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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93화 (1,194/1,567)

1193화. 왜 그렇게 되는 건데? (3)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다. 그리고 어떤 소문은 그보다 배는 더 빠른 법이다.

백천이 화산의 장문대리 자리에 올라 법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은 말 그대로 광풍이 되어 천우맹 전체를 휩쓸었다.

물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백천이 장문의 자리에 부족한 사람은 아니지만, 현종은 화산의 장문인으로서 너무도 확고부동한 입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디 어떤 집단이든 기세가 좋을 때는 수장을 교체하지 않는 게 기본인데, 가공할 기세로 그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는 화산이 이토록 급작스러운 변화를 스스로 맞이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뭐?”

누군가는 경악했고.

“아, 아니, 왜?”

누군가는 당황했으며.

“대체 어쩌자고……?”

누군가는 걱정했다.

반응이야 다양했지만, 그 반응에는 공통적으로 충격과 우려가 포함되어 있었다.

화산이 천우맹을 이끌어 나가는 문파라는 건, 천우맹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바. 갑작스러운 화산의 변화가 천우맹에도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충격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난데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얻어맞은 화산의 문도들에 비할 수는 없었다.

속 편하게 한숨 잘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집안의 가장이 바뀌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혼이 빠져 버렸다.

화산의 제자들이 멍하게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본 타 문파의 제자들이 수군대며 빠르게 지나갔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했겠으나, 오늘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저 속삭이는 소리조차 신경 쓰였다.

“그럼…….”

청화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백천 사형이 장문인이 되셨다지 않느냐?”

“아, 아니, 그게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그렇게 됐다’ 하고 끝날 일입니까? 장문인이 바뀌는 일인데?”

“……원래는 안 그렇겠지?”

“아무리 화산이 족보도 없는 문파라지만…….”

“이 새끼야! 족보 없는 문파라니! 족보는 탄탄해! 망해 자빠진 것뿐이지.”

“그거나, 그거나.”

“다르다고!”

입을 삐쭉 내민 청화가 고개를 돌려 백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문인 자리를 이양하실 거면, 백천 사숙이 아니라 운암 사숙조께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운암 사숙조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나야 모르지. 장문인께서 하신 일이니 서로 협의하지 않으셨겠느냐?”

“그렇긴 한데…….”

모두의 표정이 복잡하고도 묘하게 변해 갔다.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애초에 백천은 언젠가는 장문인을 해 먹을 사람 아니었는가? 그 시기나 순서가 문제였지, 백천이 장문인이 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예상하던 것과 조금, 아주 조금 다른 부분이 생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다른 부분이 상황을 아주 많이 꼬아 놓고 있었다.

“저기…… 그럼…….”“응?”

임평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장문인…… 아니, 원래 장문인…….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현종진인……. 어, 이것도 아닌데…….”

백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은 장문인이라고 하자꾸나.”

“그럼 백천 사숙은요?”

“……소장문인이라고 하자.”

“아니, 그게 법도가…….”

“그냥 여기서만 일단 그렇게 하자고!”

“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아오, 씨!”

찔끔한 임평이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장문인께서는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이제 장문 자리를 내어놓으셨는데.”

“태상장문인이 되시는 거지.”

“태상장문인요?”

“그래.”

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장문 자리를 이양하신 선대는 ‘태상(太上)’이라는 호칭으로 지칭하는 법이다. 장문인께서는 태상장문인이 되시고, 장로님께서는 태상장로가 되는 거지.”

“아…….”임평이 뭔가 생각하는 듯 침묵하다 불현듯 눈을 찌푸렸다.

“아니, 사숙 그럼 그…… 태상장문인이라는 건 장문인 윗배분을 지칭하는 말이잖습니까? 태상장문이라든가, 태상장로라든가.”

“그렇지.”

“그럼 운자 배 사숙조들은요?”

“……어?”

“그럼 그분들은 뭐라 불러야 합니까? 장로도 아니고, 태상장로도 아니고…….”

“그…… 어……. 어?”

백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그분들이 태상장로가 되시지 않으실까? 그…… 보통 태상장로나 태상장문이라는 호칭은 선대 장문과 장로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장문인보다 한 배분 높은 항렬을 존대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아마?”

“그럼 지금 장문인은요? 아까는 장문인이 태상장문인이 되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그럼 장문인은 태태상장문이 되시겠지?”

“퉤퉤요?”

“태태, 이 새끼야! 태태!”

“……태태상장문인이요?”

“그, 그럴걸?”

임평의 눈빛이 떨떠름해졌다. 의심이 한가득 묻어났다.

“그게 원래 있는 호칭은 맞는 겁니까?”

“이, 있는 거야! 진짜 있는 거라니까?”

“흐음…….”

임평은 일단 속아 준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숙, 그러면요.”

“응?”

“배분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태’자가 하나 더 붙는 겁니까?”

“내가 알기론…….”

“그럼 나중에 윤종 사형이 장문인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그때까지 지금 장문인께서 살아 계시면 태태태상장문인으로 불러야 하는 겁니까?”

“…….”

백현이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웬만해선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 끝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뭐 이런 개족보가…….”

“……족보는 탄탄하다고 하셨잖아요.”

“탄탄하지, 이 새끼야! 탄탄하지! 세상 어느 문파가 동대에 장문인을 해 본 분이 셋씩이나 있겠냐! 이렇게 족보가 탄탄한 문파가 세상에 어디 있냐!”

“그거 진짜 탄탄한 겁니까?”

“에이씨…….”

그 순간, 입을 다물고 있던 청화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 근데…….”

“또 뭐?”

“아뇨. 그 원칙은 알겠는데 좀 이상한 게 있어서요. 말씀대로라면 ‘태’자는 ‘전직’이나 ‘선대’라는 의미잖아요?”

“전직이라기보다는 존중의 의미지…….”

“그럼 운암 사숙조는요?”

“……응? 그게 뭔 소리냐?”

“그러니까, 장로님들이야 자동으로 장로가 되시니까 태자를 하나씩 더 붙이면 되는 건데 운암 사숙조는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는데 태상장문인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

“그럼 저희 화산에는 태태상장문은 계시는데, 태상장문은 안 계시는데요?”

“…….”

“그렇다고 운자 배가 태상장로로 불리시는데…… 장문인께 태상장문이라고 할 수도 없고.”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갔다. 잔뜩 뒤엉키는 느낌에 백현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런 부분은 애초에 그가 정리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을 정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은가?

“사, 사형! 어떻게 좀 해 주……. 응? 사형?”

백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리해 주어야 할 백상이 구석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저 양반은 또 왜 저러고 있는가?

“사형?”

“그게…….”

“예?”

“……그게 뭐가 중요하냐, 이 새끼들아…….”

백상의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이 나이에…… 이 나이에 장로 되게 생겼는데……. 내가 이 나이에…….”

“…….”

“기껏 친해진 옆 문파 놈들은 다들 이대제잔데……. 왜 나만 장로야……. 나만…….”

“크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백현은 작게 헛기침했다.

“아니, 그래도…… 뭐 그렇게 나쁜 것만은…….”

“이제 화산의 명성이 높아지면 천하에 우리 이름도 슬슬 퍼질 텐데, 화산 장로 백상이라 그러면 뭐라 생각하겠냐…….”

“와, 사형! 도호도 딱 도사 도호라 그런지 바로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떠오르는데요? 크으, 위엄 있으시네!”

신나게 떠들던 백현은 문득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백상의 눈빛에 찔끔하여 시선을 내리깔았다.

백상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무슨 처지에 처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 백자 배들은 하나둘씩 탄식했다.

“……장로라니.”

“장가도 못 갔는데…….”

“그러게. 내가 장로면 혼처는 들어오나?”

“나 같아도 싫겠다…….”

아직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 화산 노총각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도사가 무슨 장가입니까.”

“인마! 화산은 혼인해도 괜찮다고!”

“아서라. 청명이 거품 물고 뒤집어진다. 그 새끼는 한 번씩 여기가 무당인 줄 알더라.”

“아니, 문파의 법도가 그렇다는데 왜…….”

“저기요.”

그 순간 곽회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 사숙들께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응? 뭘?”

“……본산제자가 혼인을 할 경우에는 화산에 살림을 차려야 하지 않습니까? 산문 밖으로 못 나가니까.”

“그렇지. 뭐 당연한 소리를 해.”

“청명이 새끼 있는 데다 신혼살림 차릴자신 있으십니까?”

“…….”

순간 말문이 막힌 백자 배들이 일제히 살짝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동시에 고개를 내린 그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관두자.”

“못 할 짓이다.”

“혼인할 사람은 무슨 잘못이냐. 이게 다 죄 쌓는 거지.”

그래도 명색이 도사라는 사람들이 무고한 이를 생지옥으로 끌어들여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그걸 모두 이해해 줄 마음 넓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다. 배필이 하루가 멀다 하고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꼴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법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실이 이런데…….”

“시끄럽다.”

백현이 짜증 어린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틀었다.

“그건 그렇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사고 친 사형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와서 뭐라 설명이라도 좀 해 줘야지.”

“누구요? 백천 사숙이요?”

“그래. 그…… 크흠. 장문인 말이다.”

“백천 사숙이면 뭐 아마 지금쯤…….”

곽회가 뭔가 상상이 간다는 듯 아련한 얼굴로 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지른 일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르고 계실 것 같은데요.”

“……승냥이 떼한테 둘러싸여서?”

“그렇지 않을까요?”

백현이 뭔가 상상이 간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마귀들이 내버려 둘 리 없지.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슬쩍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얼굴에 흥분과 걱정, 우려가 뒤섞인 듯 복잡하였다.

그가 넋이 나간 백상을 대신해 말했다.

“다들 알겠지만, 아직 장문인께서 확언하신 사항은 아니다. 장문인께서는 제자들에게 숨기는 게 없으신 분이니, 우리가 알아야 할 일과 그 연유에 대해서 분명 설명해 주실 것이다.”

“예, 사숙.”

“예, 사형.”

“그러니 그새 쓸데없이 주둥이 놀리지 말고 있거라. 우리끼리 하는 말이야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여기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느냐? 괜히 우리도 혼란스러워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단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그래. 다들 해산해라.”

“예!”

모두가 흩어지자 백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사형.”

“……내가 재경각주라니……. 아니, 내가 왜…….”

“아! 누가 보면 개방 거지인 줄 알겠어요! 정신 좀 차리시고 갑시다, 좀!”

“그 양반은 대체 뭔 생각이야…….”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고요. 원래 그런 양반인데.”

널브러진 백상을 잡아끌며 백현은 슬그머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백천 사형이 장문인이라.’

그 역시 불안하긴 하다. 백천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화산의 장문은 오직 현종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우려 속에서도 한 가지 감정이 확연히 올라왔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산이 조금 더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네.’

그는 내심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제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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