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8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3)
“……열 배?”
오검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어졌다.
물론 이번에 본 놈들이 마교의 주 전력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을 굳이 거론할 것도 없이 천살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능히 짐작하고 남을 일 아니던가?
‘하지만…….’
백천이 청명을 돌아보았다. 두 눈에 황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곳에 있었던 마교도만으로도 만인방의 정예와 흑귀보의 정예가 위기에 빠졌다.그런데 단자강이 마교도들을 물리고 전면에 나서는 대신,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항주로 진입한 모두가 그 땅에서 뼈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전력의 열 배라고?’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현종 역시 오검이 느낀 감정을 똑같이 느꼈는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생각 이상이구나.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 목소리에 어린 망연함과 답답함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물론 마교는…… 과거의 강호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곳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백 년이 지났는데…….”
“그래서예요.”
청명의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현종이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자 그가 부연했다.
“그걸 감안해서 열 배 정도라는 거죠. 그게 아니었으면 겨우 열 배로는 안 끝납니다.”
현종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청명의 눈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확신에 찬 표정을 보는 순간, 현종은 이 모든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가 저런 얼굴로 무언가를 말할 때는 언제나 그 근거가 있었으니까.
“연유를 조금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
“간단해요. 주교 때문이죠.”
“주교?”
“예.”
청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상대한 주교 놈은 나이가 어렸어요. 그 말은 중원에서 내몰린 마교가 현재 어떤 방식으로든 교도를 확충하고, 새로운 전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거죠.”
청명은 주위에 앉은 이들을 슬쩍 돌아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 마교에는 그 젊은 주교 정도 되는 이가 얼마든지 더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정적이 흘렀다.
부채로 제 볼을 꾹꾹 누른 임소병이 한쪽 손을 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도장.”
그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물론 가능성은 있습니다. 우리가 본 주교는 둘뿐이니까요. 그 외에 다른 주교들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겠지요. 하지만 그걸 그렇게 단순히 추산해 버리는 건…….”
“마교의 교구는 모두 열일곱 개.”
임소병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말은 그도 얼핏 들어 본 적이 있다. 과거 천마는 열일곱 개의 교구로 이루어진 마교를 이끌고 중원을 침공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각 교구는 주교가 통솔하지.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된 마교에는 열일곱 명의 주교가 있다는 의미야.”
“열일곱…….”
순간 백천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마기를 폭풍처럼 뿜어내던 단자강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공포의 현신과도 같았던 모습. 세상을 호령하던 강자인 만금대부도, 장일소도, 심지어는 청명조차도 압도하던 그 무시무시한 모습.
‘그런 놈이…… 열일곱이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숨 막힐 것 같은 침묵 속에서 청명의 두 눈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일반적으로 주교의 수는 열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마교 역시 전력을 쏟아부은 전쟁에서 죽어 간 주교를 보충하지 못해 대략적인 수만이 알려진 것이다.
마교가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춘다면 주교의 수는 열일곱. 아니, 교구를 이끌지 않고 오직 천마만을 모시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임하는 이들마저 주교라 통칭한다면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으음. 하지만 화산검협.”
당군악 역시 이 말에는 이의가 있는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의 마교는 과거의 마교와 다르네. 그들은 중원에서 내몰리지 않았던가? 그런 이들이 다시 전력을 회복했다고 하기에는…….”
“그럼 그 전에는요?”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전의 마교는 중원에 있었어요?”
당군악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도 당연한 논리건만, 지금껏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다.
청명이 그거 보라는 듯이 말했다.
“이전의 마교 역시 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힘을 키운 건 마찬가지였어요. 그럼에도 천마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힘을 갖춰 중원을 침공했죠. 이번이라고 다를 거란 보장이 있나요?”
“……없군.”
당군악이 인정하자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지금 다시 중원으로 쳐들어오기 위해서 힘을 키우고 있어요. 그렇다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주교를 키워 내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겠죠. 어설프게 교도를 천 명 키워 내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의 주교가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니까.”
강호에서는 단순히 머릿수를 늘리는 것보다, 절대고수를 하나라도 더 확충하는 것이 배는 더 중요하다.
“그리고 놈들에게는 백 년의 시간이 있었어요.”
청명이 눈빛이 조금 싸늘해졌다.
“중원이 과거를 잊고 평화에 취해 있을 동안 놈들은 쓸개를 핥으며 언제고 중원에 복수할 날만을 기다려 온 거죠. 무려 백 년 동안.”
“…….”
“그런데도 정말 새로 키워 낸 주교가 그놈 하나뿐일까요? 설마?”
당군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고수를 키워 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문파 차원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한 세대에 한 명이라도 육성해 낼 수 있다면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중원에서 패퇴한 그들이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힘을 후예의 육성에 쏟아부었다면? 단일 문파로 중원 전체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마교가 백 년이라는 시간을 절치부심했다면?
‘……차마 불가능할 거란 말이 나오질 않는군.’
상황을 이해한 당군악이 굳은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럼 자네는…… 마교가 완전히 힘을 회복했다고 보는 건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청명이 입을 닫고 잠시 숙고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수적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이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주교는 많아 봐야 열 명 남짓한 수준이겠죠. 희망적으로 봤을 때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자강만 한 이가 열이나 있다는 것도 소름 돋는 일이지만, 열일곱이라는 수에 비한다면 그나마 현실적인 숫자다.
“문제는 주교의 질이에요.”
“음?”
“과거 천마가 죽을 때 살아남았던 주교들이 아직 마교에 있다는 거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그때의 주교가 살아 있다고? 그럼 대체 그들의 나이가 몇이라는 건가?”
당군악의 두 눈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피어올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그놈들이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는 거예요.”
본디 육체는 나이가 들며 쇠락한다.
그건 무학으로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강호인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내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기만 하는 법. 강호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갔던 강자들이 그 후로도 백 년간 수련을 지속해 왔다면 지금 대체 어떤 수준에 올랐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어린 주교는 그놈을 이주교라 불렀죠.”
“……그 위에 대주교가 또 있다는 말이로군. 그렇다는 건,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주교가 최소한 둘이라는 건가?”
“그렇죠. 최소한으로 봤을 때.”
청명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과거의 주교들을 포함한 주교의 총 전력은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죠.”
모두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청명은 이 침묵을 이해했다.
설마 그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이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청명이 죽을 때,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당조평이 지금은 당가 최고의 어른이 되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그때도 나이가 적지 않았던 주교들이 설마 아직 살아남아 있을 줄이야…….
물론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청명은 이미 과거 전쟁의 생존자인 북해의 주교를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북해의 주교는 당시의 심각한 주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어설프게 끼워 넣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나이로 보나, 그 무위로 보나 감히 주교를 자칭할 수 없는 이였다.
그런데…….
‘천살.’
그놈은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놈은 과거의 그 무시무시했던 주교들 중에서도 유독 악명을 날리던 놈이다. 그런 놈이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대주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컸다.
“단언컨대.”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다시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마교의 힘은 결코 과거에 못지않을 거예요.”
말을 하는 내내 혀끝이 아린 기분이다. 청명조차 이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얼마 전이었다면 이들 앞에서 차마 이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적은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절망적일 정도로 거대한 적은 조금 남은 의욕마저 깎아 버리니까.
청명이 마교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해 온 것은 그저 제 정체를 숨기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마교의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이상, 그리고 그들의 발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신한 이상,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맞서 싸워야 할 적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말이다.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청명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백천이었다.
청명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한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라면, 그리고 저들이 언급한 대로라면…… 과거 마교의 전력은 절반 이상이 그 천마의 존재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럴 거야.”
백천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럼 마교가 과거 못지않을 거라는 네 말은, 그 천마가 과거 그대로의 힘을 가진 채로 돌아온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거잖느냐. 그렇지?”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
“정말 천마가 부활하기만 하면 과거의 힘을 그대로 가진 채 부활하는 거야? 아니……. 부활이라는 것도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그 힘을 온전히 가진 채 부활한다는 건 더 이상한 일이잖느냐.”
백천의 의문에 모두가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 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천마일 터. 그런데 오히려 천마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어서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명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몰라.”
“……뭐?”
“나도 모른다고.”
청명이 냉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놈이 어떤 식으로 부활하는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 예측할 수가 없어. 부활한 다음에 그 힘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지, 그게 아니면…… 부활하자마자 말 그대로 ‘천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건지.”
“…….”
“확실한 건 하나뿐이야. 어떤 식으로 부활하든…… 그놈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결국 결과는 같을 거라는 것.”
화산검협 청명. 동시에 매화검존 청명.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두 개의 삶을 살아온 그의 입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천마와 마교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가 항주에서 본 일이 온 중원 전체에서 재현될 거야. 아니, 어쩌면 중원을 넘어 온 세상에…….”
어쩌면 예언. 동시에 저주.
“멸망이 찾아온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청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