 하건만, 이들 역시 철저한 훈련을 받아 왔는지라 오히려 독기를 품고 달려들었다.
‘헛되도다.’
혜연이 다시 한번 주먹을 뻗었다.
주먹으로 모여들던 황금빛 불광이 단숨에 뻗으며 달려들던 이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몸뚱이가 급류에 휘말린 것처럼 날아간다.
얼핏 보기엔 피떡이 되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게 당연해 보이나, 비명이 처절했던 것에 비해 사내의 몸엔 이렇다 할 큰 외상이 없었다.
소림의 권은 자비의 권이다.
어차피 인생이야 한순간 스쳐 가는 것.
그 안에서 선과 악을 나눔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지금 누구보다 선한 이도 전생의 어느 순간에는 다시없을 악인이었을 것이며, 지금 누구보다 악한 이도 전생에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이였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중생을 향한 불가의 자비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선인은 선인이기에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악인은 악인이기에 더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법.
‘아미타불.’
하지만…….
“죽어라, 이놈!”
그 순간 혜연의 삼면에서 적이 치고 들어왔다.
혜연의 발이 그 짧은 순간 서로 교차했고, 동시에 그의 몸이 반 바퀴 회전했다.
탁! 타악!
날아드는 창을 흘려 내고, 도의 옆면을 쳐 낸 혜연이 상대의 가슴에 주먹을 질렀다.
투웅! 투우우웅!
나한권(羅漢拳). 상형권(象形拳)과 함께 중원 권법의 시발점이 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권법이 혜연의 손끝에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혜연이 워낙에 깊은 내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 권력의 강대함만이 부각되고는 한다.
하지만 그 권력 역시 시작은 그저 한낱 주먹에 불과하다.
나한에 통달한 이만이 비로소 불력(佛力)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투우우우웅!
혜연의 주먹이 상대의 가슴을 으스러뜨렸다.
맑고 커다란 눈에 순간적으로 안타까운 빛이 스쳐 갔다.
가슴이 함몰된 이가 입에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혜연은 구태여 그를 바라보지 않고 발을 옮겼다.
‘아미타불.’
죽었을까? 알 수 없다.
그의 권은 여전히 자비를 품고 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이마저 모두 배려하고 감쌀 정도로 깊지는 못하다.
어쩌면 그는 지금 또 한 번 살계를 연 것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목숨을 그가 앗아 간 것일지도 모른다.
‘부처시여.’
알고 있다.
부처는 전능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고민하고 궁구하고 고해에 시달리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땐 정말이지 묻고 싶었다.
부처가 그저 굽어보는 존재라 해도 아주 오래전 깨달음에 들었다.
그러니 자신보단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살생해서는 안 되는 불자가 더 많은 이를 구하기 위해 살계를 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몸에 가사를 걸친 이들이 타인과 다투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 그는 불자로서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십여 개에 달하는 날카로운 사슬낫이 혜연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들었다.
그중 하나라도 닿는다면, 악의로 한껏 예리하게 벼린 날이 그의 살을 가를 것이고, 뼈를 으스러뜨릴 것이다.
하지만 혜연은 다급한 기색도 없이 천천히 손을 펼쳤다.
혜연의 좌수가 아랫배 앞에 자리하고, 우수가 우측 가슴 위에서 펼쳐졌다.
관음의 형상이다.이윽고 혜연의 우수가 몸 주변으로 무수한 장영을 그려 내었다.
관음수(觀音手).
그 장영은 마치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일천 개의 팔을 동시에 펼쳐 낸 것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장영의 그림자로 만들어진 벽은 날아드는 모든 것들을 밀어 내고, 튕겨 내고, 부드럽게 비껴가게 했다.
“뭐…….”
적을 주살하기 위해 철저히 훈련받은 이들조차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는 일순 넋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도 장영의 벽을 뚫고 나온 금색의 권력이 여지없이 작렬했다.
“크아아아아악!”
얻어맞은 이들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이리저리 나가떨어지고 나뒹굴었다.
또다시 한 발을 내딛는 혜연의 머릿속은 고뇌로 가득했다.
습관처럼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면 선과 악을 나눔에 의미가 없다.
하지만 불자라면 당연히 선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이란 억겁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어지는 순환의 바퀴 속에서 그저 잠시 스쳐가는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하찮다.
하지만 그 삶의 중심이 되는 생명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는 모순이 아닌가?
이도 옳고, 저도 옳다.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무엇을 관철해야 하는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에 의지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아미타불.’
어째서 그는 모든 것과도 다름없었던 소림을 떠나 어울리지도 않는 검은 옷을 입은 채, 살계를 열고 있는가?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길이 정말 가려던 길이 맞는가?
“스님!”
그때 등 뒤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에 혜연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모든 의문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저 하나였다.
‘나는 부처가 아니다.’
쿠우우우웅!
망설임 없이 내지른 권이 달려들던 이들을 단번에 떠밀어 날렸다.
모든 해답을 쥔 이를, 세상은 부처라고 칭한다.
모르기에 궁구하는 것이다. 모르기에 고민하는 것이고, 모르기에 고통받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고통을 두고 어찌 잘못되었다 하겠는가?
고통을 겪지 않는 이는 나아갈 수 없다.
고통을 외면하는 이들에겐 영원히 깨달음이 찾아들지 않는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고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소림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선 보지 못했던 ‘진짜 세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세상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
“집중 안 해, 이 땡중 새끼야?!”
혜연이 움찔했다.
‘청명 도장.’
그는 다시 진각을 밟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그저 옳으니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혜연은 가르침과 행위가 서로 아귀가 맞지 않게끔 뒤틀려 버린 소림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거기서 오는 고통을, 저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청명과 함께하며 알게 됐다.
단 한 치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는, 하늘 위 태양 같은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숱한 격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끝없이 자신을 학대하듯 몰아붙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의 해답을 찾는다.
그 자신만을 위한 길이 아닌, 더 많은 이들을 위한 길을 찾고야 마는 것이다.
때로 그 길은 뒤틀려 있고, 때로는 독선적이며, 완전히 틀린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명은 함부로 좌절하지 않는다. 거듭 고민하고 다시 나아간다.
‘도장은 알고 있소이까?’
그것이야말로 불자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청명은 도사지, 결코 불자가 아니다.
하지만 청명의 삶은 불자가 걸어야 할 길의 견본과도 같다.
비록 그 지향점은 다르나 저 태도만큼은 본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스님! 앞에서 옵니다!”
“아니, 이 새끼야! 말만 하지 말고 좀 나가서 싸워!”
“제가요? 저 사람 앞에서요?”
“아니면 주둥아리라도 닫든가!”
“동감.”
“사형이 그렇지, 뭐.”
혜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이게 아마 혜연이 그들과 함께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르지 않다.’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다.
혜연이 드높은 부처의 가르침과 위대한 뜻을 힘겹게 좇는 것처럼, 이들 역시 화산의 부흥이라는 아득한 목표와 앞서 달려가는 청명의 등을 필사적으로 좇고 있다.
함께 불법을 좇았던 소림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동질감이 이 안에 있었다.
처음 느껴 보는 그 동질감이 혜연을 자주 다독였다.
이곳에 있을 때만은 외롭지 않다.
마음이 힘겹고 고통은 가득하나,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방장.’
혜연의 우수가 제 옆구리에 가 닿았다.
‘그래도 제가 틀렸습니까?’
고오오오오오오오!
그의 주먹이 천천히 내질러졌다.
가공할 내력을 실은 권력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을 뒤로 밀어 내었다.
그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가려는 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치운다.
닫히던 길이 다시 열리는 모습이 혜연의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이어지는 길은 좁은 소로(小路).
적과 악의로 가득한 협곡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당연히 피해야 할 길이다.
결코 발을 들여선 안 될 길이다.
하지만 지금 혜연은 그 길에 제 발로 뛰어들고 있다.
‘제가 정말로 틀렸습니까?’
어리석고 아둔하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승려가 가야 할 길.
생각하지 않는다면 겪지 않을 고통을 자처하고, 고행이라는 이름의 자기 학대를 자진하여 끝내 깨달음을 구하는 이가 가야 할 길이다.
콰앙!
혜연의 발이 땅을 힘껏 박찼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좁은 협곡을 향해 뛰어들며 그는 반장(半掌)을 취했다.
‘설령 제가 틀렸다 해도…… 걸어야 할 길이라면 어찌 걷지 않겠습니까?’
쿵!
혜연이 한 번 더 발을 앞으로 디밀었다.
이건, 어쩌면 혜연이 생을 얻은 이후로 처음으로 내디딘 걸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발자취를 좇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망설임 없이 내디딘 첫발일지 모른다.
혜연이 고개를 들었다.
빛조차 잘 들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갑갑한 소로(小路)에, 마치 지옥의 마구니 같은 적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혜연의 눈은 평소보다도 맑고 평안했다.
이 길을 가는 중에 힘이 다해 쓰러져도 좋다.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이곳이 지옥이라면, 그야말로 불자인 혜연이 있어야 할 곳이다.
그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스스로 발한, 장엄한 불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