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8화. 전 중원의 화산화라고? (3)
똑. 똑. 똑. 똑.
규칙적으로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불경을 외는 소리가 작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목탁을 두드릴 때마다 방을 밝히고 있던 등불이 아주 잘게 흔들렸다.
숭고한 광경이다.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는 노승의 얼굴에선 엄숙함과 평온함, 그리고 불가 특유의 고아함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똑. 똑. 똑.
하지만 어느 순간, 규칙적으로 울리던 목탁 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잔잔히 타오르던 등불도 일렁거렸다.
노승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불경 소리가 끊긴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감고 있던 눈을 뜬 노승이 가만히 제 손에 들린 목탁을 내려다보았다.
‘평생을 두드려 왔건만.’
이 목탁을 손에 잡은 지도 칠십여 년.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칠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목탁은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마음의 거울이라…….’
침중한 눈으로 목탁을 내려다보던 노승, 법정이 천천히 목탁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그 몸에 새기고 익혀도 마음이 흔들리면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을.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이 가는 데 달려 있다.
법정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평생을 깨달으려 애써 온 불가의 가르침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은 경전 안에 있다.’
이미 선인들은 그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도 뒤따르는 이들이 쉬이 불법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안다 해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그의 입에서 작은 불호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얼마나 더 궁구하고 또 궁구해야, 진정으로 부처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죄 많고 욕심 많은 육신의 탈을 쓰고 그 경지에 오르는 게 정말 가능하긴 한 것인가?
“……그 또한 집착인 것을.”
우스운 일이다.
집착이란 번뇌의 근원. 진정으로 불법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불법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 역시 일종의 집착이 아니던가?
얻고자 하는 이는 얻을 수 없고, 벗어난 이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불가의 길이니, 그 어찌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란 말인가?
‘헛되도다.’
법정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알고 있다. 그는 이미 부처가 되기는 그른 몸이라는 것을.
‘홀로 부처가 되기보다는 세상 모두를 부처로 만들 것이다. 비록 내 이 한 몸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천하의 모든 이들이 불법의 숭고함을 이해해야 한다. 불법을 받아들이고 궁구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이 고된(苦) 삶에서 벗어날 방법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를 살기에도 힘겨운 이들은 고매한 불가의 가르침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을 정토(淨土)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아닌 위엄이 필요하다.
너무도 빛나 보여 누구도 눈을 뗄 수 없는 눈부신 위엄이. 자신도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일 만한 위엄이.
그에 비하면 소림이라는 이름조차 작다.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결국 중원에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해, 하나라도 더 많은 이들을 정토로 이끌기 위한 것.
소림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부처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소림의 명성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고통받는 중생을 위한 일이 아니던가?
‘한데 그 길이 어찌 이토록 험난하단 말인가?’
법정의 두 눈이 굳게 닫혔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기에 세상은 너무도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 혼란을 이겨 내기에 그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누구도 길을 알려 주지 않는구나. 그 누구도…….’
주름진 손을 뻗은 법정이 다시금 목탁을 잡았다. 흔들리고 또 흔들릴지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기에.
하지만 그때였다.
“방장, 안에 계십니까?”
문밖에서 법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법정은 손에 잡은 목탁을 슬며시 다시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여유조차 넉넉히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가 택한 삶이다.
“들어오너라.”
“예, 방장.”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법계가 안으로 들어왔다.
법정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초췌하기 짝이 없는 법계의 안색을 보고 있자니 지금 자신이 어떤 몰골인지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장.”
법계는 조심스레 법정의 앞에 앉았다. 그의 두 눈이 연신 법정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항주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법정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 역시 궁금해하던 소식이다. 하지만 이미 그 결과를 알 것 같았다. 법계의 표정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느냐?”
“……항주는 절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일단…… 항주로 쳐들어왔던 간악한 마교 무리는 더는 난동을 부리지 못하고 중원을 떠났다 합니다.”
여기까지는 법정 역시 예상했던 바다.
“항주로…… 저 사파의 무리와 함께 항주로 향했던 화산파의 검수들은 어찌 되었느냐?”
“그것이…….”
법계는 눈을 감고 있는 법정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이틀 전에 이미…… 사상자 없이 화산이 거하는 곳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법정은 순간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격정에 휩싸였다. 숱한 감정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이 길어지고, 앞에 앉은 법계는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그저 입을 다물고 법정의 반응을 한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법정이 느리게 눈을 뜨며 물었다.
“이틀 전에……?”
“…….”
“지금 이틀 전이라 했느냐?”
“바, 방장.”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서릿발 같은 기세에, 법계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예전의 법정은 아무리 속이 상하는 말을 듣더라도 저런 차가운 기색을 쉬이 내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는 이제 과거와 달리 법계마저도 두려움에 떨 만큼 차디찬 기세를 때때로 내보였다.
그런데 지금 법정의 기세는 이제까지와는 또 달랐다.
“이틀 전에 그들이 돌아왔다면 개방은 당연히 그들의 행적을 파악했을 터.”
“…….”
“그럼에도 그 소식이 이제야 네게 전해진 것을 내 어찌 해석해야 하느냐?”
“그건…… 그건 저도…….”
법계가 말끝을 흐리고 눈치만 살피자, 법정의 눈가가 희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어느 하나…….”
가볍게 목탁을 잡던 그의 손이 허벅지의 가사 자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등에 새파란 힘줄이 돋아났다.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구나! 어느 하나!”
“방장…….”
“그래.”
입술을 질끈 깨문 법정이 노려보듯 법계를 바라보았다.
“계속해 보거라.”
“…….”
“계속하래도!”
“예, 예! 방장!”
법계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재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개방에서 전해 온 소식에 따르면…… 항주에 나타난 이는 마교의 주교와 그를 따르는 마교도들이었다고 합니다. 강남으로 향한 화산의 제자들이 만인방, 흑귀보, 그리고 녹림과 함께 마교도들을 주살하고…….”
사패련 무리를 입에 담은 법계가 본능적으로 법정의 눈치를 다시 한번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패군 장일소와 화산검협 청명이 합공으로 주교의 목을 쳤다고 합니다.”
“…….”
“남은 마교도들은 도주, 개방에서 그 행적을 뒤쫓으려 했으나 뒤를 따른 개방도들이 소리 소문 없이 그 흔적이 끊겨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전해 왔습니다.”
법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타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 이상입니다.”
법정의 얼굴은 북풍의 칼바람이 들이치는 듯 서늘했다. 그 얼굴을 본 법계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하여…….’
법정과 평생을 함께 지냈다.
크게는 그의 장문방장이지만, 작게는 그의 사형이다. 그는 법정의 고아한 인품을 흠모하고 존경하며 평생을 지내 왔다.
그런데 왜 최근 들어 법정은 왜 그가 알지 못하는 모습을 자꾸만 이리 내보인단 말인가. 소림과 천하 만민을 위하는 법정의 마음이 변치 않았는데도, 어째서?
“패군과…… 화산검협이 주교의 목을 쳤다?”
“개방에서는 그리…….”
“그러니까.”
법정이 법계의 말을 끊고 차디찬 목소리로 일갈했다.
“서로 못 죽여 안달이던 이들이 손을 잡고 함께 싸워 적을 물리쳤다?”
“…….”
“그리고 그 패군은 마교도를 무찌른 후 강남에 고립된 화산의 검수들을 순순히 보내 주었고?”
법계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역시 쉬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적어도 저 강남에는 그들의 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개방이 전해 주는 정보의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 허허.”
법정은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내 화산을 잘못 보았구나.”
“……방장?”
어느새 그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서로 뜻이 다르기는 해도, 적어도 그들 역시 바른길을 가려 애쓰는 이들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내 내심은 조금의 연민은 가지고 있었건만!”
“…….”
“목적을 위해 저 간악한 사파의 무리와 결탁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사파와 다를 것이 무엇이더냐!”
“방장……. 상황이…….”
“상황?”
법정이 성난 눈으로 법계를 노려보았다.
“어떤 상황을 말함이더냐?”
“…….”
“그곳에서 죽어 가는 양민들의 소식에 가슴 아픈 것이 그들뿐이었더냐? 나 역시 밤잠을 설칠 정도로 속을 태웠다!”
쾅!
법정의 주먹이 다탁을 내려쳤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일이더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바르지 않은 길을 가는 게 과연 정(正)을 표방하는 이들이 선택할 길이더냐?”
법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법정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나 역시 그들의 이타심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결과적으로는 저 강남에 대한 사패련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일이라는 것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이더냐?”
“그, 그건…….”
법정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 어리석은 이들이 장일소를 영웅으로 만들었구나. 이제 저 장일소는 강남을 마교의 손아귀에서 구한 영웅이 되어 사패련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겠지. 그럼 더 많은 이들이 더 오랫동안 고통받을 뿐이라는 것을 어째서 모른단 말이더냐?”
법계는 대답 없이 법정을 보았다. 그 모습이 할 말을 잃은 사람 같았다.
“다 틀렸다! 다 틀렸어! 항주? 항주에서 죽은 이들이야 당연히 안타깝다. 하지만 그래서 강남으로 달려간 이들이 무엇을 이루었느냐? 그 항주의 사람들을 구했느냐?”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한 난이 일어나면 사람들을 달아날 수밖에 없지. 당연히 피해는 극도로 줄어들었을 것이고, 결국은 저 사패련의 패악무도한 것들이 마교의 남진을 막기 위해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저 조금 참는 것만으로도 마교와 사파라는 두 해악의 상잔이 가능한 상황이었거늘! 어찌하여 그 상황에 섣불리 뛰어들어 강남의 양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단 말이더냐!”
“…….”
“어리석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법정이 이를 뿌득뿌득 갈아붙였다.
“그 깊은 곳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또 저들을 상찬하고 우리를 비난하겠구나! 또! 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고!”
“바, 방…….”
“이!”
콰아아앙!
결국 법정이 주먹을 내리치자 앞에 놓인 다탁이 산산조각 났다.
놀란 법계가 입을 벌린 채 법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산…… 이 상종 못 할…….”
법정의 두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