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131화 (1,132/1,567)

1131화. 같이 한번 친해져 보자! (1)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우기정인아역자정(友其正人我亦自正)이고 종유사인아역자사(從遊邪人我亦自邪)라. 바른 사람과 벗을 하면 나 또한 스스로 바르게 되고, 간사한 사람을 좇게 되면 나 스스로 간사해진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 사람의 성품이라는 건 그 스스로 가진 것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말에 틀림이 없다면…… 지금 천우맹에 모인 것들은 하나같이 차마 벗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인간 말종뿐인 게 분명했다.

“……저, 씨…….”

“오늘은 꼭 죽인다.”

오검이 악에 받친 얼굴로 수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의 두 눈에 독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추워서 입 돌아가는 줄 알았네.”

“아니. 전각을 우리가 태웠냐고요! 불 지른 건 녹림이잖습니까! 그럼 녹림이 쫓겨나야지, 왜 우리가 한데서 잡니까?”

“그러니까! 밖에서 재우려면 차라리 빙궁 그 새끼들이나 내보낼 것이지. 그놈들은 침의만 입고 자도 덥다고 창이고 문이고 다 열어 놓고 자던데!”

“와, 문을 열어요? 그럴 거면 지들이 밖에서 자라고!”

백천이 고개를 좌우로 우둑우둑 꺾어 댔다.

“됐고.”

그의 눈에 귀화가 타올랐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녹림 새끼들은 오늘 진짜 묻어 버린다. 이 미친놈들이 하다 하다 전각에 불까지 질러?”

“이거 보나 마나 녹림왕 그 인간이 시킨 겁니다.”

“녹림왕은 얼어 죽을. 그냥 산적 새끼라고 불러!”

안 그래도 불에, 특히나 전각에 붙은 불에 정신적인 상처가 있는 화산이다. 청명이 놈의 말대로 모든 것에 공평한 불 덕분에 화산이 깡그리 타 버릴 위기를 겪지 않았던가?

“그걸 뻔히 알고도 불을 질러? 사람 새낀가 진짜?”

백천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전각이 타는 걸 보며 깔깔 웃어 대던 임소병의 얼굴 때문에 간밤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그 표정이 ‘싸움박질에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화산 새끼들 빡치라고 하는 겁니다.’ 하고 외쳐 대는 것 같아서 속이 더 뒤집혔다.

“임소병…….”

백천이야 이를 빠득빠득 갈았지만, 조걸은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녹림왕 이야기만 할 때입니까? 당가 새끼들이 더 문제 아닙니까!”

조걸이 눈을 까뒤집으며 열변을 토했다.

“아니, 그 미친 새끼들은 생각 없는 산적 놈들이 전각에 불을 지르면 일단 같이 끄고 봐야지. 불타는 데다가 독탄을 던져?”

“…….”

“그 독연(毒煙)만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불 끄고 전각은 살렸을 것 아닙니까? 그 분홍색 독연 풀풀 피어오르는 것 보면서 장관이라고 감탄하던 당잔 새끼 면상 기억 안 나십니까?”

“장관이긴 했지.”

“살짝 매화밭 같기도 하고.”

“응, 예뻤지.”

“뭘 동의하고 자빠졌어, 이 미친 놈들아!”

“……걸아, 진정해라. 그래도 사숙 아니냐.”

“응? 사형? 오늘은 왜 안 때리십니까?”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마침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윤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독연도 독연이지만, 야수궁의 짐승들이 그렇게 날뛰지만 않았어도 전각이 홀랑 타 버리기 전에 불을 껐겠죠. 그래도 명색이 영물이라는 것들이 꼬리에 불붙어서 날뛰는데 그걸 뭘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백아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백아는 어떻게 됐냐? 안 보이던데?”

“그때 필사적으로 짐승들 통제하다가 탈진해서 널브러졌는데…….”

“그래서 앓아누운 거냐? 가엾게도…….”

“아니요. 탈진한 건 이제 얼추 나았는데, 짐승들이 날뛰었다는 소리를 듣고 빡친 청명이 놈한테 잡혀갔습니다.”

“……그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짐승이 잘못하면 무조건 백아 책임이라던데요?”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백아의 입장에서야 억울할 것이다. 지가 아무리 대단해 봤자 결국엔 족제비인데, 집채만 한 짐승들이 불이 붙어 미쳐 날뛰는데 뭘 어쩌겠는가?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인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청명이 놈에게 그런 변명이 통할 리 없단 것이다.

“아미타불.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아직 안 죽었어!”

하지만 혜연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공허한 집착일 뿐입니다. 마귀에게 끌려간 이가 어찌 살아 돌아오겠습니까. 다음에 볼 때는 아마 좋은 목도리가 되어 있을 것이외다.”

“……어쩌다가 불가에서 이런 인간이 나왔지?”

“처음 봤을 때는 분명 수줍고 착했는데.”

“그럼 우리 잘못이네.”

“사실 그건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화산의 원죄(?) 앞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사실 혜연 하나만 보고 있어도 법정이 화산에 품은 악감정과 그로 인해 저질렀던 짓이 이해되어 버리는 수준이 아닌가?

소림의 다음 대를 이끌 천재 무승을 꼬드겨 밤마다 곡주나 찾아 대는 땡중으로 만들어 버린 순간부터, 화산과 소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어진 것이다.

“하여간 지옥 같았다.”

백천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각에 불을 지르는 산적 놈과, 불을 보자마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사방팔방 뛰며 비명을 지르던 화산 놈들.

그리고 화산 놈들이 기겁하여 불을 끄려고 하자 그 전각에 독탄을 던져 넣고 낄낄대던 당가 놈들과, 불이 붙어 날뛰는 영물들을 잡느라 진땀을 흘리던 야수궁도들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혼란과 악의가 모두 그 밤에 뒤섞여 있었다. 그 모습을 봤으면 분명 아수라도 고개를 내저으며 ‘스승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하고 중얼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빙궁 사람들은 어디 있었냐? 빙궁의 빙한기공이면 불 끄는 데 도움이 됐을 텐데.”

“불 근처에만 와도 덥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튀던데요.”

백천의 꾹 다문 입술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어떻게 제정신인 놈들이 하나도 없나?’

모를 일이다. 모아 놓은 놈들이 애초에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지, 그게 아니면 정상적인 문파들이 천우맹에만 들어오면 정신이 나가 버리는 건지.

“아무튼 진짜로 다 죽인다.”

모두가 이를 갈아붙였다.

“……이번만큼은 동의합니다.”

“나도.”

“오라비고 나발이고 면상 한가운데에 대침을 박아 버릴 거야!”

화산의 제자들이 투지를 불태우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이미 다른 문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이고오.”

오검이 등장함과 동시에 임소병이 여유롭게 부채를 살랑거렸다. 요 며칠 더 수척해진 시체 같은 얼굴로 여유를 부려 봐야 곧 죽을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간밤에는 자알 주무셨는지 모르겠네, 우리 도사님들.”

으드드득!

화산 제자들이 이를 가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임소병이 낄낄 웃었다.

숙소에 불을 지른 장본인을 보고 있으니, 화산 제자들의 가슴속에도 지옥 불이 타올랐다. 저놈을 잡아 태워 죽이지는 않고서는 꺼지지 않을 불이었다.

“뚜, 뚫린 입이라고!”

“하하핫. 잠을 설치……. 쿨럭! 쿨럭! 쿨러억! 자, 잠을……. 쿠에에에엑!”

임소병이 폐를 토할 듯 기침을 해 댔다. 기침할 때마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자 주변에 있던 산적들도 슬쩍 께름칙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물러났다.

“쿠, 쿨럭. 잠……. 잠을……. 쿨럭.”

“……저 인간은 그냥 내버려 둬도 죽겠는데요?”

“그냥 둘깝쇼? 괜히 송장치레하는 기분인데.”

“안 되지. 죽어도 우리 손에 죽어야지. 곱게 자연사하기 전에 꼭 때려죽여라.”

“역시 사숙. 화산 인성 순위 두 번째답습니다.”

“뭐? 내가 두 번째야? 조걸이는 어떡하고?”

차마 백천도 자신이 세 번째 아래라고는 주장하지 못했다.

그때 여러 사람이 낄낄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래도 어제 화산이 당한 꼴을 비웃어 주고 싶은 건 녹림과 임소병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고, 그을리고 찢어진 옷을 그냥 입고 나오셨네. 품위 없게.”

“화산에 돈이 없는 모양입니다.”

“어제 남은 옷들이 홀랑 타 버렸으니 뭐 별수 있나? 쯧쯧쯧. 그러게, 자나 깨나 불조심을 했어야지.”

백천은 고소하다는 듯이 웃어젖히는 이들을 형형하게 노려보았다.

“아주…… 신이 나셨네?”

“딱히 우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그러게. 불구경도 잘했고.”

“사람 구경도 잘했고.”

“아, 그러셔?”

백천이 목을 삐딱하게 꺾으며 제 허리춤의 검을 움켜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곧 불구경 신나게 하신 그 눈알 이제 성치 못하실 것 같은데?”

“아이고. 요즘 도사는 협박도 하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못 할 것 같아?”

이제는 긴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따뜻한 주먹으로 악감정을, 부드러운 칼질로 원한을 두텁게 쌓아 올린 관계가 아니던가? 이제는 대화 없이 지나가다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도 다짜고짜 살수를 날려 대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본디 말로 나누는 우정은 제대로 된 우정이 아니다. 이제는 가치 없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서로에 대한 우정을 증명하고 있다.

“다 죽여!”

“당잔 이 새끼, 오늘이야말로 네 제삿…….”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푸른 하늘을 향해 광속으로 날아올랐다.

“뭐, 뭐야?”

“아이고, 걸아!”

“조, 조걸 사형!”

회전하며 날아가는 조걸과 그가 허공에 그려 낸 빨간 궤적을 본 화산의 제자들이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원래 조걸을 쳐 날리려 했던 다른 문파의 제자들도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지?’

아직 화산 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았는데? 당황한 이들이 눈을 끔뻑이며 조걸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비어 있어야 할 그곳에 조걸 대신에 눈에 익은 다른 이가 서 있었다.

“청…명아?”

“화산검협?”

“아니, 왜…….”

후두두둑.

조걸이 허공에 뿌려 댄 피가 가랑비처럼 떨어졌다. 그 속에서 청명이 생긋 웃었다.

순간 백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 위험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가는 어색하게 굳어 있다. 그리고 눈썹 쪽이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이건 위험신호 중에서도 극상의 위험신호였다.

“처, 청명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단은 진정을…….”

“진정?”

청명이 더욱 환하게 웃었다. 백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눈치 빠른 유이설이 조용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청명이 입을 뗐다.

“아냐, 아냐. 사숙,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내가 지금 나쁜 마음을 먹고 온 게 아냐.”

“그, 그러냐?”

상식적인 이라면 그럼 조걸은 왜 패 날린 거냐고 물어야겠지만, 지금만큼은 누구도 그런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아니, 조걸이야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

“그냥 좀 물어보려고.”

“응? 뭐, 뭐가?”

“아니……. 요즘 이상하게 사숙, 사형들이 대련을 안 하고 싸움박질을 한다는 말이 있더라고. 그래서 확인 한번 해 보려고. 이거 지금 싸우는 거야?”

백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모든 일을 만든 놈이 청명이고 아니고 하는 것은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그럴 리가.”

“설마!”

“에이! 말도 안 됩니다, 도장!”

“누,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친한데!”

“대련이지요, 대련! 그냥 대련!”

청명이 어떤 인간인지 아는 이들이 순식간에 말을 맞췄다. 죽일 듯이 서로를 욕해 대던 당가와 화산은 다시없는 절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어깨동무한 채 웃었고, 녹림도들 역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남궁세가와 손을 맞잡았다.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 같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파와 정파가 서로 화합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의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 그래? 그럼 내가 오해한 건가?”

“그, 그럼!”

“이게 다 서로 잘되자고 하는 짓이지.”

“사심은 하나도 없다니까? 하하하하하!”

“그렇습니다, 시주!”

심지어 윤종과 혜연마저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영 눈치가 없는 이들도 있기 마련.

“아니,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망할 놈들이!”

“누가 너희랑 친한 척을 했다는 거야! 이 야만인들이!”

“뭐, 이 새끼야?”

중원 네 문파에 소속된 이들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빙궁과 야수궁이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며 또다시 싸우고 있었다.

‘닥치라고!’

‘제발 눈치 챙기라고!’

‘저 새끼들은 내가 나중에 꼭 죽인다!’

모두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던 바로 그때.

“아, 그럼 싸우는 게 아니었네. 그럼 서로 친한 거지?”

“그, 그럼!”

“당연하죠!”

“에이. 이제는 서로 없으면 못 삽니다.”

청명이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로 친해지는 과정에서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싸우다 보면 돈독하게 정도 쌓이고, 그렇지?”

“그럼요!”

“하하하. 이보다 더 친할 수 없지요.”

당패와 남궁도위가 필사적으로 말을 지어냈다. 그때 청명이 말했다.

“그래서 좀 아쉽더라고.”

“……예?”

그는 히죽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 보니 나도 같은 신분인데, 다들 나만 빼놓고 친해지고 있잖아. 안 그래?”

“그, 그럴 리가요!”

“도장과 제일 친하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에이. 그렇게 예의 바른 말만 늘어놓지 말고.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같이 어울리면서 좀 친해져 보려고.”

“시, 시주. 잠시…….”

청명이 목을 좌우로 신나게 꺾었다.

“그. 러. 니. 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보았다.

화산검협. 마교의 주교를 물리친 사패련의 제일대적. 그 위대한 이름을 가진 이의 두 눈에서 마두 놈도 못 뿜을 흉광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쿠우웅!

청명이 바닥을 콱 내밟자 쩌적쩌적 소리와 함께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겼다.

“어디 나도 같이 한번 친해져 보자, 이 새끼들아!”

그가 눈을 까뒤집고 앞으로 돌진했다.

“히이이이이익!”

모두가 혼비백산했다. 광분한 범이 달려드니 가여운(?) 양들의 처절한 비명이 장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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