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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09화 (1,210/1,567)

1209화. 이제야 문파가 똑바로 돌아가네! (4)

“........ 손 똑바로 들어라.”

“손!”

슬슬 내려오던 청명의 팔이 다시 위로 획 올라간다. 오만상을 찌푸리는 청명을 보며 현종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내가 어쩌다 저런 걸.'

말이야 바른말로, 마교의 주교도 때려잡는 놈이 그깟 팔 좀 들고 있었다고 힘이 들 리야 있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석 달하고도 보름은 팔을 들고 살 수 있는 놈이 저리 엄살을 부려 대니 속이 더 터졌다.

“청명아.”

"......"

“청명아!”

“.......눼.”

삐쭉거리는 입술을 보며 현종은 천불이 터지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하고 쾅쾅 두드렸다.

“뭐가 그리 불만이더냐?”

"......"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라서 애꿎은 사숙들을 때려잡고 있느냐! 사형도 아니고 사숙들을!”

“아니, 뭐.......”

“이제 곧 문파의 장로가 될 이들 아니냐! 네가 경우를 모르는 녀석도 아니고,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 사숙들을 쥐 잡듯이 패 대면......!”

“제 말이 그겁니다! 제 말이!"

그 순간 청명이 눈을 희번덕댔다. 하지만 현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은근슬쩍 팔 내리지 말고 다시 들어라.”

".......눼."

청명이 슬그머니 내렸던 팔을 다시 올렸다. 그러면서도 입은 멈추질 않았다.

“아니, 장문인! 솔직히 저것들이 화산의 장로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을!”

“......네가 젤 어려, 네가......”

쟤들 머리에 피가 안 말랐으면, 너는 피를 철철 흘리고 다닌다. 청명아, 제발 네 나이가 몇인지 좀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문파에는 지엄한 법도가 있고, 지켜야 할 규범이 있는데!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어디 저런 새파란 것들이! 에잉!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현종은 말없이 윗배를 움켜잡았다.

‘위장약이 어디에 있더라?'

이놈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한 번씩 돌아가신 사부님이 무덤을 박차고 뛰쳐나온 기분마저 들었다.

“상황이 상황이지 않으냐, 응?"

하지만 현종은 오랜 기간 수양하며 쌓아 올린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 청명을 어르고 달랬다. 실로 어른의, 어른다운 행동이었지만 청명은 눈에 불을 켜고 반박했다.

“장문인! 상황이 그렇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자꾸 원칙을 어기게 되면 결국 문파의 법도가 한낱 종잇장처럼 가벼워지는 겁니다! 그럼 규범이 무너지고! 도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환란에 빠지고!"

"......그게 나라의 환란까지 갈 문제냐?"

“당연히 갈 문제죠! 왜 아닙니까!"

"......"

청명이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장문인!”

“왜.......”

“제가 사숙이 싫고 못 미더워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정말이냐?”

“어...... 음...... 솔직히 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한데......”

"......솔직해서 좋구나. 그래, 도사는 우선 솔직해야지. 우리 청명이 참 도사답기도 하지. 그러고 보면 내가 널 보며 화산을 빛낼 도기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여하튼, 화산이 어떤 문파입니까!”

“......어떤 문판데?”

“대 도문 화산파 아닙니까! 화산파! 섬서의 명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문이라 이 말입니다!"

윗배를 움켜잡은 현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그가 이 나이를 먹고 꼰대질을 당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예? 그 화산! 예? 그 도적이 어떻게 만든 도적인데! 이게 무슨 개족보도 아니고! 어디 이제 겨우 이립인 것들이 장문인이 됩니까? 그것도 배분을 건너뛰고!”

“장문대리잖느냐...... 장문대리. 장문인이 아니라........”

“그게 그거지요! 세상에, 내 살다 살다 별......! 화산의 선조들이 선계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화산이 천마가 아니라 저것들 손에 망하는구나 하며 당장에 관뚜껑 박차고 나와 여기로 달려올 겁니다!”

“......네가 입문했을 때도 괜찮았는데 뭐 그렇게까지야.”

“예?”

“아, 아니다. 크흠.”

현종은 어색하게 헛기침하고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더냐?”

“당장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멈춰야 합니다! 이게 어디......”

현종이 허탈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내가 부탁한다고 해도 끝끝내 반대하고 드러누울 셈이더냐?"

"그......!”

잠깐 주춤한 청명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곤란한 상황이라 눈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무언가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아니, 그래도 그...... 아니, 장문인께서 말씀하시...... 아니, 그래도? 어?”

"......"

“그...러시면, 어...... 따르긴 할 텐데. 어...... 예. 따라야죠. 따르는데......”

이성과 본능이 강하게 충돌하자 청명의 양쪽 귀에서 허연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현종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터지겠다. 청명아.”

“끄응...... 시키시면 따라야지요.”

“......고맙구나.”

현종은 허허 웃어 버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녀석의 사고방식에 기묘한 면이 있다. 법정이고 장일소고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물어뜯으려 드는 광견 같은 놈이 어떻게 화산 장문의 명만은 이리도 철석같이 따를 수가 있을까? 오죽하면 이건 일종의 강박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다.

그 순간 청명이 불만스럽게 삐쭉거렸다.

“따르긴 할 텐데, 좋아서 따르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아 두십쇼!"

“......오죽하겠느냐.”

그러고도 영 마음이 안 풀린 그는 작은 소리로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장문인이시면 그래도 문파의 법도를 지켜 주셔야지. 손수 나서서 족보를 뒤엎으시면 이게 말이 되는......”

"다 들린다.”

“크흠”

청명이 시선을 피했다. 현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그도 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청명이 놈이 누구보다 백천을 잘 보좌할 것이라는 걸. 그가 젊은 백천을 장문대리에 임명하고, 빠른 시일 내에 장문인의 자리를 넘겨주겠단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청명이 놈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청명이가 있다면 백천 역시 쉽사리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고, 만일 실수를 한다 해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명이 녀석의 불만이 이렇게나 확연히 눈에 보이는 건 문제였다. 노파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해남으로 떠나야 할 이들이니, 그 전에 최대한 이 문제를 마무리해 두고 싶었다.

“청명아.”

청명은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현종이 다시 한번 넌지시 그를 불렀다.

“청명아.”

"......예."

그 모습을 보고 현종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이 아이는 아마 백 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 사실이 은근히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 아이가 변하지 않는다면 화산 역시 변하지 않을 테니까.

“네 마음은 이해한다.”

"......"

“그리고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청명아. 나는 상황이 상황이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구나.”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도를 따르는 이들이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것을 따라야......”

“아니, 아는데요.”

그 순간 청명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도통 이해를 못 하겠어요."

“응? 그건 무슨 말이냐?"

“도사는 자연 그대로를 따라야 한다고, 인위(人爲)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그게 자연이잖느냐.”

“그런데 사람은 자연이 아닌가요?"

"......응?"

“사람은 자연이 아니냐고요.”

그 말에 현종이 눈을 끔뻑였다. 허를 찔린 듯 한참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도 자연의...... 그래. 사람도 자연의 일부겠지."

“그럼 이상하잖아요.”

“무엇이 말이냐?”

“도를 쫓는다는 건 자연 그대로를 따르는 것이라 하는데, 그럼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니까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것 역시 도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위를 배제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건 사람을 쏙 뺀 자연을 따르겠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사람인데, 사람이 없는 자연을 닮아 가는 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현종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예.”

“자연을 따르는 것이 도다.”

“예!”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 이는 대로 따르는 것 역시 도다.”

“예, 장문인!”

“그러니까......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 이거냐?"

"......"

“이런 궤변이 어디에 있느냐, 이놈아! 그럼 세상 사람들이 뭘 하든 도가 아니더냐!"

“......에이, 들켰네.”

“야, 이......!”

“아이고오! 내가 수련을 까암빡하고오오오!"

현종이 역정을 내자 청명이 쏜살같이 문으로 튀어 나갔다.

“거기 안 서느냐!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이놈아!”

“제가 아직 출발 준비를 덜 했거든요! 이 제자! 맡겨 주신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세세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놈아!”

활짝 열린 문으로 빠져나가 사라졌던 청명이 몸을 반만 빼꼼 내밀더니 헤헤 소리 내어 웃었다.

“에이, 걱정 마세요. 그래도 장문대리인데, 대접은 할 테니까요!"

"......"

“그럼!”

청명이 퍽 꺼지듯 사라졌다. 현종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걱정이다. 걱정이야.

한숨을 푹 내쉰 그는 잠시 후 홀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도라니....... 사람이란.......

현종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

떠 있던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려 오고, 사위가 깜깜하게 물들어서 마침내 해남으로 갈 인원이 출발할 시간 즈음까지.

"준비는 다 했느냐?”

“준비랄 게 뭐 있습니까? 늘 하던 건데.”

백천의 물음에 윤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워낙 멀리 가는 일이 잦다 보니 이젠 눈 감고도 짐 싼다고요.”

“맞아.”

"......사고, 사고 짐은 제가 쌌잖아요.”

"......"

“사고? 어딜 보세요? 사고?"

백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기야 그렇구나. 괜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걸이 놈은 어디 갔느냐?”

“준비는 끝났는데.”

“끝났는데?”

“낮에 청명이한테 맞은 게 덜 나아서 일단 눕혀 뒀습니다.

“침상에?”

“아뇨. 바닥에요.”

......윤종아...... 그건 눕혀 뒀다고 하는 게 아니라 방치했다고 하는 거란다. 나는 한 번씩 너를 잘 모르겠다.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잘 모르겠어.......

그때 윤종이 태연하게 되물어 왔다.

“저희를 걱정하실 게 아니라, 사숙은 준비되셨습니까?"

“응?”

“장문인께서 출발 전에 간소하게나마 정식으로 장문대리를 임명하는 자리를 가지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음, 그러셨지.”

잠깐 잊고 있던 긴장이 백천의 얼굴에 스쳤다.

눈앞에 대적하기 어려운 강적이 있다 해도 기 안 죽을 백천이지만, 그런 그도 모두의 앞에서 공식적으로 장문대리 자리에 오르는 건 긴장되었다.

“준비랄 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오직 각오뿐이겠지."

“그러니 묻는 겁니다. 각오는 하셨습니까?”

그 말에 백천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다.”

단호한 대답에, 윤종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천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뗐다. 문을 열고 나가자 연무장을 가득 채운 화산 제자들이 보였다. 모두가 백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

그 시선을 전신으로 받으며, 백천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쯤 설레고, 또 한없이 무겁다. 그 모든 걸 느끼며 발을 내디뎠다. 앞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종과 장로들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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