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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59화 (1,260/1,567)

1259화. 알아서 하시겠죠.(4)

"피해!"

제 앞으로 날아온 붉은 검기를 본 이가 할 반응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물러서거나, 혹은 막아 내거나ㅏ.

'늦었……'

피하는 건 이미 글렀다고 판단한 창귀대원 하나가 내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도에 밀어 넣고는 날이드는 검기를 향해 내리쳤다.

카가가가가가각!

내력이 잔뜩 실린 검기와 도가 충돌했다. 맹렬하게 금속을 갉는 듯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큭!"

소목에 일순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다.

이 일격에 실린 내력이 만만히자 않다는 걸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이 힘을 실감한 창귀대원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강한 호승심을 느꼈다.

'생각보다는……!'

저 얇디얇은 검으로 날린 검기가 이토록 무겁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지만, '화산검협'이라는 명성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야 너무도 당연했다. 오히려 이보다 약했다면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막아 내기 어렵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막아 낼 수는 있다는 사실이다. 검기를 막아 낼 수만 있다면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

"별것……"

자신감을 얻은 창귀대원이 버럭 기함을 내지르려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니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벌어진 그의 입을 향해 파고드는 백색 섬광이었다.

카각!

섬전처럼 날아든 검이 벌어진 이 사이를 독사처럼 뀌뚫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날이 이를 긁고, 혀를 가르며 목 끝에 와 닿았다.

'아, 안……'

콰득!

섬뜩한 소리가 울렸고, 그 뒤로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삽시간에 힘을 잃은 육체가 축 늘어졌다.

달아나지도, 달려들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던 이들의 시선이 제 동료의 목덜미를 뀌뚫고 삐죽이 튀어나온 검날로 쏠렸다

또옥.

한 방울의 피가 백색 검날을 타고 흘러 이내 백사장에 떨어졌다.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죽음 다위는 지렵도록 봐 왔다. 그게 적의 죽음이든, 동료의 죽음이든,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딱히 특별한 사건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지켜보는 죽음은 이제껏 그들이 봐온 죽음과는 무언가 달랐다. 그 '다름'을 설명하기란 너무도 난해하겠으나,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어 가는 심장이 분명 경고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궤가 다르다고 말이다.

적의 입에 틀어박힌 검을 단숨에 뽑아낸 청명이 모래사장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마, 막아!"

"죽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감이 창귀대를 엄습했다. 하지만 그들은 만인방. 적을 앞에 두고 달아난다는 것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악에 받친 창귀대는 청명을 향해 되레 돌진했다. 그들이 뽑아 든 도와 검에서 새파란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쇄애애애애애액!

일순 십여 개의 검기와 도기가 청명의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청명이 거의 땅에 닿을 듯이 자세를 낮추었다. 납작 몸을 낮춘 그는 수풀 사이를 빠르게 기는 뱀처럼 영활하게 앞으로 돌진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청명의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도기가 하나둘 바닥에 처박혔다. 등 뒤에서 터지는 폭풍에 몸을 맡긴 청명은 땅을 박차며 더욱 가속했다.

창귀대원 중 하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속도를 높이는 청명을 향해 뛰어들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힐 심산이었다.

수없이 전투를 겪어 온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물러서는 것보다 달려드는 게 사는 길일 때가 있다는 것을. 한번 기세에서 밀려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앗!

더없이 빠르고 간결한 도였다.

과하게 욕심을 내지 않고, 과하게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상대를 단번에 죽여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결코 큰 틈은 내어 주지 않겠다는, 더없이 실전적인 초식.

순수한 살이만을 담은 초식이 미처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청명의 머리를 향해 펼쳐졌다.

'죽어라!'

이는 더없이 정답에 가까운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상대하는 건 다름 아닌 청명이었다.

콰득!

청명이 돌연 백사장에 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그 가공할 속도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청명의 몸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쇄액!

청명의 머리를 처참히 쪼개었어야 할 도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뒤 백사장에 처박혔다. 도를 내래쳤던 이의 두 눈에, 이를 드러낸 청명의 미소가 아플 만큼 환하게 박혔다.

촤아아악!

순간적으로 활시위처럼 낭창하게 휘어진 암매검이 폭발적으로 솟구쳐 창귀대원의 복부를 그대로 꿰뚫었다.

푸우욱!

배 속에 차가운 금속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감각에 몸을 떨기도 전에, 검 날이 물 만난 잉어처럼 펄떡이며 배 속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내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에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순히 살이 찢기는 고통만이 아니다. 몸 안을 파고든 서늘한 내력이 그의 내공을 으스러뜨리며 신경을 한 올 한 올 긁는 듯했다. 온몸의 신경이 끊기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청명이 눈을 번뜩이며 지체 없이 뒤로 몸을 빼냈다.

콰득! 콰득! 콰득!

비명을 내지르던 창귀대원의 몸 밖으로 칼날들이 연이어 튀어나온다. 그의 몸을 뚫고 나온 칼날들은 아슬아슬하게 청명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 칼날 끝에 묻어나온 피가 청명의 얼굴에 튀었다. 뜨거운 열기와 진득한 비린내가 훅 밀려왔다.

동료의 칼날에 꼬치처럼 꿰여 버린 창귀대원은 입을 쩍 벌린 채 덜덜 떨어 댔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청명의 눈에는 어떠한 동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꿰뚫린 이 역시 같은 상황에서 다른 입장에 놓였다면 망설임 없이 제 동료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을 악인이니까.

쾅!

청명이 창귀대원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몸에 틀어박혀 있던 날카로운 칼들은 순식간에 창귀대원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조각난 몸뚱이와 쏟아져 나온 피외 뒤쪽에 있는 이들을 뒤덮었다.

"흐아아아압!"

제 동료의 육편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창귀대원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을 쓰며 청명에게 더 맹렬히 달려들었다.

청명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검을 움켜잡았다.

파아아아아앗!

환영처럼 피어난 수십의 검영이 달려드는 창귀대원들의 육체를 단숨에 가르고 나아갔다.

"큭!"

고통 어린 신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명은 악귀처럼 달려 나가 가장 앞에 있는 이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청명의 앞에 선 창귀대원의 두 눈에 독기가 피어 올랐다. 그는 이내 방어를 도외시한 채, 청명의 목을 향해 검을 마주 찔렀다.

서걱!

하나의 검은 가슴을 뀌뚫었고, 하나의 검은 새하얀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크아아아앗!"

가슴을 뀌뚫린 창귀대원이 두 눈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내지런 검을 옆으로 휘둘러 청명의 목을 쳤다. 아니, 쳐내려 했다.

그 순간 청명은 빠르게 팔꿈치를 튕겨 내 검을 잡은 창귀대원의 팔을 후려쳐 버리고, 창귀대원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은 채 그래도 맹렬하게 달려 나갔다.

"지금이다!"

"쳐라!"

그 광경을 본 이들의 입에서 발작적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더없이 섬뜩한 광경이기는 하지만, 다지고 보면 저건 절대 좋은 수가 인다. 사람의 몸에 박혀 든 검을 뽑아데는 데는 반드시 사간의 낭비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 틈을 노린다면 저 괴물 같은 놈의 몸뚱이에 칼을 박아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 이……"

그리고 몸을 꿰뚫린 이 역시 제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듯했다. 삶에 미련을 버린 듯 자신의 검마저 놓아 버린 그는 제 가슴에 박힌 청명의 검을 양손으로 콱 움켜잡고 늘어졌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청명만은 반드시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겠다는 듯이.

창귀대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의 눈앞에 괴이한 광경이 펄쳐지기 시작했다.

검에 뀌뚫린 채 그들을 향해 밀려오던 창귀대원의 등이 순간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부풀어 오른 건 등이 아니라 등을 덮고 있는 의복이겠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는 마치 등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느껴질 수박에 없었다.

'뭣?'

청명에게 달려들던 이들 중 하나인 정탁(丁卓)의 눈썹이 순간 움찔헀다. 창귀대원의 가슴에 틀어막힌 청명의 검이 그 와중에도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피, 피해……!"

정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귀대원의 의복이 터져 나가며 붉은 검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수십, 수백 개의 작은 꽃잎들.

마치 만발하는 매화잎과도 같은 검기가 폭풍처럼 밀려와 그들을 뒤덮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매화에 휩쓸린 이들에게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꽃잎처럼 작지만, 더없이 날카로운 검기가 숨 한 번 내쉴 동안에 수십 차례 육체를 찢어발겼다.

"커헉……"

"끄르륵……"

남은 건 그저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이들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창귀대주 범충은 눈앞에 펼져진 참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작 한 걸음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고작 한 걸음을 물러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단번에 열에 가까운 대원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간 것이다.

"너……"

피로 검붉에 물을어 버린 백사장을 떨리는 눈으로 보던 범충이 억지로 시선을 옮겼다. 오연히 선 청명…… 아니, 정확히는 그의 손에 붙들린 채 범충을 바라보고 있는 창귀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대, 대주……"

머리채를 붙잡힌 채 무릎 꿇은 창귀대원이 제 목에 대어진 검의 감촉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범충을 간절히 보고 있었다.

"사, 살려 주……"

창귀대는 하나같이 그가 직접 단련시켰다.

설사 지옥의 사자를 맞닥뜨린다 해도 떨거나 두려워할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청명의 손에 붙잡힌 이는 한 껏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가? 죽음이? 아니면……?

"확실히……"

그 순간 창귀대원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있던 청명이 입을 열며 웃었다. 새하얀 이가 환하게 들어나는 모습이 더없이 섬뜩하게만 보였다.

"이쪽이 내 적성에 맞단 말이지."

서걱!

청명의 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귀대원의 목을 그었다.

촤아아아악!

깔끔하게 베인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솟구쳐 오른 피가 흡사 붉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혈우 속에서 괴이하게 웃는 청명을 보며, 범충은 이를 거세게 갈아붙였다.

"이…… 이 개 같은 놈이……"

"아니, 아니지."

"……뭐?"

청명이 히죽 웃었다.

"개 같은 놈이 아니라…… 개 같은 놈들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그 순간 범충이 아차 하는 얼굴로 시선을 틀었다.

청명이 안으로 파고들어 제멋대로 전열을 뒤엉켜 버린 창귀대를 향해 , 십여 줄기에 달하는 검은 선이 가공할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조심하라고, 쟤들은 나보다 더 흉포하니까."

나직하게 경고한 청명이 소리 내어 웃었다. 범충의 피가 차갑게 식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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