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4화. 누가 강남에 왔다고? (4)
곽환소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더 빨리!’
이를 악물고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자맥질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가 아는 것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해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뿐.
촤아아악!
물살이 둔중하게 몸을 쓸고 가고, 물속 경관이 빠르게 그를 스쳐 지나간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곽환소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빠르게 헤엄치고 있다. 물속에서 이런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큭!’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팔다리를 휘저어도 앞서가는 이들과의 차이는 오히려 벌어지기만 했다.
‘빌어먹을.’
곽환소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천우맹 사람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무위? 그건 당연히 뒤질 수밖에 없다.
저들은 그냥 명문의 제자들이 아니다. 각 문파를 이끄는 핵심 인물들이다. 천하에 쟁쟁한 명성을 떨치는 저들과 곽환소의 무위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저들에게 실례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수공(水攻)에서 뒤지는 게 말이나 되나!’
곽환소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는 해남의 사람이다. 걸음마보다 자맥질을 먼저 했고, 물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그런 이가 헤엄 속도에서 타문 사람보다 뒤처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수공은 단순히 무위만 높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과 자맥질을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물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능숙하게 헤엄치기 힘들어야 한다.
특히나 깊은 물속에선 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잡은 화산의 제자들은 점점 더 그의 시야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제길!’
곽환소보다 앞서간 장문인과 장로들이 저들과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이 거친 물살 속에서 이미 종적을 놓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가 팔을 거칠게 앞으로 뻗어 내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속도를 더 높이려던 찰나.
덥석!
누군가가 그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놀란 곽환소가 돌아보니 이자양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격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자양은 고갯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어느새 해남의 제자들과 곽환소가 사이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악을 써도 천우맹도들을 따라잡지 못한 것처럼, 그를 뒤따르는 해남의 제자들도 그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곽환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앞쪽을 슬쩍 본 그는 자신의 역할을 되새기고는 팔다리에 한껏 줬던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제길⋯⋯.’
앞으로 가라는 수신호를 이자양에게 보낸 그가 후방을 향해 몸을 쏘아 냈다. 일행의 가장 뒤쪽으로 이동하여 뒤처지고 있는 제자들의 등을 가볍게 밀어 주었다.
지쳐 허덕이던 제자들이 곽환소를 바라보았다. 곽환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제야 제자들이 다시 힘을 내 앞으로 헤엄을 쳐 갔다.
곽환소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나아가는 제자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파아앗!
해안에 거의 도달한 화산의 제자들이 수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청명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설소백을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쳤다.
“아오! 이 짐 덩어리 새끼!”
“청명아!”
“야, 이 미친놈아! 궁주시다!”
“궁주? 궁주가 뭐? 이 새끼는 헤엄도 못 치는 놈이 뭐 하러 여기까지 따라와서는!”
“그⋯⋯ 해남을 설득하는 데 꼭 필요한 분이시잖아.”
“필요는 개뿔이!”
“꾸루룩⋯⋯. 도, 도장⋯⋯.”
“에이!”
청명이 설소백의 배를 발로 꾹 눌렀다. 그러자 설소백의 입에서 맑은 물이 꼴꼴꼴 뿜어져 나왔다.
“⋯⋯정말 헤엄을 전혀 못 치시네.”
“북해에서 헤엄칠 일이 뭐가 있었습니까? 청명이 새끼도 거기 물에 들어갔다가 얼어 뒈질 뻔했는데.”
“근데 돌이켜보면 그때 청명이가 낚싯대에 백아 묶어서 낚시하지 않았었냐?”
두런두런 얘기하던 이들이 문득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먼 북쪽을 향해 아련한 시선을 던졌다.
“잘 가고 있을까?”
“⋯⋯우리가 미안하다.”
“사람이 짐승에게 죄책감을 느낄 줄이야.”
그 짧은 다리를 재게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강남을 종단하고 있을 백아를 떠올리며, 화산의 제자들은 짧게 묵념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양심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럴 시간 없다. 움직여라.”
“예!”
백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걸과 윤종, 유이설과 당소소, 그리고 혜연이 앞으로 섬전처럼 쏘아져 나간다. 남궁도위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백천을 돌아보았다.
“지금 뭐 하러 가신 겁니까?”
“주변에 적이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겁니다. 상황을 파악해야 다음 움직임을 정할 수 있으니까요.”
“저, 저도 뭔가를⋯⋯.”
“아니요.”
백천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손발이 안 맞는 사람이 움직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소가주님들께서는 이곳에서 설 궁주님의 상태를 살펴 주시고, 뒤따라 도착하는 해남의 제자들을 통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두 뭍으로 올라오면 짧게 휴식을 주시고, 해안에 남은 흔적을 모조리 지워야 합니다. 결국에는 족적을 들킬 수밖에 없겠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단호하고 깔끔하게 지시를 내리던 백천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이내 그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 뒤쪽에서 설소백을 짤짤 흔들어 대고 있는 청명을 보는 것이었다.
“안 일어나? 안 일어나, 이 새끼야? 이게 궁주라고 빠져 가지고! 그 물 좀 먹었다고 눈알이 돌아가서는!”
“수, 숨이⋯⋯. 숨⋯⋯. 도장⋯⋯.”
“지가 아직 애인 줄 아냐! 인마, 사가였으면 벌써 애가 있을 나이야! 어디서 연약한 척을 해. 안 일어나? 야, 이 새……. 악!! 아야! 귀, 귀! 아니, 사숙! 남의 귀한 귀를 왜! 악!”
“따라와, 인마.”
“악! 동룡아, 귀! 귀는 놓고 가라고! 야, 이⋯⋯.”
백천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청명의 귀를 꽉 잡은 채 질질 끌고 숲으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궁도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당패가 한숨의 이유를 묻자 남궁도위는 말없이 씁쓸한 표정만 지었다.
“저들과의 차이가 줄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러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남궁도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남궁세가의 무학은 조급증을 낸다고 성취를 높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도 알고 있고요. 제가 꾸준히만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다른 분들과는 한번 해볼 만해지겠죠. 화산검협은 몰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왜?”
“⋯⋯괴이하지 않습니까?”
“응?”
남궁도위는 화산의 제자들이 사라져 간 숲 쪽을 묘한 눈길로 흘끗 보더니 말했다.
“저들은 모든 일에 너무 능숙합니다.”
그 말엔 당패도 조금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도위는 말없이 제 손을 바라보았다. 물속에서 백천이 잡고 이끌었던 손목에 뻘건 손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그 손자국의 선명함이 백천과 남궁도위 사이의 거리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자맥질마저도 잘하네요.”
“뭔 헤엄치는 것 가지고⋯⋯.”
“그게 다가 아니니 그러지요.”
남궁도위가 안색을 굳히며 덧붙였다.
“저는 어떻게든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들은 다음 수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씩 보면 저 사람들은 못하는 게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뭘 시켜도 다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당패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확실히 화산의 제자들에게는 그런 면이 있다. 무엇이든 남들보다 배는 더 잘해 내고, 더 능숙하게 해낼 것 같은 그런 느낌.
“무위야 어떻게든 악을 쓰면 견줘 볼 수 있겠지만, 저런 부분을 따라갈 수 있을지⋯⋯.”
“별 시답잖은 걱정을 다 하고 계시네.”
별안간 신랄한 목소리가 툭 끼어들었다. 남궁도위가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보니 물에 홀딱 젖은 임소병이 옷을 쭉쭉 짜며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에 세상 짜증이란 짜증은 다 어렸다.
“그 따뜻한 남궁세가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으면서 자라신 분이랑 밖에서 온갖 일은 다 겪고 자란 양반들이 똑같겠습니까?”
남궁도위가 뚱하게 되물었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저와 온갖 고초를 겪고 자란 잡초 같은 저분들의 차이다?”
“아. 그 정도는 이해하시는 모양이네요. 이야, 사람 머리가 좋아지기도 하는군.”
노골적인 비아냥에도 남궁도위는 화를 내기는커녕 되레 피식 웃었다.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럼 녹림왕은 왜 그러시오?”
“⋯⋯에?”
“진짜 바깥 잡초밭에서 마구 뒹굴며 자란 사람은 녹림왕이신 것 같은데, 막상 녹림왕은 머리 쓰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게 없으시잖습니까.”
“그⋯⋯. 어⋯⋯. 그건.”
“잡초도 잡초 나름인 모양이지요? 써먹을 데 없는 잡초도 있는 것을 보니.”
“으⋯⋯.”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당패는 한껏 신기해했다. 남궁도위가 저렇게 임소병에게 크게 한 방 먹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성장했구나, 도위야!’
당패의 마음에 절로 감격이 차올랐다.
임소병이 뒤늦게 뭐라 뭐라 발악해 댔지만, 남궁도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화산 사람들은 분명 뭔가 다르다.’
온갖 일을 겪어 봤기 때문에 잘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온갖 일’ 속에 남들은 평생을 살아도 겪어 보지 못할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말 거칠게 자란 이들은 저 모든 것을 할 줄 알게 되는 걸까?
‘그럴 리가.’
그게 될 리가 없다. 해남의 제자들도 정파치고는 꽤 거칠게 살았을 텐데, 상황이 벌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그저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급급하지 않은가.
하지만 화산의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움직인다. 마치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한참 전부터 생각하고 대비하기라도 한 양.
이게 과연 가능한가, 고민하던 남궁도위는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전쟁에 대비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위를 높이고, 군량을 쌓고, 세력을 확보하면 된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파악하고 적절한 능력을 배양해 놓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르겠구나.’
남궁도위는 새삼 궁금해졌다. 화산검협 청명이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그가 정말 다른 이들과 같은 세상을 보고 있기는 한지 말이다.
그때, 해남의 제자들이 하나둘 해안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금양백과 장로들이 달려 나왔다. 남궁도위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천하제일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
그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잘못된 게 있다면, 내가 보고 있던 세상이겠지. 그 안에서 꿈을 꾸고 살던 내가 머저리였던 거고.’
현실은 언제나 잔혹하다. 하지만 이제 남궁도위는 다가오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진짜 세상이라면 언제고 피하지 않고 맞설⋯⋯.
“도위야.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설 궁주님 배 좀 눌러 봐라. 물이 덜 나왔다.”
“⋯⋯예.”
하지만 설소백에게는 아직은 좀 이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