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화. 이래도 되나? (4)
"야, 이 개 같은 놈들아! 이게 인두겁을 쓰고 할 짓이냐! 천벌을 받을!"
"이야...... 내 살다 살다 사파 새끼한테 천벌 소리를 다 들어보네."
조걸이 개소리를 늘어놓는 사파 놈을 가차없이 질질 끌고 갔다.
"놔! 놔라! 으아아아아아!"
"사형! 이 새끼 반항하는데요?"
윤종은 뻥 뚫린 동굴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훤한 대낮인데도 빛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아 내부가 소름돋을 정도로 어두웠다.
"음. 이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히게 되는 거니 당연히 겁도 나겠지. 그걸 탓할 수 있겠느냐?"
"......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라니,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윤종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측은지심이란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란다. 사람이란 본디 선하게 태어난 존재인 것을, 한순간 잘못을 했다고 미워해서야 되겠느냐?"
그 말에 조걸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윤종을 바라보았다.
"그럼......"
윤종은 듣지 않아도 그 생각이 맞는다는 듯 더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장 동굴에 처넣거라."
"...... 사형,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단다. 분명 도를 좇는 이들은 미물들에게도 측은지심을 가져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저 사파 놈들은 짐승은 고사하고, 미물만도 못한 것들이지 않더냐?"
윤종이 온화한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지."
"...... "
조걸이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혜연이 도적놈들을 걷어차 우르르 동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으면서 입으로는 '아미타불'을 외는 중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불도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마구 피어났다.
"이, 이 개 같은 놈들!"
"으아아아아아아!"
동굴 안으로 내동댕이쳐진 사파 놈들은 눈을 까뒤집고 발악했다.
조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흑귀보면 사파 놈들 중에서도 악독하기로 유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단전을 부수고, 사지 근맥을 끊어 버렸는데도 저리 발악해 댈 줄은 몰랐다.
'하기야, 저렇게 독하니 사파가 된 거겠지.'
어지간한 독기가 아니라면, 평범한 양민들을 파리 죽이듯이 죽일 수는 없겠지.
"사패련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너희는 곧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짐승 배나 채워 주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 잔악무도한 새끼들아!"
"아, 그러셔?"
조걸이 히죽 웃더니 동굴 옆에 미리 가져다 놓은 바위를 움켜잡았다.
"응?"
"그럼 뭐, 우리가 그렇게 될 때까지 거기서 계속 저주해 보시든가."
쿠르르르르릉!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동굴의 입구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안에 갇힌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잠깐...... "
"아, 안 돼!"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놈들아!"
쿠르르르릉!
입구가 거의 닫혔다. 내력을 잃고 근맥이 끊긴 사파인들은 저 바위를 치울 방법이 없고, 머지않아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꼼짝없이 아사할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니 그들도 태도를 바꾸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 제발!"
하지만......
쿵!
바위는 결국 동굴을 완전하게 틀어막아 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이 사파보다 더한 놈들아!"
"귀신이 되어서라도 저주하겠다! 으아아아아!"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 남겨진 이들이 절망에 가득 찬 비명을 질러댔다. 목이 쉬다 못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자."
"예."
윤종과 조걸, 그리고 혜연은 동굴을 먹은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혜연의 입에서 조금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장."
"예?"
"저들은 죽겠지요?"
윤종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도장. 이 선택이 잘못 되었다고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저런 성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지금껏 살아오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갔겠지요.
그러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반장을 한 혜연이 말을 이었다.
"아미타불......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 신나서 밀어 넣으시는 것 같던데?"
"크흠.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걸 도장?"
"아니. 사실이 그렇잖습...... "
"크흐흐흠! 오해요, 오해!"
슬슬 붉어지는 혜연의 머리를 보며 윤종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저도 스님처럼 그리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저들이 조금 더 강했다면 덜했을텐데, 약자를 괴롭히는 느낌도 조금 들어서 말입니다."
"아미타불. 실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글쎄요.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내린 벌은 무공을 폐하고 잠시 굶기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예? 저들은...... "
혜연이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사지 근맥이 끊긴 저들의 힘으로는 바위를 치울 수 없고, 동굴의 벽을 파낼 수도 없다.
그러니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것이 저들에게 남은 유일한 결말일 터인데......
윤종이 말했다.
"저들은 제 손으로 저 곳을 나올 수는 없을 테지만, 저들을 꺼내 줄 수 있는 이들은 있잖습니까?"
"...... 마을 사람들 말씀이십니까?"
"예. 바위가 크기는 하지만, 모두 힘을 합친다면 옆으로 굴리는 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저들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이지요."
혜연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저 정도 바위는 손쉽게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그분들이 저들을 구하겠습니까?"
"그건 상관없는 일입니다."
"...... 예?"
윤종이 작게 웃는다.
"애초에 청명이 놈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저들은 이미 산목숨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 말에 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들을 가둬 두라고 한 청명의 지시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꽤 의외였다.
혜연은 청명이 의외로 잔정이 많은 사람이라 평가하지만, 적어도 사파나 악인에 관련된 일에서는 자비를 베푸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놈이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겠죠. 우리에게는 저들을 단죄할 자격이 없다는 거. 단죄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저들 손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마을 사람들이겠지요."
"아...... "
"그렇기에 청명이 녀석은 마을 사람들에게 저들의 처분을 맡긴 것입니다. 훗날 저들을 풀어준다고 해도 보복받지 않을 정도로 손을 써 둔 채 말이지요."
"굳이 그렇게까지...... "
혜연의 말에 윤종이 고개를 저었다.
"힘이 없어 원수의 발을 핥아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가 힘이 있으니 너희의 원한을 대신 갚아 주었다고 말한들 저들이 정말 마음 깊이 만족하겠습니까?"
혜연은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청명 시주께서...... "
"한 번씩은 생각이 깊구나 싶을 때도 있지요."
윤종이 빙그레 웃었다. 그때 조걸이 퉁명스레 딴죽을 걸어 왔다.
"사형. 정신 차리십쇼. 청명이가 진짜 그런 걸 생각했겠습니까?"
"응?"
"제가 보기에는 그 새끼 그냥 열받아서 곱게 안 죽이는 겁니다."
"....... "
"말이야 바른말로, 목을 쳐서 죽여봐야 그냥 따끔하고 끝나는 것 아닙니까!"
"...... "
"이왕 죽일 거면 제대로 반성하며 죽게 해야지. 지은 죄가 있는데 어딜 쉽게 죽으려고!"
순간 조걸의 지적이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해 버린 윤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개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더니.
그렇게 몇 발짝 더 떼었을 때, 조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형."
"음?"
"아까 보셨습니까?"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윤종은 조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바로 알았다.
"조금 전 마을 사람들의 반응 말이구나."
"예."
조걸이 답지 않게 잠시 말을 아끼며 머뭇거렸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좀 ...... "
"무슨 말인지 안다."
윤종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조걸은 꽤 크게 충격받았을 것이다.
그들의 검은 오직 약자를 돕고, 악인을 벌하기 위한 것. 협의로써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약자는 그들의 손에 들린 검마저 두려워한다. 검을 들지 못하는 이들에겐 사파의 손에 들린 검이나 정파의 손에 들린 검이나 그저 똑같은 날붙이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
"사람은 마음을 내어 보일 수 없다. 선의란 그저 짐작하고 믿는 것이지."
"....... "
"저항할 수 없는 이가 선의 속에 감춰졌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악의를 두려워한다고 한들, 그것이 잘못되었다 할 수 있겠느냐?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조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윤종의 말대로 확실히 그걸 탓할 순 없다.
"저분들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협의를 행하고도 두려움을 사야 한다면...... 그럼 우리는...... "
그 순간 조걸의 귀에 단호한 목소리가 꽂혔다.
"착각하지 말거라, 걸아."
"예?"
"협의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 "
"우리는 협의 가득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조걸의 두 눈에 의문이 피어났다. 하지만 뒤이은 윤종의 말은 그 의문을 자연스레 풀어 주었다.
"협의란 도울 이들이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말 좋은 세상은 도울 마음이 있는 이들이 가득한 곳이 아니다. 딱히 서로 돕지 않아도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겠지."
"아...... "
"무력이 동반되지 않는 협의는 그저 선의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협의란 오직 무력으로 관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걸아. 무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게 존재하는 세상은 좋은 곳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의 후대들이 살아갈 세상은 협의라는 말이 흘러간 과거의 낭만쯤으로 여겨지는 세상이어야 옳다."
윤종은 제 허리춤에 찬 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화산이 언젠가 진정으로 화산으로 거듭나는 날은, 화산 도사들의 허리에서 이 검이 떨어지는 날일 것이다. 더는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더는 검으로 누군가를 지킬 필요가 없는 세상 말이다."
그를 바라보는 조걸의 표정이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윤종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런 세상에 태어났다면, 나도 적막한 도관에서 도경이나 외며 살 수 있지 않았겠느냐? 그런 세상이었다면, 저분들도 내게 식은 밥이나마 나눠 주며 미소를 주셨겠지."
"...... "
"저분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아직 우리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자꾸나."
"...... 사형."
살짝 앓는 듯 입을 연 조걸이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형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한 번씩 제가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한 번씩이면 안 되는데...... "
"예?"
"아니다."
윤종이 피식 웃으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조걸이 그 뒤를 부리나케 쫓아갔다.
"사형! 같이 갑시다, 사형!"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혜연이 빙그레 웃었다.
'협의가 없는 세상이라...... '
글쎄. 모르겠다.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는지.
하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아미타불."
가만히 왼 불호가 조용한 산중에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