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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01화 (1,202/1,567)

1201화. 대체 뭐가 다릅니까? (1)

"그럼 남은 곳은⋯⋯."

모두의 시선이 당군악에게로 향했다.

화산과 남궁, 녹림, 그리고 새외오궁 중 두 곳이 참석자를 정했으니, 남은 곳은 당가뿐이었기 때문이다.

"가주님?"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본 당군악이 크흠 헛기침을 흘려 냈다.

"당가는⋯⋯."

"가십니까?"

"다른 곳은 다 문주가 직접 가는데."

"⋯⋯."

당군악의 눈가가 실룩하고 경련을 일으킨다.

"지금⋯⋯ 크흠. 지금의 나는 당가의 가주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천우맹의 부맹주로서 상황을 정리하는 중이니 당가와 관련된 일은 내가 아니라 소가주에게 묻도록 하시게."

"그게 그거 아닙니까?"

"화산도 장문대리와 맹주님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으니, 당가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뭔가 발을 빼는 느낌이 났지만, 따져 묻기엔 조금 애매하긴 했다. 그러니 자연히 모두의 시선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당패에게로 향했다.

"어⋯⋯. 그⋯⋯."

당패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겸연쩍게 입을 열었다.

"물론 당가에는 당가를 대표할 만한 훌륭하신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검들이 수군댔다.

"많아요?"

"많았었지. 그 많았던 사람들 가주님이 청명이랑 손잡고 싸그리 다 뒷방에 밀어 넣었잖아."

"아, 원로원 폐쇄를 말하는 거구나. 그럼 없네."

당패가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아무래도 문파 간의 형평성이라던가,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당가에서도 가주님께서 직접⋯⋯."

그 순간, 제 몸에 밀어닥치는 한기를 느낀 당패가 고개를 획 돌린다. 그를 바라보는 당군악의 얼굴이 일순 아수라처럼 변했다가 재빨리 무표정을 되찾는다.

"⋯⋯."

"직접이요?"

"아, 아니⋯⋯."

당패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아시다시피 저희 가주님께서 가시면 문제가 좀⋯⋯."

"무슨 문제요?"

"⋯⋯뭔가 있겠죠?"

"예?"

"⋯⋯."

다시 한번 등을 찔러 오는 살기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낸 당패가 더듬더듬 대며 말을 이었다.

"그⋯⋯. 지금 가주님께서는 실질적인 천우맹의 부맹주로⋯⋯. 워낙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시다 보니, 자리를 비우시면 업무에 문제가 여럿 생기고⋯⋯."

조걸과 윤종이 또다시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형. 지금 천우맹이 뭐 하는 게 있습니까?"

"⋯⋯나야 모르지. 그런데 지금은 딱히 뭐가 없을 텐데?"

"그런데 무슨 공백이 생긴다는 겁니까?"

"글쎄?"

당패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저 망할 승냥이 떼 같은 놈들. 저런 것들이 도사라고⋯⋯.

"그, 그러니 가주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맹주님이 힘들어지실 수 있습니다."

"아. 그럼 뭐."

"그건 인정이지."

"장문인도 요즘 생각이 많으실 텐데, 방해하면 안 되지."

당패가 뿌득 이를 갈았다. 저 썩을 화산 놈들⋯⋯.

백천이 말이 길어진다는 듯 핵심을 물어 왔다.

"그래서 당가에서는 누가 가는 겁니까?"

"장로님들 중 한 분이⋯⋯."

"장로님요?"

"⋯⋯."

당패가 슬쩍 당군악을 돌아본다. 그의 아버지는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문제를 뭘 그리 고민하냐는 듯.

그리고 당패는 그 결론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소가주님이요?"

"예. 다른 문파에서는 문주께서 직접 가시니, 저라도 직접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소가주님이 가신다면 뭐."

"크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군악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음. 먼 길이기도 하고, 위험한 길이기도 할 터인데."

"⋯⋯."

"그래도 소가주가 직접 가 준다고 하니, 조금은 체면치레를 한 것 같군. 고맙네, 소가주."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가야 하는 일이지요."

빙그레 미소짓는 당군악을 보며 당패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에는 안 저랬던 것 같은데, 언제 사람이 저렇게 능글맞아졌는가? 왜?

"여하튼 그럼 결론은 다 난 것이로군."

당군악이 상황을 정리했다.

"해남으로 향할 이들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당가의 소가주, 빙궁의 궁주와 녹림왕, 그리고⋯⋯."

당군악의 시선이 백천을 호위하듯 앉아 있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오검인가?"

백천이 슬쩍 제 뒤에 있는 이들을 돌아본다.

"⋯⋯원래대로라면 각 문의 문주들이 가는 자리에 낄 만한 이들은 아니지만."

"아니, 뭔 말을 그렇게⋯⋯."

"본인들의 의사가 있다면 데려갈 생각입니다. 제 한 몸 지킬 무위가 부족한 이들도 아니니까요. 다른 문파의 문주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좋겠지."

당군악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도 필요한 동행이라 생각하네. 지금 대외적으로 천우맹을 상징하는 이들이 화산의 오검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니까."

"⋯⋯상징이라니, 과하십니다."

"음? 모르는가?"

"예?"

백천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들의 명성이 높아질 때, 본인들은 되레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로군. 자네들이 강남으로 파견되었던 일들이 알려지면서, 오검들의 명성이 가히 드높아지고 있네."

"⋯⋯정말입니까?"

"물론 그 명성의 대부분은 화산검협의 것이지만, 자네를 비롯한 다른 오검들의 명성도 이제는 후기지수의 수준에서 논할 바는 아닐세."

"⋯⋯."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검들을 보며 당군악이 빙긋 웃었다.

"어쩌면 다들 각자 별호가 생길지도 모르지. 강호인들은 사람에게 별호를 붙이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니까."

"오? 별호!"

조걸의 얼굴이 화색을 띤다.

"그럼 저희도 이제 별호가 생기는 겁니까?"

"⋯⋯좋으냐?"

"그럼요! 사숙이나 사고는 별호가 있는데, 저희는 없어서 억울한 면도 있었잖습니까. 저희도 열심히 싸웠는데."

"이상한 별호라도 붙으면 어떻게 하려고?"

"에이, 제 별호는 좋은 것 분을 거예요. 질풍매화무적검(疾風梅花無敵劍). 뭐 이런 걸로!"

"그게 제일 이상해. 그게⋯⋯."

조걸의 반응을 보며 당군악이 미소를 지었다.

백천이 오검을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면, 당군악이 먼저 저들의 동행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사패련과의 전투, 그리고 마교와의 전투. 그 모든 곳에 오검은 항상 존재했으니까.

저들은 이제 단순한 화산의 후기지수들이 아니다. 저들은 사마와 싸우는 천우맹의 검이자, 그 어느 곳이든 억울한 이들이 있으면 달려가는 협의의 상징과도 같았다.

해남 역시 귀를 막고 사는 이들은 아닐 테니 오검의 활약상은 충분히 들었을 것이고, 그런 이들이 직접 온다면 대접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거기에⋯⋯. 유이설, 윤종, 조걸⋯⋯."

당군악이 말을 끊고는 당소소를 바라본다.

"⋯⋯너까지는 굳이."

"갈 거예요."

"이미 수는 충분한 것 같은데."

"갈 거예요."

"⋯⋯방해만 될 것 같은데."

"간다고요."

당소소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철벽을 치자, 당군악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꼭?"

"뻔한 말씀을 하시네요.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이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죠. 저희 사형들은 칼 맞고 살이 찢어져도 제 스스로 꿰맬 줄도 모르는 양반들인데."

"소가주가 직접 가는 일이니, 굳이 의원은 필요하지 않다."

"그건⋯⋯."

그때, 백천이 입을 열었다.

"소소는 의원으로 같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으음?"

당군악의 시선이 백천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백천이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소는 의원이 아니라 화산을 대표할 검수로서 함께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누가 되었든 소소를 대체할 만한 검수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당군악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위험한 곳에 딸을 보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심정으로서는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뒤늦게 화산에 입문하여 검이 아닌 당가의 의술로 부족함을 채우던 아이가, 이제는 장문대리에게 그 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니까.

아니나 다를까. 백천의 말을 들은 당소소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그 얼굴에 어린 벅참을 느낀 당군악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장문대리께서 그리 말한다면, 내가 입을 뗄 일은 아니군. 허가하겠네."

"감사합니다."

백천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이런 당연한 일로 굳이 당소소와 시선을 교환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확실히⋯⋯.'

당군악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종과 백천은 확실히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은 바로 저 의지견정함과 당당함일 것이다.

"그럼 인원은 확정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저기, 사숙."

"응?"

"⋯⋯뒤쪽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응?"

백천이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에 한쪽 구석에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혜연의 모습이 들어왔다.

"⋯⋯스님?"

"그⋯⋯. 잘 다녀⋯⋯. 예, 잘 다녀오십시오. 도장. 이곳에서나마 무사귀환을 부처님께 기원드리고⋯⋯."

조걸이 윤종에게 속삭인다.

"왜 저러시는 건데요?"

"글쎄다. 아마도 방장이 깽판 친 일인데, 소림 출신이 같이 가기에는 민망해서 그러는 것 아닐까?"

"그런 걸 신경을 쓴다고?"

다들 의아한 눈으로 혜연을 바라본다. 그러자 혜연의 머리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염치의 반만이라도 방장이 가졌어야 하는 건데."

"반이 뭡니까. 십 분지 일만 있었어도 그렇게 안 살지."

"생각해 보면 저 양반이 너무 많이 가져서, 방장이 가질 게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럼 저 양반이 원인이네."

"아, 아니 제가 뭘?"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혜연을 보며 백천이 피식 웃는다.

"신경 쓰지 말고 같이 가시지요. 스님."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천우맹 분들이야 제 입장을 이해하시지만, 해남의 입장에서는 소림 출신이 함께한다는 것이 조롱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조롱을 위해서 각 문의 문주가 모두 위험을 무릅썼다고 생각할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아⋯⋯."

혜연이 이곳에 있는 이들을 돌아본다.

확실히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해남으로 가는 이들의 면면이 그 오해를 불식시켜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아미타불."

혜연마저 함께하는 것이 확정되자 조걸이 새삼스럽다는 듯 모두를 돌아본다.

"와. 그럼 야수궁을 뺀 각 문의 문주, 소가주, 장문대리에 혜연 스님까지 같이 가는⋯⋯."

감탄한 듯 말을 하던 조걸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한다.

"저기⋯⋯. 아니, 사형. 그런데요."

"왜?"

"애초에 해남으로 소수정예만 보내는 이유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적은 인원을 보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전을 확보하자는 의미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아까 다 설명하지 않았느냐? 그게 왜?"

"⋯⋯그런데 해남에 가는 사람들은 다들 제일 죽으면 안 되는 각 문의 문주님들인데요?"

"⋯⋯."

조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재차 물었다.

"이게 천우맹이 다 몰려가는 거랑 대체 뭐가 다릅니까?"

"⋯⋯."

아무도.

그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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