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6화. 할 건 다 했는데 말이야. (1)
‘아니, 무슨 영단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게 너무 많았다.
우선은 이 많은 영단을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지만 이건 일단 제쳐 둘 수 있는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단을 대체 왜 그들에게 나눠 주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것도 당가의 소가주가 저렇게 평가할 만한 영단을…….’
물론 크기는 좀 작긴 했다.
일반적으로 영단은 적어도 알밤만 한 크기라고 들어 왔는데, 지금 그들의 손에 들린 영단은 콩알만 한 크기였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콩알이고 나발이고, 최상급으로 치는 영단이라면 쌀알만 한 것도 강호에 풀리는 순간 피바람 불기가 예사 아니던가?
강호인들은 무학에 목숨을 건다. 조금이라도 무위를 높일 방법이 있다면 칼부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딘가에서 영약이 출현했다는 말만 들려와도 하나같이 병기를 꼬나쥐고 소문이 들려온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영약을 손에 넣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작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영단을 이렇게 뿌려?’
다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작게 나눠 놔서 그렇지, 이 많은 이들에게 나눠 줄 양이라면 화산의 제자들에게는 작은 영단이 아닌 제대로 된 크기의 영단을 하나씩 모두 주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세상 어떤 문파의 문주가 자문의 제자들에게 줄 영단을 남에게 나눠 주는가?
“지, 진짜 영단인가?”
그러니 알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 독 아닐까?”
“우리한테 독을 왜 먹여!”
“요즘 비실비실하니까 독이라도 먹여서 굴리려는 것 아닐까? 뒈지기 싫으면 열심히 하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 반박하려던 이들이 뭔가 찝찝한 듯 청명을 돌아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저 인간이면 정말 할 수도…….
“당가 소가주께서 영단이라잖아!”
아, 그렇지.
“아, 아니. 당가잖아. 그 양반들은 독단도 영약처럼 먹는다던데? 그럼 독단도 영단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냐?”
“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세인들의 시선이 다시 당패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당패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독단과 영단을 구분 못 하겠습니까! 그리고 당가 사람들이 독을 영약처럼 먹는다는 건 다 헛소문입니다!”
“……진짭니까?”
“그럼 칼 쓰는 문파에서는 영단 대신 칼을 퍼먹습니까?”
“그럼 천독단은?”
“그거랑은 다른 문제라니까요! 그냥 독을 먹어서 내력을 늘릴 수 있으면 우리가 소림보다 내력이 많았겠죠! 남궁도 패고 다녔겠다.”
“아니, 갑자기 우린 왜…….”
그 말은 확실히 납득이 갔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게 진짜 영단이라는 건데…….”
의문은 해결이 되었지만, 더 큰 의문이 생겨났다.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해명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니 청명은 무심하게 턱짓했다.
“다 받았으면 먹어.”
“…….”
“괜히 나눠서 먹어 가지고 귀찮게 하지 말고, 장로님들이 호위해 줄 때 다 먹고 운공해.”
“아니…….”
야수궁도 하나가 얼떨떨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 못 먹을 걸 먹으라고 나눠 줬겠어?”
“그런 말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염치를 지녀서 손에 들린 영단을 먹지 못하고 보고만 있겠는가?
이들 역시 당장 눈앞에 영단이 있다면 나중 일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은 닥치고 삼켜 버리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모든 귀품이라는 것은 결국 얻기 위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과정을 통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차마 꿈도 못 꾸던 영단이 그냥 서 있었더니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다 보니 다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혼자 있다면 염치고 나발이고 일단 삼키고 보겠지만, 같은 처지에 처한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먼저 나서서 영단을 먹기에도 애매하였다.
“아, 먹으라고! 안 들려? 이것들은 줘도 못 퍼먹네?”
앞에서 들려오는 닦달에 영단을 손에 든 채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누가 뾰족하게 답을 내어 줄 수도 없으니, 결국 그들의 시선이 자문의 문주들에게로 향했다.
맹소의 입에서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건장하기 짝이 없는 궁도들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다 간절하게 이쪽을 봐 오니 기가 막혔다.
‘이 정도였나?’
이건 단순히 영약을 받았기에 나오는 반응이 아니었다. 그의 궁도들은 애초에 아무런 대가 없이 중원인들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원과 협력하고 천우맹이라는 처마 아래 함께 둥지를 틀자고 말해 왔지만, 그들의 속내에 자리한 불신은 걷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맹소다. 과거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중원과의 교류를 생각해 왔던 그가 먼저 손을 썼어야 할 일이었는데…….
맹소가 슬쩍 청명을 돌아보았다. 짜증이 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저 표정이 그럴 뿐인 거지.’
이제는 그도 청명이라는 이에 대해 조금은 안다. 사람을 대하는 게 묘하게 서툰 이 사람은 쑥스럽거나 공치사를 받을 일이 있으면 되레 저리 날을 세운다는 걸 말이다.
“크흠.”
짧게 헛기침을 한 맹소가 입을 열었다.
“그 영단은…….”
뭐라 말해야 할까? 맹소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한눈에 담으며 말을 이어 갔다.
“천우맹에서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영단이다.”
정석적으로는 이리 말하는 것이 맞다. 그건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니까.
이 영단은 북해의 빙정과 야수궁의 자목초, 그리고 그것에 화산의 노력을 더해 만들어 낸 천우맹의 정화다.
조금 억지를 부리자면 남궁의 자금력과 천하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행을 원활하게 만들어 준 녹림의 결정. 그리고 당가의 연단술마저 도움을 주었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화산이 대단하다고 한들, 혼자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물건이 바로 자소단이다.
“그러니 그런 눈빛으로 볼 것 없다. 너희는 당연히 누려야 할 걸 누리는 것뿐이니까.”
이게 아마 천우맹의 공식적인 입장이고, 천우맹에 속한 이들 간의 벽을 허물려 하는 청명의 입장일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무언가를 전해 줄 때에는 결국 은혜를 준 쪽과 입은 쪽이 나뉘게 된다. 청명은 그걸 원치 않는다. 그 작은 입장의 차이가 결국에는 상하를 나누는 법이니까.
천우맹에 속한 이들은 문파를 가리지 않고 같은 대접을 받는다. 그게 청명이 새로이 확립한 천우맹의 원칙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큰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하는 맹소로서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오직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나 또한…….”
맹소가 잠시 말을 끊으며 슬쩍 청명을 바라보고는 작게 웃었다.
‘내가 자네의 말에 꼭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 그렇잖은가?’
천우맹에 상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청명이니 그 모순을 이용한다 해서 나쁜 것은 아니리라.
“그럴싸한 포장을 떼고 보면, 이 영단은 화산에서 만들어 너희에게 나누어 준 것이기도 하다.”
“아니, 그건…….”
청명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맹소가 재빨리 말을 이어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베풀어 준 것을 거절할 필요는 없다. 영단이란 명분이니 뭐니 늘어놓으면서 거절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베풀어 준 것을 고마운 마음 없이 날름 받아먹는 것도 도리를 아는 이가 할 일은 아니겠지.”
청명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맹소를 보았다. 하지만 맹소는 그 시선을 깔끔하게 외면했다.
“그러니 며칠 밤을 새워 영단을 만들고, 사심 없이 너희에게 내어 준 화산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복용하면 된다.”
청명의 눈이 불타올랐다.
“크흠.”
숫제 통째로 잡아먹기라도 할 듯한 시선에, 맹소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군악이 그런 맹소를 지원하고 나섰다.
“당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말에 당가인들이 모두 당군악을 응시했다.
“성격 나쁜 누구는 사람을 뽑아 먹기 위해서 잘 먹인다고 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
“고맙다는 말은 할 필요 없다. 아니, 그런 쉬운 말로 면피하려 들지 마라. 이 영단의 대가를 치르는 방법은 어렵고도 간단하다. 훗날 너희에게 돌아간 영단이 그 가치를 충분히 했다는 평이 나오게 하는 것. 그거면 될 것이다. 그 이상을 바랄 이도 아니고.”
“…….”
“다만…… 이 영단을 만드느라 탈진해 쓰러져 계신 맹주님과 화산의 장로님들께는 반드시 고마운 마음을 가지도록. 그건 이것과 별개니까.”
당가인들은 마음 한편이 묵직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실 거예요?”
청명이 이를 악물고 묻자 당군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뭐라고 하는가? 별것 아닌 거라고 할까?”
“실제로 그리 어렵지도 않았잖아요.”
“속 편한 소리를 하는군. 그 말을 해 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쉬운 일도 못 해 준 천치가 되어 버린다는 걸 왜 모르는가?”
“…….”
“우리가 무능력한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겠네. 설마 변명도 하지 말고 비난을 들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끄응…….”
청명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던 그는 순간 움찔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조금 전까지 강시가 따로 없는 혈색으로 다 죽어 가던 놈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봐 오는 광경이 영 부담스러워서였다.
당황한 청명이 고장 나 버렸다.
“그, 어…….”
“아오, 진짜.”
그 순간 구원자가 나타났다.
“뭔 강아지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영단 앞에 놓고 고사 지낼 겁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목청이 터져 나온 곳으로 향한다. 어느새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임소병이 부채까지 내팽개치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고마워하든 은혜를 갚든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고. 거, 예의부터 차려야 뭐가 넘어가시는 분들 순서 끝났으면 이제 좀 먹읍시다. 예? 당장 다리가 후들거려 뒈지겠는데, 지금 이거저거 가릴 때입니까?”
“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안 먹을 거면 치우쇼. 나는 먹을 테니까.”
임소병이 지체 없이 제 입 안으로 자소단을 털어 넣고 가부좌를 틀었다.
언제나 가장 어려운 건 처음이 아니던가?
임소병이 물꼬를 터 주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 안으로 자소단을 밀어 넣었다.
“근데, 청명아.”
조걸이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손을 들자 청명이 듣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너희도 그냥 먹어.”
“그게 아니라…….”
“아, 그냥 먹으라고. 남 주고 뭐 할 것 없어. 다 똑같이 먹는 거니까. 그거 더 먹는다고 뭐 탈 나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응?”
조걸이 제 몫의 자소단을 들어 보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리 몫이 다른 데 것보다 좀 작은 것 같은데?”
“…….”
“정말 다 같은 거 확실하냐?”
“…….”
“사기 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보자. 지금 말하면 봐준다.”
이마에 핏대를 세운 청명이 간만에 제 소매를 걷어붙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