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6화. 모든 정파가 버린 문파라. (1)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한 반응을 보일 때, 딱 하나 다른 반응이 흘러나왔다.
“저게 왜?”
그 순간 윤종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걸의 턱을 돌려 버렸다.
“꺄울!”
단번에 나가떨어진 조걸을 보며 윤종이 짧게 혀를 찼다.
“제발 사람같이 좀…….”
하지만 그 순간 조걸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고함을 쳤다.
“아, 저 아니라고요!”
“응?”
윤종이 당황하여 눈을 껌뻑이자 조걸이 억울함 가득 찬 얼굴로 항변했다.
“아니, 사형! 내가 그래도 상행으로 먹고살던 상인 집안 아들내민데, 설마 저기가 어딘 줄 모르겠습니까?”
“……그, 그래?”
“응.”
“아, 그럼 그럴 수 있죠. 저기가 섬이고, 저 육지랑 섬 사이에 빗금을 쳐 놓은 부분은 바다예요.”
“섬이면?”
“해남도요.”
유이설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당소소도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 지금 유이설이 어리둥절해하는 이유는 저 인간이 왜 해남도를 가리키고 있냐는 부분이었고, 그건 당소소조차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이설의 맹한 시선과 당소소의 의혹 어린 시선이 동시에 쏟아지자 임소병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네, 맞습니다. 이곳이 바로 해남도입니다.”
“……자, 잠시만요.”
그 순간 백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해남도요?”
“예!”
“진짜 해남도요?”
“혹시 눈이 나쁘십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백천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일단 묻기는 한단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럼 혹시…… 녹림왕께서 말한, 우리가 합류시킬 수 있는 대문파라는 곳이? 설마…… 아니죠?”
“후후. 왜 아니겠습니까!”
파앙!
임소병이 지도를 손바닥으로 팡 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천하에 수많은 문파가 있지만, 저 남쪽 바다 해남도를 근거지로 삼는 대문파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
“…….”
“예! 뭘 숨기겠습니까! 바로 해남파입니다!”
“걸아.”
“예, 사형.”
“오늘 점심 식단 알고 있냐?”
“오늘 소고기였던 것 같은데.”
“오, 좋군. 밥이나 먹으러 갈까?”
“그러시죠.”
“그럼 나도 수련이나 가야겠다.”
“끄응. 생각해 보니 일이 좀 남았군. 일단 그것부터…….”
사람들이 시큰둥한 얼굴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자, 임소병이 한층 더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아니, 반응이 왜 이럽니까! 제가 이렇게 기가 막힌 전략을 가지고 왔는데!”
“배고프다.”
“아고, 어제 수련하다 다친 어깨가 영 결려.”
“저녁에도 수련하실 겁니까?”
“말 좀 들으라고!”
임소병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백천이 귀를 후비적대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가 말 같아야 들어 주지.”
“저 양반도 다됐어. 그래도 한동안은 좀 똑똑한가 싶었더니.”
“산적이 다 그렇죠. 그렇게 머리가 좋으면 산적질이나 하고 살겠습니까?”
비난을 넘어선 힐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순간 임소병이 부채를 촤악 펼쳐 들더니 하관을 가리고는 나직이 웃었다.
“이런, 이런…….”
고개를 젓는 임소병을 보며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양반 또 왜 저러냐?”
“내버려 두십시오. 회까닥한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임소병은 자신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후후.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는 주변의 질시와 몰이해에 시달려야 하는 법이지요.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을 겪는 것이니 딱히 화도 나지 않습니다.”
“……아아, 네네. 그러시겠죠.”
“밥 먹자니까. 배고파”
사람들이 정말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임소병이 황급히 부채를 내리며 소리쳤다.
“아니! 일단 들어 보시라니까요!”
“들어 봐야 뭐 합니까. 어차피 개소린데.”
“아니! 왜 안 된다고만 하시냐고요! 사람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을 해야 하는 거지! 그 꽉 막힌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좋은 생각들을 틀어막는……!”
“아니, 이 양반아!”
참다못한 백천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해남파는 구파일방 소속인데, 왜 우리한테 붙어요, 왜! 그 양반들이 생각이 없나!”
“여기에 지금 오대세가 출신도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막말로 당가나 남궁이 오대세가에서 이탈해 천우맹과 함께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있으십니까?”
“으응?”
임소병이 단호하게 말했다.
“딱 오 년만 전에 그런 말을 했으면, 천하에 어디 가서도 광인 인증서를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 취급이나 해 주면 다행이었겠죠!”
“그야 뭐…….”
백천이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게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야 그 일련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모든 것이 자연스레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천우맹의 행보를 멀리서 보던 이들에게는 당가나 남궁이 천우맹에 든 것 역시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겠는가?
“오대세가도 됐는데 구파일방이라고 안 될 게 뭡니까! 그놈들은 뭐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금테라도 두르고 태어난답니까! 빌어처먹을! 지들이 구파일방이면 구파일방이지! 왜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
“워워, 녹림왕. 그쪽이 아닙니다. 사감을 빼고 말씀하셔야죠.”
“아, 그렇지.”
번충이 진정시키자 임소병이 아차 하고는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의 눈이 조금 더 샐쭉해졌다.
“구파일방도 같은 밥 먹는 사람입니다. 한번 구파일방이었다고 영원한 구파일방은 아니라는 건 화산 분들이 직접 증명한 사실 아니…….”
“뭐, 이 새끼야?”
“청명아!”
“청명아! 참아라!”
“저 인간 치워! 얼른! 아니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서 가만있던 애 발작 일으키게 만드냐고!”
기겁한 오검과 장로들이 눈을 까뒤집은 청명을 내리눌렀다. 반쯤 돌아간 청명의 눈에선 광기가 발작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뭐? 구파에서 쫓겨나? 이 산적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쪼, 쫓겨났다고는 안 했는데…….”
“근데 이 새끼가?”
“차, 참으라니까!”
“야야! 꽉 잡아, 꽉! 지금 얘한테 맞으면 녹림왕 골로 간다!”
임소병이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크, 크흠. 여하튼…….”
파앙!
임소병이 손바닥을 쫙 펴서 지도에 그려진 해남도를 다시 한번 쳤다.
“제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기 위해서는 지금 해남파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들어야 하나?”
“굳이?”
여기저기서 맥 빠지는 반응이 새어 나왔지만, 임소병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기입니다.”
임소병이 커다란 지도의 중앙부를 가로로 쭉 그었다.
그 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중원을 길게 긋고 지나가는 것. 그건 곧 장강을 의미한다.
“현 중원은 장강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강남은 사패련이 지배하고, 강북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영향력이 훨씬 더 거대하지요.”
“흐음.”
아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슬슬 관심을 가졌다.
“장강의 물줄기는 사천을 지나, 사천과 서장의 경계를 만드는 횡단산맥까지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장강을 점령당한 순간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길은 완전하게 막힌다는 의미지요.”
“무슨 뻔한 소리를.”
“그럼 보십시오. 구파일방은 다들 어디에 있습니까?”
“그야…….”
심드렁하게 대답하려던 백천의 표정이 순간 미묘해졌다.
“보실까요?”
임소병이 재빠르게 품 안에서 세필을 꺼내 뚜껑을 열더니, 지도에 다닥다닥 점을 찍었다.
“아시겠습니까?”
백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속하는 문파 중 대부분은 장강을 중심으로 위쪽에 몰려 있습니다. 아미, 청성, 점창은 장강 바로 위 사천성에 존재하고, 무당은 장강 위 호북, 종남과 화산, 그리고 소림은 호북 위의 하남과 섬서에 있지요. 저어어 청해에 있는 곤륜과 감숙에 있는 공동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네요.”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강북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었으니까. 굳이 다시 따져 물을 것도 없다.
저 한 곳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임소병이 붓으로 광서성 아래에 있는 해남도를 맹렬하게 그었다.
“여긴 어떻습니까?”
“……남쪽이네요.”
당연한 일이다. 해남도는 중원의 최남단에 있으니까.
그래. 오직 해남파만이 강남에 존재한다. 그것도 그냥 강남이 아니라, 사패련이 지배하는 강남을 지나 남해에 홀로 뚝 떨어져 있다. 그 어느 문파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로 말이다.
“아시다시피, 구파일방과 사패련은 더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서로 언제 이를 드러내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야…….”
“그럼 하나 묻겠는데.”
임소병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전쟁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
“지금까지는 다들 당연하게 장강에서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백천이 입을 다물었다.
“하나 묻겠는데, 과연 패군이 제 등 뒤에 적을 남겨 둔 채로 전쟁을 시작하려 하겠습니까?”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었다. 장일소는 절대 제 등을 노릴 수 있는 이들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전쟁의 신호를 알리는 곳은 장강이 아닙니다. 바로 해남도지요. 우리의 눈에야 해남도가 고립무원이 되어 홀로 위기를 겪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패군에 눈에는?”
청명은 아직도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이들을 슬그머니 밀어 내며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뒤쪽에 따로 떨어져 있는 별동대처럼 보인다는 건가?”
“정확합니다. 자신이 앞쪽, 주 전선에 병력을 집중했을 때, 언제고 사패련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와 후방을 박살 낼 수 있는 곳으로 보이겠죠.”
임소병이 씨익 웃었다.
“어떻습니까, 도장? 도장께서 패군이라면 해남도를 어쩌시겠습니까?”
“나는 장일소 그 사파 새끼가 아닌데, 그 질문 좀 짜증 나네.”
“…….”
“하지만…….”
청명이 턱을 괸 채, 눈을 빛냈다.
“내가 장일소라면……. 아니, 장일소가 아니라고 해도 해남도를 그냥 둘 것 같지는 않네.”
“확실히…….”
“하지만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는 건 틀린 말이야.”
“……예?”
그 순간 청명의 목소리가 나직이 가라앉았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정리해 두려고 하겠지.”
“…….”
“지금 당장이라도 말이야.”
그 말과 함께 방 안의 분위기가 차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