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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02화 (1,203/1,567)

1202화. 대체 뭐가 다릅니까? (2)

“뭐......”

당군악의 눈치를 슬쩍 살핀 남궁도위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좋지 않습니까? 해남에서도 저희의 진정성을 확실하게 이해할 것이고."

남궁도위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문주들이 직접 해남을 방문하는 것보다 그들의 진정성을 더 보여 줄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조걸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협박으로나 안 느끼면 다행이지 않을까요?”

“혀, 협박이요?”

나도위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돌아보자 조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천우맹의 구성 문파들이 하나같이 만만한 곳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말도 솔직히 너무 겸손한 발언이었다. 천우맹이 아직 구파일방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다고는 하지만, 따져 보면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이다.

“오대세가의 주축이었던 남궁세가와 당가에, 신주오패 중 하나였던 녹림, 그리고 새외오궁 중 두 곳까지.”

“음.......”

“그중에 해남파가 만만하게 볼 만한 곳이 있습니까?"

“없......겠죠?”

해남이 아무리 구파일방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겨우 백 년도 안 된 과거에 구파일방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문파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보자면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부담이 더 큰 곳은 분명 해남 쪽이다.

“그런데...... 그런 문파에 천우맹의 문주님들이 단체로 몰려가서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왔으니, 좋은 말로 할 때 합류하라고 해 보십쇼.”

그 순간 모두의 머리에 한 광경이 떠올랐다.

성질머리로 따지자면 구파일방 따위는 가져다 대지도 못할 천우맹의 문주들이 해남의 장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어....”

“이거 그림이 좀........”

“심지어 사파 수괴도 있잖아.”

뭔가 묘한 반응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남궁도위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혀, 협박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희는 그냥 해남의 미래를 위해 천우맹과 함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합류 안 하면 그냥 간다. 근데 그럼 소림도 안 도와줄 테니, 니들은 결국 망할 거다. 망하기 싫으면 합류해라."

“...... ”

“그게 협박이지.”

그 말에 오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런데?”

“무섭다.”

“진짜 개무섭네.”

“나 같으면 지렸다.”

이쯤 되니 당군악이 합류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양반들이 에워싼 와중에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당군악이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없는 신물이라도 들고 나와 바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 이쯤 되면 협행이라고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사형?”

“쯧쯧. 어리석은 놈. 아직 모르겠느냐?"

“예?”

윤종이 한심하다는 듯 조걸을 보며 말했다.

“협행이란 원래 힘으로 하는 거다.”

조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해 보아라. 힘이 필요하지 않은 협행은 협행이라 하지 않는다.”

“그, 그럼요?”

“그건 그냥 선행이지.”

“어?”

조걸이 눈을 크게 치떴다. 뭔 헛소리지 싶었는데,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닥치고 두들겨 패서 해결하니까 선행이 아니라 협행이라 불리는 거다. 그리고 우리는 협행을 하러 가는 길이 아니더냐.”

“그러네요?”

“그렇지. 그러니 당연히 힘을 써야지."

“크으. 사제가 그건 몰랐습니다. 과연, 이게 화산식 협행이군요.”

“아니야, 이 미친놈들아!”

참다못한 백천이 벌컥 고함을 쳤다. 조걸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형. 장문대리께서 아니라고 하시는데요.”

“쯧쯧. 걸아, 너는 여전히 모르는구나. 장문대리 같은 지고한 자리에 있다 보면 옳은 것을 아니라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 본심은 다르다는 거군요.”

“그렇지. 애초에 이 계획을 세우신 분이 장문대리 아니냐. 그리고 따지고 보면 장문대리야말로 '화산식 협행'의 창시자나 마찬가지 아니냐.”

“과연!”

“아, 아니라고!”

가만 듣고 있던 당군악은 뭔가를 놓아 버린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방장과 손을 잡을 걸 그랬나?'

그럼 적어도 이 고통을 그가 아닌 방장이 겪었을 터. 생각해 보면 그게 방장을 괴롭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단 말인가.

한숨을 푹 내쉰 당군악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쨌든 농으로 할 만한 이야기만은 아니오.”

달라진 당군악의 말투에 모두가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직접 해남으로 향하겠다는 그 협심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처음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해남으로 향하는 이들의 면면에 무게가 실린 것도 사실이오. 객관적으로 본다면 유례없는 일이라 해야 하지 않겠소?"

“만일 해남으로 간 문주들이 뜻하지 않은 변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이오. 상황에 따라서는 천우맹의 존속조차 불가능해질 테고 말이오.”

거기까지 말한 당군악이 다른 문주들의 면면을 보았다. 이 말을 하면서도 그는 이들의 제 의지를 꺾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애초에 천우맹은 그런 이들이 모인 곳이 아니던가. 이런 사람들이기에 이 천우맹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한 복귀요. 자신들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잊지 마시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당군악의 시선이 백천에게로 향했다. 그저 짧은 눈짓에 불과했지만, 백천은 그 의미를 확연하게 이해했다.

이 일을 시작한 건 백천이다.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 역시 백천의 책임이 될 거란 의미였다. 설사 그가 강요한 게 아니라, 문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건 질책이라기보다는 우려나 걱정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백천은 당군악의 눈빛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로 가득 찬 그 눈빛을 보며 당군악은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당군악의 입에서 당가의 가주다운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 일만큼 천우맹의 뜻과 의지를 천하에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게 사실이오."

“우리는 구파와 다른 길을 가기로 선언했소. 그게 말만으로 끝난다면 결국 훗날 우리의 선택은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한 이기적인 결정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겠지.”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니 알게 되더군. 때로는 옳은 선택과 그른 선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선택은 선택일 뿐, 그 어떤 선택을 하든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오."

이건 당군악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간 천우맹은, 화산은, 당가는 세상이 틀렸다고 말하는 선택을 수도 없이 해 왔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이었음을 검과 의지를 통해 스스로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마음의 외침을 무시하고 현실과 위험에 대해 논하는 순간, 그들도 결국은 방장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금의 천우맹이 택한 건 그들이 소림과 다름을 증명하는 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에게 말이다.

당군악은 마음에 이는 우려와 걱정을 억누르며 단호한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당당히 다녀오시오. 천우맹의 이름을 걸고."

대답은 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예!"

더없이 뜨겁게.

***

소림과 천우맹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소림의 방장인 법정 대사가 그간 두 세력 간에 쌓인 악감정을 풀고, 천하에 닥칠 환란에 대비하여 정파의 이름 아래 다시 하나로 뭉치자는 제안을 했지만 천우맹은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법정 대사는 천하의 위기보다 자신의 세를 우선시하는 천우맹의 행위에 분노했고, 천우맹과 공조하지 않을 것임을 단호히 선언했다.

- 간악한 사패련 세력이 준동하고, 백 년 전 사라졌던 마교가 다시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제 입장만을 내세우는 건 정도를 걷는 이들이 할 행위가 아니다. 소림을 위시한 구파일방은 천우맹의 무도한 행위를 단호히 규탄 한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천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괴이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천우맹이 좀 과한 것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이의 얼굴에 노기가 차올랐다.

“뭐?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어떻게 천우맹을 욕할 수 있는가? 지금껏 힘없는 이들이 고통받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디인가? 저 마교가 사람들을 떼로 죽여 댄 항주로 달려간 유일한 이들이 누구였냐 이 말 이야!”

“아니, 그러니 하는 말이 아닌가? 지금껏 천우맹은 항상 양민들을 도와 오지 않았는가? 구파와 힘을 합친다면 당연히 더 큰 도움이 될 터인데 왜 굳이 그걸 거부한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는 거겠지, 그 구파 놈들을! 그 육시랄 놈들을 뭘 어떻게 믿겠다! 목숨이 아까워서 제 동료들이 죽어 나가던 걸 구경만 하던 것들인데!”

격앙된 목소리를 듣던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구파일방이 예전 같지는 않다고는 해도, 그래도 수백 년간 정파로서 사람들을 지켜 온 곳일세. 설마 그들이 사패련과 마교가 강북으로 쳐들어올 때도 구경만 하고 있겠는가? 제 목숨까지 걸린 일인데?"

"......그건 아니겠지.”

“그럼 당연히 힘을 합쳐 싸워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듣기로는 저 법정 대사께서 천우맹에 굉장히 많은 걸 양보했다고 하더군. 그런데도 그 제안을 받지 않은 걸 보면 천우맹도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단 뜻 아니겠는 가?"

“다른 것이라니?”

“잿밥이지. 이제는 제 권력이 아쉬운 것 아니겠는가? 이제는 천우맹도 작은 곳이라 할 수 없으니.”

“이 사람이 뚫린 입이라고! 야, 이 사람아. 그러다 벌 받네. 천우맹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줬는데.”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게. 구파일방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저랬겠는가? 지금의 천우맹이 하던 일을 예전에 구파일방이 해 주었네. 과거 마교가 발호했을 때 목숨 걸고 싸워서 천하를 지켜 낸 이들이 누구였냐 이 말이네.”

“그야......”

할 말이 궁색해진 이가 말끝을 흐렸다.

분명 저 구파일방이 협의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변치 않는 단 한 가지의 진리는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아니던가?

“아무리 그래도 천우맹이 벌써 변할 리는 없네.”

“속단하지 말게. 저들이 정말 양민들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여겼다면 구파에서 거부한다고 해도 힘을 합치려 했어야 맞는 걸세.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구파에서 한 제안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지 않았는가?”

“...... "

“사패련이나 마교가 쳐들어왔을 때 둘로 나뉘어 있는 것과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 어느 쪽이 희생이 적을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일세. 나는 이번에 천우맹에 크게 실망했네.”

“그건 자네 조카가 저 공동의 속가제자니 하는 소리겠지. 자네 팔이나 똑바로 보게. 얼마나 심하게 안으로 굽었는지 젓가락질도 못 할 판이구만."

“뭐? 자네 말 다 했는가?"

“뭘! 내가 뭐 틀린 말 했는가?"

“이 사람이!”

둘의 언성이 격하게 높아지며 주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주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딱히 말리려 들진 않았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생각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주루 한쪽 구석에 앉은 거지 하나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은 점소이 하나가 짜증 섞인 얼굴로 다가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풀렸다.

거지는 점소이가 신경질적으로 내민 쉰밥을 헤헤 웃으며 받아 챙기고는 슬그머니 주루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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