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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086화 (1,087/1,567)

1086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1)

“벌써 돌아왔다고?”

“그렇다니까!”

“그, 그 마교를 벌써 무찔렀단 말인가? 출발한 지 나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당수명(當水明)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마교라는 이름이 주는 두려움은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백 년 전 그 처절했던 전쟁을 아주 모르는 이가 누가 있는가. 강호인들이라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은연중에 언급조차 금기시되어 있기에 입 밖으로 내는 경우는 흔치 않았지만, 적어도 마교가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란 걸 모르는 강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고작 나흘 만에 무찌르고 돌아왔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럴 수가 있나?”

“에이, 설마 진짜 마교가 모조리 몰려온 것이겠는가? 선발대 정도였겠지.”

“아니, 이 사람아.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선발대라고 해도 마교일세. 마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가?”

“……하긴.”

그 말을 들은 당문혁(當文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발대에 불과하다 해도, 마교는 마교다. 더구나 그 선발대가 저 항주를 초토화한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선발대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그 사갈 같은 사패련주 놈이 도움을 청했겠는가? 소문에는 그 만금대부도 마교 놈들에게 큰 화를 입었다는 말도 있네.”

“설마 그렇게까지는…….”

“거참, 이 사람이! 내가 없는 소리를 하겠나? 무려 개방에서 나온 소식이라네.”

“그 말 정말인가?”

“아무렴!”

당수명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슬슬 내저었다.

“그런데…… 아무리 사파 놈들의 힘을 빌렸다지만, 그런 놈들을 불과 나흘 만에 정리하고 돌아오다니…… 도대체 저 화산검협은…….”

“그게 어디 화산검협만의 힘이겠는가? 함께 간 오검과 다른 화산 분들도 힘을 보탠 거지.”

“그렇지, 그렇지. 그 말도 맞네.”

말을 나누는 당가인들의 얼굴에 알게 모르게 뿌듯함이 피어났다.

본디 강호인들은 타 문파의 활약을 그리 즐겁게만 지켜볼 수는 없다. 다른 문파가 위세를 떨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문의 위세가 약해진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활약을 논하는 당가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언짢음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가주님의 선견지명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그러게 말일세. 저 화산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장로님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분들은 모두 반대했었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당시에 화산과 연합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우리는 천하의 사천당가고, 저들은 다 망한 문파였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감탄했다.

화산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떨어지던 시절, 당군악은 그 화산과 대등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가주의 권위가 워낙 강한 사천당가인 데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원로원도 해체된 뒤라 누구도 대놓고 반발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심으로야 얼마나 불만이 많았던가?

그런데 그 선택이 설마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당시에 천하에서 화산이 가진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분은 오직 우리 가주님뿐이었던 거지.”

“아암! 그러니 우리 가주님 아니신가.”

당가인들의 얼굴에 절로 뿌듯함이 피어났다.

적어도 당가 사람들에게 화산은 결코 단순한 타문도, 외인도 아닌 것이다. 화산이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부터 관계를 맺고 지원해 온 곳이자, 하나뿐인 혈맹이 아닌가?

화산이 그 위상을 높일수록 오히려 당가의 대단함이 부각되는 형국이니 즐거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일로 화산의 위상이 다시 한번 높아지겠네.”

“그 무슨 뻔한 소린가? 화산만이 아니지! 천우맹과 당가의 위상도 다시 한번 높아질 걸세.”

당문혁이 끌끌 소리 내어 웃었다.

“저 구파일방 놈들, 특히나 그 소림 대머리 놈 속이 뒤집힐 걸 생각하니 벌써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군.”

“그렇지, 그렇지!”

모여든 이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부터 소림을 비롯한 구파일방에는 그리 좋은 감정이 없었다. 지역의 특성상 구파일방을 등에 업은 청성과 대립하던 곳이 당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악감정이 매화도 사태로 인해 극에 달한 상황이니, 이런 반응이 나오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일들을 하고 돌아오신 우리 영웅님들은 어디에 있는가? 듣자 하니 소소 아가씨도 다녀왔다고 하던데?”

“쯧쯧. 뻔한 소리를 하고 있군. 당연히 지금쯤 높으신 분들께 치하를 받고 있겠지.”

“그렇겠지?”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마교일세. 그것도 적진 중의 적진인 강남을 가로질러 공을 세우고 돌아온 것 아닌가? 온종일 칭찬을 듣고, 칠 주야를 꼬박 상찬받아도 모자랄 위업일세!”

“크흐. 부럽군. 나도 가주님께 칭찬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어.”

“자네는 평생 가도 그럴 일 없으니, 괜히 헛물켜지 말고 욕이나 안 퍼먹게 조심하게.”

“뭐야?”

분위기가 왁자지껄하게 달아올랐다. 그들이 직접 이룬 위업은 아니나, 천우맹 소속으로서 자부심에 불을 지피기에는 충분했으니까. 누구나 소식을 듣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화산검협 청명과 그를 지원한 이들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들이 이 거대한 위업에 걸맞은 칭찬을 받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말이다.

* * *

그리고 그 시각.

“똑바로 들어라.”

“…….”

“똑바로 들라고 했다.”

무려 저 사패련의 소굴인 강남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진입하여 양민들을 학살하던 마교도들을 무찔렀으며, 그 살벌한 강남에서 희생 없이 빠져나온,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한 화산의 영웅들은…… 일렬로 줄을 지어 꿇어앉은 채 양팔을 들고 있었다.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백천이 슬그머니 시선을 올려 상석에 앉은 현종을 곁눈질했다. 그의 이마에 푸른 뱀처럼 불거진 핏대를 본 백천은 조용히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살다살다…….”

“…….”

“뭐? 수적선을 주길래 그냥 타고 와?”

“…….”

“밥 해 먹으려고 수적선을 뜯어서 불을 질러?”

현종의 두 눈이 살기를 띠고 희번덕거렸다.

물론 이곳에 있는 현종은 제자들의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이제나저제나 하던 현종이 아니었다.

한바탕 격전을 치른 모양으로 불에 탄 수적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강을 거슬러 남경까지 무려 천릿길을 냅다 달려갔다가, 그 걱정하던 놈들이 수적선을 타고 구강에 도착해 술판을 벌이고 있단 말을 듣고, 다시 또 천 리를 달려 이제 막 구강에 도착한 현종이었다.

“허허……. 허. 허허허…….”

황당하다는 듯 연신 피식 웃던 현종이 돌연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니들이 사람 새끼냐!”

“잡아!”

“막아!”

현종이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옆에서 긴장하고 있던 당군악과 현상이 잽싸게 몸을 날렸다. 그들에게 붙들려 대롱대롱 매달린 현종이 연신 허공을 걷어찼다.

“남은 애가 타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줄 알았는데! 뭐? 수적선을 타고 와? 배가 고파서 배를 뜯어? 이 사파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

“지, 진정하십시오, 맹주님!”

“아이고, 장문인! 제발 참으십시오! 어쨌든 공을 세우고 돌아온 애들 아닙니까?”

“공? 고오오옹? 이런, 빌어먹을! 뭐? 공을 세워? 공을 세우면 뭐 하냐! 사람이 덜됐는데! 사람이!”

전력으로 뻗은 현종의 발이 백천의 얼굴 바로 앞을 연신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풍압이 백천의 창백한 얼굴을 때려 댔다.

하지만 그는 차마 고개를 뒤로 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선만 피했다.

‘나는 몰랐지…….’

설마 현종이 구강에서 기다리지 않고 장강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적당히 구강 주변에 가서 미리 연통만 넣어도 별문제 없을 줄 알았지.

그들이 따뜻하게 불을 쬐며 돌아오는 와중에 속이 탄 현종이 강을 거슬러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거…… 배고프면 밥 좀 먹을 수도 있…….”

“닥쳐, 이 새끼야!”

“조용히 해요!”

“주둥아리!”

“너는 입 열지 마! 절대 입 열지 마! 죽인다 진짜!”

오검이 기겁해서 청명을 향해 포화를 쏟아 냈다.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닥치라고!”

말로 신나게 얻어맞은 청명은 입을 삐죽거렸다.

청명과 달리 다른 오검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라. 가면 안 된다는 물놀이를 기어이 하겠다며 강가로 간 자식 놈이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에 달려가 하루 종일 아이를 찾아 헤매고 다녔는데, 막상 그 자식 놈은 집에서 태평하게 놀고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모 심정이 과연 어떻겠는가? 응당 속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겠는가?

‘나 같아도 일단 등짝부터 너덜거리게 후려친다.’

‘장문인이야말로 참된 도인이시지. 우릴 살려 두시네.’

현종이 살기 띤 눈으로 운검을 획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 너 이 새끼! 너!”

운검의 고개가 아래로 더욱 수그러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같이 보내 놨더니! 뭐? 거기서 같이 죽을 처먹고 있어?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더냐? 그게?”

운검의 이마는 이제 거의 땅에 닿을 듯했다. 껍질 안으로 파고든 달팽이 같기도 한 그의 등을 보며, 오검은 차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숙.’

‘죄송합니다, 사숙조.’

‘아이고오…….’

운검에게도 입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말을 하기 위한 용도를 완전히 상실했다. 느긋하게 강을 통해 올라오는 동안 잠깐 물가에 들러 연통 하나만 넣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터. 그 간단한 것 하나를 놓쳐서 장문인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남경까지 왕래하게 만든 것이다.

남경까지 전력으로 달려가는 동안 이들의 속이 얼마나 탔을지를 생각하면…….

“죄송합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떻게 삼 대가…….”

사고 치지 말라고 운자 배, 백자 배, 청자 배를 다 섞어서 보냈다. 그런데 그 셋이 나란히 같은 짓을 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쯤 되면 정말 문파에 마가 낀 게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물론 운검에게도 억울할 여지는 있다. 그럼에도 그가 입 한 번 벙끗하지 못하는 것은, 이곳에 지금 그보다 더 억울한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소가주께서도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예?”

난데없이 날아든 불똥에 얻어맞은 남궁도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지금까지 구석에 앉아 눈치껏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일행 놈들이 미친 짓거리를 하면 일단 말리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도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분이 어찌 이런 망종 놈들과 같은 짓을 하고 그러십니까!”

남궁도위의 눈이 좀 더 커졌다.

“제, 제가요?”

“그렇지요!”

“이분들을요?”

“그…….”

“제가요?”

“…….”

“제가요?”

현종의 얼굴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다. 그냥 저 반응만 봐도 남궁도위가 뭘 보고 뭘 겪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청명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알아서 잘 갔다 온다고, 걱정 말고 기다리시라고 했잖아요. 장문인도 이제 나이가 드셨나.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지셔서는.”

“…….”

“어쨌든 다들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잖아요. 안 그래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보았다.

멍하니 청명을 바라보던 현종의 얼굴이 점점 변해 가더니, 이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모습을.

그건 분명 화산의 제자들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도주’라는 말이 강렬하게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으아아아아! 이 마구니 새끼들아아아아아아!”

끝내 터져 버린 현종이 팔을 잡은 당군악과 현상을 날려 버리고는 오검에게 달려들었다.

먼 훗날…… 현상은 그곳에서 아수라를 보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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