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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08화 (1,209/1,567)

1208화. 이제야 문파가 똑바로 돌아가네! (3)

“으라차아아아아!”

카가가가강!

당패의 눈이 확 일그러졌다. 당잔의 비도를 막아 낸 손목이 시큰거려 왔기 때문이다. 아직 부르르 떨리고 있는 제 비도의 끝을 슬쩍 본 당패가 말했다.

"...... 어째 힘이 넘치는구나?"

“후후후후, 당연한 일 아닙니까, 형님.”

“당연하다고?”

“보십시오. 백천 도장이 마침내 화산의 장문대리 자리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이 천우맹에 있겠냐마는, 그 일과 너의 활력에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느냐?"

“이렇게 늦으셔서야......”

“응?”

당잔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천우맹에 남궁 소가주님이나 설 궁주님처럼 젊은 문주는 있어 왔지만, 백천 도장의 경우는 또 명백하게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바로 선대께서 아직 정정하심에도 그 자리를 물려준 최초의 사례라는 거지요.”

그 말을 들은 당패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네 활력이랑 왜 상관이 있느냐?"

“아이고 형님 가주 되실 분이 그렇게 파악이 늘으셔서 어떻게 합니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화산의 장문인이 교체된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천우맹 전반에 걸쳐 세대교체가 시작되는 겁니다."

“으으응?”

당패는 그게 뭔 개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당잔이 흐흐 소리 내어 웃었다.

“다른 문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면 그냥 그 문파의 일로 끝났겠지만, 화산에서 벌어진 일은 그냥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아마 다른 문주님들도 이제는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을 안 하실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럴 때 눈에 띄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때 잘하면 가주님의 눈에 들어서 단숨에 요직을 차지할 수도 있다 이겁니다!”

멍하니 듣던 당패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잔아.”

“예?”

“.......개소리하지 말고 하던 거나 잘해라.”

“형님.”

“왜?”

“주변이나 한번 보십시오. 지금 누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지."

"응?"

당잔의 고갯짓에 따라 당패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압!”

“받아라아아아아아!”

내력을 다소 과하게....... 아니, 많이 과하게 실은 암기들이 맹렬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대련에 열과 성을 다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눈이 맛이 갔네, 눈이.'

저 희번덕대는 눈빛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들이 품은 흑심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할 말을 잃어버린 당패의 귓가에 이죽대는 당잔의 목소리가 닿았다.

“뭐...... 소가주님의 생각처럼 가주님께서 별 뜻 없으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놈들이 하나같이 저러고 있는데 정말 그냥 무시하실 수 있을까요?"

당패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미친놈들이......'

아무래도 단체로 정신줄을 놓아 버린 모양이다.

“아아아아악! 이 새끼가 진짜 비도를 쑤셔?”

“못 피한 쪽이 잘못이죠!"

“오냐! 어디 해보자!"

당패는 아연실색하여 눈앞의 광경을 보다 몸을 획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여기 있다가는 나까지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포기하고 받아들이십시오, 형님.”

“개소리하지 마라!”

질린 얼굴로 후다닥 연무장을 나선 당패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상대의 표정을 본 그는 순간 동병상련과 떨떠름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쪽도?"

“.......당가도 장난 아닌 모양이군요."

남궁도위와 당패가 서로 마주 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가주라는 위치도 같겠다. 사석에선 형 동생처럼 지내며 제법 가까운 두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놈의 맹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남궁도 그러한가?”

“아시다시피 제가 매화도 이후 가문을 수습하는 데만 전력을 다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러다 보니........ 예전에 돌아가신 장로님들이 맡고 있던 직위들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는데........”

당패가 눈을 딱 감았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짐작이 갔다.

“갑자기 이놈들이 제 앞에서 검을 휘둘러 대질 않나, 식당에서 밥 먹다 말고 검을 뽑아 대련해 대질 않나, 오밤중에 고함을 질러 가며 수련해 대질 않나.......”

"...... 거긴 우리보다 더 심하군.”

“당가는 좀 나은 모양입니다.”

“우린 공석은 없으니 말일세....... 모르지. 가주님이 겪는 건 또 다를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쁜 일은 아닌데.”

“그러게. 좋은 일인데.”

사실 문도들이 열정을 가지고 수련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건 문파를 이끄는 이의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었다.

“......좀만 덜 과격하면 좋을 텐데."

“그러게나 말일세."

문제는 이놈들이 도무지 정도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사실 당가도, 남궁도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당가는 암기와 독을 다루는 특성상 문파의 성향 자체도 신중하고 침착한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남궁세가 역시 정도의 대표 가문답게 진중함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이게 다......”

"화산 때문이지요.”

둘은 벌써 세 번째로 마주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둘만큼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네도 도망 나오는 길인가?"

“예? 도망이라니요. 저는 지금 연무장으로 가는 길인데.”

“...... 도망 나오셨습니까?"

“크흠. 그런 게 아닐세. 남궁이 수련을 하고 있으면 나도 한번 견식 해 봐도 되겠는가?"

“...... 그러시죠.”

살짝 미묘하게 바라봐 오는 남궁도위의 시선을 외면하며 당패는 빠르게 걸었다.

"...... 이쪽입니다.”

“아네! 안다니까?”

장원 반대쪽의 공터로 향하는 와중 그들의 시야에는 많은 것이 들어왔다. 냉기를 풀풀 뿌리며 검을 날려 대는 빙궁도들, 또 대낮부터 웃통을 까고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힘자랑을 해 대는 야수궁도들......

'똑같네.'

'같은 것들이네.'

이쯤 되면 그냥 다들 한 문파로 합쳐도 되지 않을까?'

배우는 무학만 다르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것들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두 사람의 눈에 문득 이상한 광경이 걸렸다.

“응?”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쯤 한창 수련 중이어야 할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연무장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 지금 다들 뭘 하고 있느냐?"

“아? 소, 소가주님!”

서 있던 검수들이 화들짝 놀라 남궁도위를 돌아보았다.

“수련하러 간다더니?”

남궁도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먼저 수련하러 갔던 이들이 시간 낭비 하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화를 내지 않은 까닭은, 연무장으로 출발하던 이들의 기세가 대단했었기 때문이다. 분명 용이 나타나도 단숨에 때려잡아 탕을 끓여 먹을 기세였는데......

“저, 저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응? 그건 무슨 소리냐?"

“설명하기가 좀 힘듭니다. 직접 보셔야......”

남궁도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인파를 파고들었다. 연무장 쪽으로 고개를 슬쩍 들이민 그 순간.

“꾸웨에에에에에에에엑!”

쿠웅! 쿠웅! 쿠웅! 쿵!

앞쪽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바닥에 연이어 처박히더니 이내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널브러진 것, 아니. 널브러진 이의 정체를 확인한 남궁도위는 기겁하여 외쳤다.

“조, 조걸 도장!”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조걸은 새하얀 게거품을 부글부글 물고 있었다.

“주, 죽었나?”

“그런 것 같은데?”

“아, 아니, 이게 뭔 ......”

당황한 남궁도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천우맹에서 가장 강대하며 이제는 천하가 인정하는 강자인 화산의 검수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진 모습을. 그리고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 사이에 서 있는, 거대한 악의 존재를.

'처, 천마......?'

아니, 그럴 리가.

지금 저자를 포위한 화산의 검수들은 차라리 천마를 상대하고 싶을 것이다. 눈이 돌아간 저 인간보단 말이다.

“......뭐?”

눈이 돌아간 그의 입이 열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새하얀 증기가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무우각주우우?”

"......"

“누가 무각주가 된다고?”

화산의 제자들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어느 새끼냐?’

'누가 저 새끼 앞에서 무각주 소리를 했어?'

'죽인다! 내가 꼭 죽일 거다!'

태풍이 부는 것을 탓해 봐야 소용이 없고, 폭우가 내리는 걸 원망해 봐야 의미가 없듯이 저 인간이 발악하는 걸 탓하는 건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저 인간이 발악하게 된 원인을 찾는 게 낫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사람 모습의 재해가 눈을 까뒤집게 만든 원흉은 이미 턱주가리를 얻어맞고 기절한 뒤였다.

“무각주? 장로오오오오?”

"......"

“장문대리가 저 꼴이면 너희들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도사라는 것들이 잿밥에만 눈이 홀딱 멀어 가지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게 청명이란 사실이 모두를 서글프게 했다.

“너희들이 화산을 아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뭐? 누가 무각주가 된다고? 누가?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이야 당연히 많다. 하지만 눈을 까뒤집고 발작하는 청명이 놈에게 제 할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모두가 체념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 그...... 청명아......?"

윤종이 적의가 없다는 표시로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만면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조심스레 청명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흡사 성난 고양이에게 손길을 뻗는 사람처럼 신중했다.

“사, 사숙들도 나쁜 생각은 없었을 거다. 그냥 문파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오게 되는....... 그....... 어, 그래. 그런 거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일이잖아? 응?”

“그러니까, 자....... 그 검 내려놓고 우리 대화로, 응?"

'잘한다! 훌륭하다, 윤종! 빛이 난다!’

‘역시 차기 장문인!’

모두가 희망으로 눈을 빛내며 윤종을 응원하는 그때였다.

“.......좋은 일?”

“응, 그렇지. 좋은.......”

쿠우우우우웅!

털썩.

“아이고, 윤종아아아아아!"

“어떻게 일격에 가냐?"

옥에 갇힌 범죄자도 도사의 길로 이끌 수 있는 훌륭한 도인도 지옥에서 되살아난 마귀를 교화하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윤종이 쓰러진 채 움찔움찔 경련했다. 그의 머리에서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금 동룡이가 장문대리가 됐는데 좋은 이이이일?"

청명이 아예 흰자가 보이도록 눈을 까뒤집으며 일갈했다.

“오냐! 내가 오늘 너희한테 좋은 일이 뭔지 확실하게 알려 주마!”

“히이이이익!”

“튀어! 빨리!"

“어딜 가, 이 새끼들아!"

청명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야 이놈의 자식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호통이 들린다 싶더니, 홀연히 나타난 현종이 수염을 휘날리며 뛰어왔다!

“장문이이이이이인!”

“아이고오, 장문인! 왜 이제 오셨습니까!”

“저 새끼가 그랬습니다! 저 새끼가!"

무어라 입을 모아 하소연하는 제자들을 지나쳐 단숨에 청명에게로 달려간 현종은 현란한 금나수로 귀를 낚아챘다.

"아야! 아야야! 장문인! 귀! 귀!”

이놈의 자식! 이리 따라오거라!"

“아아아야! 장문인! 나 귀 떨어져요! 귀! 아야야야야야!”

“그러니까 따라오래도!"

귀를 단단히 움켜잡은 현종이 청명을 질질 끌며 멀어져 갔다.

한 편의 극이라도 감상하는 것처럼 멍하니 보던 당패가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가주.”

“예?”

“......우리 출발이 언제였지?”

“오늘...... 오늘 밤이요.”

“그래. 그렇군.”

두 사람은 말없이 저 먼 하늘을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힘내세.”

"......예."

해남으로 가는 길, 가장 큰 적은 어쩌면 사패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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