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화. 나 잘할 수 있을까? (5)
그렇게 당가는 매우 침중한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한 번은 실수로 졌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패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짙어졌다. 막상 패했을 때는 정신없고 아파서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쓰려 왔다.
소가주의 명으로 당가에서 힘 좀 쓴다는 이들이 모조리 불려간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걸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천우맹이 거하는 장원 내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은 당가가 아니라 바로 남궁세가였다.
남궁도위의 볼이 쉴 새 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본 남궁단은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고개를 푹 숙였다.
남궁도위가 누구의 아들이던가?
다름 아닌 그 남궁황의 아들이다. 물론 부모 자식이라고 해서 그 성향이 완전히 이어진다는 법은 없지만, 대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닮게 되지 않던가?
남궁단은 알고 있었다. 평소의 남궁도위는 남궁황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상식적인 인물이지만, 눈이 돌아가 버린 남궁도위는 어떤 면에서는 남궁황을 능가할 만큼 폭급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럴 때는 나 죽었소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정말 뼈도 못 추리게 박살이 나고 싶지 않다면.
‘화가 많이 나셨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남궁도위는 천우맹에 들어오면서 정말 많은 것을 버렸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 자신에 대한 자존심. 게다가 가문이 쌓아 놓은 부는 물론이고, 대외적인 명예마저도 웬만큼은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남궁도위에게도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다른 이들도 아니고…….”
“…….”
“사파에게…….”
남궁도위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 표정을 본 모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꼴을 보셨으면…….”
상상만으로도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눈이 돌아간 채 검을 들고 달려오는 남궁황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진짜 남궁황이 이 꼴을 봤으면 염왕의 목을 쳐서라도 현세에 강림하려 했을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닌가는 둘째치고 말이다.
남궁도위는 이제 손끝까지 덜덜 떨었다. 충격이 극심했다.
“어쩌다 남궁세가가…….”
“소, 소가주님!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건 소가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예, 소가주님! 이건 다 저희가 미력한 탓입니다!”
“크흑. 죄송합니다.”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비단 이건 남궁도위의 일만은 아니다.
물론 녹림은 평범한 사파가 아니고, 녹림 중에서도 최정예만 모여 있는 녹채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전력의 태반을 상실한 남궁세가가 상대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남궁세가인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사파 놈들에게만은 지면 안 된다는 말을 자장가처럼 듣고 자라 왔다. 드높은 긍지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 아니다. 이건 다 내 잘못이다.”
“소가주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아니라 아버님이 너희를 지휘했다면 이리 무참하게 패하는 일이 있었겠느냐?”
모두가 순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단순히 검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님의 무위가 나 정도에 불과했다 해도, 그분이 남궁을 이끌었다면 녹림에 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을 긍정해서가 아니라,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하자니 남궁도위를 무시하는 꼴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자니 남궁황을 깎아내리는 꼴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이쪽도 저쪽도 답이 아니니 그냥 침묵할 수밖에.
“그래. 지금은 내가 부족하다. 남궁이 부족하다. 하지만…….”
남궁도위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이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저들에게 반드시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지 똑똑히 알려 주고, 남궁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예, 소가주님!”
“그러실 수 있을 것입니다!”
환호하는 가솔들을 보며 남궁도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예?”
어째 남궁도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가자 가솔들이 움찔했다.
“그게 나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잖느냐?”
남궁도위의 목소리가 묘하게 퉁명스러웠다.
“그렇지?”
“……그…렇지요?”
“너희를 탓하는 말은 아니다마는…… 아무래도 다들 실력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
“실력이 부족하면 수련을 늘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여기서 수련을 더요?”
지금도 뒈질 만큼 하고 있는데? 이게 부족하다고?
“아니, 아니.”
남궁도위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너희가 게으르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저 사파들조차 이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이 말이지.”
“…….”
“어떻게 생각하느냐?”
“…….”
“응?”
“그…….”
남궁단이 어색하게 입을 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체념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썩을…….’
하기야,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황의 이름이 나와 버렸는데 무슨 수로 저항을 하겠는가?
“뜻…대로 하십시오.”
“고맙다!”
남궁도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수련하러 가자!”
“예? 지, 지금이요?”
“문제라도 있느냐?”
“아니……. 오늘 입은 부상이 아직…….”
그 말에 모두가 은근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소심하게 호응했다.
“뼈마디가 쑤시고…….”
“팔도 저리고…….”
모두가 시선을 피하니 남궁도위가 그들을 빤히 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밤하늘을 보는 얼굴이 서글펐다.
“아버님께서 지켜보고 계실 텐데…….”
“…….”
“장강에서 비명에 돌아가신 선대 가주님께서 우리가 남궁의 위명을 회복하기를 오매불망…….”
“아오, 빌어먹을! 합니다! 뭐 하냐, 이 새끼들아! 가자! 수련하러 가자!”
“……예.”
“끄으응…….”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밖으로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남궁도위는 흐뭇하게 웃었다.
“진심은 다 통하는 법이군.”
이렇게 또 한 사람이 타락하고 있었다.
* * *
“으하하하하핫! 녹림왕! 그 새끼들 표정 보셨습니까?”
“명문이니, 뭐니 깝쳐 대더니! 크하하하핫!”
“아우.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녹림도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본디 그들에게 남궁세가는 천적과도 같았다. 그동안 저 썩을 남궁 성씨 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녹림도들이 곤욕을 치렀던가?
물론 그건 근본적으로는 녹림의 잘못이지만, 잘잘못은 잘잘못이고, 통쾌한 것은 통쾌한 것이었다.
정파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술 한 방울 없이 취할 수 있는데, 그 정파가 다름 아닌 저 남궁세가이니 녹림도들은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내가 제대로 붙으면 다 박살 낼 수 있다고 했잖아!”
“흐흐. 이 정도면 저 남궁황이 살아 있었어도 해볼 만했겠는데?”
이제는 현실을 넘어 망상에까지 취하기 시작할 무렵, 어디선가 촤악 하고 부채 접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녹림도들이 슬쩍 시선을 돌려 임소병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좋아?”
“…….”
“좋으냐, 이 새끼들아?”
어색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는 녹림도들을 대신해 번충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섰다.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쁘십니까. 저 남궁세가를 찍소리도 못 하게 밟아 줬는데.”
“밟아 줘?”
임소병이 코웃음을 쳤다.
“이게 지금 밟은 놈들 면상이냐? 밟힌 놈들 면상이 아니고?”
그 말에 몇몇 놈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신나게 기뻐하고야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도 영 말이 아니었다. 악전고투를 치르느라 여기저기 퉁퉁 부어올라 있었던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들. 새파랗게 어린놈들이랑 붙어서 아득바득 치고받다 겨우 이겨 놓고 이렇게 좋다고 날뛰고 있으니.”
“그, 그래도 이긴 건 이긴…….”
“……뭐?”
임소병의 눈이 가느스름해지자 번충이 두꺼운 목을 번개같이 움츠렸다.
“쯧쯧.”
임소병은 불편한 기색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혀를 찼다.
‘자칫했으면 졌다.’
오늘 그들이 이긴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남궁세가의 전력이 예전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가 녹림을 지휘한 게 다름 아닌 임소병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임소병이 지휘하지 않았더라면 반쯤 죽어 나자빠진 남궁세가를 상대로도 패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건 문제야.’
임소병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녹림은 결코 소수의 강자가 이끌어 가는 문파가 아니다. 그들의 힘은 압도적으로 많은 머릿수에서 나온다. 그러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소병은 알고 있다. 이건 그저 변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껏 녹림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사파임에도 단 한 번도 사파의 수장이 되지 못한 이유임을 말이다.
“지금 드러난 대로라면 우리는 남궁세가 하나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 말은 다른 사패련의 문파를 상대로는 박살이 날 뿐이라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천하에 있는 저희 형제들이 모이기만 하면 세상에 상대하지 못할 문파가 없습니다!”
“……모여?”
임소병이 뭔 개소리냐는 듯 번충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그놈들이 지금껏 한자리에 모인 적은 있고?”
“……그거야…….”
“말 그대로 전 중원에 다 퍼져 있는 놈들을 무슨 수로 한자리에 모아? 모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데만 한 달은 넘게 걸리겠다.”
번충이 입을 다물었다.
그도 맞는 말이다. 녹림은 천하의 산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파지만, 워낙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일괄적인 움직임이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설사 명이 전해진다 한들, 그놈들이 정말 내 명령 하나에 산채를 모조리 비우고 다들 달려올까?”
“그야 당연한 말이지요! 녹림왕의 명이신데!”
“진짜?”
“…….”
“진짜?”
“……그…… 산채를 너무 버려두면 문제가 생기긴 하는데.”
“에잉.”
임소병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천우맹에 들기 전까지는 그도 이 모든 것을 정리할 여력이 없었다. 당장 병약한 몸을 이끌고 그를 호시탐탐 노리는 장일소를 상대로 모습을 숨겨 가며 지연전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심력을 소모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이제 천우맹의 들며 하나의 문제를 겨우 해결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튀어나왔다.
“일단…… 현실적으로 말해, 녹림은 결코 약하지 않다.”
“당연한 말씀을.”
“그런데 또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약해. 전력은 넘쳐나는데,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은 말도 안 되게 약해.”
“…….”
“그리고 모아 놔 봐야 사람만 많아서 국지전에는 전혀 활용이 안 돼. 이래서는 전쟁통에 할 수 있는 짓이 머릿수를 이용한 보급 말고는 전무하단 말이지.”
임소병이 중얼거리다 모두를 쭉 둘러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
“다행히 내가 이걸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 해결책을 알면서도 이행하지 않는 건 천하의 병신 놈이라 불려도 할 말 없는 짓이겠지?”
“저…….”
번충이 슬그머니 물었다.
“죄송하지만, 그 해결책이라는 게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임소병이 물어 줘서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지. 일단은 핵심 전력을 강화하는 거야. 녹채가 강해지면 녹채의 영향력도 늘어날 테고, 그럼 녹림에 대한 내 영향력도 강해지지. 그럼 결국에는 녹림 전체가 좀 더 빠릿빠릿해지겠지?”
번충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하고 있었던 일 아닙니까? 그래서 녹림왕께서…….”
“아니.”
임소병이 손가락을 좌우로 저었다.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지. 나도 태생이 사파 놈이다 보니 수련이라는 게 다들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는 건 줄 알았지.”
“…….”
“그런데 화산 놈들이 하는 걸 보니 이게 신문물이구나 싶더라고. 저렇게 하면 되는데 그동안은 왜 안 했을까.”
“그, 그건 저희 방식이…….”
“아, 그건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정하는 게 우리 방식이지 뭐. 안 그래?”
“…….”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화산의 방식도 조금 약해.”
“예?”
순간 입을 쩍 벌린 녹림도들이 임소병을 멍하니 보았다. 눈빛에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의문이 가득했다.
“실전같이 하려면 정말 실전처럼 해야지. 정파 놈들이라 대가 약해서 누구 하나 죽을까 봐 시늉만 하잖아.”
“…….”
“사람이 정말 각오를 다졌으면 희생쯤은 감수해야지. 그렇지 않아?”
“…….”
“후후후후. 이거 설마 이런 식으로 화산검협과 지략을 겨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걸? 내가 아주 제대로 보여 주지. 사파의 방식이 무엇인지 말이야.”
녹림도들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휴우.”
현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근심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오늘 현종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이리될 일이 아닌데…….”
사실 그들이 장강에 자리한 것은 본의가 아니다.
원래는 유민들만 어떻게든 구출하고 난 뒤에 섬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마교가 출현하며 상황이 꼬여 이곳에 눌러앉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현종이라고 해서 이 상황을 나쁘게만 여긴 것은 아니다.
여하튼 당가를 비롯한 천우맹도들이 함께 머무르게 되었으니 친목을 다지는 데는 이 이상 좋은 기회가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 친목을 위해서……. 친목을 위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친목을 다지기는커녕 가면 갈수록 서로 간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천우맹의 맹주인 현종의 입장에서는 속이 타다 못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끄응.”
머릿속으로 낄낄대며 웃는 청명의 모습을 떠올린 현종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놈이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건 좋지 못한 일이다.
“안 되겠어.”
놈이 더 날뛰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중재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 수련을 직접 참관하기로 마음먹은 현종이 재빠르게 연무장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아직 청명이 놈도 나오지 않았을 상황이니, 먼저 가 자리를 잡고 수련 내내 눈치를 주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런 현종의 기대는 연무장에 도착하는 순간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으아아아아아아!”
“야 이 사파 새끼야!”
“이 개 같은 독쟁이 놈들!”
“너희가 제일 문제야! 이 화산 마귀 새끼들아!”
“…….”
현종이 멍한 눈으로 연무장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아군도 적군도 없다.
화산. 당가. 남궁. 녹림.
각각 천하를 대표하기에 충분한 문파들이 제멋대로 뒤얽혀서 싸움박질을 벌이고 있었다.
“어…….”
현종의 입이 절로 벌어진다.
“죽어어어어어어!”
당소소의 그림 같은 회선각이 제 오래비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리는 모습을 본 현종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여기가.
“이야. 알아서 벌써 시작했네.”
“…….”
현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휘적휘적 걸어오는 청명을 바라보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하네. 크으으. 이게 가르치는 보람이지! 보람!”
“…….”
아무래도.
천우맹은 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