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화. 한 번씩은 소름 돋는다니까. (1)
“자! 오늘은 여기까지!”
털썩!
털썩!
청명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무섭게 혜연을 비롯한 화산 제자들이 짚단처럼 엎어졌다. 이른 아침 수련장으로 나올 때의 여유로운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음, 벌써?”
“자정이 다 돼 가요.”
“흐음.”
당군악은 미련이 많이 남은 듯이 느리게 비도를 회수했다.
“이제 좀 몸이 풀리려 했는데 말이야. 나 때는 한번 흥이 오르면 사흘 밤낮 비도를 던지기도 했었는데……. 굳이 이런 순간에 멈춰야 하는가?”
“걱정하지 마세요. 딱 두 시진 뒤에 다시 시작할 거니까요.”
그 말에, 시체처럼 엎어져 있던 화산 제자들이 벼락처럼 고개를 들었다.
“두, 두 시진(네 시간)?”
“원래 세 시진이었잖아, 이 새끼야! 왜 말이 바뀌는데!”
“아, 그랬나?”
청명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근데 이것들이 배때기가 불렀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당가주님께서 친히 수련시켜 주신다는데, 그 천금 같은 시간 쥐톨만큼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애를 쓰지는 못할망정!”
“으…….”
솔직히 저건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 저 새끼의 조동아리에서 튀어나온 말치고는 드물게, 아주 드물게 옳은 소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군악이다. 독왕 당군악. 그는 현 강호를 지배하는 절대 고수 중 하나다.
그런 이가 단순한 비무나 대련도 아니고, 하루 종일 실전에 가까운 수련을 몸소 해 주는 상황이 아닌가?
“다른 놈들이 이 말 들었으면 억만금을 싸 들고 와서 제발 한 번이라도 손 좀 섞어 달라고 머리 처박고 빌었을 텐데! 이 새끼들 아주 호사에 겨워 가지고!”
“끄으으응.”
맞는데…… 맞기는 한데…….
“……억만금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뒈지고 실력이 늘면 대체 무슨 소용이냐.”
“살려 줘.”
“아미타불……. 그, 극락이 보인…….”
“거기…… 지옥입니다, 스님. 댁은 극락 못 가요.”
오검이 서글픈 눈물을 짜냈다.
당군악의 손속이 정말 무자비한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다. 그가 정말 진심으로 공격하려 했고, 오검이 그걸 하루 종일 막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 중 살아 있을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당연히 당군악도 그들의 실력을 배려해 적당히 사정을 두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당군악과 대등,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청명과 삼 년 동안 실전과 같은 비무를 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 알긴 아는데.’
백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등에 돋아난 소름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문제는 검과 비도의 차이에 있었다.
그들에겐 청명의 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 아무리 그가 살기를 있는 대로 담아서 그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고 해도 그 검이 결코 목에 정말로 박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서로 살수를 날려 대는 비무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청명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기에, 있는 힘을 다해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도는 검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당군악이 천하의 독왕이라고 하더라도, 비도를 발출하고 다루는 데 있어서는 저 청명이 놈도 넘보지 못할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비도란 한번 손에서 떠나 버리면 끝인 병기가 아닌가?
정말 찰나의 실수, 아주 단순한 계산 착오만으로도 그 비도가 두목에 틀어박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게 이렇게나 소름 돋는 일일 줄이야.’
맹렬한 기운을 품은 비도가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영혼이 몸을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임사 체험을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에 세워 두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그걸 오늘 아침부터 자정까지 온종일 반복했다. 제정신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엾게도.”
“……그냥 몸 굴리는 게 낫지.”
“여윽시 화산 분들이다. 저건 못 따라하지.”
그들이 얼마나 극한 체험을 하고 있는지는 주변 녹림과 당가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화산만 여유만만한 모습을 원독에 찬 눈으로 보던 이들이, 이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이를 본 것처럼 혀를 찼다. 사흘 굶은 개방 거지를 맞닥뜨려도 저런 눈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어때요?”
청명의 물음에 당군악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혼자서 비도를 날려 대는 것과는 차이가 있군. 일전에 매화도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도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말일세.”
“그렇죠?”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주려 시작한 일인데, 되레 도움을 받게 될 판이야. 한 보름만 수련을 반복하면 뭐가 잡힐 것도 같네.”
“보, 보름이요?”
“이걸 보름이나 더 한다고?”
“농담이시죠?”
오검이 발작을 일으켰다.
지금도 의복이 바늘로 된 비라도 맞은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한데…… 이걸 보름이나 더 해야 한다고? 보름이나?
“그리고…… 당가에 뭐가 부족했는지도 알 것 같군. 해결책도 말이야.”
당군악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화산과 당가를 번갈아 보았다. 흡사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눈빛에, 화산의 제자들과 당가의 식솔들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상하게 등골이 오싹했다.
“조합이 괜찮아.”
본디 당가가 가지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그들의 무학이 가진 근본에서 시작한다.
다른 문파는 서로 검을 휘두르고 대련을 반복해 약점을 보완하지만, 당가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암기의 대부분은 검수들이 대련 때 사용하는 목검처럼 적당히 위력을 죽인 대체품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우모침을 쇠 대신 나무로 깎아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똑같이 만들면 너무 가벼워서 진기가 실리지 않고, 그렇다고 무게를 늘리겠다며 크기를 키우면 암기의 특성이 사라져 버리니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아무리 끝을 뭉툭하게 만든다고 해도 암기는 암기. 까딱 실수하여 눈에 찔리기라도 하면 실명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험하다.
그러니 당가는 허공에 대고 암기를 발출하고 조정하는 수련을 할 수 있지만, 상대를 두고 암기를 진심으로 뿌려 본 경험은 극단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태생적 한계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쨌거나 내 비도를 막았단 말이지.”
“……저희가요?”
“그런 적 없는데요?”
“……난 그냥 서 있었는데.”
당군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화산의 제자들은 겸손하군. 화산검협을 닮아서 그런가?”
“……욕이죠?”
“가주님. 그건 선 넘으셨습니다. 사과하시죠.”
“저 새끼가 겸손이요? 겸손?”
당군악은 발작을 일으키는 화산 제자들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기운차군. 역시 믿음직해.”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사실 당군악은 내심 꽤 놀랐다.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청명과 수련했다고는 하지만, 후기지수는 후기지수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니 당군악은 제 실력의 삼 할도 사용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들의 실력은 당군악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그도 꽤 지친 상태였다.
‘하마터면 정말 살수를 쓸 뻔했지.’
아무리 비도를 던져 대도 어떻게든 막고 아득바득 쳐 내며 앞으로 전진해 오는 모습에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수련을 반복해 왔으면 이 젊은이들이 이런 수준에 오를 수 있었을까?
방어를 굳히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면서도 그가 만들어 내는 비도의 변화에 현혹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예?”
당군악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 비도를 막아 낼 수준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날려 대는 암기 정도는 딱히 위협도 되지 않는단 소리겠지.’
그러니 가능할 것이다.
그가 지금 이들을 상대로 마음껏 비도를 던지며 본인 스스로 점검하는 것처럼, 당가의 식솔들 역시 아무리 공격해도 웬만해서는 다치지 않는 완벽한 표적지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잖은가?
“화산검협.”
“예?”
“실력만 는다면 뭐든 좋은 일이겠지?”
“…….”
“그렇지?”
그 은근한 압박에 청명이 화산 제자들을 슬쩍 보았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제발 안 된다고 해!’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눈빛들이 청명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청명은 걱정 말라는 듯 든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군악을 보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
“야, 이 개새끼야!”
“저 썩을 새끼! 사형제를 팔아?”
“지옥에서도 저주할 테다! 반드시 죽인다!”
청명이 귀를 후비적댔다.
“달밤에 개가 이렇게 짖어.”
화산 제자들이 독기 찬 눈으로 청명을 노려봤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야 있겠는가?
“자, 그럼 가시죠.”
“그러지.”
“어때요? 아직 팔팔하신 것 같은데. 한잔?”
“흐음. 자네가 권하니 거절하기 어렵군. 대신 오늘은 적당히 마시세. 술도 내가 고르지.”
“조금 아쉽지만, 그러죠.”
두런두런 대화하며 멀어지는 두 사람을 망연히 보던 화산 제자들이 이내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윤종아.”
“……예?”
“걸이 저 새끼 주둥아리 좀 꿰매라.”
“……소소가 좀 전에 바늘 가지러 갔습니다.”
“그래. 빠르네.”
백천이 비척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비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을 줄은.”
“그러게요. 진짜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입니다.”
“일단 사람의 손에 쥐여 있지 않다는 게 무섭습니다.”
“내 말이.”
그들이 지금껏 상대해 온 이들은 모두가 그 손으로 병기를 휘두르거나 직접 주먹을 날려 오는 이들이었다. 그 말인즉, 사람을 놓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단 뜻이다.
하지만 당군악은 전혀 다르다.
그는 그저 서 있을 뿐이건만, 그의 손에서 떠난 비도가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어 그들을 농락했다.
“……제약이 없어.”
“그래. 맞다, 사매.”
백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는 아무리 자유롭고자 해도 결국 검을 손에 들고 있다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검의 변화 역시 육체의 한계에 갇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의 손에서 떠난 비도는 그런 한계가 없다. 그렇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건 그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항상 손에 검을 쥔 채 살아왔기에, 검이 육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이다.
“……배울 게 너무 많아.”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사숙.”
“하지만…… 확실한 건…….”
백천은 이제 제법 멀어진 당군악의 등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걸 완벽히 체화한다면 우리 화산은 한 단계 더 강해질 거다. 무인으로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지. 나는 기쁘기가 한량없구나.”
그의 단정한 두 눈에서 정광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것도 안 뒈졌을 때 얘기지.”
조걸이 툴툴거렸다.
“당장 내일 뒈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구만……. 기회는 얼어 죽을.”
“…….”
“잠이나 자러 갑시다. 피곤해 죽겠네.”
“그래, 가자.”
“배도 고프고.”
“뭐 좀 먹어야 해.”
다들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백천을 버려 두고 숙소로 향했다.
“하여튼 저것도 병이야.”
“냅두거라. 사숙이잖느냐.”
“백천 시주는 가끔 너무 무게를 잡습니다. 그 또한 집착인 것을.”
“한 번씩은 소름 돋는다니까. 에휴.”
남겨진 백천은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저…… 얘들아?”
강변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백천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는 부르르 떨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크흠.”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어색한 얼굴로 아이들을 뒤따라갔다.
“같이 가자꾸나, 얘들아. 얘들아? 저기요?”
제 몫의 수련을 마치고 뒤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백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