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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83화 (1,284/1,567)

1283화. 누가 강남에 왔다고? (3)

“온다.”

하오문 광동 지부의 부지부장 엽위(葉圍)가 해안으로 접근하는 배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지부장님, 그럼 저 배에 해남파 놈들이 타고 있는 겁니까?”

“그런 모양이다.”

“큭큭. 우습게 됐네요. 잘난 체는 다 해 대더니, 몰고 갔던 배를 탈취당한 꼴이라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게 뭔 개망신이야.”

좌우에서 신랄한 비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한배를 탄 이들을 비웃는 게 그리 좋을 리는 없겠지만, 엽위는 굳이 그런 대원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만인방에 대한 이들의 악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들어갔다고 하루아침에 악감정이 모두 씻길 수는 없지.’

애초에 신주오패라 불리던 이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 하지만 만인방에 대한 이들의 적개심은 단순히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하오문은 정보 단체다. 많은 사업을 벌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말인즉, 숱한 정보원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여기저기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오문 광동 지부의 원래 임무는 서슬 퍼런 만인방의 감시를 피해, 만인방과 광동 전역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이제 와 한편이 됐다고 그 악감정이 모두 사라질 리는 없었다.

임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면 적당히 묵인하는 쪽이 엽위에게도 편했다.

“기세 좋게 해남으로 쳐들어가더니 되레 광동을 털리게 생겼군.”

“해남이 똑똑한 건지, 저 만인방 놈들이 멍청한 건지.”

물론 둘 다 아니다.

엽위는 굳이 말을 얹지 않고 선박만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건 해남파도 만인방도 아닌, 바로 저 배에 타고 있는 천우맹의 핵심 인사들이다.

엽위는 제 입술을 잡아 뜯듯 거칠게 문질렀다.

아랫것들이야 그냥 멋모르고 통쾌해하고 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장강에서 저들의 종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저들이 해남까지 갈 때 이동했던 경로는 강남인 것이 분명하다.

명색이 강남 전체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하오문인데, 천우맹의 핵심 인물들이 강남을 종단할 때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눈 뜬 장님처럼.

이런 상황에서 만일 저들을 강북까지 곱게 보내 주는 일이 생기면 어찌 되겠는가.

‘분명 책임론이 일겠지.’

애초에 책임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크게 잘못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잘못한 이들 중 누구의 힘이 더 약한가이다.

‘패군이라면 이걸 기회로 삼겠지.’

수로채에 그러했고, 흑귀보에 그랬던 것처럼, 하오문 역시 팔다리를 잘라 제 개로 삼으려 들 게 분명하다. 그것만은 반드시, 기필코 막아 내야 한다.그리고 이 일을 잘해 낸다면, 어쩌면 오히려 하오문의 입지를 굳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저 화산검협의 목을 따는 건, 적어도 사패련 내에서는 그 무엇과도 비견되기 어려운 성과일 테니까.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엽위는 여전히 만인방에 대해 욕을 늘어놓는 대원들을 흘끗 보았다.

“그 정도 떠들었으면 입 다물어라.”

나직한 명령에 대원들이 삽시간에 입을 다물고 숨을 죽였다.

“만인방 놈들을 욕하는 건 임무가 끝난 뒤로 미뤄도 늦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새끼들을 비웃는 게 아니라, 저놈들의 종적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부지부장님.”

“그건 저희의 특기 아닙니까?”

엽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자신감이 과한 게 아니다.

물론 하오문이 개방에 비해 정보력에서 한 수 뒤처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반 과장으로 십만 개방도라 칭해지는 개방의 규모를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오문이 개방보다 못한 문파일 리는 없었다. 하오문에는 개방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특기가 있으니까. 바로 사람을 추적하고, 암살하는 능력이다.

‘암살이라.’

성공할 수 있다면 최상일 것이다. 하지만⋯⋯.

‘무리다.’

그들이 입수한 화산검협의 정보를 바탕으로 봤을 때 암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절대 틈을 보일 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추적은 다르지.’

아무리 날고 기는 천우맹이라 해도, 강남은 사파의 영역. 하오문이 이곳에서 그들의 종적을 놓칠 리는 없다.

엽위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저들이 지금부터 겪을 실패는 그저 하오문을 우습게 본 대가라고 말이다.

“향(香)은?”

“준비됐습니다.”

대원들이 즉각 품에서 작은 자개 약병을 하나씩 꺼냈다. 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이 붉은색인 것으로 보아, 특상품(特上品)으로 잘 챙겨 온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예.”

“뒤를 쫓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저 해남 놈들 사이에 섞인 천우맹 놈들이 빠져나가는 걸 놓친다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예, 부지부장님.”

“놈들이 해안으로 접어들면 실행조는 목숨을 걸고 접근해, 놈들의 몸에 추종향(追從香)을 묻힌다. 그렇게만 되면 강남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해도 우리의 추적을 따돌릴 수 없다. 확실히 이해했겠지?”

“예!”

확고한 대답이 돌아왔다. 엽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는 이 계획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애초에 그가 부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광동 지부는 하오문에 있어서는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자연히 그가 거느린 대원들은 저 만인방 틈바구니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하오문의 최정예 요원들이다.

아무리 상대가 저 화산오검을 비롯한 천우맹의 핵심 인물들이라고는 하나, 이만한 이들이 목숨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고작 향 하나 묻히는 임무를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 하나면 충분하다. 하오문의 특제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은 한번 묻으면 최소 열흘은 그 향이 지워지지 않는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요원들은 무려 십 리 밖에서도 향의 종적을 포착할 수 있다. 거기에 훈련된 개까지 동원한다면 무려 오십 리가 넘는 거리에서도 잔향을 추적해 따라붙는 게 가능하다.

이곳부터 장강까지는 물경 이천오백 리가 넘는 거리. 한번 추종향이 묻는다면 살아서 돌아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거의 접근했습니다.”

“자세를 낮춰라.”

“예!”

엽위의 두 눈이 음산하게 가라앉았다.

‘무학으로 정정당당하게 붙는다면 당연히 너희가 이기겠지.’

하지만 이건 그런 승부가 아니다. 어떤 수를 써서든 상대를 죽이기만 하면 되는 전쟁이다. 이제 저들은 그런 전쟁에서 하오문이 얼마나 지독한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될 것이다.

쿠웅!

쿠우우웅!

배가 모래톱에 거칠게 처박혔다.

엽위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저들에겐 배를 제대로 정박시킬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하기야 당장 뒤에서는 만인방이 쫓아오고 있고, 앞에서는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는데 느긋하고 안전하게 배를 세울 틈이 있겠는가?

엽위가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사냥감이 서두른다는 건 좋은 징조다. 그들은 마음 급한 이들을 느긋하게 추적하며 조여 가기만 하면 된다.

“놈들이 하선할 때를 노린다.”

“예!”

엽위는 슬슬 머리를 드는 긴장감을 억누르며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자, 와라⋯⋯.’

그는 두 눈에 힘을 준 채 깜빡임도 없이 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참지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저⋯⋯ 놈들이 내리지 않는데요?”

“⋯⋯그럴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잖습니까?”

엽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지?’

숨을 죽이고 기다린 지 한참인데 배에서 사람이 내리질 않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놈들이 판 함정일지도 모른다.”

“⋯⋯예.”

섣불리 접근하기보다는 신중하게 기다려 보는 걸 택한 엽위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배를 주시하며 기다려도 사람의 종적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엽위가 입을 뗐다.

“귀호(鬼狐).”

“예!”

“확인해 봐라.”

“⋯⋯알겠습니다.”

대원 중 하나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최대한 신속, 은밀하게 배로 접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배 위로 올랐다.

엽위는 그 모습을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부지부장님! 배가 비었습니다!”

“⋯⋯뭐?”

“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순간 당황한 엽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비었다고?”

“예!”

그가 재빠르게 소리쳤다.

“다른 배들도 확인해 봐라! 당장!”

“예!”

뒤에 서 있던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배로 달려갔다. 엽위는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잠겼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계책? 아니, 계책이란 기본적으로 이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 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간일 터, 이런 일을 꾸며서 대체 무슨 이득이 된단 말인가?

“없습니다!”

“여기도 없습니다! 배가 모두 비었습니다.”

엽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럼 배를 타고 오던 것들이 하늘로 솟기라도 했단 말이냐!”

“하, 하지만 정말 없습니다! 선창까지 모두 뒤져 봤지만, 사람이 있던 흔적만 있을 뿐,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이런⋯⋯.”

엽위는 다급히 달려 전력으로 배 위에 뛰어올랐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배 위에는 한기마저 감돌았다.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빌어먹을. 이러면 곤란한데.’

하오문에게 떨어진 임무다.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했다. 애초에 해남파와 천우맹이 배에 타고 오질 않았다고 아무리 항변해 봐야 하오문의 무능함만 강조되지 않겠는가?

“차, 찾아라!”

“예?”

“사방으로 흩어져라! 분명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 하지만 부지부장님!”

“지껄일 시간에 움직여!”

엽위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분명 해안 근처에 도달하고부터 배에서 뛰어내려 잠수했을 것이다. 그래 봐야 얼마나 갔겠느냐? 분명 이곳에서 멀지 않은 근방에 상륙했을 것이다. 족적을 찾고, 모래톱이 젖은 곳을 찾아라! 빨리!”

“아, 알겠⋯⋯.”

엽위의 기세에 눌리기라도 했는지, 앞에 선 대원의 얼굴이 순간 새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을 본 엽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했다.

“내가 너무 흥분했군. 우선은 침착히⋯⋯.”

“그, 그게 아니⋯⋯.”

“음?”

“커헉!”

순간, 대원의 벌어진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엽위의 얼굴로 고스란히 쏟아졌다.

뜨거운 피를 뒤집어쓴 엽위는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파랗던 얼굴은 이제 거의 검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독(毒)?”

“도, 독이다!”

“숨을 멈춰라! 빌어먹을, 배에 독이 뿌려져 있다!”

“이곳에서 벗어나!”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커허억!”

“우웨에에에엑!”

배 안으로 들어갔던 이들이 모두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시커멓게 물든 안색이 그들이 맞을 처참한 결과를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이, 이런⋯⋯. 우욱!”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낀 엽위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우웩!”

엽위조차도 한순간 피를 토할 정도의 극독이다. 그러니 다른 대원들이 맞을 결과야 너무도 뻔했다.

갑판 위로 쓰러진 이들이 검은 피거품을 부글부글 쏟으며 경련했다. 그 처참한 광경에, 엽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처, 천우맹⋯⋯.”

피에 젖은 이가 꽉 악물렸다.

“이 개 같은 놈들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악에 받친 고함이 파도 소리를 뚫고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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