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6화. 정말 내가 틀렸던 것인가? (1)
청명이 법정을 노려본다.
눈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하나 모두가 청명의 눈빛에 담긴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어요?”
“알고 있다네.”
“그런데…….”
“끝까지 듣게나.”
“…….”
법정이 청명의 말을 물리고는 말을 이어 갔다.
“또한, 나는 소림과 뜻을 함께하는 그 어떤 문파도 강남으로 향하게 두지 않을 것일세.”
“방장…….”
“그는 물론이거니와.”
법정의 시선이 청명과 그의 뒤쪽에 앉아 있는 현종을 한 번에 담아 낸다.
“천우맹 역시, 이 협의의 결과가 어떠하건, 강남으로 가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할 것일세.”
청명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거절한다면?”
“막을 걸세.”
법정이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막을 걸세.”
그리고 그 말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한 말이 덧붙는다.
“설령 그 대가가 소림에 아프게 돌아온다 하여도 말이네.”
짙은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법정의 말에 담긴 뜻이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법정의 표정과 분위기가 심히 진중했기 때문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
법정의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가혹했다. 불법을 추구한다는 이가 감히 입에 담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과는 반대로 법정이 말을 하는 태도는 일견 숭고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진지했다.
그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두 가지가 공존하며, 법정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을 전해 주고 있었다.
“말했지만.”
차가운 청명의 목소리가 그 기이한 분위기를 깨며 번져 나간다.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무섭도록 감정 없는 얼굴로 일갈하는 청명을 법정이 그저 담담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알고 있다네.”
“아니, 모르고 계신 것 같은데?”
청명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그의 이가 드러난다. 참으려 해도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격정이 그에게서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죠.”
“그렇다네.”
“해남은 사람이 아닙니까?”
청명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가워 살기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법정은 대답 없이 그저 가만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 태도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청명의 목소리가 조금 더 격해진다.
“저 중원의 최남단에서 사파에 둘러싸인 채, 하루하루를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을 이들은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
“그들도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방장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이들입니다. 구파일방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지금껏 노력해 온 이들입니다.”
당연히 해남파에 대한 청명의 감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애초에 청명은 구파일방에 속한 문파들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는 데다가, 어쨌거나 해남은 원래 화산이 있어야 할 자리를 날름 먹어치운 문파가 아니던가?
해남이라는 문파에 특별히 대단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장의 태도는 청명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모순이라 생각하는가?”
“모순이요?”
청명의 입꼬리가 비웃듯 뒤틀렸다.
“모순이 아니라 궤변이겠죠. 그게 아니면 위선이던가!”
“아미타불.”
웅혼하게 불호를 외운 법정이 천천히 눈을 뜬다.
그 순간 청명의 얼굴에 살짝 흠칫한 기색이 어린다. 통렬한 비난을 얻어맞은 법정의 눈빛이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법정이 낮게, 또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청명을 마주 보았다.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네. 아니, 어쩌면 자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
“그래. 자네가 맞네. 소림은 마땅히 그들을 구해야겠지. 하지만 묻겠네. 그것만이 옳은 것인가?”
청명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법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어째서인가?”
“몰라서 묻는 겁니까? 그게…….”
“당연하고 온당한 협의이기 때문이겠지.”
법정이 청명의 말을 끊어 내듯 말한다.
그런데도 청명은 화를 내기는커녕 되레 고개를 끄덕였다. 법정의 말이 정확히 그가 하고자 한 말이기 때문이다.
협의라는 거창한 말을 붙일 것도 없이 위험에 처한 이를 돕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다면 하나 묻겠네. 화산검협.”
법정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백 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네. 그렇다면 강호인은, 불자는 당연히 그 일을 행해야 하는가?”
“당연한 소리겠죠.”
“그 대가로 천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
청명이 입을 닫았다.
“다시 묻지.”
하지만 법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둘 중 하나의 길밖에 선택할 수 없네. 백 명을 구하는 길과 천 명을 구하는 길. 그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슨 궤변을…….”
“정말 궤변인가?”
법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해남은 사패련의 최남단에 있네.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이 사패련과 충돌해야 하고, 그건 구파일방이 먼저 사패련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네. 반드시 전면전으로 이어지겠지.”
“그게 두렵다는 겁니까?”
“두렵네.”
법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두려워서 몸서리가 쳐질 정도네.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가야 할지를 생각하면 잠조차 이루지 못할 지경이네.”
“…….”
“자네는 두렵지 않은가?”
청명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 심정만은 서로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알고 있네. 알고 있다네. 누구보다.”
법정 역시 청명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산검협.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 한들,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네. 우리가 적진으로 들어가 무리한 계책을 이행해야 한다면,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죽어 가겠지.”
“…….”
“구해 낼 해남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어쩌면 그 몇 배나 되는 이들이 죽어야 할지도 모르네. 그런데…… 이것을 이행하는 것이 과연 협의인가?”
“스스로의 이득을 돌보지 않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협의라는 말을 붙일 자격도 없겠죠.”
그 말을 들은 법정이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다.
“이보게나, 화산검협.”
“…….”
“나는 죽지 않네.”
법정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떠한 작전이든 내가 최전선에 설 수는 없는 일이네.”
“그야…….”
“어떠한 계책을 이행하든 죽지 않을 자가 협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이 과연 할 짓인가?”
청명의 눈이 살짝 들끓었다.
“항상 그런 식이죠.”
“…….”
“그 변명은 매화도 때도 들었어요. 모두를 위한 길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많은 이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땠죠?”
“…….”
“그저 겁을 집어먹은 것 아닙니까? 방장!”
법정의 입에서 헛헛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겁을 먹었냐고 했는가?”
“예.”
“어처구니가 없는 물음이군.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예?”
“자네는 겁이 나지 않는가?”
“…….”
법정과 청명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함께 느꼈다.
서로의 눈빛,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신의 선택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을 말이다.
“매화도에 대해서는 나도 몇 번이고 생각했네. 몇 번이고 말이야.”
“…….”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과연 내 선택이 잘못됐던 것이었는지.”
법정이 시선을 돌려 남궁도위를 바라본다.
남궁도위가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법정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을 받은 법정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끝내 나는 그 결론을 얻어 내었다네. 화산검협, 그리고 남궁 소가주. 내가 설사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내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걸세. 나는 그때가 되어도 남궁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겠네.”
“……방장!”
남궁도위가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하지만 법정은 남궁도위의 분노를 직면하면서도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보게나, 화산검협.”
“말해 보시죠. 어디.”
“자네는 정말 내가 다른 이들을 이끌고 매화도로 향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럼 묻겠네. 자네들이 오기 전에 내가 소림과 공동을 이끌고 매화도로 진격했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 것 같은가?”
“그야…….”
청명이 입을 닫는다.
구해 냈을 것이다. 소림은 절대 약하지 않다.
하지만……. 앞뒤를 따지지 않고 달려들었다면, 그곳에서 흘렀을 피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장일소의 뇌리에서 강 건너에 진을 치고 있는 소림의 존재가 사라졌을 테니까. 아마 사방을 둘러싼 채 총공을 가했겠지.
“그곳에 남아 있던 남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었을 걸세. 그렇지 않은가?”
“…….”
“그리고 그건 그저 수만을 따졌을 때의 이야기네. 전력으로 말한다면 비교의 가치조차 없겠지. 살아남은 남궁의 어린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언젠가 사패련을 향한 칼이 되어야 할 이들을 수도 없이 잃었을 걸세. 자네는 정말 내가 그 길을 선택해야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말을 들은 남궁도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방장.”
“……말씀하시게. 소가주.”
법정이 살짝 잦아든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그라고 한들, 남궁도위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듯이.
“어쩌면 방장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남궁도위가 입술을 깨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산은 와 주었습니다. 당가는 목숨을 걸어 주었습니다.”
“…….”
“그게 두 문파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법정이 허허 웃어 버렸다.
“이보게, 남궁 소가주.”
“예. 말씀하시지요.”
남궁도위가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이 법정을 노려본다.
“그렇기에 나는 고민했다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어째서 천우맹은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말이네. 내가 찾은 그 대답이 무엇인지 아는가?”
“……글쎄요.”
남궁도위는 법정이 어떤 대답을 하든 받아들이지 않을 준비를 끝냈다. 그 어떤 말이 나오건 변명에 불과할 테니까.
하지만 이어진 법정의 대답은 그런 남궁도위조차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아둔하기 때문이라네.”
“……예?”
법정이 그저 담담하게 답했다.
“내가 저 화산검협보다 아둔하여 피해 없이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네.”
“…….”
남궁도위의 눈이 더없이 커진다.
“바, 방…….”
“그리고 소림이 화산보다 아둔하여,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네. 그저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인 걸세.”
남궁도위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법정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고고한 자존심 하나만은 천하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가 바로 법정이 아니던가?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뒤틀렸지. 화산과 당가는 해선 안 될 짓을 한 곳이 되어야 했고, 우리는 온당한 일을 하고도 억울하게 욕을 먹는 곳이 되었네. 그러니 내 마음에 심마가 찾아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시작부터 잘못되었으니 말일세.”
“…….”
“하지만 이제는 그저 받아들였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없었을 뿐임을. 그럼 다시 묻겠네. 소가주, 자네는 정말 우리가 남궁을 구하기 위해 부족한 능력으로 장강을 피로 물들이면서까지 매화도로 향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남궁도위는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반응을 본 법정이 눈을 감고 불호를 외었다.
“세상에는 존재하네. 범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이 말일세. 그들은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 없고, 평범한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도 쉽게 해내지.”
그 말에 모두가 한 사람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지금 방장이 지칭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이곳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말일세.”
눈을 뜬 법정의 시선이 청명을 꿰뚫는다.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라네.”
“…….”
“묻겠네, 화산검협.”
법정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정말 내가 틀렸던 것인가?”
청명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 입술의 끝이, 지금 그의 심정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