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307화 (1,308/1,567)

1307화. 상대가 당신이라면 양보해야지. (1)

콰앙!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했다.

‘이게…….’

우우우우우웅!

악을 쓰며 달려드는 이들, 겁에 질려 물러나는 이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는 이들까지.

그 모두의 적의와 살기가 일제히 쏟아졌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움츠러들기는커녕 더더욱 기세를 끌어 올렸다.

전신의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두려움보다 더한 고양감이 남궁도위를 휘감았다.

무학이란 쌓고 또 쌓는 것이다.

‘지난(至難)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같은 걸 끝없이 반복한다.

얇디얇은 종이로 하늘에 닿을 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지금 폭발하고 있다.

남궁세가 가주의 상징인 창천신검(蒼天神劍).

남궁황의 손에 들려 있던 그 검이 이제는 남궁도위의 손에서 강렬하기 짝이 없는 백광을 뿜었다.

남궁도위가 내력을 밀어 넣은 검을 들어 올렸다.

‘아니야!’

눈앞에 남궁황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남궁황이었다면 단숨에 검을 내리그어 앞을 가로막는 모두를 두 쪽 내 버렸을 터.

하지만 그는 남궁황이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무리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좇아서는 안 된다.

과하게 밀어 넣어졌던 내력이 순간 회수되었다.

남궁의 검은 정직하기 짝이 없다.

직선 일변도로 가진 힘을 있는 대로 끌어내 적을 내리누른다.

남궁도위는 그런 남궁의 검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게 남궁세가를 이끄는 이가 휘둘러야 할 검이라 굳건하게 믿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화산의 검이, 당가의 암기가, 그리고 임소병의 부채가 알려 주었다.

모든 것을 끌어내고 짓누르는 것만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정도란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도란 어디로 향하느냐를 의미한다.

설령 그의 검이 남궁에 걸맞지 않더라도, 그의 뜻이 남궁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면, 그의 검은 여전히 정도인 것이다.

고오오오!

그의 역량에 걸맞은 내력이 검 끝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위력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낭비는 최대한 줄인다.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 검이라도 더 휘두르겠다는 의지가 실린 검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백색의 포탄이 적진 한가운데 떨어졌다.

남궁도위는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돌진했다.

콰앙!

반쯤 혼절한 이의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고, 급히 방패를 다시 들어 올리려는 이의 목을 단번에 쳐 날렸다.

‘한 걸음 더!’

아직 적은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이전이었다면 여기서 일 검을 더 날려 완벽하게 적을 무너뜨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그러는 대신 대번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혼비백산했던 사패련의 무사들이 반사적으로 남궁도위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수련의 정도가 보통이 아닌 모양으로, 엉겁결에 찌른 창격조차 더없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순간.

카가강!

남궁도위를 향해 날아들던 창격이 단번에 튕겨 나갔다.

“계속 가십시오!”

뒤에서 대신 방어해 준 백천이 남궁도위의 측면을 노리고 드는 이들을 단숨에 베어 냈다.

남궁도위는 백천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신뢰라는 게 어떻게 쌓이는지.

상대의 인품? 거창한 뜻? 상대의 신분?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전장 밖에서야 그런 게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전장에서는 쌀 한 톨만큼의 의미조차 지니지 못한다.

이 전장 안에서의 신뢰란 오직 하나다.

상대의 검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믿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백천이 남궁도위의 옆구리가 꿰뚫리는 걸 두고 볼 리 없다.

남궁도위의 머리 위로 적이 뛰어들도록 저 혜연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남궁도위는 확신했다.

그가 지치면 누군가가 기꺼이 대신 나설 것이고, 그가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청명이 달려올 것이다.

‘나를 믿어 달라고 목놓아 외칠 필요 없어.’

그가 저들을 평가하듯, 저들 역시 그를 평가할 것이다.

그러니 신뢰를 주고 싶다면 손에 쥔 걸 아득바득 내세우고 피력할 것이 아니라 그의 검에 쌓아 올린 것들을 증명해야 한다.

쿠웅!

남궁도위의 발이 땅을 무너뜨릴 듯 콱 짓밟았다.

동시에 그의 허리가 한껏 뒤틀려 뒤로 돌아갔다.

하체는 그대로 두고 상체만 뒤로 뒤튼 자세.

철검십이식에도, 창궁무애검법에도, 제왕검형에도 저런 자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남궁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았다.

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정면으로 적을 응시해야 한다.

이는 남궁의 검학에서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절대적 원칙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남궁도위는 그 원칙을 스스로 깨뜨렸다.

적에게서 눈을 뗀다는 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의 남궁도위는 그럴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 위기를 막아 줄 이가 반드시 그의 옆에 있으니까.

파아아아앗!

백천이 섬전처럼 날린 검기가 남궁도위를 향해 쇄도하는 창들을 연이어 쳐 냈다.

앞쪽에서 들려오는 금속음을 들으며 남궁도위가 검을 힘껏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압!”

파아아아아앗!

힘을 받아 회전한 그의 몸에서 눈부신 백광이 반월처럼 뿜어졌다.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듯 어마어마한 검기가 횡으로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흐으앗!”

전방에 있던 이들이 기겁하여 방패를 들어 올렸다.

콰앙!

거친 폭음과 함께 방패를 잡은 손이 뒤틀렸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금방이라도 손목이 부러져 버릴 듯했고, 입에선 역류한 피가 울컥 쏟아졌다.

‘그, 그래도 막아 냈…….’

하지만 그 순간 방패를 든 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카가가가가각!

검기가 통무쇠로 만든 방패를 가르며 들어온 것이다.

“아, 안……!”

콰아아아아아아아!

사람 키만 한 두꺼운 방패를 종잇장처럼 갈라 버린 백색 검기는 곧 인간의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수 있을 것이다.

타아아앙!

굵은 고무줄을 튕긴 듯한 파열음과 함께, 두 동강 난 몸뚱이가 걷어차인 공처럼 날았다.

적의 사기는 물론이고, 뒤따르는 아군마저 아연실색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사형. 제가 다음에 태어나면 남궁으로 보내 주십쇼.”

“전엔 소림이라며.”

“저 양반도 선 넘었죠. 저게 뭡니까?”

“개소리 말고 튀어 나가, 인마!”

“아오, 진짜!”

조걸은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남궁도위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앞으로 돌진했다.

“저 두 사람 앞에 서기 싫다고! 얼굴 가리게 복면이라도 주든가!”

조걸이 악을 써 대며 검을 들어 올렸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입과 달리 두 눈은 무섭도록 침착했다.

갑자기 조걸이 달려 나오자 당황한 적들이 반사적으로 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조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세가 커졌다, 이 등신 새끼들아!”

쇄애애애애액!

수십 개로 분열된 조걸의 검이 당가의 암기처럼 쾌속하게 앞으로 날아들었다.

남궁도위를 상대하느라 동작이 커진 상대의 빈틈으로, 검영이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푸욱! 푸욱!

실력을 모두 발휘한다 해도 막아 내기 어려울 쾌검이다.

그런 검을 흐트러진 자세로 맞닥뜨렸으니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했다.

“크아악!”

“끄윽!”

몸에 바람구멍 뚫린 이들이 상처를 움켜잡으며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조걸이 쫓아서 재차 공격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잡으며 뒤로 끌어당겼다.

“어?”

조걸을 뒤로 떠밀고 앞으로 나선 남궁도위가 진각을 내밟았다.

“아니, 소가주님! 무리하지 마시…….”

무리하지 말라는 저 말이 자꾸만 거슬렸다.

‘저 빌어먹을 화산 놈들.’

자기들은 뼈가 부러지든 살이 터지든 당연하게 여기면서, 남들이 옆에서 숨만 헉헉대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에서 미덥지 않음이 느껴지는 건 단순히 남궁도위가 꼬여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알고 있다.

이들의 눈에 남궁도위는 여전히 힘만 센 햇병아리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사선을 넘나들며 경험을 쌓은 건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처음이 있었을 테고, 미숙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댁들은 그럴 때도 검을 들었겠지.’

지금처럼 누군가가 적당히 해도 된다며 지켜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 만만히 보지 말라고!’

남궁도위는 검에 내력을 밀어 넣는다.

저들에게 자신감이 있다면, 그에겐 남궁의 적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제는 뿌듯하다기보다는 어깨에 짊어진 짐처럼 무겁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남궁도위는 그 자부심을 한시도 잊어 본 적 없다.

누군가가 닦아 준 길로만 조심조심 나아갈 만큼 그는 여유롭지 않다.

해야 한다면 그곳이 험지라도, 살이 찢기는 가시밭길이라도 뛰어들어야만 한다.

“타아아아아아아압!”

그가 검을 다시 한번 떨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검기가 일으킨 폭발에 휘말린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이 개자식아!”

하지만 연이어 뿜어낸 검기는 전처럼 균일하지 못했다.

그 검기를 이겨 내고 달려드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남궁도위의 무릎이 일순 휘청인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달려와 막아섰다.

“혼자 잘나셨네.”

조걸, 아니, 청명?

둘 다 아니었다.

쇄애애애애액!

당패의 양손에서 발출된 열 개의 비도가 허공을 가른다.

십이비도(十二飛刀).

당가에서 시작되고, 당보의 손에서 완성된 당가의 절기.

바로 이 강남 땅에서 수많은 피와 함께 완성된 절대 비도가 다시금 이 전장을 가르기 시작했다.

열두 개가 아닌, 열 개의 비도다.

당보가 펼치던 십이비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사패련의 일반 무사들을 상대하기에는 오히려 과분했다.

콰득! 콰득! 콰득!

달려들던 이들의 이마에 비도가 손잡이까지 틀어박혔다.

단번에 절명해 버린 그들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비도술이란 실로 무서운 무학이다.

한번 발출된 비도는 웬만해선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비도술을 쓰는 이들은 비무와 대련에서는 결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비도가 진정한 그 위력을 드러내는 곳은 오직 전장.

상대의 목숨을 지켜 가며 싸울 필요가 없는 전장이었다.

게다가 전장에선 정신이 흐트러지기 쉽다.

사방에서 폭음이 터지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은밀하게 날아오는 비도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촤라락!

손가락을 까딱이자 적의 두개골을 뚫고 박혔던 비도가 허공을 날아 당패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도위!”

“예!”

“가라!”

당패가 옆으로 비켜섰다.

앞을 그에게 내어 주듯이.

그리고 남궁도위는 즉시 당패가 열어 준 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 정도도 못 해내면!’

그는 땅을 강하게 내밟았다.

그의 검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검 끝이 더없이 넓게 펼쳐진 창공을 찌르듯 가리켰다.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

내리긋는 일격이 강하게, 그리고 웅장하게 세상을 갈랐다.

남궁황이 현신하기라도 한 듯한 검기가 거대한 백광으로 화하여 앞을 막는 이들을 휩쓸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일격이 전장을 반으로 갈랐다.백색 검기는 환상처럼 피어올랐다 삽시간에 사라졌다.

선두를 달리던 이들의 눈에, 선명하게 갈라진 긴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이 확연하게 보였다.

“열었다!”

“그대로 달려!”

남궁도위가 이를 악물고 뛰어나가려는 순간.

“아미타불.”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앞으로 나섰다.

“이제 내 차례요, 시주.”

내력을 있는 대로 소진한 남궁도위가 숨을 헐떡이며 피식 웃었다.

“상대가 당신이라면 양보해야지.”

소림제일의 기재, 혜연이 그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질주했다.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