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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21화 (1,122/1,567)

1121화. 친구가 부르면 당연히 와야지. (1)

“이, 이게 뭔 소리야?”

“범 우는 소리 같은데?”

“아니……. 소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소고 범이고 왜 갑자기?”

녹림도들이나 남궁세가의 검수들은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사천당가와 화산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아!’ 하고 외마디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획 돌렸다.

“설마?”

당가와 화산 제자들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우르르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남궁세가와 녹림도들도 분위기를 타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문을 과격하게 열어젖히고 나선 백천의 두 눈에, 짐작했던…… 아니, 짐작한 것보다 조금 더 화려한 광경이 들어왔다.

그건 행렬이었다. 강변을 타고 길게 이어진 행렬. 문제는 그 줄을 이루는 게 사람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우와…….”

“끝내준다.”

“저거 범이지?”

“저건 뱀인데?”

“……그럼 저건 대체 뭔데?”

가지각색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말 그대로 집채만 한 범과 한눈에 보아도 사나워 보이는 표범들, 사람 하나쯤은 통째로 꿀꺽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뱀…….

뿌오오오오오!

뱀처럼 기다란 코를 위로 치켜들며 울음을 토해 내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동물까지.

“저, 저게 뭐야?”

“괴물인가?”

“병신들아. 저거 대상(大象)이잖아.”

“대상?”

“그래! 코끼리!”

“헐? 나 실물은 처음 봐. 코끼리가 저렇게 생겼구나?”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짐승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짐승들이 두렵지도 않은지 그들과 함께 걸어오는, 딱 봐도 강인해 보이는 장정들까지 더해지니 충격이 곱절이었다.

진귀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광경을 대체 어디에서 보겠는가?

특히나 이 모습을 처음 보는 남궁도위는 대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당패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남궁도위를 도와주었다.

“남만야수궁의 용사들이오.”

“아…….”

남궁도위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남만야수궁의 궁도들이 맹수를 다룬다는 정보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막상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럼 아군이군요.”

“그렇소. 저들 역시 천우맹의 맹도들이니까.”

당패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야수궁은 천우맹의 시작을 함께한 문파요. 남궁이나 녹림보다 먼저.”

화산을 제외하면 야수궁에 가장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 문파가 당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운남 차 무역 때문에 그동안 왕래가 잦았으니까. 그러니 그들에 대한 평가에도 호의가 섞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뿌오오오오오오!

커흐흐흐흐흥!

“……원래 저분들은 저렇게 짐승들을 대동하고 다니십니까?”

“…….”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이들도 많이 만났을 텐데……. 백주대낮에 저러고 다니는 건 좀…….”

“그…… 어…….”

당패가 곤란한 낯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저 광경을 처음 보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는데……. 최근에는 잘 데리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 많이도 끌고 왔군요.”

남궁도위는 눈을 끔뻑이며 사람과 어우러져 다가오는 짐승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았다. 남궁도위가 딱히 짐승에 조예가 깊은 이는 아니지만, 저 짐승들에게서는 평범한 짐승과는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하나같이 다 영물이라는 건가?’

하기야, 아무리 운남이 중원과는 다른 곳이라도 저런 집채만 한 호랑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지는 않겠지. 그런 곳이라면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운남에서도 저 짐승들은 특별한 영물인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리의 선두에서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던 범이 자신들을 기다리듯 선 남궁도위와 그 문파원들을 바라보더니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

범 특유의 낮은 목울음이 들리자 이를 들은 이들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저 울음소리가 사람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한 것이다.

남궁도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곁에 선 이들도 움찔하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크르르르르!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기세를 올린 범이 목을 살짝 움츠렸다. 그러고는 장강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부숴 버릴 듯 거세게 포효했다.

커허허허허허허엉!

대기를 흔드는 듯한 기파. 남궁은 물론이고, 야수궁이 어떤 곳인지를 아는 이들조차도 본능적으로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을 만큼 어마어마한 포효였다.

크르르르.

범이 샛노란 눈동자로 모두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포효하려는 그 순간.

도도도도도도.

한껏 앙증맞은 발소리와 함께 화산의 제자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 나갔다.

“응?”

남궁도위의 눈이 흔들렸다.

튀어 나간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동물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본, 화산의 무복을 입은 새하얀 족제비.

쪼르르 앞으로 나간 족제비가 커다란 범의 바로 앞에 도착하더니, 두 발로 서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저……!”

순간적으로 당황한 남궁도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물론 저 족제비가 영물이라는 건 그도 알지만, 딱 봐도 저 범과는 크기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족제비는 기껏 해 봐야 사람 목에다 두를 만한 크기였지만, 그 앞에 선 범은 딱 봐도 웬만한 소보다 훨씬 크지 않은가.

그런 범의 앞을 저 작은 족제비가 막아섰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크르르르.

범이 제 앞에 선 족제비를 보며 보기만 해도 섬뜩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작은 족제비를 물어뜯어 반 토막을 내 버릴 듯했다.

두 눈으로 명백한 적의를 흘리며, 범은 사냥을 시작하듯 몸을 낮추며 엎드렸다. 범의 뻣뻣한 털이 제멋대로 바짝 곤두섰다. 그 모습은 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요계의 어딘가에 거하는 요괴 같아 보일 정도로 흉악했다.

크허허허허허엉!

마침내 범이 내장까지 떨릴 만큼 거대한 포효를 토해 낸 순간,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백아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짤따란 뒷발을 돌려 범의 턱주가리를 단번에 후려갈겼다.

콰아앙!

백아의 뒷발에 얻어맞은 범은 흡사 쏘아 낸 포탄인 양 튕겨 나갔고, 맨바닥을 수면 삼아 물수제비처럼 튀어 올랐다.

쿵! 쿵! 쿵! 쿵! 쿵!

남궁도위의 두 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헐…….”

일격에 범을 날려 버린 백아가 이내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뒷발로 바닥을 탕탕 두드렸다.

‘저거…….’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인데. 저거…….

아니, 잠깐. 그 전에…… 족제비가 침도 뱉나? 저걸 정말 족제비라고 하는 게 맞나? 그렇게 불러도 되나?

바닥에 처박혔던 범이 부들대며 몸을 일으켰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

백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터진 순간, 범은 사람이 봐도 명확할 정도로 질렸다. 벼락같이 달려온 범이 백아의 앞에 얼른 넙죽 엎드렸다.

탁. 탁. 탁. 탁.

아주 하찮은 소리를 내며 혀를 찬 백아가, 범에 비하자면 앙증맞다 못해 존재조차 미미한 앞발을 들었다. 그리고 범의 볼때기를 톡톡 두드렸다.

왠지 ‘개념 찾아라.’라는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숨겨진 목소리를 들은 게 남궁도위뿐만은 아니었는지, 집채만 한 범은 대놓고 시무룩한 낯짝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세 살짜리 아이가 봐도 누가 더 강한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광경이었다.

범을 순식간에 제압한 백아가 눈을 희번덕대며 뒤쪽의 다른 짐승들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던 짐승들이 순식간에 꼬리를 말며 이리저리 눈을 피했다.

“으하하하핫.”

그 순간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웬만한 장정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백전이 저놈은 그새 더 흉포해졌군. 도문에 보내 놨으니 성격이 좀 좋아지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내를 보며 남궁도위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겉모습만으로 이리도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는 살면서 처음 본 것이다.

“궁주님!”

반면 화산과 당가의 제자들은 야수궁주 맹소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궁주? 저 사람이?’

남궁도위의 눈에 긴장이 어렸다. 과연 야수궁주.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뭐 한다고 이것들을 다 끌고 오셨어요?”

오만상을 찌푸리며 걸어오는 청명을 보며 맹소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해해 주게. 자네가 쓸 만한 놈들은 다 끌고 오라지 않았는가?”

“얘들이 쓸 만하다는 거예요?”

“아니. 쓸 만한 놈들은 다른 놈들이지. 영물이라고는 해도 결국은 맹수 아닌가? 싸울 수 있는 놈들을 다 끌고 와 버리면 이놈들을 통제할 사람이 없네.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끄응.”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다 끌고 온 것도 아니니까. 개중에서 좀 흉포하고 성격 나쁜 놈들만 골라 데리고 온 걸세.”

“……흉포하고 성격이 나빠요?”

“응?”

“쟤들이요?”

청명이 피식 웃으며 턱짓하자 맹소가 그가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척!

백아가 조그만 앞발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자, 야수궁의 맹수들이 의기소침하여 그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한눈에 봐도 기가 팍 죽은 모습이었다.

“……천적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이 모습만은 맹소도 의외였는지 황망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대체 저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딱 봐도 전에 봤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성격도 몇 배는 더 포악해진 것 같다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청명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딱히 뭘 한 건 없어요. 그냥 짐승 새끼라고 놀고먹기만 하다가는 값비싼 목도리가 된다는 걸 이해시켜 줬을 뿐이죠.”

“……고생했군.”

“제가요?”

“아니, 저놈이.”

“…….”

맹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에 야수궁도들보다 영물을 더 잘 다룰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손짓 하나로 집채만 한 짐승들을 모조리 창고 안으로 몰아넣은 백아가 뒷발로 바닥을 탕탕 두드리더니 쪼르르 청명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양팔을 허리에 척 붙이고 배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뭐?”

탕! 탕!

백아가 꼬리로 바닥을 쳐 대자 청명이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 수고했다.”

키이!

고개를 끄덕인 백아가 재빠르게 청명을 타고 올라 그의 한쪽 어깨를 딛고 섰다. 청명이 그런 백아를 흘끗 보더니 검지로 까만 코를 톡 건드렸다.

“대신에.”

키?

“저 새끼들이 앞으로 사고 치다 걸리면 네가 뒈지는 거야.”

…….

“잘하자.”

시무룩해진 백아가 청명의 어깨에 힘없이 엎드렸다.

그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이 대단한 건지, 짐승이 대단한 건지.’

‘여하튼 여기서 벌어지는 일치고 상식적인 건 하나도 없다니까.’

‘생각하지 말자. 그냥 받아들이면 편해.’

청명은 맹소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짐승들이랑 다 이끌고 오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멀리서 온다고 고생하셨어요.”

“별말을 다 하는군.”

맹소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위압적인 겉모습만 보았을 땐 상상도 못 할 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였다.

“친구가 부르면 당연히 와야지.”

그 말에 청명이 씨익 웃었다.

“친구를 만났으니 간만에 한잔해야겠네요.”

“으하하하핫! 내 그럴 줄 알고 도원향(桃原香)을 모조리 가져왔네.”

“오? 그 끝내주는 술이요! 크으! 간만에 호강하겠네!”

커다란 맹소와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작은 청명이 용케도 어깨동무하더니 낄낄대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멍하니 서 있던 남궁도위가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저 둘이 원래 저리 친합니까?”

“……신기하게도 그렇더군.”

“…….”

남궁도위는 새삼 생각했다. 저렇게 성격이 나쁘면서도 친화력이 좋은 건 참 대단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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