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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32화 (1,133/1,567)

1132화. 같이 한번 친해져 보자! (2)

훗날 야수궁도들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양 떼에 뛰어든 범이 어쩌고 하는데, 사실 범이 양들을 노린다고 그렇게까지 난리가 나지는 않거든?”

“그렇지, 맞지.”

“보통은 범이 오면 양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범은 무리 구석에 있는 양이나 한 마리 물어 가고 끝나니까.”

“애초에 맹수가 먹지도 않을 짐승을 일부러 공격하는 경우는 잘 없잖은가.”

“그렇지……. 분명 그렇지.”

그러니 그날의 광경은 이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그거랑 비슷한 걸 찾을 수가 있나?”

“아니. 비슷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궁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설명할 말을 굳이 찾아보니 하나밖에 없더라고.”

“어떤 것?”

“예전에 내가, 닭장 속에 담비가 기어든 걸 본 적이 있거든. 그 담비 놈은 워낙에 포악해서 먹지도 않을 닭들을 그냥 다 죽여 버린단 말일세.”

“그렇지. 담비는 그렇지.”

“그 와중에 닭들은 닭장 안에 갇혀 있어서 도망도 못 치니까…… 그야말로 난리가 난단 말이지.”

“……그렇지.”

“딱 그 꼴이었지, 딱. 우리는 닭이었고…….”

“화산검협이 담비인 건가?”

“아니……. 생각해 보니 이 비유도 좀 잘못된 것 같네. 그걸 담비에 비유하는 것도 도무지 할 짓이 아니로군. 그…… 음, 그래. 그냥 닭장 속에 난입한 화산검협이었지.”

“…….”

“……나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꾼다네. 악귀 같은 화산검협이 나를 향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데…….”

“그, 그만하게. 그만, 제발…….”

“그날 들은 비명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군. 환청처럼 말이야…….”

* *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산의 제자들은 용감하다.

그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 위험한 강남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움직인 곳도 화산이었고, 그 두려운 마교의 주교를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고 맞섰던 이들 역시 화산이다.

사실 굳이 그런 예를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현재 강호에서 화산이 가장 용맹한 문파……. 조금 더 나아가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문파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용맹하기로는 천하의 어떤 문파에도 뒤지지 않는 그 화산의 제자들이 지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앞다투어 달아나고 있다.

“비켜어어어어어!”

“아니! 사숙! 사숙이 튀면 어떻게 합니까?”

“닥쳐, 이 새끼야! 내 목숨은 두 개인 줄 아냐!”

오랜 피해자……. 아니, 청명을 오래 겪어 온 만큼 지금 청명이 놈이 어떤 상태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청명이 저런 상태일 땐 대처법이 없다. 살고 싶으면 일단 튀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뒷모습 역시 청명에게 너무 익숙했다.

콰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아악!”

“히이이이익.”

등 뒤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기겁한 백천이 본능적으로 몸을 바닥에 굴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로 맹렬하게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주, 죽일 셈……. 끄아아악!”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명이 백천의 턱주가리를 쳐 올려 버렸다. 백천이 아주 반듯한 자세로 허공에 날아올랐다.

처맞아 날아가는 와중에서도 기품을 유지하는 모습이 ‘과연 백천이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옴 직했다. 물론 처맞고 날아가는 당사자는 그 말을 들어도 기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격으로 백천을 날려 버린 청명은 핏발 선 눈을 번들거리며 다음 희생자를 찾아 나섰다. 그의 입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종이 자세를 낮추고 한 손을 조심스레 뻗었다.

“처, 청명아. 이, 일단 진정하자. 응? 착하지…….”

“진정?”

“그…….”

“진저어어어엉?”

“히익?”

청명의 발이 윤종의 얼굴 한가운데에 냅다 틀어박혔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윤종은 잘 맞은 팽이처럼 회전하며 당가와 녹림을 넘어 장원 담장 구석에 내동댕이쳐졌다.

쉬이이이이.

쓰러진 윤종의 얼굴에서 새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얼굴에 선명히 남은 발자국을 보는 순간, 모두의 몸에 소름이 내달렸다.

‘배, 백천 도장과 윤종 도장이…….’

‘하, 한 방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벌써 여러 날 서로 지독하게도 싸웠다. 서로의 역량을 무척이나 잘 파악하고도 남았다.

백천과 윤종이면 이제 도무지 후기지수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이들이다. 지금 당장 강호에 던져 놓으면, 못해도 절정고수 소리는 들을 만큼 뛰어난 검수들이 아닌가?

하지만 뛰어난 검수고 나발이고, 그들의 운명은 청명 앞에서 그저 공평했다.

“끄응, 내가 왜…….”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킨 조걸이 얼떨떨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괴이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눈이 거의 반쯤 돌아 버린 청명과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조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 차라리 좀 전에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그리고 그 순간 범처럼 날아 조걸을 덮친 청명이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니들이!”

“꺄아아아악!”

“사람 새끼냐? 사람 새끼야?”

돌덩이 같은 주먹이 얼굴에 폭우처럼 쏟아졌다. 조걸의 고개가 정신없이 획획 돌아갔다.

“죽어! 죽어, 이 새끼들아! 죽어!”

획획 고개가 돌아가며 시야가 바뀔 때마다, 질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과 눈깔 뒤집은 청명의 모습이 번갈아 보였다.

‘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조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어렸다. 마침 의식을 잃은 윤종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조걸과 비슷한 미소를 머금은 채 기절해 있었다.

물론 미쳐서도 아니고, 정신이 나가 버려서도 아니다.

‘너희들은…… 이제 다 뒈졌…….’

그동안은 화산만 당했던 걸 다른 놈들도 다 같이 당한다면 이건 맞아 죽어도 이득이었다.

‘한번…… 당해 보라고…….’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는 와중에도 기어이 행복하게 웃던 조걸의 고개가 옆으로 툭 널브러졌다. 청명은 축 늘어진 조걸을 두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또옥.

그의 주먹 끝에 고인 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작은 소리가 쥐 죽은 듯 고요한 연무장에 널리 퍼져 나갔다.

“……사람 새끼들이면.”

기절한 조걸을 망연히 보던 이들이 흠칫 몸을 떨며 청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

“불을 처질러?”

“그건 녹림이…….”

“먹는 밥에 독을 타고?”

“그건 당가입니다. 제가 봤습니다!”

“궁주라는 새끼는 제일 먼저 싸우다가 앓아눕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짐승을 끌고 온 새끼들은 관리도 못 해서 민가를 습격하게 두고?”

“……그건 빙궁.”

“야수궁이…….”

“사람 새끼냐, 너희들이?”

물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아무리 청명이 상황을 조성했다지만,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모두의 책임이었으니까. 윗사람이 편히 놀라 했다고, 그 자리에 모포를 깔고 골패짝을 쥐면 편 모포로 멍석말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법 아니던가?

“내가 생각이 짧았지. 적어도 사람인 줄 알았잖아, 너희가. 사람이니까 사람답게 굴 줄 알았지. 그런데…… 사람이 아니었네?”

“…….”

“그럼 그에 맞는 방식이 있는 거지. 과거! 화산의 위대한 한 장문인께서는 이리 말하셨다.”

“뭐, 뭐라고…….”

“개와 미친놈과 말 안 듣는 사제 놈에겐 매가 약이다!”

- 개랑 미친놈한텐 그런 말 한 적 없어!

“시끄러워!”

누구 하나 찍 소리 내는 인간도 없었건만 대뜸 허공에 일갈한 청명이 마침 근처에 있던 당패를 향해 돌진했다.

“마, 막아라!”

“소가주님을 지켜라!”

당가의 가솔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그리고 달려드는 청명을 향해 비침을 날리며, 독연을 뿜어 댔다.

“으라아아아아앗!”

청명은 검을 뽑아 풍차처럼 돌리며 앞으로 쇄도했다. 강한 풍압에 독연이 밀려나고 비침들 역시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히, 히익!”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당패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소매 안에 든 암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뿌렸다.

“으아아! 독질려! 우모침! 귀왕령! 혈적자! 아! 또! 또 뭐지! 아! 칠보추…….”

덥석.

하지만 그 발버둥이 무색하게 코앞까지 도달한 청명이 당패의 손목을 잡아챘다.

“칠보, 뭐?”

“…….”

“칠보추혼사?”

“하…… 하하.”

당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 도장! 제가 설마 도장께 그런 흉악한 것을…….”

“그래? 그럼 이 손에 잡힌 건 뭔데?”

청명이 손목을 쥔 채 당패의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잡힌 독주머니가 힘없이 흔들렸다.

“……이건 그……. 예. 그, 그냥 평범한 산공독입니다. 아주 약한 그…….”

“아, 그러셔?”

“그, 그렇습…….”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

“꿱!”

청명이 주먹이 지체 없이 당패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그 충격에 당패의 입이 순간 따악 벌어졌다. 청명은 당패의 손에 쥐여 있던 독주머니를 열어 고스란히 그 벌어진 입 안으로 쑤셔 박았다.

“평범한 산공독이면 별일 없겠네.”

“읍읍! 읍읍!”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그래 봐야 칠보추혼사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당패가 게거품을 뿜어내며 뒤로 넘어갔다. 당가야 기본적으로 독의 내성을 기르는 수련을 어릴 적부터 하니 소가주쯤 되는 이가 제가 쓰던 독에 중독되어 죽을 일이야 없겠지만, 칠보추혼사 정도 되는 독을 저만큼 먹었으면 한동안 사람 구실 하기는 글렀다고 봐야 한다.

“꾸…르르르르륵!”

아니나 다를까, 뒤로 넘어간 당패가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기이하게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반쯤 넋을 놓아 버렸다. 세상 어디에 가서 당가 사람이 제 독에 당해 쓰러지는 모습을 보겠는가? 그것도 당가의 소가주가.

“아, 너희 전부 독 타는 거 좋아하지?”

청명의 물음에 당가의 가솔들이 모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청명은 쓰러진 당패의 소매를 뒤져 무언가를 줄줄이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그건 함부로 건드리시면 위험한……!”

“그런데 그걸…… 어디서 써 보셨나요?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양손에 당가의 독주머니를 주렁주렁 쥔 청명이 낄낄 웃어 대기 시작했다.

“아, 써 봤냐고?”

“…….”

“에이, 내가 이런 걸 어디서 써 봤겠어? 당연히 처음이지.”

“……아닌 것 같은데.”

“많이 익숙하신데…….”

“처음이야, 처음. 그러니까…… 어디 한번 뒈져 봐라, 이 새끼들아!”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청명이 독주머니를 내던지고 장력을 날렸다. 당가가 선 자리로 녹색과 검은색, 그리고 분홍색 독연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히이이익!”

“아니, 저 양반 뭘 저리 골고루 챙겨 왔어!”

“수, 숨 쉬지 마! 중독된다!”

도무지 이 세상의 광경이 아닌 것 같은 독연의 향연 속에서, 안 맞는 옷처럼 지고 있던 것들을 벗어던지다 못해 모조리 찢어 버린 청명이 광인처럼 낄낄대며 달려들었다.

“으히히히히힛! 신난다아아아아!”

자욱한 독연에 갇혔던 당가의 가솔들은 흡사 쏘아 올린 폭죽처럼 하늘로 줄줄이 솟구쳤다. 가엾게도 말이다.

모든 방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 천우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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