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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33화 (1,134/1,567)

1133화. 같이 한번 친해져 보자! (3)

“우와아아아아악!”

형형색색의 연기 속에서 폭죽처럼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아아아아아악!”

하나가, 그리고 또 하나가 위로 또 위로 솟아오른다.

솟아오른 것들은 형형색색의 연기를 휘감아 올리며 하늘에 동그란 무지개를 그려 냈다.

참 진귀하고 화려한 모습이다. 저 형형색색의 연기가 당가의 독연이고, 지금 튀어 오르고 있는 것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 사정을 알건, 모르건 밖에서 보는 이들에게는 꽤 희극적인 광경이겠지만…… 그 독연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다.

“꿰에에에에엑!”

또 한 사람이 청명의 주먹에 처맞아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달아나!”

“오, 온다!”

기겁하여 고개를 돌린 이들의 시야에 끔찍한 광경이 들어왔다. 두 눈으로 붉은 눈빛을 줄줄이 뿜어내며 시커먼 독연을 헤치고 돌진해 오는 청명의 모습이 말이다.

‘엄마야.’

꿈에 나올까 무섭다. 천마인지 뭔지가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저것보다 공포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화살에 맞아 악에 받친 범처럼 쇄도한 청명은 달아나는 화산파 제자 하나를 냅다 뒤에서 걷어찼다.

“내가! 승질이 뻗쳐서 이 새끼들아!”

“꺄아아아아악!”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얻어맞은 제자가 뱅글뱅글 돌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모두가 입을 쩌억 벌렸다.

“죽어! 이 새끼들아! 죽어!”

연이어 또 다른 희생자를 잡아챈 청명이 바닥에 엎어뜨린 뒤 등에 올라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 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소소가 그나마 비빌 언덕인 유이설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어,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사형 완전히 맛이 갔어요.”

“어떻게?”

“사, 사고 말은 좀 듣잖아요. 말려 봐야죠!”

유이설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저걸?”

“…….”

“쟤를?”

어……. 그거 좀 과한 기대긴 했죠. 네, 사고.

“소소.”

“네?”

“튀어.”

무표정하게 뱉은 그 말을 끝으로, 유이설은 잽싸게 달아났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녀의 발만큼은 무척 다급해 보였다.

“……답도 없네.”

당소소가 힘없이 뇌까리고는 재빨리 그녀의 뒤로 따라붙었다.

한편, 이 혼란한 상황을 가장 이해 못 하는 이들은 야수궁도들이었다.

“이게 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지?”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인지 모르겠군. 겨우 한 사람인데. 아무리 화산검협이라고 해도.”

그 이유야 무척 간단하다. 그들에게 화산검협은 매화검존의 후예라서 야수궁주의 인정을 받은, 단순한 야수궁의 친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천우맹의 개파식에서 화산의 힘을 확인했으니, 화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화산검협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 역시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그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경극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대충 무서운 척해 주는 것 아닐까?”

“우리도 맞춰 줘야 하나?”

“뭘 그렇게까지.”

“내가 보기에는 그냥 저 독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당가의 독이 생각보다 더 지독한 모양이네.”

야수궁도들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청명을 보면서도 딱히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야야. 다치게는 하지 마라. 그래도 귀하신 몸이고, 궁주님이 아끼시는 분이다.”

“적당히 눌러 놓으면 되지 뭐.”

코웃음을 친 이들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물론 화산검협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중원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이니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겠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야수궁도들의 숫자만 해도 능히 백은 넘는다.

게다가 실전이 아니니 죽을 위험도 없는데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 우선 내가…….”

야수궁도 하나가 옅은 비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우선은 그가 청명의 발을 잡을 생각이었다.

물론 청명이 짐승처럼 달려오고 있지만, 애초에 짐승을 다루는 것은 야수궁의 특기다. 청명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면 일단 옆으로 슬쩍 피한 다음에 다리를…….

그 순간이었다.

앞쪽에서 달려오던 청명이 바닥을 박차는 순간 모습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갑자기 야수궁도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어?”

뭔가 잘못 보았나 하고 의심을 품기도 전에 그의 세상이 시커멓게 암전되었다.

‘뭐지?’

왜 갑자기 세상이 검어지……. 아, 아니네. 세상이 검어진 게 아니라 눈앞에 뭐가 있는 거네.

이게 뭐…….

“주…….”

콰아아아아아앙!

채 입에서 ‘먹’이라는 글자가 마저 나오기도 전에 야수궁도의 얼굴에 청명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순식간에 일격을 얻어맞은 야수궁도는 아이가 걷어차 버린 목각인형처럼 제멋대로 뒤틀리며 날아갔다.

그가 날아간 궤도를 따라 흩뿌려진 피만이 지금 맞고 날아간 이가 목각인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증명했다.

“어……?”

그 광경을 본 야수궁도들의 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일격? 일격이라고?

물론 지금 맞아서 날아간 이가 야수궁에서 대단한 고수로 쳐주는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렇게 한 방에 날아갈 정도였다면 야수궁도로 인정조차 못 받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게 뭔…….

“흐으…….”

선두에 선 이를 단 한 방에 날려 버린 청명이 눈을 희번덕대더니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이가 이상하게도 더없이 불길해 보였다.

“어, 그래. 너희들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

“오늘 어디 뒈져 봐라! 너희랑도 친해져야지! 신나네!”

“말이 앞뒤가 다르…….”

비호처럼 앞으로 뛰어든 청명이 멍하니 서 있는 이의 턱주가리를 쳐 날렸다.

콰앙!

얻어맞은 야수궁도는 코끼리가 걷어찬 쥐처럼 날아갔다.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에, 야수궁도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오늘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강호에서 상황을 늦게 파악하면, 언제나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죽어어어어어!”

청명이 눈앞에 보이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후드려 까고 걷어차 댔다. 그의 두 눈에선 순간순간 과격한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광기에 휘말린 이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얼굴이 떡이 된 이들이 코피를 줄줄 흘리며 털썩털썩 쓰러졌다.

숙련된 농부가 잘 익은 벼를 낫으로 벤다 해도 이보다 경쾌하게 눕히지는 못할 듯했다.

“히이이이익!”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야수궁도들과 빙궁도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기 시작했다.

‘잡히면 죽는다!’

‘무슨 저런 괴물이……!’

화산검협, 화산검협. 그 이름이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강한 줄이야 알았지. 그런데 그 강하다는 게 이 정도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저 독무만 없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사방을 뒤덮어 오는 독무와 미쳐 날뛰는 청명이 합쳐지니 그야말로 재해가 되어 버렸다.

“저, 저기로 가면 된다! 저기!”

“그냥 담장을 넘으라고! 이 병신들아! 왜 입구로 가는 거야!”

당가와 야수궁이 가장 빨랐다. 활짝 열린 장원의 문과 그리 높지 않은 담장이 보였다.

“저기만 넘으……. 응?”

다급히 움직이던 그들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막 담을 넘으려는 순간,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주님!”

당잔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어느새 당군악이 장로들을 이끌고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가, 가주님! 저깁니다, 저기! 화산검협이, 아니, 저 미친 도사 놈이 아주 맛이 갔습니다! 빨리 제압을……!”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원군을 얻었으니 어찌 용기백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잔은 환해진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하지만.

퍼억!

당잔은 이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움찔. 움찔.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몸이 덜덜 경련을 일으켰다.

쓰러진 그의 이마에서 무언가 톡 하고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건 나무로 만든 엽전이었다. 이를 확인한 이들이 멍하니 고개를 돌려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당군악은 손에 들린 나무 엽전 하나를 허공으로 가볍게 던졌다 받으며 나직이 말했다.

“물론 화산검협에 말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입을 연 순간 그의 뒤를 지키던 당가의 장로들이 음산한 얼굴로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권위가 없어서 못 패는 게 아니라, 안 패니까 권위가 없어지는 거라는 말 말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당군악이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도 너희가 마음에 안 들고, 답답하고, 짜증 나고, 속이 터지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저기……. 개인적인 감정이 가득해 보이십니다만?

“그런 건 가주의 자리에 오른 이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건 절대 사사로운 감정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당군악이 하늘 높이 던져 올린 나무 엽전을 획 낚아챘다.

그 미소가 청명과 비슷해 보인다는 느낌에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 때였다.

“밟아!”

“예!”

당군악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를 지키던 장로들이 눈을 희번덕대며 당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원로원이 없어지고 너희 세상인 줄 알고 건방지게 굴어 댔었지!”

“예의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 내가 너희 때는 말이야……!”

원로원이 무너진 후로 젊은 층으로 권력이 이양되자 뒷방 늙은이로 살아오던 장로들은 이 기회를 틈타 꾹꾹 눌러 놨던 울화를 터뜨렸다.

밀려났던 꼰대들이 당가에 역습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당가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히익! 궁주님! 왜 이러십니까!”

“으하하하하핫! 이건 다 수련이다! 수련!”

맹소가 그 거대한 덩치로 벼락같이 움직이며 달아나는 야수궁도들을 후려쳐 대고, 어느새 나타난 설소백이 장로들에게 지시를 내려 일사불란하게 빙궁도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그러니 억울한 건 두 사람이다.

“아니…….”

남궁도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 옆에 선 임소병 역시 거무죽죽하게 죽은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각문의 문주들이 제 문도들을 후드려 패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우린 왜 여기에…….”

그들 역시 저쪽에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두 사람만 여기에서 같이 얻어맞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을 향해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왔다.

“왤까?”

“…….”

“왜일 것 같은데? 내가 알려 줘?”

이 순간 가장 마주치지 않고 싶은 이를 마주친 두 사람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

“아, 아뇨. 도장, 몰라도 될 것 같습니다만…….”

“아냐, 아냐. 알아야지.”

청명이 히죽 웃었다. 동시에, 말아쥔 그의 주먹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들은 알아야지. 안 그래?”

콰앙!

청명의 발이 바닥을 파고들어 갔다.

“지금부터 똑똑히 알려 줄 테니까.”

“…….”

“그 몸에 제대로 새겨 둬라.”

“저기…… 도장이 패시면 저는 죽습니다.”

“괜찮아. 죽으라고 패는 거야.”

“……사람도 아니네.”

청명이 낄낄대며 임소병에게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일각 후.

드넓은 연무장을 메웠던 독분이 잦아들 무렵, 그 넓은 연무장에는 단 한 사람만이 서 있었다.

“후아…….”

청명이 세상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속이 다 시원하네.”

“…….”

“어때? 우리 이제 좀 친해진 것 같지 않아?”

바닥에 겹겹이 쌓인 반 시체들이 눈물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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